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216화 (216/257)

216화. 세상의 모든 사랑 (2)

보리가 태블릿 앞에서 꼬리를 치고 있었다.

“멍멍(은우야, 제이슨에게서 답장이 왔어.)”

“일거져.”

“멍멍(고마운 은우에게. 내 친구가 돼 줘서 고마워. 내가 좋아하던 연예인이 내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하다니 아직 믿어지지 않지만 말야.

오늘은 정기 검진이 있는 날이어서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어.

의사 선생님이 내게 말했어. 내 시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나이가 들면 신장 기능이 떨어지는데 신장 기능이 나빠지면 시력이 떨어진대.

내 몸의 세포들이 점점 더 빠르게 늙어가고 있나 봐.

난 15살이지만 신체 나이는 80세거든.

병원에 다녀와서 화장실에서 엄마가 우는 소리를 들었어.

난 내가 아픈 것보다 엄마가 우는 게 더 마음이 아파.

우리 엄만 나 때문에 정말 많이 울었어.

울고 나선 안 운 척하지만 난 엄마가 운 걸 알 수 있어.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인터넷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잘 외우거든.

잠시나마 엄마가 웃었으면 좋겠어서.

난 세상에 와서 많은 사랑을 받고 가는 것 같아.

그리고 내가 받은 사랑을 다시 부모님께 돌려드리고 싶어.)”

보리가 편지를 읽다가 목이 메는 듯 잠시 멈췄다.

“멍멍(눈물 나서 못 읽겠다. 제이슨이라는 애는 왜 이렇게 착한 거야? 난 사람일 때 우리 엄마한테 이렇게 잘하지 않았는데.)”

은우도 제이슨의 사연에 눈물이 고였다.

‘나도 파리넬리일 때 매일 아팠지. 거세의 부작용으로 아편이 없으면 견디기 힘든 날도 있었으니까. 그땐 고통 때문에 늘 예민해서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했는데 제이슨은 아픈데도 참 밝고 따뜻하구나.’

보리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읽기 시작했다.

“멍멍(지난번에 네가 버킷리스트를 적어 보라고 했지. 내 소원은 시력이 사라지기 전에 바다를 보는 거야. 엄마와 함께 바다에서 지는 해를 보고 싶어. 난 몸이 약해서 읽거나 쓰는 걸 좋아했는데 시력이 사라지면 그것들마저 사라질까 봐 두렵기는 해.

어쩌면 네가 출연한 영화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날이 온다면 정말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그런 뜻일 거야.)”

보리가 결국 눈물을 쏟았다.

“멍멍(너무 불공평해. 신은 왜 이렇게 어리고 착한 아이에게 이런 큰 고난을 주는 거지?)”

은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의 뜻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 우린 인간일 뿐이니까. 다만 주어진 시간 동안 서로를 더 사랑하려고 노력할 뿐.’

은우는 제이슨을 위해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량하는 나의 엄먀.

우리 처음 만냔 순갼 기억하나요?

나를 따뜨하케 안아준 엄먀.

너무 거마여요.

엄먀는 나에게 빋콰 가튼 샤람.

엄먀만 이뜨면 세상이 따뜨태져요.

엄마먄 이뜨면 저는 우슬 수 이떠요.

제발 나를 위해 울지 마라요. 엄먀.

내 아픔보댜 엄마의 눈무리 더 슬퍼요.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엄마가 내 엄먀여서 너무 조아떠요.

시가니 흘러 내갸 세상에 다시 오게 돼도

우리 다시 꼭 만냐요.”

보리가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멍멍(얘들이 오늘 쌍으로 날 울리네.)”

은우는 녹음한 노래를 제이슨에게 보내고 싶었다.

“보이야, 이거 메이레 너어둘 뚜 이떠?”

“멍멍(응. 어플도 만들었는데 이 정도쯤이야.)”

“바다에 가고 십댜는데 그게 어려운 일일꺄? 제이스늘 한구그로 초대할꺄?)”

“멍멍(찾아봤는데 조로증은 신체가 빨리 늙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합병증을 겪게 돼. 제이슨이 편지에 쓴 시력 저하 역시 많은 노인들이 겪게 되는 문제야. 제이슨은 몸이 많이 약한 상태여서 비행기를 타는 게 힘들 수도 있어.)”

“그럼 어떠카지?”

“멍멍(글쎄. 함께 바다에 가려면 네가 미국에 가는 게 빠를지도.)”

