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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220화 (220/257)

220화. 세상의 모든 사랑 (6)

LA의 디즈니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밀리아는 투덜대며 백설공주 드레스를 벗었다.

“시급이 높아서 시작하긴 했는데 이 공주 복장 너무 지겨워.”

옆에서 라푼젤 가발을 벗으며 조이가 대답했다.

“넌 그래도 가발은 안 쓰잖아. 난 가발까지 쓰니까 목도 아프고 너무 더워.”

인어 공주 비늘을 벗으며 올리비아가 대답했다.

“그래도 너흰 다리는 있잖아. 난 물고기처럼 비늘을 차고 꼬리 치고 있다니 다리에 땀띠가 나서 죽을 지경이야.”

조이가 속눈썹을 떼며 말했다.

“디즈니 공주는 극한 직업이라니까.”

팅커벨의 날개옷을 벗으며 소피아가 말했다.

“그래도 아기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잖아. 아기들이 우릴 보며 얼마나 기뻐한다고.”

올리비아가 말했다.

“나도 아기 땐 그랬었지. 하지만 현실에 공주는 없어. 힘든 하녀들만이 있을 뿐이지. 우릴 봐. 우리가 어떻게 공주야. 알바에 시달리는 불쌍한 청춘들이지. 조이 넌 레포트 다 썼어?”

“아니, 아직 시작도 못 했지. 오늘 밤을 새워서 써 봐야지. 그래도 공주 알바가 시급이 높은 덕에 오늘은 맥주를 원 없이 마실 수 있겠다.”

아밀리아가 조이의 말을 들으며 웃었다.

“음주 레포트라니. 점수 잘 나오겠다. 아주. 교수님이 음주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

“아밀리아, 교수님은 그런 거 몰라. 레포트가 나 음주했어요. 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학점이 걱정될 뿐이지. 열심히 일한 뒤에도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데 학점 걱정까지 해야 한다니. 진짜 쓸쓸한 청춘들이다.”

올리비아가 소피아에게 말했다.

“소피아, 넌 지난번에 뮤지컬 오디션 본 건 어떻게 됐어?”

“떨어졌어. 괜찮아. 다음 오디션이 또 있으니까.”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음이 가장 부럽다고 하는데 난 젊음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 내 청춘은 왜 이렇게 힘드냐? 그렇지 않니?”

소피아가 어색한 듯 웃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난 내 현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걸. 오늘 레스토랑에 온 아기가 나에게 사탕을 줬어. 너무 귀엽지 않니?”

조이가 대답했다.

“그 아인 네가 진짜 팅커벨이라고 믿었을 테니까. 나도 아직 다섯 살이라면 동화 속 공주님들을 믿으며 살아갈 텐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잖아. 세 시간 꼬박 알바를 해야 밥 한 끼를 사 먹고 차비를 낼 수 있어. 학비는 다 대출이고 취직해도 난 학비 갚다가 청춘을 다 보내고 말 거라고.”

소피아는 생각했다.

‘다들 날 보고 너무 낙천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관적인 것 같아. 그렇게 투덜댄다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데 말야. 어쨌든 난 팅커벨 복장을 할 때마다 너무 신나고 행복한걸.

인생에 마법이 없다면 너무 우울하잖아.’

소피아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은우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쩰리는 죠금먄

초콜리또 죠금먄

자기 저네 이다끼

밥 먹기 저네 손다끼.”

올리비아가 물었다.

“이 노래 뭐야?”

아밀리아도 노래에 관심을 가졌다.

“아기 목소리 같은데 너투브야?”

“아니, 이은우라고 [블랙 레오퍼드 2]에 나왔던 배우야. 와찰라 역을 맡았던.”

“아, 와찰라. 근데 걔가 노래도 해?”

“이번에 처음으로 싱글 앨범을 냈어. 한국에선 이미 미니 앨범을 낸 적이 있었고.”

“아, 케이팝. 나도 알아. [탑 보이즈] 때문에 듣게 됐는데 정말 흥겹고 무엇보다 퍼포먼스가 정말 멋지더라.”

