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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218화 (218/257)
  • 218화. 세상의 모든 사랑 (4)

    은우는 미국 활동을 위해 LA 공항에 내렸다.

    [블랙 레오퍼드 2]가 아직까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항에는 많은 팬들이 은우를 응원하고 있었다.

    팬들이 와찰라 인형을 들고 환호하고 있었다.

    “와찰라.”

    “와찰라.”

    “은우야, 음반 활동도 파이팅.”

    와찰라 복장을 한 일곱 살짜리 어린 남자아이, 레너드가 은우에게 다가왔다.

    “은우야, 백성을 사랑하는 네 마음에 감동했어. 좋은 왕이 돼줘서 고마워. 나도 좋은 왕이 되고 싶어.”

    “네 꾸미 왕이야?”

    “응.”

    “조은 왕이 댈 뚜 이뜰 거야. 파이팅.”

    옆에 서 있던 레너드의 엄마가 은우와 레너드를 보며 말했다.

    “은우야, 레너드와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

    “네네네네네.”

    와찰라 복장을 한 레너드와 공룡 변신 로봇 티셔츠를 입은 은우가 함께 브이 표시를 그렸다.

    “꼬먀 김뺨, 치즈.”

    “꼬마 김밥, 치즈.”

    은우는 레너드가 자신의 사진 구호를 알고 있는 게 신기했다.

    “그건 한국마린데?”

    “아, 너투브에서 보고 배웠어. 헤헤헤헤.”

    레너드가 수줍은 듯 웃었다.

    옆에 서 있던 레너드의 엄마가 말했다.

    “레너드가 [블랙 레오퍼드 2]를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보다가 은우 너투브도 보고 있거든. 그러면서 한국말도 배우기 시작했어.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이 많아서 한국말을 배우기가 어렵지 않더라.”

    “걈사함니댜.”

    은우는 레너드가 한국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져준 것에 감사했다.

    ‘나로 인해 우리나라에까지 관심을 가지는 팬들이 많으니 더욱 잘해야겠어. 한국을 처음 접하게 되는 사람들에겐 내가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될 수도 있구나.’

    레너드는 사진을 찍고 나서 은우에게 선물을 건넸다.

    “고마워. 은우야. 이거 내가 만든 와플이야. 초콜릿을 묻혀서 정말 맛있어. 널 주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

    “거마어.”

    은우는 레너드가 준 와플 도시락을 꼭 안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길동이 은우를 차에 태웠다.

    “횬아, 오느른 머 해요?”

    “오늘은 숙소에 가서 짐을 정리하고 쉴 거야. 내일부터 방송 스케줄이 잡혀 있어.”

    “횬아, 제이스네게 갈 뚜 이뜰까요?”

    “숙소에 안 가고?”

    “네네네네네.”

    “그래, 알았어.”

    길동은 제이슨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은우가 제이슨이란 아이를 많이 신경 쓰는구나. 사연 읽으니 짠하긴 하던데. 은우도 슬퍼질까 봐 걱정도 되고.’

    3시간을 걸려 도착한 제이슨의 집.

    나무로 된 하얀색 일 층 집이었다.

    은우가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제이슨의 엄마 메리가 문을 열었다.

    메리는 현관 앞에 서 있는 작고 하얀 동양 아기에게 마음을 뺏겼다.

    “넌 우리 집에 찾아온 천사니?”

    “제이스늘 만나러 와떠요.”

    “은우구나. 티비에서 본 것과 정말 똑같이 생겼구나.”

    “헤헤헤헤헤. 제이슨.”

    은우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제이슨이 방 안에서 휠체어를 밀며 나왔다.

    “은우다. 은우. 은우가 정말 왔네.”

    “내갸 온다고 해쨔나. 난 약소글 잘 지켜.”

    “잠깐만 기다려. 은우야.”

    제이슨은 부엌으로 가더니 냉장고를 열었다.

    “엄마, 은우는 뭘 좋아할까요? 어떤 걸 줄까요? 어제 먹은 칠면조 맛있었는데 그걸 줄까요?”

    “진정해. 제이슨. 엄마가 챙겨다 줄 테니 방에서 둘이 놀고 있으렴.”

    메리는 허둥대는 제이슨을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집에 친구가 놀러 온 게 처음이라 제이슨이 많이 기뻐하는구나. 은우가 우리 집에 놀러와 줘서 고맙다. 근데 제이슨은 아픈 아이라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데 은우가 실망하진 않을까?

    제이슨의 주름진 얼굴만 보고도 놀라서 도망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은우도 놀라서 제이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은우는 제이슨과 함께 제이슨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내 방이야.”

