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귀국 (2)
케미기샤가 화장실에 앉아 식은땀을 흘리는 시각, 보리는 케미기샤가 사라진 것을 눈치챘다.
‘어디로 간 거지? 이상하다.’
보리가 킁킁거리며 케미기샤를 찾기 시작했다.
‘화장실 근처에서 냄새가 나는데 여기 있나?’
보리가 화장실 앞에서 짖었다.
“멍멍(은우야, 이리 와 봐. 케미기샤가 이상해.)”
은우가 보리의 말을 듣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케미기샤. 하장실 가고 시퍼? 가먀니떠 뱌.”
은우가 좌변기를 내려 주었다.
“자, 요기다가 엉덩이를 대고 응아하믄 대. 아라찌? 다 하고 이걸 내려.”
“고마워. 은우야.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은우는 화장실 문 앞에서 케미기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보이, 자해떠. 아프로도 케미기샤를 도아져. 아라찌?”
“멍멍(그래, 잘 지켜봐야겠다. 아무래도 케미기샤가 아직 한국말도 못하고 하니까. 내가 도와줘야지. 너처럼 나랑 대화가 통하면 한국말을 알려주고 좋은데.)”
은우는 자신의 재능을 창현에게 주었던 것을 회상했다.
‘아빠에게 음식의 신 소카리스의 재능을 주었던 적이 있긴 한데, 케미기샤에게도 재능을 줄 수 있긴 할 거야. 하지만…….’
은우는 케미기샤가 재능을 가지게 된 이후가 두려웠다.
‘케미기샤는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까? 불행으로 느낄까? 어쩌면 노력하지 않고 가진 재능만으로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려고 하지 않을까.’
은우가 재능을 주려고 했던 사람은 두 명, 창현과 백수희였다. 창현의 경우는 자신이 재능을 가지게 된 것을 모른 채 소카리스의 재능을 통해 떡볶이집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후엔 재능을 주진 않았으니까. 아버지의 성공은 아버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긴 했어.’
반면 백수희의 경우는 재능을 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백수희 누나의 노력은 인정해 줘야 해. 발음 교정과 연기를 스스로 극복해 냈으니까.’
은우는 신들이 자신에게 재능을 준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신의 재능이 없었다면 난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어. 그런 점에서 신에게 감사해. 하지만 내가 신의 재능에만 안주한다면 난 신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살 수는 없어. 난 신이 준 재능 이상의 것들을 만들어내며 살 거야.’
파리넬리와 파드와, 2번의 전생의 경험은 은우를 남과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
파리넬리일 때는 돈과 명예,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늘 외로운 삶이었다. 아버지는 일찍 파리넬리를 떠났고 형은 파리넬리를 이용해 돈을 벌고 싶어 했다. 거세의 휴유증으로 평생 환각에 시달렸으며 사랑했던 여인과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파드와의 삶은 짧았지만,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사랑스런 동생 케미기샤가 있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부모님을 잃어야 했고 그 후 계속된 배고픔에 시달려야만 했다.
세 번째로 시작된 은우의 삶. 어머니는 자신을 버렸지만, 아버지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과 팬들이 있었다. 그리고 은우는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음악방송 1위를 하며 인기와 돈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이번 생에는 행복한 가족을 이루며 살고 싶어. 돈도 많이 벌어야겠지만 그건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야. 케미기샤를 위해서. 그리고 아프리카의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가진 재능을 낭비해서는 안 돼.
이번 생은 후회되는 것들을 남겨서는 안 돼.’
케미기샤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고마워. 은우야. 근데 화장실에서 물이 나오니까 신기해. 아프리카에선 마실 물도 없었는데 저렇게 깨끗한 물로 똥을 치운다니.”
“냄새가 나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은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케미기샤야, 나도 처음엔 여러 가지로 많이 놀랐어. 아프리카와 다른 게 너무 많지? 여기선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그러니까 같이 노력해 보자.’
보리가 꼬리를 치면서 짖었다.
“멍멍.(아프리카에서 와서 모르는 게 많구나. 적응하려면 내 도움이 많이 필요하겠어.)”
