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202화 (202/257)

202화. 소소한 행복들 (1)

강라온은 신문기사를 보며 흡족해하고 있었다.

- [블랙 레오퍼드 2] 개봉 2주 만에 관객 1000만 명 돌파. 미주와 유럽 전역에서도 흥행 차트를 이어가는 [블랙 레오퍼드 2]

- [밖으로 GO]의 [블랙 레오퍼드 2] 이벤트 전 아시아 지역으로 확대.

- 와찰라 굿즈 아동뿐 아니라 전 연령층에서 고른 인기, 바블사 컨텐츠 관련 수익 상승 중

- [블랙 레오퍼드 2]의 유행어 [와따따 포에버] 전 국민을 휩쓸다.

- 은우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다. 각종 광고 요청 쇄도.

- [단독 보도] : 은우 코카콜라 단독 모델 확정. 일본, 대만 등지에서도 모델 요청 쇄도.

- [블랙 레오퍼드 2]로 몸값 상승한 은우, 차기작은?

- [우주 히어로즈]의 맥 감독, 은우에게 러브콜?

강라온은 은우의 미국 일정표를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코카콜라 광고를 찍고 뉴욕에서 전시회를 한 다음엔 공식 일정이 비어 있는데 맥 감독을 만나고 오라고 할까? [우주 히어로즈]는 아무리 봐도 탐나는데? 와찰라 캐릭터가 살아있으니 바블사의 다른 히어로물에도 출연할 수 있을 거고.

인지도를 활용해서 미국에서 음반을 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캣걸스와 레이니의 실패와는 달리 은우만은 꼭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하는 강라온이었다.

‘짧아도 2주 정도는 미국 일정이 잡혀야 할 것 같은데. 은우 부탁은 못 들어주게 됐네.’

은우가 강라온에게 케미기샤와 함께 출국하도록 부탁했으나 우리나라에 유학비자를 들고 온 아프리카인을 다시 미국으로 데려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은우는 케미기샤를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걸까?’

케미기샤에 대해서는 강라온도 은우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미국까지 같이 가야겠다고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해. 게다가 이번엔 트레이닝 부탁까지 했으니.’

은우의 위치를 생각하면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부탁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현재 가장 매출이 높은 게 은우라는 걸 부정할 순 없지.’

강라온이 야심 차게 준비했던 [루비걸스]와 [텐 보이즈]가 생각보다 저조한 반응을 얻으면서 강라온은 새로운 신인을 발굴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간이 남는 보컬 트레이너 한 명을 붙여줘야겠어.’

강라온은 태현에게 전화해 케미기샤를 위한 보컬 트레이너를 배정했다.

***

은우는 덕진에게 온 전화를 받는 중이었다.

“은우야, 고마워. 너투브 나간 후에 레고 업체로부터 전화를 받았어.”

“우와, 횬아. 머쪄요.”

“레고 업체에서 내가 만든 [블랙 레오퍼드 2]의 왕궁이랑 [플래티넘 드래곤]의 조립법을 사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날 본사 직원으로 고용하겠대. 내일부터 출근해.”

“우와. 우와.”

“다 네 덕분이야. 은우야. 정말 고마워. 좋아하는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니 꿈만 같아.”

“횬아, 저도 레고 회사에 초대해져요. 횬아가 일하는 거 보러 가고 시퍼요.”

“그럼, 그럼. 언제든 와.”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보리가 말했다.

“멍멍(은우가 또 좋은 일을 했구나. 나도 돈을 벌면 좋은 일을 해야 할 터인데. 너투브에서 봤는데 불쌍한 강아지, 고양이가 많더라고. 사람들이 자꾸 버려. 나도 버려진 강아지였었지만. 도와주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

“주시기 잘 안 대?”

“멍멍(주식을 하려고 했는데 계좌개설이 안 돼. 은우 네 주민등록번호로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넌 다섯 살이라서 부모님의 동의 없이 안 되나 봐. 누가 나에게 계좌를 빌려주면 내가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블랙 레오퍼드 2] 개봉하고 나서 HO 엔터테인먼트 주가가 오른 걸 보면 네 스케줄만 꿰고 있어도 돈을 잘 벌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이런 좋은 기회를 앉아서 놓치다니.)”

은우가 보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징쨔 아꺕댜. 긍데 무슨 마린지 모르게떠. 계좌갸 머야?”

“멍멍(네 돈을 모아놓은 통장 같은 건데. 아무래도 네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 주식 투자는 어려울 거 같아. 어플이나 더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가상의 아바타를 만들어서 아바타로 너투브 주식 방송을 해 볼까?)”

“너투브가 더 조을 거 가탸. 너투브는 참 조아. 길동이 횬아도 구독자가 십만 명이래.”

“멍멍(오? 그래? 길동이 컨텐츠는 뭔데?)”