    침대와 책상, 책장이 하나 있는 제이슨의 방.

    제이슨의 창가엔 망원경이 하나 있었다.

    “와, 이건 머야?”

    은우가 망원경을 보고 신기해서 물었다.

    “망원경인데 밤하늘의 별을 잘 볼 수 있어. 난 별들과 이야기를 하거든. 어릴 때부터 친구가 없어서 별들과 이야기하는 게 버릇이 됐어. 별들이 가끔 내 이야기를 잘 들었다는 것처럼 껌뻑껌뻑하면서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빛나거든.”

    “징쨔? 벼리 이야기를 알아드러?”

    “응. 나중에 밤에 같이 하늘을 보게 되면 알려줄게.”

    “제이스는 마법사구냐?”

    “마법사?”

    “응, 별과 이야기할 뚜 인는 샤람은 마법사야.”

    은우는 파리넬리이던 시절을 떠올렸다. 18세기 유럽에는 마법사와 마녀들이 있었다. 신비주의가 크게 유행을 하면서 사람들은 신비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은우가 제이슨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넌 특별한 아이야. 제이슨.”

    제이슨이 은우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엄마 빼곤 처음인데. 은우야 정말 넌 다른 사람들과 다르구나.’

    은우가 제이슨에게 물었다.

    “가장 조아하는 벼른 머야?”

    “북극성. 작은곰자리.”

    “고믈 조아해?”

    “아니 북극성은 일 년 내내 움직이지 않아서 뱃사람들의 나침반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별이야. 다른 별들은 계절에 따라 위치가 변하기도 하는데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아. 혹시 내가 없더라도 북극성을 찾으면 엄마가 날 떠올릴 수 있을까 해서.”

    은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파리넬리일 때의 삶도 파드와일 때의 삶도 아픔이 있었지만, 제이슨의 삶도 아픔이 있구나.

    어쩜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모두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고 자랑할 수도, 지금 불행하다고 절망할 수도 없는 거구나.’

    제이슨이 은우를 보더니 화제를 돌렸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으면 말야. 내가 정말 작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돼.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늙어가고 있거든. 어느 날은 갑자기 심장이 아프고 어느 날은 갑자기 머리가 아파. 그렇게 아프다 보면 내가 내일 아침엔 눈을 뜰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돼.

    이렇게 아프기만 한 삶이 의미가 있는 걸까? 내가 꼭 살아야만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울할 때 별들을 보면 말이야. 그런 생각들이 다 사라져. 우주에서 보면 내가 하는 이 고민이 하찮은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우주에서 별들이 현미경을 가지고 나를 내려다본다면 말야. 내 슬픔도 정말 작은 거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제이슨 오늘 바메 자고 가도 댈까? 너랑 벼를 보고 시퍼.”

    “정말? 엄마한테 물어볼게.”

    제이슨이 방문을 열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은우 오늘 자고 가도 돼요?”

    “그럼. 되지. 근데 은우가 바쁘지 않을까?”

    거실에 앉아있던 길동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정말 자고 갈 거야?”

    “네, 횬아. 자고 가고 시퍼요.”

    “하아, 그럼 난 어디서 자지?”

    “저희 집에 빈방이 하나 있어요. 괜찮으시면 거기서 주무셔도 돼요.”

    “네에. 호텔에 전화를 해야겠네요.”

    길동이 호텔에 전화해서 체크인을 변경했다.

    ‘덕분에 하루 치 호텔비가 날아갔네. 은우가 여기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별수 없지.’

    메리가 은우와 제이슨에게 쿠키와 우유를 가져다주었다.

    “잘 먹게뜸니댜.”

    은우가 배꼽 인사를 했다.

    “예의가 바르기도 하지.”

    “그럼요. 누구 친구인데요?”

    제이슨과 은우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메리는 제이슨의 웃음을 보면서 기뻤다.

    ‘얼마 만에 웃는 거니 제이슨. 늘 멍하게 창밖만 보고 있더니.’

    제이슨이 은우에게 물었다.

    “아프리카엔 동물들이 많지? 나도 아프리카에 가 보고 싶은데 아프리카는 어때?”

    “동무드리 만치. 그리고 더어. 피부가 빨가케 댈걸. 타서.”

    “그래? 나도 가 볼 수 있을까? 아프리카에.”

    은우는 제이슨의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냈다.

    “바다에 간저기 엄떠?”

    “응, 의사 선생님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해서. 넘어지거나 하면 난 크게 다칠 수도 있고. 감기에 걸릴 수도 있거든. 지난번 검사 때보다 면역 수치가 더 내려갔어.”

