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귀국 (3)
은우와 케미기샤가 창현의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케미기샤, 오늘 한구거학당 천날이네. 가서 열심히 배우거 와.”
“열심히 해 볼게.”
케미기샤는 한국어가 어렵게 느껴졌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곳에 있으면 은우랑 함께 있을 수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사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 한국은 잘 사는 나라인 것 같아. 내가 여기서 열심히 공부를 하면 아프리카에 돌아가서도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케미기샤는 한국어에 대한 열의로 불탔다.
창현이 한국어학당 앞에 차를 세웠다.
“케미기샤야, 여기가 한국어학당이야.”
“네, 감사합니다.”
케미기샤가 차에서 내렸다.
은우도 케미기샤를 따라서 내렸다.
창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은우야, 넌 안 내려도 되는데.”
“냐도 갈 거야.”
어쩔 수 없이 창현은 차를 주차장에 대고 케미기샤와 은우를 함께 데리고 한국어학당으로 들어갔다.
한국어학당 선생님 보연이 세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반가워. 케미기샤. 오늘부터 널 가르치게 될 김보연 선생님이야. 여긴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쓸 수 있는 반이란다. 영어권 학생들이 이곳에 배정돼 있어. 저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친구가 한 명 있네. 케빈 이리와 봐.”
케빈이라는 학생이 인사를 나누기 위해 걸어왔다.
케빈은 13살 된 백인으로 150센티 정도로 또래보다 컸다.
“반가워. 케미기샤. 넌 어느 나라에서 왔어?”
“난 잠비아에서 왔어. 넌 한국어 잘해?”
“나도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어. 한국어는 어려운데 재밌는 말 같아. 난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음식과 관련된 말들은 잘하는 편이야. 너도 좋아하는 게 있으면 말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그렇구나. 잘 부탁해.”
케미기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했다.
‘가족과 관련된 말들을 배우고 싶어. 열심히 배워서 나의 고마운 마음을 은우와 은우 아버지, 길동, 백수희에게 표현하고 싶어.’
은우가 케빈의 손을 잡고 말했다.
“반가어. 케빈. 케미기샤를 잘 부타케. 내가 바빠서 가치 이찌 모해서 걱정대니까 잘 돌바져.”
케빈은 은우가 하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뭐지? 이 작고 귀여운 아기는. 자기도 아기면서 자기보다 더 큰 케미기샤를 챙기다니. 생긴 건 아긴데 하는 말은 할아버지 같잖아.’
은우가 보연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떤생님, 우리 케미기샤 잘 부타캐요. 잘 모태도 화내지 말고 가르쳐 주떼요.”
평소 티비를 거의 보지 않는 보연은 은우를 알아보지 못하고 귀엽고 예쁜 아기라고만 생각했다.
“너무 대단한 부탁이라 꼭 들어줘야겠는데. 아버님, 아기 몇 살이에요?”
“다섯 살이에요. 은우가 케미기샤를 많이 걱정하고 챙겨요.”
“너무 귀엽네요. 걱정하지 마. 아가야. 네 부탁을 꼭 들어줄게.”
“약쏙.”
은우가 보연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 그리고 도장, 사인.”
“땅땅땅땅.”
은우가 기분 좋게 웃었다.
“케미기샤 공뷰 잘해. 이따 만냐.”
은우가 손을 흔들며 교실을 나왔다.
창현이 은우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은우야, 케미기샤가 어디가 그렇게 좋아?”
“다 조아요. 전 세상에서 케미기샤가 제일 조아요.”
“그럼, 아빠는?”
은우는 순간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깨달았다.
‘케미기샤랑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단 말을 하고 싶던 거였는데 아빠가 서운해지고 말았네. 어떻게 하지?’
은우가 창현의 다리에 안기며 대답했다.
“아빠는 우주에서 제일 조아요.”
창현은 은우를 차에 태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은우는 어린이집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있었다.
‘오랑우탄 인형도 주고 아프리카 얘기도 들려줘야지.’
은우가 어린이집에 내리자 어린이집 친구들이 마중을 나왔다.
“안녕, 얘듀랴.”
제일 먼저 은우에게 안긴 것은 정우였다.
“횬아, 보고 시퍼떠. 백 밤 열씸히 쎄는데 숫자가 너무 어려워떠.”
은우가 정우를 안고 토닥여 주었다.
“냐도 정우가 보고 시퍼떠. 횬아가 그래도 약속 지켜찌?”
“응, 횬아. 이제 어디 가지먀.”
노랑이와 까망이도 은우가 보고 싶었는지 은우의 옆에서 갸르릉 울음소리를 내었다.
“야옹.”
외계인 머리띠를 한 현정이가 말했다.
