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결혼식 (1)
올리버는 조용히 은우의 노래를 따라불렀다.
마음속에서 참회의 눈물이 흘렀다.
‘그때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올리버가 은우의 노래를 들으며 감상에 젖어있을 때, 같은 십 대인 매튜가 걸어왔다.
“올리버 뭐해?”
“노래 듣고 있어.”
“너 설마 우는 거야?”
“아니야. 안 울어.”
매튜가 올리버의 옆에 앉아 있어 주었다.
“얘기 들었어. 네가 어떻게 여길 오게 됐는지.”
매튜는 미국의 갱단에게 의뢰를 받고 지목된 사람에게 총을 쏜 뒤 체포되었다.
‘촉법소년이라 형량이 적을 테니 대신 총을 쏴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지.’
아픈 어머니 때문에 돈이 필요했던 매튜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감옥에 온 이후 매일 밤 꿈속에서 자신이 죽인 여자가 찾아와 괴롭던 차였다.
“올리버, 시간을 되돌린다면 난 다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 같아.”
“나도.”
올리버와 매튜는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올리버, 우리 기도하러 가지 않을래?”
“기도?”
“사실 난 여기 온 후로 계속 악몽을 꿔서 다니기 시작했는데 교회란 곳에 가면 좋더라고. 이상하게 거기 간 날은 악몽도 안 꾸고 말야.”
“교회는 별로인데.”
“거기 가면 초콜릿도 줘?”
“진짜.”
교도관 메이슨은 자신의 동료들에게 자랑을 했다.
“은우 음반을 틀어주고 나서 재소자들이 변하기 시작했다니까. 교회에 가는 재소자들도 많아지고 교도소 안 범죄율도 줄었어.”
교도관 딜런도 동의했다.
“전에 모차르트 노래를 틀어줄 땐 아무도 안 들었거든. 근데 은우 음반을 틀어주지 다들 점심시간을 기다리더라고.”
교도관 아이작도 동의했다.
“다들 노래도 흥얼거리고 춤도 추고 예전보다 생기있어진 것 같아. 다른 교도소에도 은우 음반을 추천해 주면 어떨까?”
“좋은 생각이야. 우리 교도소만큼 효과가 있다면 거기 교도관들도 편해지지 않겠어?”
“맞아. 늘 싸워서 떨어뜨려 놓고 독방에 가두고 피곤했었는데 요즘은 일도 절반으로 줄어들었어.”
“그래, 교도관 카페에 은우 음반을 홍보하는 글을 올려보자.”
메이슨이 [미국 교도관들의 모임]이란 카페에 접속해서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교도관 여러분들.
저희 이스튼 주립 교도소에서 얼마 전부터 시행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교화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들 [블랙 레오퍼드 2] 보셨나요? 그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와찰라 역을 맡은 은우의 한국어 음반 [Born to be cute]를 틀어주는 건데요.
사실 저는 에릭의 오랜 팬이라 에릭의 노래 [My little friends]를 들으면서 은우 목소리의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Born to be cute]를 틀면 은우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노래도 매우 신나서 재소자들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닙니다. 가사도 매우 건전하고 솔직히 요즘 미국 노래는 범죄를 조장하는 노래들이 매우 많잖아요? 그런 노래는 교도소에서 틀어주기가 불안한데 은우의 노래는 그런 가사들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귀여운 아기 천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범죄자들도 교화가 되는지 저희 교도소에선 교도소 안 사고가 절반이나 줄었답니다.
다들 시도해 보시고 평화를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메이슨이 올린 글 아래로 열띤 댓글들이 달렸다.
[mk9] : 요새 우리나라 노래 가사 들으면 이게 범죄 조장곡인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님. 다들 살인, 자살, 범죄, 마약, 섹스 이런 가사뿐이라 들려줄 곡이 없었는데 잘됐네요.
[에티우] : 그래서 저희 교도소에선 헨델의 아리아를 틀어주고 있었어요.
[꿈결같은 세상] : 저희 교도소에선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틀어주었더니 다들 우울해 하더라구요.