“고기 먹뱡. 헤헤헤헤. 가끔 고기 머꼬 시플 때 냐도 출연해. 가면 횬아가 고기를 계속 져. 너도 갈래?”

“멍멍(고기 좋다. 나도 먹방을 찍어 볼까? 강아지 먹방도 보는 사람이 많은지 시장 조사를 해 봐야겠다.)”

***

백인수는 은우의 뉴욕 전시회 준비를 돕기 위해서 은우의 아파트로 향했다.

“하뷰지. 보고 시퍼떠요.”

은우가 밝게 웃으며 백인수의 다리에 안겼다.

“은우, 잘 있었어? 더 많이 컸구나.”

백인수는 은우를 꼬옥 안아주었다.

“하뷰지. 케미기샤에요. 케미기샤, 인사해.”

“오, 네가 케미기샤구나.”

백인수는 백수희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은우가 케미기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 아이를 은우가 눈물겨울 정도로 챙긴다고 그랬었지. 수희가.’

불교 신자인 백인수는 전생을 믿었다.

‘둘이 전생에 인연이라도 연결돼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나라도 나이도 다른 아이들이. 이렇게 애틋할 수가 있을까?’

백인수가 은우와 케미기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희를 보니 할미새가 생각이 나는구나.”

“할미새갸 머예요? 하뷰지.”

“할미새는 물가에 사는 새인데 형제가 위험에 처하면 들판까지 와서 형제를 구한단다. 형제의 고난을 함께 하는 새인 거지. 우리 조상들이 그린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새야.”

“할미새 머쪄요. 하뷰지. 보여주떼요.”

백인수가 할미새를 검색해서 은우에게 보여주었다.

“징쨔 오래댄 그림 소게 마니 인네요. 그려 보고 시퍼요.”

“그래? 그럼 같이 그려 볼까?”

백인수와 은우, 케미기샤가 은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옛날 그림들은 화선지에 그렸었는데 화선지가 없으니 다른 느낌의 그림이 탄생하겠구나.”

“네네네네네.”

은우는 스케치북을 폈다.

“케미기샤. 너도 그려.”

은우가 케미기샤 앞에도 스케치북을 펼쳐 주었다.

백인수가 은우에게 말했다.

“우리 같이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해 보는 건 어떨까? 그림을 더해서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해 보는 거야.”

“네네네네네.”

은우는 스케치북 위에 크레파스로 할미새를 그리기 시작했다.

초록색의 날개와 붉은 빛깔의 배털을 가진 할미새가 스케치북 위에 살아났다.

“와아, 은우 잘 그린다.”

케미기샤가 은우가 그린 할미새에 감탄했다.

은우가 케미기샤에게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케미기샤도 그려.”

“잘할 수 있을까?”

케미기샤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물었다.

은우의 뛰어난 그림 실력 때문에 케미기샤는 자신이 그림을 망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개차냐.”

천천히 케미기샤의 크레파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케미기샤가 펑크록 머리 모양을 한 아름다운 초록색의 털을 가진 새를 그렸다.

“이게 머야?”

“나이스타 투라코. 아프리카의 새.”

“초록색 모자를 쓴 거 가타. 입술 좀 뱌. 입술이 쪼그매.”

은우가 입술을 오므려서 새의 흉내를 냈다.

백인수는 은우의 입술이 너무 귀여워 볼에 뽀뽀를 했다.

“하뷰지, 따가어.”

은우는 백인수의 수염 때문에 따가움을 느꼈다.

백인수가 은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케미기샤에게 물었다.

“아프리카엔 예쁜 새가 많구나.”

“아프리카 새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빛깔이 화려해요. 이 새도 나무랑 색깔이 비슷해서 숲속에선 찾기 어려워요.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너무 아름다워요.”

케미기샤는 보호색을 가진 ‘나이스타 투라코’가 마치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나도 엄마, 아빠가 없고 형도 없었을 때 너무 힘들었어.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먹을 것만 찾으러 다녔으니까.’

은우가 케미기샤의 그림을 칭찬했다.

“이 새 빅토리아 폭포에서 찰영할 때 뱐는데. 징쨔 이쁘게 생겨떠. 케미기샤 그림 잘 그린다. 내가 바떤 거량 정먈 또가태.”

“그래, 케미기샤가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할미새와 ‘나이스타 투라코’가 묘하게 어울리는걸.”

은우가 할미새의 날개털을 짚으며 말했다.

“요기랑 요기랑 털색이 똑가태. 형제인가 뱌요. 헤헤헤헤. 케미기샤랑 나도 발가랴기 또가타요.”

백인수는 은우의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나 닮은 곳을 찾고 싶었으면 발가락이 닮았다고 할까? 은우야, 케미기샤를 생각하는 너의 그 마음이 정말 예쁘구나. 그래 마음이 통하는 상대면 다른 게 뭐가 중요하겠니? 너희 둘은 헤어지지 말고 늘 함께하렴.’

