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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209화 (209/257)

209화. 귀국 (2)

친구들과 헤어진 후 집으로 온 백인수는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새 내 나이가 벌써 이렇게나? 요즘 들어 잠도 잘 안 오고 소화도 잘 안 되고 하긴 했었어.’

백인수는 자신이 몸에서 보낸 적신호를 무시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재작년엔 현기가 갔고 작년엔 미자랑 순옥이가 갔지.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걸 보면서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소화가 안 될 때마다 소화제를 사 먹지 말고 병원에 갈걸.’

뒤늦은 후회는 불안감만 키울 뿐이었다.

‘내가 아프면 수희는 어떻게 하지? 세상에 혼자 남을 텐데. 아내가 죽고 나서 수희가 힘들어했었는데 나마저 떠나면.’

백인수는 백수희가 걱정돼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나이 65. 살 만큼 살았지. 내 인생에 미련은 없어. 하지만 혼자 남을 수희를 생각하면 눈을 감을 수 없을 것만 같아. 이럴 줄 알았으면 창현 군과 미리 결혼을 시킬걸.’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을 들으며 젊게 살려고 노력 중인 백인수였다.

‘80까진 살 줄 알았어. 평균 수명도 그 정도 된다고 들었고.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 더 많이 베풀며 살 걸 그랬구나.’

여러 가지 생각으로 잠들지 못하는 백인수였다.

‘쓸만한 좋은 물건은 쓸 수 있는 사람에게 나눠줘야겠다. 그리고 수희 결혼식 날짜를 잡아야겠어. 내가 죽어도 은우가 제사 지낼 땐 할아버지 보러 오겠지. 불쌍한 우리 케미기샤도 내가 챙겨주고.’

백인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리 중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백인수는 근처 내과에 들렀다.

“어제 식사를 하는데 명치 끝이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요.”

가운을 입은 의사가 백인수의 배를 찔러보았다.

“아프세요?”

“아니요. 그렇게 눌러서는 통증이 없는데요.”

“보통 심한 경우는 촉진으로도 통증이 오는데요. 내시경 검사 언제 하셨죠?”

“오 년 전에요.”

“선생님 나이 때엔 2년마다 한 번씩 하셔야 합니다.”

“수면 내시경을 했었는데 그 약물이 저랑 맞지 않는지 하고 나면 머리가 멍해져서요.”

“그럼 수면 말고 일반으로 해보시겠어요?”

“일반을 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 들어갈 때만 좀 불편하지.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나이 드신 분들 중엔 못 일어날 수도 있다고 일반으로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일반 내시경은 당일도 가능한데 오늘 하시겠어요? 식사하셨나요?”

“네. 조금 먹고 왔어요.”

“그럼 내일 오전에 할 테니 오늘 밤 10시 이후로 금식하시고 내일 아침 아홉 시까지 오세요.”

병원을 빠져나온 백인수는 창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창현 군, 나 백인수야. 시간 되면 차나 한 잔 같이 하겠나?”

창현은 백인수의 전화를 받고 인사동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시지? 한 번도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주셨던 적은 없는데, 힘든 일이 있으신가?’

창현은 약속장소로 가면서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수희 씨와 관련된 얘기를 하시려나? 안 좋은 얘기를 하시면 어쩌지. 최근에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백인수가 창현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백인수는 조용히 쌍화차를 마시고 있었다.

“모과차요.”

창현이 차를 주문한 뒤 백인수가 말을 꺼냈다.

“오늘은 바쁜 일 없었나? 연락하자마자 나와줘서 고맙네.”

“아버님 연락이신데 열 일 제쳐두고 와야죠. 식사는 하셨어요?”

“고맙네. 날 이렇게 챙겨줘서 말이야.”

백인수는 창현의 따뜻함에 눈물이 났다.

“늙으니까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는 모양이야.”

“늙다뇨. 아직도 정정하신데요. 은우가 할아버지 멋있다고 할아버지 자랑을 얼마나 많이 하고 다닌다고요. 꼭 오래 사셔야 해요. 은우를 생각해서라도요.”

“은우 고 녀석 참 예쁘지. 내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우리 딸과 결혼해 줄 수 있겠나?”

창현은 백인수의 말에 놀랐다.

‘용기가 없어서 못 하고 있던 말을 먼저 해 주시다니.’

창현은 백수희가 은우를 위해 함께 아프리카에 갔던 일, 은우가 백수희를 좋아하는 모습 등을 보며 가족이 되는 꿈을 꾸어 왔었다.