은우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제이슨이 아프니까 바다를 보러 가는 것도 쉽지 않구나. 내가 미국에 가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케미기샤의 입양절차가 마무리되면 그땐 함께 미국에 갈 수 있으려나.’

***

강라온은 은우의 순위를 체크하는 중이었다.

‘[페스티벌]이 지난주보다 25계단 상승해서 수박차트 25위네. 빌보드 차트에선 [난 너무 귀여워]가 70위로 30위 올라서 선방하고 있고 에릭과 함께 부른 [my little friend]는 2위고. 활동하지 않는 거 치곤 순위가 너무 좋은데.’

강라온은 개봉 영화 흥행 순위도 체크했다.

‘[블랙 레오퍼드 2]는 10주간 예매율 1위. 압도적이네. 은우 혼자서 우리 회사 매출의 대부분을 메꿔주고 있는 상황이야. 매출만 생각하면 이미 많은 돈을 번 상황이어서 국내에서 새 음반을 내든 미국에서 새 음반을 내든 상관은 없는데.’

강라온은 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구떼요?”

“대표님.”

“누구떼요?”

강라온은 은우가 또 장난을 치는 것을 눈치챘다.

“은우는 어디 갔나요? 저는 강라온 대표입니다.”

“공룡 변신 로봇 1호 임니댜.”

“네, 공룡 변신 로봇 1호님. 새로운 음반을 내려는데 한국에서 내는 게 좋을까요? 미국에서 내는 게 좋을까요? 어디서 내고 싶은지 말씀해 주세요.”

“공룡 변신 로봇 1호는 미구게 감니댜.”

“자신 있으신가요?”

“네네네네네.”

강라온은 전화를 끊으면서 생각했다.

‘은우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물어보긴 했는데 은우는 그 의미를 다 알고 결정을 내린 걸까? 장난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장난 같기도 하고. 일단 미국 활동을 준비해야겠어.’

강라온이 비서실의 인터폰을 켰다.

“이철 좀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이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은우 미국 활동을 중심으로 가기로 했어. 근데 아무래도 뽀뽀댄스팀이 걸려서. 미국에서 우리가 또 아기 댄스팀을 구할 수 있을까?”

“힘들죠. 나라가 다르면 문화가 다른 법이라 미국은 아동법도 굉장히 강해서 더 복잡할 거예요.”

“댄스팀 없이 단독으로 가는 건 어떨까?”

“가능하죠. 그것도. 제가 생각해 봤는데 콜라보 무대는 어떠세요?”

“콜라보?”

“은우의 무대마다 미국 가수들을 섭외해서 함께 춤추는 무대를 제안하는 거예요. 카다비는 은우를 굉장히 좋아하는 거 같던데. 일단 한 명은 가능할 거 같고.

함께 음반을 낸 에릭도 춤은 못 추지만 도와주지 않을까요?”

“그래, 일단 두 명은 확보네.”

“그리고 은우가 [블랙 레오퍼드 2] 덕분에 미국 내에서 흑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흑인 가수들 중심으로 요청을 해 보면 긍정적인 답이 오지 않을까요?”

“그거 좋다. 이철 넌 천재야.”

강라온은 걱정이 날아가 버린 듯하여 신이 났다.

이철은 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우 미국 진출할 때 함께 콜라보 가능한 가수가 있는지 섭외해 봐. 일단 미국 가수 위주로 그리고 국내 가수 중에서 미국에서 인지도가 있는 가수도 좋고.”

***

은우는 이태석 신부에게서 온 영상통화를 받았다.

“신뷰님. 안뇽하떼요.”

케미기샤는 화면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붙이고 그리운 아프리카를 보았다.

“신부님. 저 케미기샤예요. 친구들 다 잘 있나요?”

“응, 케미기샤 친구들 다 잘 있어. 기다려 봐. 얘들아, 인사하자.”

화면 앞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안녕.”

아이들이 작은 손바닥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은우야, 오늘 학교랑 병원 건물 개축식을 해서 너에게 보여주려고 전화했어.”

“징쨔요?”

“응, 네가 후원한 돈으로 아이들이 학교도 다니고 아플 때 병원도 다닐 수 있게 됐어. 너무 고맙다. 은우야.”

이태석 신부의 머릿속에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 아이들이 떠올랐다.

‘미안해. 얘들아. 그때 너희를 구할 수 없었던 거. 한동안 나도 그 슬픔을 이겨낼 수가 없어서 다시 아프리카에 올 자신이 없었어. 하지만 이제 우린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구나.’

케미기샤가 기쁜 소식을 듣고 박수를 쳤다.

“우와.”