은우는 케미기샤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동물과 말하는 재능을 준다면 보리가 케미기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거야. 그보다 더 빠른 건 책 속에서 언어의 신을 찾아내서 언어의 신의 재능을 가져오는 일이겠지. 그럼 케미기샤는 정말로 편할 거야. 5개국어를 구사하는 천재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재능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
은우가 보리에 물었다.
“보이, 한글학언 가튼 거또 이떠?”
“멍멍(있지. 요즘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한국어학당이 곳곳에 있어. 근데 동물과 말하는 재능은 주지 않을 거야?)”
“거민 중이야. 그게. 어려어.”
“멍멍(하긴 너무 쉽게 모든 걸 가진다는 게 좋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근데 네가 파드와라는 건 언젠간 말해야 할 것 같지 않아?)”
“거민 중이야.”
은우는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파드와라는 걸 말할 수 있다면 나로선 정말 좋을 것 같아. 하지만 케미기샤는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을까? 아빠에게도 내가 케미기샤의 형이라는 걸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면 아빠도 케미기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환생을 믿으려고 할까? 무당보다도 더 이상한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창현이 상을 차리고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밥 먹어.”
은우가 케미기샤를 찾았다.
“케미기샤야, 밥 머그러 가쟈. 우리 아뺘 음식 자랸댜.”
은우와 케미기샤가 식탁에 앉았다.
상 위에는 불고기, 잡채, 소시지 감자볶음, 멸치볶음, 두부 부침, 미역국, 오이소박이가 차려져 있었다.
“우와.”
케미기샤가 탄성을 질렀다.
“음식이 너무 많아.”
“우리 지븐 늘 음시기 마냐. 케미기샤. 우리 아빤 요리샤야. 그래서 늘 음시기 마냐.”
“여긴 천국이야.”
“헤헤헤헤헤. 네가 기뻐하니 나도 조아.”
길동과 은석, 백수희도 식탁에 앉았다.
길동이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형님, 이거 얼마 만에 보는 형님 음식입니까? 침 넘어가네요.”
은석도 신이 나서 말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열정 체인 사장님의 솜씨라니, 잘 먹겠습니다.”
백수희가 젓가락을 들면서 외쳤다.
“한국 음식 정말 그리웠어요.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해. 냄새만 맡아도 살겠네.”
은우가 아기용 젓가락으로 케미기샤의 밥 위에 불고기를 올려주었다.
“케미기샤야. 이거 마디떠. 이거 머거.”
“고마워.”
“어때? 마시?”
“정말 마디떠.”
케미기샤는 처음 먹어본 불고기의 맛에 놀랐다.
‘달콤하고 짭짤한 고기라니. 와,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끼니마다 먹는다는 거야?’
은우가 케미기샤의 밥 위에 소시지를 올려주었다.
“케미기샤야. 이거 머거 뱌. 이거 징쨔 마디떠.”
케미기샤는 처음 먹어본 소시지의 맛에 놀랐다.
‘세상에 이런 맛이 있었다니, 이건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인데, 더 먹고 싶다.’
케미기샤가 포크로 소시지를 더 집었다.
은우가 케미기샤 앞으로 멸치볶음 그릇을 당겨주었다.
“케미기샤야, 키가 크려면 멸치를 마니 머거야 댄대. 마니 머거.”
은우가 잡채 그릇을 케미기샤 앞으로 당겨주었다.
“케미기샤야. 이거또 머거뱌. 이거 마디떠. 난 이거 아주 조아해.”
은우를 보던 백수희가 기가 찬 듯 말했다.
“은우야, 케미기샤만 밥 먹어? 눈나는 한 번도 그렇게 안 챙겨주더니 눈나 서운하다. 역시 사랑은 움직이는 건가?”
길동이 말했다.
“은우가 더 아기인데 케미기샤를 동생처럼 챙기네. 자식 같기도 하고. 우리 할머니가 나 챙기는 거랑 비슷한데.”
은석도 말했다.
“전 은우 처음 보는데 원래 은우가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운가요? 전 먹을 때 이렇게 남 챙겨주는 아기 처음 봤어요. 보통은 자기 먹느라 정신이 없던데.”