“은우야, 난 네갸 머 하는지 다 뱌떠. 내 안테나 머리띠로.”
옆에 서 있던 혜린이가 입술을 뽀로통하게 내밀며 말했다.
“그거 수녀님이 [블랙 레오퍼드 2] 채널을 틀어주셔서 다 같이 본 거잖아.”
은우가 창현이 들어다 준 커다란 쇼핑백에서 인형을 꺼내면서 말했다.
“이거 션무리야.”
연아가 인형을 보고 소리질렀다.
“오랑우탄 인형이네. 은우갸 선뮬로 뱌든 오랑우탄이랑 또가탸.”
“응, 오랑이 우탄이가 아프리카에 이떠더 데려올 뚜 엄떠더 이걸로 사떠.”
은우가 친구들에게 오랑우탄 인형을 나눠주었다.
준수가 오랑우탄 인형을 들고 오랑우탄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오 히히히히히.”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은우가 오랑우탄 흉내를 냈다.
“오오오오 히히히히히.”
순식간에 어린이집 안에는 여덟 마리의 오랑우탄이 등장했다.
은우는 생각했다.
‘오랑우탄 춤을 추는 것도 재밌을 거 같은데. 오랑우탄 노래를 만들어볼까.’
은우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두 팔을 길게 늘어뜨려 땅으로 짚고 오른쪽으로 두 번 이동한 후, 위에 있는 오른손을 아래 있는 아래 손바닥과 부딪혀 두 번 박수를 치고 다시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박수를 쳤다.
“오랑우타는 바냐냐를 조아해.
자꾸자꾸 머거도 또 먹꼬시퍼.
오랑우타는 사과를 조아해.
자꾸자꾸 머거도 또 먹꼬시퍼.
오랑우타는 다으믄 현정이.”
릴레이로 이어지는 노래는 리듬과 멜로디가 매우 단순하여 부르기 쉬웠다.
현정이가 노래를 이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오랑우타는 떡보끼를 조아해.
자꾸자꾸 머거도 또 먹꼬시퍼.
오랑우타는 초코리슬 조아해.
자꾸자꾸 머거도 또 먹꼬시퍼.”
김마리아 수녀님은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은우가 돌아오니 어린이집이 활기가 넘치네. 다들 은우를 보고 싶어 했었는데. 은우야, 친구들과 재밌게 지내렴. 오랑우탄춤 정말 귀엽다. 예전에 내가 어릴 적에 태엽을 감으면 북을 두드리는 원숭이 인형이 있었는데 꼭 그 인형 같구나.’
***
[블랙 레오퍼드 2]의 개봉일을 앞두고 [블랙 레오퍼드 2]의 촬영팀은 함께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촬영팀은 서울에 도착했다.
“공항이 너무 좋잖아. LA 공항보다도 더 좋은 거 같은데.”
“한국은 생각보다 더 많이 발전한 나라인 거 같아. 와이파이 터지는 것 좀 봐. 패스워드가 없는데 그냥 잡히잖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편한 나라일걸.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잘 외치기 때문에 모든 걸 편하게 잘 만들더라고.”
스테프들의 이야기를 듣던 채드윅이 말했다.
“디즈니 영화의 판매량도 아시아 삼국 중에서는 한국이 가장 높았어. [블랙 레오퍼드 1]도 한국 시장에서 선전했지. 한국 사람들은 히어로물을 좋아해서 한국에서만 히트를 쳐도 어느 정도는 흥행을 보장받을 수 있어. 구매력이 높은 소비자들이지. 그래서 우리도 이번에 개봉을 맞아서 대대적인 이벤트를 펼쳐 보려고 하는 거고.”
촬영감독 룬다가 말했다.
“꼭 성공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어요.”
공항에서 나오니 취재진들이 촬영팀을 둘러쌌다.
“채드윅 감독님, [블랙 레오퍼드 2] 개봉일을 앞두고 한국에 오셨는데 한국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채드윅 감독님, [블랙 레오퍼드 2] 이벤트는 한국에서만 진행하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수많은 나라 중 왜 한국인가요?”
“채드윅 감독님, 은우를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채드윅 감독님,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떤가요?”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뒤로하고 채드윅 감독과 촬영팀은 빠르게 공항을 벗어났다.
채드윅은 머릿속에서 빠르게 일정을 정리했다.
‘불우아동을 돕기 위한 자선 파티, 게임회사에 들러서 [블랙 레오퍼드 2]의 게임 출시일을 마지막으로 조율하기, 인터뷰 일정 조율하기, 시사회 이벤트 협의하기, 인터뷰 일정 조정하기.’
일주일간의 일정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은우랑 즐겁게 놀고 싶었는데 놀 시간이 나오려나 모르겠네.’
