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개봉박두 (4)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라.
은우는 정라라의 질문을 듣고 고민했다.
‘이건 뭐라고 대답해도 욕먹을 수밖에 없는 질문인데. 사람마다 상황이 다른데 똑같은 대답이 의미가 있나?’
은우가 입을 열었다.
“도보다 행보글 차자보떼요. 조아하는 걸 하댜 보면 행보근 따라와요. 노래하고 연기할 때 행보케요.”
정라라는 질문지를 보며 고민했다.
‘준비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재미가 없네. 다른 걸 물어봐야겠다. 은우가 당황해할 만한 질문으로.’
정라라는 가방 속에 들어있는 두 번째 녹음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은우를 싫어하는 팬들에겐 어떻게 대하나요?”
은우는 자신을 싫어하는 몇몇 안티팬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보리와 함께 인터넷을 할 때 보리가 댓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파리넬리일 때도 안티팬들에게 시달렸었지. 그땐 나의 성공을 질투하는 세력들이 일부러 안티팬을 만들어내기도 했었고. 나를 사랑하는 소녀팬이 짝사랑의 슬픔으로 자살하는 바람에 그 분노 때문에 공연장에 가서 계란을 맞았던 적도 있었어.’
은우는 파리넬리이던 시절의 경험으로 팬들의 사랑이 얼마나 쉽게 돌아서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 대중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어.’
은우가 대답했다.
“음. 언제든 제 패니 댈 뚜 이는 샤랴미요. 무관심보단 요기 나따고 보리가 그랬어요.”
정라라는 은우의 대답에 놀랐다.
‘나의 공격적인 질문이 하나도 안 먹히잖아. 이번엔 먹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짜증 날 것 같은 질문에도 방긋방긋 웃고 있는 이 아기는 대체 뭐지?’
정라라가 다시 질문을 이었다.
“보리가 누군가요?”
“아, 최보이. 우리 강아지요. 눈나 제 팬 아니죠? 재롱이드른 다 아는데.”
정라라는 숨기고 싶은 사실을 들켜서 뜨끔했다.
옆에 있던 다른 팬이 정라라에게 눈치를 주었다.
“너무 오래 시간을 차지하시는 거 아니에요? 저희 다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리고 은우 밥도 못 먹었잖아요. 은우 한창 클 나이라 밥도 먹어야 하는데.”
정라라는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자신이 알바생들에게 푼 돈을 생각하면 질문을 하나라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 자그마치 이백만 원을 풀었다고. 메인 캐릭터 20개를 모으기 위해 알바생 50명을 고용했다고. 그들이 이동한 거리만 다 합치면 백 킬로미터라고.’
정라라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지막 질문 하나만요. 은우는 모두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 은우도 부러운 사람이 있나요?”
정라라의 질문은 은우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파리넬리이던 시절엔 평범한 가장을 부러워했지. 돈과 명예가 있어도 거세되었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일도 아이를 갖는 일도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파드와이던 시절엔 밥 세 끼를 먹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고 부모님이 옆에 계신 사람이 부러웠고, 은우로 태어나서는 엄마가 있는 다른 아기가 부러웠고.
하지만 세 번의 삶을 통해 내가 깨달은 건 완벽한 삶은 없다는 것.
모자란 것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의 삶은 더 슬퍼지기만 한다는 것.’
은우가 작은 입을 벌리며 말했다.
“저는 지금 초코레시 머꼬 시퍼요. 그리고 제 손엔 초코레시 이떠요. 그거면 대요. 댜른 아기갸 마카롱을 들고 이따고 해서 부러어하지 아나요. 누나도 그래뜨면 조케어요.”
정라라는 은우의 마지막 말에 놀랐다.
‘저 어린아이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인가.’
경쟁에 치이며 살아온 30여 년의 인생을 정라라는 되돌아보았다.
중고등학교 때 늘 전교등수 10등 안에 들었지만, 대학에 들어와서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생은 마치 하나의 허들을 넘으면 그다음 허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경주장 같았다.
대단한 스펙을 가진 기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라라는 잠을 줄였다.
‘하지만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어. 다른 기자들도 잠을 안 자고 있었으니까. 일주일씩 집에도 안 가는 독종들.’
독종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정라라는 더 독해졌다.
[워런버핏과 함께한 점심 식사]라는 책을 기획한 것도 기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건 대단한 타이틀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그 이후의 책들이 망한 게 문제였지.’
정라라는 이후에도 점심 식사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대통령과 함께한 점심 식사], [잠성 그룹 회장과의 점심 식사], [세계 제일 천재와 함께한 점심 식사] 시리즈가 그것이었다.