‘그치만 프러포즈를 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어. 난 수희 씨에 비해 늘 초라한 느낌이었으니까.’

자신감이 없는 창현은 늘 미루고만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서글픈 일이야. 우리 수희 잘 부탁하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자네가 수희를 모른 척하진 않겠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니까 말이야.

우리 수희가 엄마 없이 자라서 평생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게 내 소원이네.”

“걱정 마세요. 아버님.”

“이건 주제넘은 말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케미기샤를 입양하는 건 어떤가?”

창현은 생각지도 못했던 백인수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은우랑 케미기샤 사이가 참 애절해. 피를 나눈 형제도 서로를 그렇게 챙기진 못할 걸세. 케미기샤가 부모가 있는 아이라면 힘들겠지만, 부모가 없으니 입양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내가 젊다면 입양해 주고 싶은데 내가 입양을 하게 되면 수희랑 케미기샤가 남매가 돼서 은우랑 사이가 복잡해질 것 같아서 말일세.”

백인수가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

[변호사 : 김태환]

“내가 잘 아는 변호사일세. 법적인 문제를 도와줄 거야. 알아보니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하던데. 물론 한 아이를 책임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일세. 내 인생 육십을 살아보니 돈 많이 벌지 못한 거,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 거 이런 게 아쉬운 게 아니야. 왜 내가 더 베풀지 못했나 이게 후회가 되더라고.”

창현은 말없이 백인수가 준 명함을 받아서 넣었다.

‘고민했던 적이 있긴 한데 이건 은우와 케미기샤의 의사도 중요한 거니까 집에 가서 한번 아이들의 의사도 물어봐야겠다.’

***

카다비의 리트윗 이후 은우의 노래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마트에선 은우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거리를 냐셔면 날 보는 시션들.

누냐, 횬아, 할뷰지, 할모니

내갸 그러케 기여운가여.”

마트의 계산원 미사가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렸다.

“내가 그러케 기여운가여.”

옆에서 계산을 하던 계산원 헤이즐이 물었다.

“미사, 너 그 노래 가사 뜻 알고 부르는 거야?”

“아니, 그냥 아기 목소리가 귀엽고 리듬이 신나잖아. 자꾸 듣다 보니 외워지기도 했고.”

“내가 인터넷에서 그거 뜻 찾아봤는데 [Am I a cute?]란 뜻이래.”

“오 마이 갓, 난 그런 뜻인 줄은 몰랐네. 내가 귀엽나. 음 그런 말 들어보고 싶은걸. 근데 한국말 말야. 어감이 너무 좋지 않아? 기여운가여?”

“그 말 할 때 너 진짜 귀여워.”

“소원 이뤘네. 어쨌든 귀엽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말야.”

마트에 장난감을 사러 온 아기들이 노랫소리를 들으며 은우의 엉덩이춤을 추기 시작했다.

25개월짜리 아들 마이크를 데리고 온 올리비아는 마이크가 기저귀를 찬 채 춤추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마이크, 그 춤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헤헤헤헤.”

마이크는 계속 웃으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올리비아는 마트에 있는 다른 아기들도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단체 시즌송처럼 말이야. 이건 아기송인가? 아기들이 들으면 춤추는 노래.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신기하네.”

46개월짜리 여자아이 엠마는 반짝이는 신발을 신고 마트를 누비며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나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가사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무대 매너는 완벽했다.

엠마는 마트를 걸어 다니며 다른 아기들에게 손 마이크를 대 주었다.

아기들도 신이 나는지 다들 한마디씩 했다.

“아아.”

“어어어어어어.”

“헤헤헤헤헤.”

“기여어.”

엠마의 아빠 로건은 엠마를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엠마, 거기서. 그만 돌아다녀. 아빠 어지러워.”

엠마는 로건의 말을 무시한 채 점점 멀어져만 갔다.

***

미국의 이스튼 주립 교도소의 교도관 메이슨은 클래식 LP판을 내려놓았다.

매일 점심 식사를 마친 뒤 한 시간은 교도소에서 유일하게 음악을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교도소 내에선 개인 전자기기를 휴대할 수 없었으므로 수감자들은 하루에 한 시간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메이슨은 어제 자신의 딸 아비가일 때문에 처음으로 은우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은우의 목소리는 너무도 맑고 아름다웠다.