“케이팝. 왠지 이 노래 완전 멋진데.”

그들은 함께 리듬을 타며 은우의 노래를 들었다.

“이쪽 뱌라. 저쪽 바랴.

엄마에게 와랴.

아빠에게 와랴.

아기료 살기는 피건해.

아기료 살기는 피건해.”

조이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기료 살기는 피건해.

아기료 살기는 피건해.”

듣고 있던 아밀리아가 조이에게 말했다.

“조이 너 한국어 잘하는데? 언제 한국어 배웠어?”

“놀리지 마. 난 [탑 보이즈] 팬이잖아. 케이팝 때문에 한국어들을 조금씩 알 뿐이야.”

올리비아가 말을 이었다.

“조이는 케이팝 때문에 한국을 너무 사랑하게 돼서 한국 식당에도 자주 다닌다고. 불고기에다 소주도 마시고 그치? 조이.”

조이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엔 한국 식당에 가면 나 말고도 미국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한국 사람들은 날씬하고 어려 보이잖아. 한국 음식이 칼로리가 낮아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난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 음식을 먹고 있어.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우리가 늘 가는 벌스비 레스토랑과 비슷해.”

아밀리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

“진짜?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는데 싸단 말이지. 나도 가 보고 싶은데.”

노래를 듣던 소피아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 노래 좋은데 우리도 한번 불러볼까?”

조이, 아밀리아, 올리비아는 자신 없다는 반응이었다.

“우리가?”

“이걸 부른 아기 목소리가 워낙 좋은데. 우리가 이렇게 잘 부를 수 있을까?”

소피아가 의견을 내놓았다.

“그냥 부르는 게 아니고 공주 버전으로 불러보자고. 우린 공주들이잖아.”

아밀리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우린 공주 알바들이야. 진짜 공주가 아니잖아.”

소피아가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공주가 될 권리가 있어. 암튼 이건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재밌게 부르는 게 중요하니까 한번 해 보자. 요새 너투브로 스타가 된 사람들도 많잖아.”

조이가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 혹시 영상 조회 수가 별로라도 은우는 보지 않을까? 은우가 댓글 한 번만 달아주면 소원이 없겠다. 잘되면 은우가 우릴 만나러 오지 않을까?”

올리비아가 조이를 보며 못 말린다는 듯 말했다.

“조이, 팬으로서 너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말야. 그래도 네 팬심에 친구들까지 끌어들여서야 되겠어?”

“올리비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원래 우린 다 같이 노는 걸 좋아했잖아. 그냥 우리끼리 노는 거라고 생각하자. 공주로 빙의해서 노는 거. 재밌는 추억 하나 만들면 되잖아.”

소피아가 이때다 싶었는지 말을 이었다.

“그래, 올리비아. 대단히 어려운 게 아니라고. 알바하듯이 공주 분장을 한 뒤에 공주 특유의 말투를 섞어서 말을 하면 돼. 거기에다 방금 털어놓았던 우리의 생각들을 조금씩 넣으면 좋을 것 같아. 그럼 듣는 사람들도 공감할 거라고.”

아밀리아가 소피아에게 물었다.

“그래, 소피아. 어떻게 바꿀 건데 가사를?”

“아밀리아, 넌 백설공주니까. 백설공주의 피곤함에 대해 노래하면 좋지 않을까? 새어머니의 질투 때문에 힘들고 사과가 목에 걸려 힘들고 그런 걸 넣어서 말이야. 잠깐만.”

소피아가 가사를 적어 아밀리아에게 보여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가 누구니?

새어머니의 무서운 집착.

난 인형이 아니에요.

난 마술 거울에 관심 없어요.

공주로 살기는 너무 피곤해.

공주로 살기는 너무 피곤해.]

아밀리아가 소피아의 가사를 보며 놀랐다.

“소피아, 너 재능이 있었구나? 네가 이렇게 가사를 잘 바꾸는지 몰랐어.”