‘물론 나머지 책들의 판매 부수는 처참했지만. 그래서 이번이 내가 재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고.’
이를 박박 갈며 왔던 곳이었는데 은우의 마지막 말을 들으니 정라라는 무언가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남의 초콜릿을 부러워하고 있었구나. 그러다가 내 손에 든 초콜릿이 다 녹아서 못 먹게 되는 줄도 모르고.’
정라라는 가방 속으로 손을 넣어 녹음테이프를 끄고 조용히 뷔페를 빠져나갔다.
***
강라온은 아침 신문을 보고 있었다.
[[블랙 레오퍼드 2] 개봉과 함께 첫 주말에 관객 이백만 명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하다.
주연 테드의 죽음과 함께 위기에 서 있던 영화 [블랙 레오퍼드 1]이 개봉 첫 주 이백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확실한 1위로 자리매김을 했다. 월드 스타로 이름난 이은우의 팬을 주축으로 하여 증강현실 게임 [밖으로 GO]를 활용한 마케팅 역시 큰 도움이 됐다.
영화를 보고 나온 팬들의 반응 역시 매우 훌륭한 상황. 팬들은 은우의 뛰어난 변신 연기와 백성을 사랑하는 진심 어린 눈빛 연기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평했다. 바블사 특유의 특수효과도 큰 점수를 얻었다. 출구 조사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 중 43프로가 영화를 다시 볼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블랙 레오퍼드 2]는 현재 북미와 유럽권에서도 선전하며 [블랙 레오퍼드 1]이 세운 13억 4759만 불(한화 1조 5373억)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강라온은 신문기사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은우가 음반 활동을 빨리 접게 돼서 아쉬운 맘이 많았었는데 이번 영화의 흥행을 보니 그다지 아쉽지도 않은 일이 됐어. 영화의 흥행으로 벌어들일 수익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 같아. 와찰라 캐릭터가 살아있으니 다음 바블의 영화에도 출연할 수도 있을 거고.
만약 [블랙 레오퍼드 2]가 전작의 흥행을 뛰어넘는다면 은우의 다음 출연료는 어마어마해지겠지?’
강라온은 다른 기사를 보았다.
[[밖으로 GO]의 제작사 넷팍스 코스닥 상장.
[블랙 레오퍼드 2]의 흥행과 더불어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증강현실 게임회사 [밖으로 GO]의 성장세가 무섭다. 한때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던 넷팍스는 [블랙 레오퍼드 2]의 투자를 유치하며 이후 할리우드 영화 [프린세스 만들기], 일본 영화 [공작기동대], 인도 영화 [발리우드]의 투자를 이끌어 내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증강현실 게임회사로 자리 잡았다.
정철 대표는 앞으로도 더 실감 나는 증강현실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기술 투자를 할 것이며 게임의 재미를 키우기 위해 유저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하는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소감을 살폈다.]
강라온은 기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망해가던 회사도 코스닥에 상장시키다니 은우는 참 대단한데. 그러고 보니 [블랙 레오퍼드 2]의 성공으로 우리 회사 주식도 많이 올랐던데 얼마나 올랐나 볼까?’
강라온은 코스닥에 있는 HO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보았다. 빨간색으로 표시가 아름다워 보였다.
‘우상향 차트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군. 오늘로써 신고가를 찍었어. [블랙 레오퍼드 2]가 개봉하기 전보다 칠천 원 올랐으니 은우 파워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거군.’
강라온의 자산 역시 가만히 앉아서 25프로가 상승했다.
‘현재 내가 가진 주식의 가치가 1천 654억 원이 되었군. 역시 잘 키운 연예인 한 명이 회사를 먹여 살린다니까. 그나저나 은우 덕에 회사 입지도 좋아졌는데 직원들 복지를 위해 더 해줄 일이 없나 고민해 봐야겠네. 식당에 반찬 수를 더 늘려볼까? 요샌 좋은 회사엔 안마 기계를 놓는다던데 안마 기계를 놓을까? 헬스장이랑 수영장을 만들어서 회사 안에서도 운동을 할 수 있게 해 줄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는 강라온이었다.
그때 강라온의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전화 속 남자는 태현이었다.
“대표님. 혹시 노래하는 강아지 어플 보셨나요?”
“아니. 못 봤는데. 갑자기 웬 강아지인가?”