‘천국에서 온 천사의 노랫소리 같았어. 그런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마음이 깨끗해질 거야.’

메이슨은 교도소에 걸린 글자를 보았다.

[교화를 목표로 전진하는 이스튼 주립 교도소]

교화가 목적이라곤 하지만 교도소를 나간 수감자들은 일 년이 안 돼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로 돌아왔다.

‘교화라는 게 정말 어렵지. 사람들은 잘 바뀌지 않으니까.’

직업 훈련 프로그램, 명사 초청 프로그램, 합창단 운영, 종교 프로그램 운영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재소자들의 삶을 정상으로 돌려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메이슨은 은우의 노래를 틀었다.

“내갸 지나갈 때먀댜 냘 향한 시션들.

멀리셔도 냐를 쫓는 시션들.

내갸 그러케 기여운가여.”

재소자들은 멍하니 서서 스피커를 바라보았다.

사형을 선고받은 제임스는 멍하니 노래를 들었다.

‘눈 부신 빛 같은 목소리군. 따뜻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야.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제임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았다.

어렸을 때의 자신은 걱정이 없고 행복했었다.

‘매일 엄마가 팬케이크를 구워주셨지. 일요일 아침엔 일어나서 만화를 보고 말이야.’

제임스는 은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15살의 올리버는 노래를 들으며 짜증을 냈다.

“지난번엔 피아노더니 오늘은 아기 옹알이네. 교도관 취향은 영 꽝이라니까. 클래식도 안 어울리고 아기 목소리도 교도소엔 어울리지 않아. 유행하는 힙합이나 틀어주지. 노래를 듣는 시간이 전혀 즐겁지가 않잖아.”

올리버는 베개를 찾아 자신의 귀를 막았다.

“듣기 싫은 노래를 듣지 않을 자유도 필요하다고.”

지나가던 교도관 노아가 말했다.

“넌 죄를 지었어. 그래서 이곳에 온 거야. 자유는 바깥에서나 있는 거지. 교도소에선 자유를 적절히 제한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저 노래 좋은데 왜 그래? 내가 보기엔 넌 꼬였어. 모든 게 말야. 왜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바라보지 않아?”

순간 올리버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기가 힘들었다.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올리버가 화를 내자 사람들의 시선이 올리버에게로 향했다. 몇몇 교도관들은 곤봉을 들고 올리버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저 곤봉으로 나를 때리고 독방에 가둘지도 모르겠군.’

교도관에게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올리버는 알고 있었다.

‘독방은 끔찍하니까.’

올리버는 조용히 발길을 돌려 구석으로 갔다. 교도관들도 올리버에게 눈길을 거두었다.

올리버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동네 형 리암은 올리버에게 큰돈을 벌게 해 준다고 말했다.

“마약을 운반하는 건데 어렵지 않아. 10번 하면 5번은 안 걸리고 설사 걸리더라도 넌 어려서 처벌이 가벼워. 감옥에서 5개월만 지내고 오면 십만 달러가 생긴다고 신나지 않아?”

십만 달러.

올리버의 집은 가난했다. 청소부인 어머니와 운전사인 아버지는 늘 피로에 찌든 몸으로 퇴근을 했다. 외식을 하기도 힘들었고 또래처럼 멋진 옷을 살 수도 없었다.

올리버는 친구들처럼 멋진 차를 타고 돈을 쓰며 으스대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할게요.”

올리버는 리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약을 가방에 넣고 롱보드를 탄 채 달렸다. 마약을 넘겨주기로 한 식당에서 올리버는 마약을 넘겨주다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판사는 올리버의 나이를 감안하여 징역 5개월을 때렸다.

하지만 십만 달러는 올리버의 수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거짓말쟁이.’

올리버는 리암이 미웠다.

리암을 성공하지 못한 계약에는 돈이 나가지 않는다며 말을 바꿨다.

억울하게 박제된 5개월. 올리버는 세상이 미웠다.

그때 스피커에서 에릭과 은우가 함께 부른 [my little friend]가 나왔다.

에릭이 부드러운 중저음이 울려 퍼졌다.

“내가 지쳐 울고 있던 날 넌 내게 왔지.

나의 하나뿐인 친구.

너로 인해 난 삶의 의미를 얻네.

나의 작은 친구.”

이윽고 은우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넌 혼쟈갸 아니야. 어로어 마라요.

넌 혼쟈갸 아니야. 어로어 마라요.”

올리버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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