채드윅이 촬영감독 룬다에게 말했다.
“룬다, 난 게임회사로 가볼 테니 숙소에 가서 쉬고들 있어요.”
채드윅은 홀로 택시를 잡아탄 뒤 말했다.
“넷팍스로 가주세요. 주소는 여기요.”
게임회사 넷팍스는 증강현실 게임을 만드는 작은 벤처회사였다.
넥팟스의 사장 정철은 젊은 ceo이자 개발자였다.
‘언젠간 증강현실이 세계를 이끌게 될 신기술이 될 거야. 게임 산업도 앞으로는 앉아서 컴퓨터 앞에서 하는 게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하는 게임을 하게 될 거야.’
정철은 지도와 증강현실을 결합한 게임 [밖으로 GO]를 만들었으나 특별한 판매처를 찾지 못하고 고전하는 중이었다.
‘게임개발비만 5억이 들어갔는데 아직 제대로 된 판매처도 잡지 못하고 있으니 죽겠네. 직원들 월급도 밀려있고.’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걸려온 채드윅의 전화는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채드윅이 회사로 오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정철은 직원들에게 말했다.
“브리핑할 자료 준비해 두고 감독님 최대한 잘 모셔. 알았지? 우리 회사의 사활이 달렸다고.”
열 명 남짓한 직원들은 정철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채드윅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신입사원 세정이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채드윅 감독님. 저기 사무실로 가시죠.”
채드윅 감독이 사무실로 가서 앉았다.
정철은 채드윅 감독을 보면서 자기 최면을 걸었다.
‘꼭 성공할 수 있다. 오늘 꼭 성공할 수 있다. 오늘 꼭 성공해야만 한다.’
채드윅 감독이 입을 열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블랙 레오퍼드 2]의 인물들이 들어간 증강현실 게임을 [블랙 레오퍼드 2]의 개봉이벤트로 쓰고 싶어서요.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재밌게 놀 수 있는 놀이를 제공하고 싶어서요.”
“네,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저희가 샘플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화면을 보시죠.”
화면 위에 서울의 지도가 떴다.
“보시는 것이 서울의 지도입니다. 여기 지도의 특정 위치를 가면 저희가 숨겨둔 [블랙 레오퍼드 2]의 인물들이 나옵니다. 자, 여긴 서울역이고요. 서울역의 인물은 와찰라입니다. 와찰라는 총 다섯 개의 캐릭터로 구성이 돼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본 와찰라, 두 번째는 [위대한 왕들의 왕관]을 쓴 와찰라, 세 번째는 설룡 와찰라, 네 번째는 흑염룡 와찰라, 다섯 번째는 플래티넘 드래곤 와찰라입니다.
옴바쿠는 총 세 개의 캐릭터로 준비했습니다. 기본 옴바쿠, [알루나늄 왕관]을 쓴 옴바쿠, 황금 드래곤 옴바쿠.
아마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모으고 싶어 할 겁니다. 한국에선 은우의 인지도가 가장 높고 와찰라가 주인공이기도 하니 와찰라 캐릭터가 가장 인기가 높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처음엔 서울역에서 와찰라를 잡을 수 있었지만, 다음엔 부산역에서 와찰라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랜덤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팬들은 더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만 하죠.”
“직접 해볼 수 있을까요?”
“마켓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정철이 채드윅의 휴대폰을 가지고 [밖으로 GO] 게임을 다운받았다.
“자, 이제 해보시겠어요? 아마 여기가 사무실 안이라서 뭐가 잡힐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것도 없다면 근방을 돌아다니셔야 할 수도 있고요.”
채드윅은 화면을 보고 사무실 안을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잡았다.”
채드윅은 사무실 출입구 근처에서 자하라의 [레드 드래곤]을 잡았다.
“이거 재밌는데요. 출시하죠. 약속했던 계약금 50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정철은 표정이 편안해졌다.
‘구사일생이라더니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가. 직원들 밀린 월급도 주고 개발비로 쓰인 돈도 어느 정도는 회수가 가능하겠어.’
채드윅이 말했다.
“그런데 게임에 대한 보상은 단순히 모으는 것밖에 없나요?”
“지금 현재는 그렇게 설정이 돼 있습니다만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보상을 주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생각은 합니다. 현재 저희가 만들어 놓은 [블랙 레오퍼드 2]의 캐릭터만 총 150종이니 그걸 모으는 동안 팬들은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가장 먼저 다 모은 팬에게 굿즈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한정 굿즈 제작도 곧 들어갈 테니까. 은우와 이야기해 본 다음, 은우와 놀 수 있는 일 일권 등을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보상에 대해서는 추후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