[미르은가람] : 클래식이 힙합보단 낫겠지만 다들 졸려하더라구요. 거의 안 듣고. 저희도 클래식 모음집 틀었었는데 아무도 안 들었어요.
[장난꾸러기 lee] : 은우 음반 지금 찾고 있는데 안 찾아져요. 대체 어디서 받으셨어요?
┗ [메이슨] : 그거 한국 음악 사이트 가면 받아져요. 일단 구글링하시면 그 사이트가 나옵니다.
┗ [장난꾸러기 lee] : 감사합니다. 찾았어요.
[sylv] : 요새 십 대 범죄자들이 점점 늘어나서 자꾸 싸워서 힘든데 은우 노래 덕에 좀 평화롭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with] : 저도요. 며칠 전엔 같은 교도소의 교도관이 크게 부상을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거든요. 재소자 중 한 명이 교도관을 때렸어요.
┗ [메이슨] : 그분은 괜찮으세요? 쾌차하시길 빌어요.
***
창현은 영탁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대화 중이었다.
“그러니까 너랑 백수희 씨 결혼을 부탁하셨다고? 잘됐다. 나도 빨리 결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치만 네 마음도 복잡할 거 같기도 해서.”
“은우에게도 엄마가 있는 게 좋겠지. 케미기샤도 그렇고.”
“케미기샤?”
“응, 케미기샤를 입양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
“은우가 케미기샤를 많이 좋아하긴 하지만. 입양을 하면 평생을 책임져야 하는데. 괜찮겠어?”
“우리도 고아원에서 자랐잖아. 부모 없이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데. 다행히 일도 잘되고 하니까. 법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큰 고민 없이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창현 역시 멋진데.”
영탁은 창현의 대단한 결정에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았나? 은우도 그렇고 창현도 그렇고 참 대단해.’
은우는 부엌에 아이스크림을 가지러 가려다가 창현과 영탁의 대화를 들었다.
‘아빠가 백수희 누나랑 결혼을 하면 케미기샤를 입양한다 이거지? 그럼 내가 힘 좀 써야겠네.’
은우는 부엌으로 들어가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는 보리와 케미기샤가 함께 놀고 있었다.
“여자드른 멀 조아할까? 결호늘 할 때 마리야.”
“음, 염소? 소?”
“멍멍(염소랑 소는 좀 아닌 거 같아. 집값이 더 비싼데. 염소랑 소를 키우려면 대체 얼마나 큰 집이 있어야 한단 말이야. 기다려봐.)”
보리가 태블릿을 켜고 검색을 했다.
“멍멍(여자들이 좋아하는 프러포즈 선물은 반지랑 꽃이래.)”
“그래?”
은우의 눈이 커졌다.
“반지는 사탕반지지. 근데 나 돈 인나?”
“멍멍(내가 모아둔 돈이 조금 있어. 저기 서랍에 봐봐. 아빠랑 삼촌이 떨어뜨린 돈 주워서 모아놨어.)”
“보이 천재.”
은우와 케미기샤, 보리는 함께 문구점에 갔다.
케미기샤는 문구점에 있는 다양한 장난감에 눈이 갔다.
“우와, 이 로봇 너무 멋지다.”
“멍멍(그건 비싸서 못 사. 다음에 사자. 케미기샤.)”
“케미기샤. 다으메 샤 줄게. 오느른 반지를 사야 해. 그래야 나량 오래오래 살 뚜 이떠.”
“진짜?”
케미기샤의 눈이 커졌다.
케미기샤도 함께 반지를 고르기 시작했다.
“마는 게 조게찌? 그치?”
은우는 보라색, 노란색, 핑크색, 초록색, 파란색 사탕반지를 샀다.
“꼬튼 어떠케 하지?”
“만들면 되지. 색종이를 사자.”
케미기샤가 색종이를 골랐다.
“멍멍(이제 반지랑 꽃은 됐으니까 더 하자면 케이크?)”
“케이크는 아이뜨크림 케이크인데.”