    은우는 그제야 제이슨의 버릿리스트가 이해가 갔다.

    ‘나에겐 일상인 작은 일들이 제이슨에겐 큰일이었구나. 제이슨 난 신이 아니라서 네 수명을 늘려줄 순 없지만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인 시간을 너에게 줄게. 네 얘기를 들어주고 너의 아픔을 함께할게.’

    제이슨이 웃으면서 말했다.

    “스피노자가 말했어.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내일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만약 종말이 온다면 넌 무슨 일을 하고 싶어 은우야?”

    “너무 어려어.”

    은우는 인생에 하루만 남아있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하루만 남아있다고? 속상할 거 같아. 너무.’

    제이슨이 말을 이었다.

    “만약 내게 하루가 남아있다면 난 그 하루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어. 엄마랑 아빠랑 무얼 하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루를 보낼 거 같아. 근데 말야. 난 그 하루가 내 마지막 날인지 모를까 봐. 그게 너무 걱정돼. 누가 알려주는 게 아니잖아. 내가 마지막 날이라는 걸 모르고 병원에서 하루 종일 혼자 보내게 될까 봐. 그게 너무 걱정돼.”

    “걱정하디 먀.”

    은우가 제이슨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오느리 마지막 나리라면 나는 당시늘 위해 노래를 부를게요.

    오느리 마지막 나리라면 나는 당시늬 소늘 잡고 따뜻한 자믈 청할게요

    오느리 마지막 나리라면 난 내 삶이 얼마냐 아름다언는지 노래할 거야.”

    제이슨이 눈을 감고 은우의 노래를 이어서 불렀다.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난 이곳에 와 많은 추억을 만들었죠.

    주말에 엄마와 함께 티비를 볼 때 난 행복해요.

    마트에 가서 새로 나온 케이크를 사고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죠.

    청소를 마치고 난 뽀득뽀득한 바닥이 너무 좋아요.

    빨래가 햇빛에 말려질 때 그 냄새가 너무 좋아요.

    뒷집 할아버지와 매일 체스를 두죠.

    할아버지가 속상해하시는 게 싫어서 전 매일 체스에서 져요.

    할아버진 나와 함께 체스 두는 시간을 늘 기다리죠.

    작지만 아름다운 내 생활.”

    거실에 앉아 제이슨의 노래를 듣고 있던 메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길동이 당황하여 휴지를 찾아 메리에게 주었다.

    “미안해요. 많이 놀랐죠?”

    “아니에요. 제가 위로를 잘 못 해서요.”

    당황한 길동의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난 정말 위로엔 서툴러. 게다가 우는 여자라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메리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제이슨은 어릴 때부터 아팠어요. 그렇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예요. 우리 부분 제이슨이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아이가 저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요? 안쓰러운 건 제가 맘 아플까 봐 아파도 아프단 말을 안 하는 거예요.”

    길동은 고민하다가 말을 하려는 걸 멈추었다.

    ‘금방 나을 거예요. 좋아질 거예요라는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병이니까 조로증은. 어설픈 위로보단 들어드리는 게 낫겠지.’

    메리가 말을 이었다.

    “제이슨이 그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우린 제이슨 때문에 살고 있다는 거요. 병원비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제이슨이 있어서 제 인생은 행복해요.”

    길동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제이슨에게 친구가 없어서 늘 맘에 걸렸는데 은우가 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자고 가준다니. 아마 제이슨에겐 오늘이 잊지 못할 밤으로 기억될 거예요.”

    ***

    메리가 제이슨의 침대 옆에 작은 이불을 가져다주었다.

    “미안해. 은우야. 침대가 없어서.”

    “갠차나요. 한국에선 바다게서 자기도 해요.”

    “티비에서 봤어. 한옥이라고 하던데. 그런 집을.”

    “응, 마쟈.”

    메리가 방긋 웃으면서 나갔다.

    “그럼, 좋은 꿈 꾸렴.”

    제이슨의 방의 불을 끄고 창문으로 향했다.

    “어떤 별자리가 보고 싶어?”

    “작은곰자리.”

    제이슨이 망원경의 위치를 조정했다.

    “잘 보인다. 자, 봐봐.”

    은우가 망원경에 눈을 댔다.

    “우아, 징쨔 잘 보인댜.”

    “다른 별자리도 보여줄까?”

    “응.”

    제이슨이 망원경의 위치를 조정했다.

    “이번엔 카시오페이아야. 더블유자랑 비슷하지?”

    “응.”

    제이슨은 은우에게 별자리를 보여주며 생각했다.

    ‘친구랑 함께 별자리 보기.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채워진 날이야.’

    제이슨이 은우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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