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개봉박두 (3)
케미기샤와 은우는 손을 잡고 함께 마트에 갔다.
은우가 마트의 주인아저씨한테 물었다.
“아져씨, 새우비 어디쪄요?”
“어디 보자. 새우비라. 요깄다.”
아저씨가 은우를 위해 새우비를 찾아주었다.
“감샤함니댜.”
은우가 아저씨에게 만 원을 건네자 아저씨가 거스름돈을 주었다.
“잊어버리지 말고 잘 가져가.”
“네네네네네.”
은우가 마트를 나오려는데 케미기샤가 은우의 손을 끌어당겼다.
“은우야, 더 있다 가자.”
은우는 케미기샤의 눈이 반짝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라떠.”
케미기샤는 다양한 과자 앞에서 정신을 놓았다.
“우와, 이렇게 많은 과자가 있다니 여긴 정말 천국이야.”
케미기샤가 닭다리 모양 과자를 집었다.
“이건 닭다리 맛이야?”
“그런 거 가탸.”
“그럼 나 이거 사도 돼?”
“응.”
은우는 케미기샤가 사고 싶다고 하면 사 주고 싶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케미기샤는 그 뒤로도 수박 맛 젤리, 모자 쓴 초코 과자, 오징어 맛 과자, 옥수수 맛 과자, 붕어 모양 아이스크림 등 커다란 봉지 하나를 채울 정도로 잔뜩 골랐다.
“다 골라떠?”
“응.”
케미기샤와 은우는 함께 계산대로 갔다.
마트 아저씨가 과자를 보더니 놀라셨다.
“무슨 과자를 이렇게나 많이? 돈은 있는 거야?”
은우가 아까 아저씨가 준 거스름돈을 내밀었다.
“이건 팔천팔백 원인데. 이걸로는 과자 다 못 사. 돈이 한참 모자라.”
“모자라요? 어떠케 하지.”
케미기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괜찮아. 다음에 사지 뭐.”
은우는 케미기샤가 상심하는 게 안쓰러웠다.
은우가 목에 걸린 키즈폰을 열더니 길동에게 전화했다.
“횬아.”
“은우야, 새우비 샀어?”
“횬아, 돈. 과쟈 더 살 거예요.”
“과자를 얼마나 많이 사길래? 만 원으로 모자라?”
“네네네네네.”
마트 주인에게 마트 주소를 들은 길동은 마트를 찾아가면서 생각했다.
‘마트에서 장난감도 파나? 은우가 아직 장난감을 좋아하긴 하지. 과자만 있었으면 만 원이 모자라진 않을 텐데. 카드를 줄 수도 없고. 역시 같이 갈 걸 그랬어.’
마트에 도착한 길동은 포장된 과자봉지 앞에 놀랐다.
‘과자를 종류별로 다 골라놨네. 세상에. 대체 이게 얼마야?’
길동이 카드를 내밀자 마트 아저씨가 결제를 한 뒤 영수증을 주었다.
“총 십일만오천이백 원입니다. 오래 머물다 가시나 봐요?”
“아, 네. 저희 애들이 과자를 좋아해서.”
길동은 영수증을 받아들며 생각했다.
‘어차피 경비처리가 되긴 할 테지만 과자를 십일만 원어치나 사다니 놀랍다. 근데 이걸 왜 부산에서 사서는. 서울에서 샀어도 될 텐데. 어서 숙소로 들어가서 숙소에다 놔야지. 커다란 과자봉지를 들고 다니는 것도 일일 텐데.’
은우는 길동에게 미안한 듯 길동이 든 과자봉지를 자꾸만 쳐다보았다.
“횬아, 내가 드러줄까요?”
“됐어. 빨리 갈매기에게 새우비 주고 사진 몇 장 찍고 숙소 들어가서 편안하게 쉬자. 내일 또 무대인사 하려면 바쁠 텐데.”
은우가 해운대에 도착해서 새우비를 뜯어 케미기샤에게 주었다.
케미기샤가 새우비를 들고 있자 갈매기들이 케미기샤에게 달려들었다.
케미기샤는 갈매기가 무서웠다.
‘부리도 발톱도 너무 무서워. 제발 나 좀 따라오지 마. 갈매기야.’
은우는 새우비를 가지고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하트를 만들었다.
“아이, 그만 좀 머거.”
은우의 하트가 완성되기도 전에 갈매기들이 새우비를 먹어서 하트가 사라졌다.
‘케미기샤랑 내 이름이랑 하트 만들려고 했는데.’
은우는 새우비를 버려두고 나뭇가지를 가지고 와서 모래 위에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
[은우, 케미기샤. 하트, 하트]
케미기샤가 은우가 그린 그림을 보고 방긋 웃었다.
은우가 글자 옆에 누워서 파닥파닥 날갯짓을 했다.