케미기샤가 백인수에게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하뷰지가 그려주세요.”

“솜씨 좀 발휘해 볼까?”

백인수가 크레파스를 들었다.

‘크레파스의 질감이 꽤 낯서네. 이걸로 잘 그릴 수 있을까? 애들 그림 그리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백인수는 두 마리의 새를 붉은색 산앵두꽃으로 연결했다.

“산앵두꽃은 우애의 상징이란다. 우리 조상들은 형제간의 우애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지. 요즘 애들은 외동이 많아서 우애란 단어의 의미를 잘 모를 거야. 같은 부모 아래서 태어나 한 기운을 나누었으니 형제의 아픔을 내 아픔 같이 느끼라는 뜻이란다.

두 마리의 아름다운 새가 산앵두꽃으로 묶였으니 너희들의 우애는 영원할 거야.”

“머쪄요. 하뷰지.”

은우가 백인수의 그림을 보고 박수를 쳤다.

“감사합니다. 하뷰지.”

케미기샤는 은우의 말 때문에 할아버지란 단어를 늘 ‘하뷰지’로 발음했다. 케미기샤는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 준 백인수가 너무나 고마웠다. 케미기샤의 할아버지는 케미기샤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을 뵌 적이 없지만, 만약 살아계셨다면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케미기샤는 뵌 적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상상했다.

***

은우와 케미기샤, 보리는 길동의 차를 타고 HO 엔터테인먼트로 이동 중이었다.

“횬아, 징짜 케미기샤는 미국 모 까요?”

“대표님이 여러 번 알아보셨는데 비자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어쩔 수 없었어. 대신 네가 없는 동안 케미기샤를 대표님이 잘 봐준다고 하셨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네에. 케미기샤 보고 시퍼서 어떠케 하지?”

“너무 걱정하지 마. 은우야. 2주만 있으면 또 만날 수 있잖아. 내가 잘 기다리고 있을게.”

“응, 케미기샤. 내갸 자주 전햐할게. 전햐가 이떠더 징쨔 다행이야.”

보리는 HO 엔터테인먼트에 처음 방문하게 된 탓에 마음이 설렜다.

“멍멍(가면 강아지 카푸치노도 마실 수 있는 거지? 강아지 운동장도 있고 말이야.)”

“응, 가셔 재미께 노라. 보이야. 칭구도 만나고.”

“멍멍(신난다. 강라온 대표에게 강아지 메뉴 좀 많이 늘리라고 건의해. 은우야.)”

길동의 차가 HO 엔터테인먼트에 도착했다.

은우 일행은 제일 먼저 카페가 있는 오 층으로 갔다.

은우가 계산대로 가서 알바생에게 물었다.

“아슈크림 새로운 맛 머머 이떠요?”

“일곱 가지가 새로 들어왔어요. 달고나 맛, 치즈케이크 맛, 아몬드 맛, 쿠키 맛, 라즈베리 맛, 포도 맛, 아포카토 맛.”

“다 주떼요.”

“은우 다 먹을 수 있어요? 이 작은 배로?”

“네네네네네.”

알바생이 은우를 위해 일곱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큰 통에 담아주었다.

보리가 옆에서 꼬리를 치며 말했다.

“멍멍(은우, 내 개푸치노도 잊으면 안 돼.)”

은우가 알바생에게 손짓을 했다.

“눈나 이짜냐요. 저기 우리 강아지 커피도 주떼요. 아라쬬?”

알바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래, 근데 왜 속삭이듯 말해. 그럼 주문이 잘 안 들리잖아.”

“우리 강아지는 너무 똑똑해서 강아지라고 말하면 속상해하거든요. 자기갸 사람인 줄 아라요.”

“아아아.”

알바생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아지 이름이 뭐야?”

“이보이요.”

알바생이 퍼푸치노를 만들어서 외쳤다.

“이보이를 위한 카푸치노 한 잔이요. 여기 강아지를 위한 쿠키도 있어요.”

“네네네네네.”

은우가 보리를 위해 퍼푸치노와 쿠키를 들고 왔다.

보리가 테이블 앞에 앉아 꼬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멍멍(고마워. 은우야. 네 덕분에 커피도 마시고 좋다. 오, 이건 쿠키네. 와. 정말 행복한 날이다. 나 눈물 날 것 같아. 커피 한잔하는 여유가 이렇게 소중한 걸 왜 사람일 땐 몰랐을까?)”

“마디게 머거 보이야. 내가 다으메 더 조은 데 데리고 가께.”

“멍멍(역시 너뿐이야. 내 친구는.)”

보리가 눈물 섞인 퍼푸치노를 마시는 동안 옆 테이블의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보리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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