“뮤지컬 배우 오디션만 3년째야. 비록 배우가 돼 무대에 서진 못했지만, 항상 그날을 꿈꾸며 노래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노래하는 게 네 꿈에도 도움이 될까?”

“어쩌면. 그치만 난 내 꿈을 이루는 거보다 우리가 즐거웠으면 좋겠어. 인생은 한 편의 뮤지컬이고 늘 행복한 거니까.”

아밀리아가 소피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소피아. 네 말에 항상 삐딱하게 군 거. 사실 네가 항상 부러웠어. 넌 항상 긍정적이고 밝고 에너지에 차 있으니까. 불만도 없는 거 같고. 난 하루하루가 지치는데 넌 그런 거 같지 않아서 괜히 내가 그랬나 봐.”

“그럴 수도 있지. 인생은 힘겨울 때도 있는 거니까. 그래도 우린 친구잖아. 서로 응원하면서 함께 나아가야지.”

올리비아가 아밀리아와 소피아에게 말했다.

“진짜 멋진데. 내 친구들. 그럼 내가 열쇠를 빌려올게. 남자친구에게 말해서.”

“관리직 남자친구 이럴 때 써먹는 거야?”

“회전목마에서 영상을 찍으면 얼마나 멋지겠어. 침대 위에 앉아서 찍은 영상을 원하니? 얘들아.”

조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정말 별로일 거야.”

“잠시만 기다려.”

올리비아가 열쇠를 빌리러 간 사이, 아밀리아, 조이, 소피아는 다시 공주 분장을 시작했다.

올리비아가 열쇠를 가지고 돌아와 웃으며 말했다.

“쇼타임이다.”

누구보다 도도한 공주가 된 그녀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백설공주 아밀리아가 거울 앞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난 바보같이 사과를 먹지 않아요.

낯선 사람이 주는 사과를 누가 먹어요.

왕자의 키스를 기다리지도 않아요.

내 인생은 내가 구할 거야.

공주로 살기는 너무 피곤해

공주로 살기는 너무 피곤해.”

올리비아가 수영장에서 헤엄을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왕자에게 첫눈에 빠져 목소리를 잃었지만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순 없죠.

왕자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면

나에게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테죠.

공주로 살기는 너무 피곤해

공주로 살기는 너무 피곤해.”

조이가 높은 성에서 라푼젤의 긴 머리를 늘어뜨리며 노래를 불렀다.

“긴 머리를 감추고 성에 갇혀 있어요.

왕자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죠.

하지만 난 이제 바보같이 기다리지 않아.

난 머리를 자르고 사다리를 만들 거예요.

공주로 살기는 너무 피곤해

공주로 살기는 너무 피곤해.”

커트 머리가 된 조이는 사다리를 타고 성에서 내려와 노래를 이어간다.

“날 성에 가둔 사람을 찾으러 가요.

이제 그 사람은 각오해야 할 거야.

난 더 이상 예쁜 공주가 아니에요.

난 이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주.”

소피아가 숲속에서 마법 가루를 뿌리며 날갯짓을 했다.

“나는 팅커벨.

피터팬과 함께 후크 선장에게서 아이들을 구하죠.

후크 선장의 갈고리 손 따위 무섭지 않아.

나는 빠르고 날쌔고 재주 많은 꾀돌이.

공주로 살기는 너무 피곤해

공주로 살기는 너무 피곤해.”

네 사람은 영상을 촬영한 뒤 자신들이 만든 영상을 보면서 웃었다.

“가사 진짜 핵사이다야. 너무 시원해.”

“소피아 너 진짜 팅커벨 같아.”

“아밀리아 너도 진짜 백설공주 같아.”

소피아와 아밀리아가 어깨동무를 하면서 말했다.

“우린 공주잖아.”

소피아가 영상을 업로드했다.

“이제 영상을 올려보자.”

***

은우는 너투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았다.

‘와아, 이거 재밌겠다. 이 공주들을 만나보고 싶어. 다음 무대는 공주들과의 콜라보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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