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결혼식 (4)
은우가 만든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내갸 아기여뜰 때 처음 만냔 눈냐.
미소갸 아름다어.
눈냐가 조아서 가슴이 콩닥콩닥.”
사람들은 은우의 노래를 들으며 미소 지었다.
‘너무 귀여운 노래야. 백수희 씨 정말 좋겠어.’
‘멜로디가 너무 따뜻해. 오월의 햇살 같아.’
‘작고 귀여운 개나리꽃을 보고 있는 거 같아. 노래가 작고 앙증맞고 귀여워.’
사회자인 영탁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신랑 입장.”
정장을 차려입은 창현이 씩씩하게 걸어갔다.
“와, 은우 아빠 잘생겼다.”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네. 백수희 씨랑 결혼할 만한걸.”
“비쥬얼 가족인데.”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영탁이 다음 순서를 호명했다.
“화동 입장.”
정장을 입은 은우와 케미기샤가 함께 손을 잡고 걸었다.
은우의 손에는 예물 반지가, 케미기샤의 손에는 미니 부케가 들려있었다.
은우와 케미기샤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행보카지? 케미기샤.”
“응.”
케미기샤는 은우를 만난 뒤의 삶이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내 삶은 점점 힘들어졌었어. 그래도 ‘파드와’ 형이 살아있을 땐 의지가 됐었는데 형마저 죽고 나선 정말 살아갈 이유가 없었지. 너무 외롭고 배고프고 힘들었어. 죽지 못해서 살았다는 말이 맞을 거야. 그땐 내게 이렇게 행복한 날들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린다를 만나서 캠프에 들어가게 되고 조금씩 삶이 나아지더니 은우를 만나서 한국까지 오게 됐지.
캠프에 남아있는 친구들은 내 이런 삶을 상상하지 못할 거야.
나도 이런 세상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깨끗하고 좋은 잠자리에서 잠을 자고 새 장난감을 매일 살 수 있는 그런 삶이 있었다니.’
은우와 케미기샤가 창현의 옆에 섰다.
“신부 입장.”
어깨가 드러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백수희가 버진로드를 천천히 걸어왔다.
업 스타일로 머리를 올려 가늘고 하얀 목선이 드러났다.
“우리 엄먀 예쁘댜.”
은우가 신이 나서 외쳤다.
“백수희 씨 오늘 정말 예쁘다.”
“오월의 신부가 제일 예쁘다던데 딱 오월의 신부네.”
“백수희 씨 은우 잘 부탁해요.”
백수희가 창현의 옆에 서자 은우가 들고 있던 예물을 창현에게 주었다.
“예물 전달이 있겠습니다.”
창현이 백수희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와아, 엄먀 공주 가태요.”
백수희가 은우를 보며 웃었다.
케미기샤가 반지를 낀 백수희에게 미니 부케를 주었다.
“고마워요.”
케미기샤가 백수희를 보며 웃었다.
‘날 입양하겠다고 해 주시니 정말 감사하다. 이 결혼식과 함께 내게도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거구나. 가족이 생길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영탁이 다음 순서를 호명했다.
“부모님께 인사.”
창현과 백수희는 백인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백인수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여 복잡한 심정이었다.
‘우리 딸 이제 자라서 시집을 가는구나. 어려서 인형 가지고 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 참 빨라.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잘 커줘서 정말 고맙고. 아빤 다시 태어나도 네 아빠로 태어나고 싶구나.’
백인수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여보 하늘에서 보고 있어? 우리 수희가 오늘 시집 가. 좋은 남편감 골랐으니 혹시 내가 없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내가 열심히 골랐어.
여보, 나 고생했다고 칭찬 한마디 해 주구려. 당신 없는 동안 내가 수희 남들에게 모자라지 않게 키우려고 노력 많이 했다우.’
백인수의 눈물에 백수희도 눈물을 흘렸다.
“아빠.”
백수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빠 수고 많이 하셨어요. 엄마 돌아가신 후로 아빠 노릇, 엄마 노릇 둘 다 하시느라 힘드셨죠? 데뷔 전엔 오디션 따라 다니느라 고생하시고 데뷔 후엔 혹시 안 좋은 소문 날까 고심하시고. 저 때문에 늘 맘 졸이며 사신 거 알아요.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제가 많이 효도할게요.’