은우가 명석이에게 전화를 했다.
“명서가 너 케이크 이떠?”
***
집으로 돌아온 은우와 케미기샤는 종이꽃을 접기 시작했다.
“아, 허리 아포.”
종이꽃을 계속 접다 보니 허리가 아파 왔다.
보리가 옆에서 응원을 했다.
“멍멍(조금만 힘을 내. 열 개 접었으니까 스무 개 정도만 더 접으면 돼.)”
은우가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카드도 뜰갸?”
“그래.”
은우가 카드를 썼다.
[엄마가 대 주어서 곰마어요. 사랑애요]
케미기샤가 박수를 쳤다.
“은우 글씨 너무 예쁘다. 잘 썼어.”
보리는 은우의 맞춤법이 틀린 걸 알아차렸지만 가만히 두기로 했다.
‘강아지 발로는 도저히 그걸 고쳐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때 현관 벨이 울렸다.
“내갸 가께.”
은우가 달려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명석이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들고 방긋 웃었다.
“은우야.”
“명서갸.”
은우와 명석이가 함께 안고 빙빙 돌았다.
“보고 시퍼떠.”
“헤헤헤헤. 며서가 와 져서 거마어.”
창현이 현관으로 나와서 인사를 했다.
“명석이 오랜만이네. 놀러 왔구나.”
“네네네네네.”
명석이는 종종 은우의 말투를 흉내 내곤 했다.
은우가 기분이 좋은지 빙그레 웃었다.
“헤헤헤헤헤.”
은우과 명석이는 함께 은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반지도 샤고 꼬또 만들고 카드도 써써. 케이크도 와뜨니까. 이제 눈나만 오면 댄다.”
“와아. 신난다.”
명석이가 박수를 쳤다.
은우가 백수희에게 전화를 했다.
“눈나, 우리 지베 저녁 머그러 와요.”
“그래? 맛있는 거 있어?”
“네, 아빠가 마니는 거 해준대요. 명서기도 와떠요.”
“오, 그래? 명석이까지? 파티인 거야?”
“네네네네네.”
백수희를 기다리는 동안 보리가 의견을 냈다.
“멍멍(파티엔 풍선도 필요하지 않을까? 보니까 프러포즈 사진엔 풍선이랑 촛불이 등장하던데.)”
“그래, 풍션.”
은우는 어린이날 선물로 받았던 기다란 풍선을 떠올렸다.
명석이와 케미기샤는 모두 풍선을 불기 시작했다.
“아, 입 아파.”
케미기샤가 풍선을 불다 멈춘 채 말했다.
“이제 풍션 만타.”
“멍멍(그 정도면 될 것 같아)”
은우 일행은 은우의 방을 풍선으로 꾸며둔 채 백수희를 기다렸다.
현관벨이 울리자 은우가 소리쳤다.
“내가 가게.”
백수희가 문을 열고 장난을 쳤다.
“은우 엄따.”
은우가 장난을 받았다.
“은우 이따.”
창현이 백수희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나왔다.
“수희 씨, 어쩐 일이에요?”
“은우가 저녁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해서요.”
“네에?”
은우는 백수희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다.
“눈나, 이리 와요.”
백수희는 은우의 방으로 들어섰다.
“짜짠.”
명석이와 케미기샤가 박수를 쳤다.
보리는 짖었다.
“멍멍(은우의 엄마가 돼 주세요.)”
은우의 방 벽엔 풍선들이 글자를 그리며 붙어 있었다.
[엄마]
백수희는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은우가 사탕반지를 내밀었다.
백수희는 색깔별로 놓인 사탕반지를 보며 웃었다.
은우가 카드를 내밀었다.
[엄마가 대 주어서 곰마어요. 사랑애요]
백수희는 은우의 틀린 맞춤법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을 터트렸다.
“은우야, 정말 감동이다.”
은우가 종이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내밀었다.
“백수희 눈나, 우리 아빠랑 겨론해 주떼요.”
백수희가 사탕 반지를 끼면서 말했다.
“네네네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