케미기샤도 은우 옆에 누워서 날갯짓을 했다.
길동이 조용히 케미기샤와 은우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너무 귀여운데.’
은우가 새로운 새우비를 뜯어서 갈매기들에게 던졌다. 갈매기들이 새우비를 먹기 위해 날아왔다. 그때 은우가 변신 포즈를 취했다.
“와찰랴. 변신.”
길동은 신이 나서 사진을 찍었다.
‘이거 나중에 따로 올리면 재밌겠다.’
어느새 은우의 주변에는 은우를 알아본 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은우 같지 않아?”
“오늘 [블랙 레오퍼드 2] 시사회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온 거 아냐?”
“아, 맞다. 그런가 보다.”
“은우랑 사진 한 장만 찍고 싶다.”
팬들의 소리를 들은 은우가 대답했다.
“가치 찌거요. 눈냐.”
은우가 팬들을 향해 손짓했다.
은우가 팬들에게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내갸 이러케 손바다글 날리면요. 다들 무서어서 쓰러지는 거예요.”
팬들이 반대편에 서고 은우가 작은 손바닥을 펴서 밀었다.
“[와따따 포에버]”
맞은 편에 서 있던 팬들은 각자 장렬한 연기를 하며 은우의 공격에 쓰러졌다.
분한 표정을 연기하며 입술을 바르르 떠는 팬.
흰자를 드러내며 죽은 흉내를 내는 팬.
목을 잡고 숨 막히는 연기를 하는 팬.
배를 감싸고 뒹구는 팬.
팬들의 대단한 연기에 은우가 박수를 쳤다.
“모두 아주 죠아요. 박수.”
케미기샤는 은우의 팬들이 만들어 내는 놀라운 장면에 감동했다.
‘팬이란 건 정말 대단한 거구나.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모두 은우를 위해 즐거워하면서 해주고 있어. 은우가 정말 부럽다. 나는 피부색이 달라서 한국에서 스타가 되긴 힘들겠지.’
한국에 온 이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갈 때면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을 케미기샤는 잘 알고 있었다.
‘내 생김새가 한국 사람들과 많이 다르긴 하니까 여기서 스타가 되는 건 힘들 거야. 아프리카에도 드물지만 스타가 있긴 했는데,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스타가 되어야만 할까?’
은우를 만난 뒤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케미기샤였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신나게 논 뒤 은우 일행은 숙소로 들어왔다.
길동은 커다란 과자봉지를 내려놓았다.
“이 과자 여기서 다 먹을 수 있을까? 서울 갈 때도 들고 가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케미기샤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다 먹을 수 있어요.”
파도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케미기샤가 과자봉지를 뜯었다.
“은우야 뭐 먹을래?”
은우는 수박 맛 젤리를 골랐다.
‘요즘은 이게 제일 맛있다니까.’
은우는 수박 맛 젤리를 씹으며 키즈폰을 확인해보았다.
‘어, 이건 보리가 보낸 거네.’
보리가 보낸 링크를 클릭하자 보리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간식을 줘. 마법의 그 단어. 간식을 줘.
사료 대신 밥 먹을 거야. 맛있는 밥.
나도 내 밥을 고를 수 있게 해 줘.
나도 아파트 비번을 알아. 나 혼자 외출할 수 있게 해 줘.
걱정되는 네 맘 알아. 하지만 그거 알아? 난 분리불안 없어.
분리불안은 주인인 네게 있지.
하루쯤 나에게 휴식을 줘.
나도 멋진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잔디밭에서 원 없이 구르고 싶어.
나도 하루쯤 몸에 나쁘지만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을 거야.”
은우는 보리가 보낸 링크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웃는 은우를 보고 길동이 옆으로 왔다.
“뭘 보고 그렇게 웃어?”
“보리가 노래 부르는 건데 가사가 너무 우껴셔,”
영상 속에서 보리가 사람처럼 입을 방긋방긋거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끔씩 사람처럼 하얀 이빨도 드러났다.
“하하하하하. 가사 좀 봐. 근데 보리 말할 수 있어?”
“아뇨. 횬아. 이거 만든 거예요.”
“와, 진짜 신기하다.”
영상 속에서 보리는 사람처럼 눈썹도 움직이고 가지런한 하얀 이빨도 가지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만든 거지?”
길동은 영상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우는 보리의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보리가 얼마나 똑똑한데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죠. 항상 사람이던 때가 그립다고 하더니 영상 속에서나마 꿈을 이뤘네. 보리. 보리야. 넌 역시 멋진 개야. 근데 이 프로그램 정말 멋지다. 다른 개들에게도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을 이뤄줄 수 있겠어.’
***
무대 인사 전 은우, 케미기샤, 길동은 부산의 호텔 뷔페로 갔다.