은우가 백수희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엄먀. 울지 먀요. 왜 우러요?”
은우의 작은 눈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은우가 울자 케미기샤의 눈에도 갑자기 눈물이 차 오르기 시작했다.
백수희는 당황했다.
“울지 마, 애들아, 갑자기 왜 울고 그래?”
“엄먀 울면 은우도 슬퍼요.”
백수희는 화장 때문에 눈물을 닦을 수가 없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백수희에게 휴지를 주었다.
백수희는 화장이 번지지 않게 눈가를 눌러서 닦았다.
“안 울게. 은우야. 엄마 안 울어. 케미기샤도 울지 마.”
백수희가 휴지로 은우와 케미기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백인수가 은우와 케미기샤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얘들아. 이제 안 울게.”
은우가 백수희의 손에서 휴지를 받아서 백인수에게 갔다.
“하뷰지. 울지 말고 우서요. 은우가 햐뷰지 샤랑해요.”
은우가 작은 손으로 백인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럼, 그럼. 은우처럼 예쁜 손자가 있는데 왜 울어? 이제 안 울지.”
영탁이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자, 이제 하객 여러분은 신랑, 신부가 행진할 때 많은 축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백수희와 창현이 팔짱을 낀 채 걸어갔다.
그 앞엔 은우와 케미기샤가 두 손을 꼬옥 잡은 채 걷고 있었다.
은우의 팬들과 결혼식에 온 하객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쳐 주었다.
“잘 살아요.”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은우 엄마 생겨 좋겠다.”
신이 난 은우는 사람들에게 손 하트를 날렸다.
“거마어요. 모듀.”
식사를 하기 위해 온 노숙자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박수를 쳐 주었다.
“잘 살아요. 정말 내게 남은 복이 있으면 주고 싶을 정도야.”
“정말 고마워요. 마음이 따뜻하니 잘 살 거야.”
“오늘 식사 너무 맛있었어요.”
“따뜻하게 대해줘서 고마워요.”
“각박해지는 세상에 온기를 전해줘서 고마워요.”
신랑, 신부가 퇴장한 후 영탁의 말이 이어졌다.
“부케 전달식과 간단한 사진 촬영이 있을 예정입니다.
사진은 참석자들이 많은 관계로 전부 촬영은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촬영을 원하시는 분만 남아서 순서에 따라 나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부케 전달을 위한 신부 친구들의 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백수희의 친구들이 앞으로 나왔다.
백수희는 부케를 받기로 한 친구 미정이에게 부케를 던지려고 준비 중이었다.
미정은 3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올겨울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백수희가 뒤돌아서서 부케를 던지기 위해 폼을 잡았다.
‘잘 받겠지?’
백수희가 뒤로 부케를 던졌다.
영탁은 날아오는 부케를 보며 당황했다.
‘저게 왜 내 쪽으로 오지? 어, 어.’
영탁은 자신도 모르게 부케를 받았다.
‘여자친구도 없는 내가 부케를 받다니 맙소사.’
백수희는 뒤돌아 상황을 확인하고 놀랐다.
“헉, 영탁 씨가 받았어요?”
영탁이 어색한 듯 웃었다.
“하하하하. 갑자기 부케가 저에게 오더라구요.”
미정이 실망한 어조로 말했다.
“부케 받고 6개월 동안 결혼 못 하면 3년 동안 결혼 못 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네에?”
영탁이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요?”
백수희가 미안한 듯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영탁 씨. 제가 여자친구 소개시켜 줄게요. 갑자기 부케가 그리 가다니, 제가 너무 힘 조절을 못 했나 봐요.”
사진사가 웃으며 말했다.
“부케 잘못 가는 거 흔한 일이에요. 사진이 중요하니까 다시 찍어봅시다. 이번엔 좀 살살이요.”
백수희가 다시 부케를 던지고 미정이 부케를 받았다.
“좋습니다.”
***
이곳은 신혼여행지인 괌.
은우와 케미기샤는 수영복을 갈아입으며 신이 났다.
“여긴 아프리카 같아. 한국보다 훨씬 덥다.”
“그치? 하지먄 아프리카보댜 시언하고 바댜가 이떠. 이쁜 바댜. 수영하면 물고기도 보인대.”
“우와, 수영하면서 물고기를 본다고?”