“그게 저도 오늘 처음 봤는데 그걸 은우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작자 이름에 은우 이름이 적혀 있나 봐요. 근데 그 어플이 인기가 좋아서 다들 자기 업체에서 가져가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데 은우가 어플을 만들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기도 하고. 도무지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은우가 어플을 만들었다고? 그 어플 내 휴대폰으로 보내봐.”
강라온은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은우는 재주도 많지. 언제 어플까지 만들었을까? 어플 만드는 게 어려웠을 텐데. 다섯 살짜리가 어플을 만들다니 멘사에 신청서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닐까?’
강라온이 태현이 보내준 주소로 접속하여 어플을 받았다.
‘첫 단계 강아지 사진을 넣으세요. 고양이 사진도 괜찮겠지? 그럼 엄마 댁에서 키우는 미미 사진을 넣어야겠네.’
미미는 강라온의 어머니가 기르는 10살 된 고등어 무늬 코리안 숏헤어였다.
‘그러고 나서 사진의 눈, 코, 입을 맞추고 녹음을 누르라 이거지.’
강라온이 녹음을 눌렀다.
“집사야. 간식 내놔라.”
녹음이 끝나고 재생 버튼을 부르자 미미의 입과 턱이 움직였다.
“집사야, 간식 내놔라.”
강라온은 미미의 말에 자지러졌다.
“맙소사. 왜 이렇게 웃겨. 이거 진짜 재밌네. 또 해 볼까?”
강라온은 신이 나서 다음 멘트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
길동이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회사에 뭘 만들면 좋을지 강라온 대표님이 너에게 물어보라는데. 헬스장? 수영장? 어떤 게 좋아?”
은우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놀이동사늘 만드러요.”
“음. 그건 너무 비쌀 거 같은데. 우리 회사가 디즈니가 되지 않는 이상 힘들 거 같아.”
“디즈니갸 대면 할 뚜 이떠요?”
“그럼. 디즈니는 정말 큰 회사니까 할 수 있지. 매해 거기서 만들어내는 영화만 해도 어마어마할 텐데.”
“와아.”
은우의 머릿속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이들을 위한 재밌는 만화 영화를 만드는 거야. 그래서 아프리카에 놀이동산을 만들면 좋겠다. 아이들이 즐거워하겠지?’
길동이 다시 물었다.
“놀이동산은 어려울 거 같고. 간식 추가는 가능할 거 같은데. 아이스크림 매장에 아이스크림 가짓수 추가 어때?”
“조아요. 카페에 과자랑 젤리도 마니 가져다 노코.”
“그래, 그건 해주실 거야. 다른 건 관심이 없나 보구나.”
“아, 강아지를 위한 공갸니 이뜨면 조게떠요.”
“좋은 생각이네. 우리 소속사 연예인 중에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대표님께 건의해 볼게.”
보리가 은우의 옆으로 와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멍멍(역시 날 챙겨주는 건 은우뿐이야. 이제 은우 따라서 은우 회사에도 구경 갈 수 있겠네.)”
은우가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가치 가쟈.”
길동이 말했다.
“은우 네가 만든 강아지가 노래하는 어플이 인기를 끌어서 회사로 어플을 사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고 하나 봐. 벤처 기업에서 연락이 온 것 같다고 하는데. 그 계약과 관련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는데. 아버님이랑 얘기하는 게 좋겠지?”
“제가 어프를 만드러요?”
은우가 커다란 눈으로 보리를 보았다.
“멍멍(아, 그게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너뿐이어서 제작자 이름에 네 이름과 전화번호를 넣었더니 어떻게 알고 소속사로 전화를 했나 보다. 그게 상품 가치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보이, 역시 넌 시대가 인정햐는 천재야.”
길동이 은우와 보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은우야, 내 말 듣고 있어? 대체 누구랑 말하는 거야?”
“헤헤헤헤. 아빠랑 얘기하는 게 조케떠요. 심심해서 만든 건데 반응이 조타니 신기하네요.”
“심심해서 만든 게 인기를 끌고 좋겠다 넌. 잘하면 비싼 값에 팔릴 수도 있을 거 같던데.”
“와, 진짜요?”
“멍멍(나 돈 버는 거야? 돈 벌게 되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싶어. 여행도 다니고.)”
“그래, 보이야. 돈 안 버러도 나랑 가치 다니쟈.”
은우가 보리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때 길동의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태현] : 좋은 소식, 은우에게 코카콜라 광고가 들어왔어. 미국 현지 광고야. 우리 은우 완전히 떴다. 강라온 대표님, 마이클 잭슨도 코카콜라 광고 찍었었다며 기뻐하시는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