메인 캐릭터 20개를 모은 팬들 중 부산 팬들을 초청하여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자리였다.
은우는 케미기샤에게 말했다.
“케미기샤. 오늘 팬드리랑 식사가 이뜨니까 길동이 횬아랑 마디는 거 마니 머꼬 이떠. 잘하고 올게.”
“응.”
케미기샤는 길동과 함께 떨어진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호텔 식사는 비싸고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니까 케미기샤도 이번 기회에 맛있는 것 좀 먹으면 좋을 테니까.’
은우는 케미기샤를 챙긴 뒤 팬들에게로 돌아갔다.
사회자가 팬들에게 은우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넷팍스의 [밖으로 GO]에서 메인 캐릭터 20개를 모아주신 팬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블랙 레오퍼드 2]의 부산 개봉을 앞두고 여러분은 가장 먼저 은우와 함께하는 점심 식사에 초대되었습니다.”
팬들이 박수를 쳤다.
“만나서 반갸어요. 여러분.”
은우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곳은 뷔페식 식당이다 보니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식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주어진 식사시간은 두 시간. 두 시간 동안 은우와 자유롭게 사진도 찍고 대화를 하실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쌍둥이 여학생 두 명이 은우에게 다가왔다.
“은우야, 눈나랑 같이 사진 찍자.”
“네네네네네.”
“잠깐만.”
여학생들은 자하라 분장을 하고 나타났다.
“자, 이제 찍자.”
두 명의 자하라는 은우를 사이에 두고 멋진 포즈를 취했다.
“[와따따 포에버]”
세 사람은 함께 가슴 앞에 주먹을 교차하여 엑스로 만드는 블랙 레오퍼드 공식 포즈를 취했다.
다음으로 찾아온 팬은 양복을 입은 직장인 팬이었다.
“은우야, 형이 이제 나이가 35살이나 됐는데 인생이 너무 힘들어. 열심히 일했는데도 돈은 하나도 안 모이고 늘 가난하기만 해. 남들은 다 발전하는 것 같은데 왜 난 늘 힘들기만 할까?”
은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노력했는데 나아지지 않는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은 쉽게 나아지는 게 아닌데.’
은우가 팬에게 물었다.
“횬아는 멀 조아해요?”
“난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하고 장난감 만드는 것도 좋아해. 레고도 좋아하는데. 사실 회사생활 스트레스가 심해서 장난감 모으는 취미를 계속하고 있어. 장난감을 만들 땐 행복한데 내 인생이 달라지진 않더라고.”
“횬아. 그 장난감 만드는 거 저한테 찌거서 보여줄 수 이떠요?”
“그럼. 찍은 거 지금도 있어.”
팬이 휴대폰을 꺼내 녹화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화면 속에서 팬은 레고로 성도 만들고 호텔도 만들었다.
“우아. 너무 머쪄요. 횬아 레고 천재. 이거 칭규드리 보면 조아할 거 가타요. 저 너투브 채널에 추련하래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팬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징쨔 머쩌요. [블랙 레오퍼드 2] 영화 똑 장면도 만들 뚜 이떠요?”
“그럼. 은우가 원한다면 당연히 만들 수 있지.”
“그걸로 추련하면 조케떠요.”
“고마워. 열심히 연습해 놓을게.”
그다음 팬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여자였다. 여자의 직업은 작가였는데 세계적인 부호 [워렌버핏과의 점심 식사]라는 책을 쓴 정라라라는 여자였다. 여자는 알바생을 고용하여 20개의 메인캐릭터를 모두 다 모았다.
은우와의 점심 식사를 얻어내 이번에도 베스트셀러를 내 보겠다는 것이 여자의 목표였다.
“은우야, 내가 볼 때 넌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이 성공한 한국 사람 같은데. 성공한 비결이 뭐야?”
“헤헤헤헤헤헤.”
은우는 웃으면서 생각했다.
‘제 성공의 비결은 신이 준 재능이에요. 신이 재능을 주지 않았다면 아마 저도 지금쯤 힘든 삶을 살고 있었겠죠. 또 전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들은 욕망 때문에 삶을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전 이미 전생에서 그런 것들을 다 경험해 봤기에 다른 사람들의 말에 잘 휘둘리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생에 주어진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거든요.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요.’
은우가 대답했다.
“저는 행우나예요. 사라드리 마니 사랑해져꺼든요. 행운이 떠나지 안또록 계속 착한 이를 하고 이떠요. 행보근 나눌 뚜록 커지는 거거든요. 모두가 행복해뜨면 조게떠요. 모두가 행복하게 대면 혼자서 거민하지 아나도 대요.”
“결국 성공의 비결은 착함인 건가? 그치만 그건 너무 재미없는 대답인걸. 독자들은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자, 그럼 두 번째 질문. 너처럼 돈을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은우는 정라라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