“응, 이 마스크 끼고 우리 차자보쟈.”
수영복을 갈아입은 백수희가 스노쿨링 장비를 챙겼다.
“어서 가쟈, 애들아. 창현 씨 고프로랑 챙겼죠?”
“그럼요.”
“남는 건 사진뿐이니 오늘 많이 찍자구요.”
호텔 앞의 모래사장엔 스노쿨링 장비를 찬 아기들이 여러 명 있었다.
백수희가 아기들을 보며 웃었다.
“역시 가족 여행지로 제일 많이 가는 게 괌이라더니 여기 오길 잘했네요. 애기들이 정말 좋아한다.”
“그래도 한 번뿐인 신혼여행인데 수희 씨 가고 싶은 데로 가지. 은우랑 케미기샤가 놀기 좋은 곳을 선택하면 어떻게 해요? 난 좀 속상하기도 하던데.”
“그래도 애들 두고 우리만 가서 즐거울 리가 없잖아요. 다 같이 있어야 즐거운 게 가족이죠.”
“고마워요. 수희 씨. 내가 진짜 잘할게요.”
은우는 물을 보자마자 신이 났다.
“헤헤헤헤헤. 가쟈. 케미기샤. 가쟈.”
케미기샤와 은우가 스노쿨링 장비를 차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창현이 빠르게 은우와 케미기샤 근처로 왔다.
‘우와, 물고기가 내 옆으로 막 지나간다.’
은우는 처음 보는 신비로운 물속 세계에 마음을 뺏겼다.
‘와, 저건 애기 물고기, 이건 엄마 물고기인가 봐.’
사이즈가 각각 다른 물고기들의 모습에 은우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혼자 웃었다.
‘물고기들도 가족이 있네. 꼭 같이 헤엄쳐서 다니고. 물고기들아, 행복해야 해.’
창현은 고프로로 은우와 케미기샤의 모습을 촬영 중이었다.
은우의 옆에서 지나가는 물고기 떼와 은우를 열심히 찍었다.
은우가 고프로 앞에서 브이자를 그리더니 춤을 추었다.
‘못살아. 장난꾸러기.’
은우가 케미기샤에게 손짓으로 표시를 했다.
케미기샤가 은우의 손짓을 알아듣고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함께 빙빙 도는 물고기춤.
‘와, 이거 멋진데.’
창현은 귓가에서 모차르트의 왈츠가 울려 퍼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물고기들의 움직임에 은우와 케미기샤의 춤을 더하면 그림 나오겠는데. 다 함께 왈츠를 추는 것 같잖아.’
창현은 너투브를 보며 좋아할 팬들의 반응에 흐뭇해졌다.
‘신혼여행 끝나고 영상 업로드 많이 할 수 있겠다.’
신나는 물놀이 후 은우 가족은 다 함께 바비큐장으로 향했다.
예약된 자리로 가서 앉으니 직원이 불을 가져다주었다.
“고기 고르러 갈까?”
“네네네네네.”
캐미기샤와 은우는 창현과 함께 고기를 고르러 갔다.
“난 소시지.”
“은우야, 다른 고기가 더 비싼데 여기 와서도 소시지?”
“그게 마디떠요.”
“케미기샤는?”
“전 아무거나요.”
케미기샤는 아직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데 서툴렀다.
‘모든 게 감사할 뿐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창현이 쟁반 위에 고기를 넣으며 말했다.
“소시지는 꼭 넣고 나머진 아빠가 종류별로 담도록 할게.”
삼겹살, 목살, 갈비, 스테이크, 소시지를 종류별로 담아 테이블로 돌아왔다.
테이블 위엔 밑반찬이 올려져 있었다.
창현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의 공연이 시작되니 편안하게 식사를 하시면서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섯 명의 원주민들은 치마 같은 가죽을 두른 채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괌에 오셔서 반가워요.
괌에 오셔서 감사해요.
여기는 행복의 섬.
먹을 것이 넘친답니다.
물고기들이 바닷속에서 노래하고
새들은 하늘 위에서 노래하죠.
괌으로 오세요.
여긴 걱정이 없답니다.”
은우는 노래를 들으며 창현과 백수희, 케미기샤의 얼굴을 보았다.
‘이런 가족이 있다니 나는 진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