이태석이 휴대전화를 돌려서 학교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빨간색 지붕의 이 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교실이 20개나 돼. 교실마다 컴퓨터랑 티비도 한 대씩 놓았어. 생각보다 전력 소비량이 많은 거 같아서 태양광판을 설치할까 생각 중이야. 여긴 햇볕은 남아도니까.

급식실도 만들었어. 하루에 한 끼는 학교에서 먹을 수 있으니까 집에서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굶어 죽는 일은 없을 거야.”

케미기샤가 태석의 말에 눈물을 글썽였다.

“정말 잘됐어요.”

옆에서 린다가 손을 흔들었다.

“안녕, 은우야. 학교와 병원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여기 애들이 너에게 정말 고마워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한 아이에게 린다가 말을 걸었다.

“안녕. 이브루. 지금 뭘 하고 있지?”

“컴퓨터로 지도를 찾아보고 있어요.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재밌겠구나. 넌 꿈이 뭐니?”

“전 의사예요. 작년에 아빠가 아파서 돌아가셨어요. 아빠처럼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고 싶어요.”

“그래. 이브루. 꿈을 꼭 이룰 수 있을 거야. 이 학교는 누가 만들었는지 혹시 아니?”

“은우요. 작년에 캠프에서 만났어요. 은우는 유명한 영화배우고 가수예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은우가 지금 화면을 보고 있을 텐데 은우에게 하고 싶은 말 있니?”

“은우야, 우리를 위해 학교를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학교에 다니고 싶었는데 학비가 비싸서 다닐 수가 없었거든.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엄마가 커피 열매를 따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걸로는 밥 먹기도 빠듯해서.

내 동생들도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어. 우리 가족에게 희망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열심히 노력해서 꼭 멋진 의사가 될게. 사랑해.”

은우가 화면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냐도 샤랑해.”

은우는 마음이 뭉클했다.

‘나는 신이 아니라서 많은 일을 할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노력했더니 생각보다 큰일을 할 수 있구나. 저 많은 아이들이 나 때문에 웃을 수 있다니.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 아이들이 계속해서 웃을 수 있도록.’

태석이 다시 화면 앞에 나타났다.

“지금은 네 도움이 필요하지만, 이 아이들이 자라서 꿈을 이루게 되면 그러면 그땐 아이들 스스로 아프리카를 지킬 수 있을 거야. 그때의 아프리카는 지금과 같진 않겠지?”

“네네네네네.”

은우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화면 앞에 하얀색 건물이 나타났다.

“여긴 병원이야. 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실도 세 개나 있고 회복실도 열 개나 있어. 근방 세 개의 도시 중에선 가장 큰 병원이야. 의사 선생님도 세 명이나 고용했어.”

하얀색 가운을 입은 흑인 의사 선생님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고마워. 은우야.”

은우도 의사 선생님에게 손을 흔들었다.

“걈사함니댜. 선땡님. 주샤 안 아프게 놔 주떼요.”

은우의 귀여운 부탁에 의사 선생님들이 단체로 웃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때 털모자를 쓴 다섯 살짜리 아기가 링거를 끌며 문을 열었다.

“선땡님. 이거 다 대떠요?”

의사 선생님이 링거액을 확인했다.

“아니. 아직 두세 시간쯤 더 맞아야 돼요. 그거 맞으면 사탕 줄게.”

“사탕이요?”

아기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 주떼요. 지그미요.”

은우의 부탁에 의사 선생님이 사탕을 꺼내 아기에게 주었다.

“우와, 사턍이댜.”

아기가 신이 나는 듯 봉지를 까서 사탕을 입에 넣었다.

사탕을 넣자마자 입안에 빙그그르르 퍼지는 웃음.

“신뷰님. 저 할 마리 이떠요.”

“뭔데?”

“병언에서 주사 만는 아기드레겐 무조건 사탕을 주떼요. 꼬기요. 저도 사탕 머그러 병언에 가거든요.”

이태석 신부는 은우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알았어. 약속할게. 덕분에 아기들이 병원에 오고 싶어 하겠다. 사탕 때문에.”

“헤헤헤헤헤. 사턍은 체고예요.”

옆에 서 있던 의사 선생님들도 웃었다.

“아프리카에서 제일 인기 좋은 병원이 되겠는데.”

“주사 맞을 때마다 사탕 주는 병원은 루사카에도 없을 텐데.”

“근데 병원 적자 나는 거 아닐까? 사탕값 때문에.”

“그래도 아기들은 정말 행복할 거야. 나도 아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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