창현이 대답했다.
“은우가 원래 배려심이 있긴 한데.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자기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저러는 건 처음 보네요.”
창현은 은우와 케미기샤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은우가 외동이라 외로울 거라 생각은 하긴 했지만 저렇게 다른 아이를 좋아하는 건 처음인데. 챙기는 걸 보면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닌 거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네. 한국 아이였으면 문제가 좀 간단하겠지만 아프리카 아이라서 문제가 쉽지 않아. 가끔 놀러 오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오면 우리 집에서 살아야 하니.
이태석 신부님 말에 따라 우선 6개월 동안 우리 집에 있기로 했지만, 그다음엔 어떻게 하지? 은우가 케미기샤와 떨어지려고 할까?’
은우는 케미기샤가 밥 먹는 모습을 사랑스러운 듯 지켜보았다.
“마니 머거. 케미기샤.”
“은우도 어서 먹어.”
“응.”
은우가 아기용 수저와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케미기샤와 함께 먹으니 꿀맛이야. 다 먹고 나서 아빠에게 케미기샤를 한국어학당에 보내 달라고 말해봐야겠어. 그리고 또 무엇을 배우면 좋을까? 케미기샤가?
케미기샤는 노래 부르는 걸 잘했었는데 악기라도 가르쳐 줄까?
어떤 악기가 케미기샤에게 어울릴까?’
은우는 행복한 상상으로 가득 찼다.
밥을 먹고 나서 은우가 그릇을 싱크대로 날라주었다.
케미기샤도 함께 상 치우는 것을 도왔다.
“케미기샤 그거 좀 나한테 져.”
키가 큰 케미기샤가 그릇을 수거하면 은우가 그릇을 들고 가 창현에게 주었다.
“아뺘, 요기요.”
“고마워요. 은우.”
“네네네네네.”
창현은 은우가 돌아오자 다시 집 안에 활기가 차는 것 같았다.
‘은우가 없는 집은 너무 썰렁해. 온기가 없어.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은우가 오니 다시 집 안이 꽉 찬 기분이야.’
백수희가 창현의 옆으로 왔다.
“내가 도와줄게요.”
창현이 받아서 그릇에 비누질을 하면 옆에 서 있는 백수희가 그릇을 받아서 헹궜다.
“아빠, 이게 마지마기에요.”
“수고했어요. 은우. 이제 방에 가서 케미기샤랑 놀아.”
“네네네네네.”
은우가 케미기샤와 함께 방으로 가고 창현이 백수희에게 물었다.
“수희 씨, 은우랑 케미기샤 말이에요. 어떤 거 같아요?”
“둘이서 아프리카에서도 계속 붙어서 다녔어요. 옆에서 보면 마치 피를 나눈 형제 같아요. 저도 이게 처음엔 너무 이해가 안 됐는데. 둘이 얼마나 서로를 챙기는지. 주변에서 보면 모든 형제가 우애가 좋은 건 아니거든요. 성격이 안 맞아서 싸우는 경우도 많고 또 어릴 땐 보통 주야장천 싸운다고 들었는데. 저 둘은 이상해요. 뭔가 동화책 속에 나오는 그런 형제 같기도 하고. 현실감이 전혀 없어요.”
“은우가 저렇게 누굴 좋아한 적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케미기샤가 계속 한국에 있을 수 있을까요? 아프리카는 너무 멀기도 하고. 은우가 아프리카에 계속 간다고 하면, 사실 걱정이 되기도 해요.”
“국적이 다르니까 아마 복잡해지겠죠. 은우가 아프리카를 좋아하긴 했어요. 전 화장실도 너무 불편하고. 아프리카는 가 보면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같이 공존하는데 은우는 너무 적응을 잘하더라구요. 불편해하지도 않는 것 같고. 그래서 놀랐어요.”
“세계 그 많은 나라 중에 아프리카라니. 제 아들이지만 정말 신기하긴 했어요. 더 좋은 나라도 많이 있는데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니. 은우는 제 아들인데 저를 참 많이 놀라게 해요.”
“자식 겉을 낳는 거지, 속을 낳는 게 아니라고 저희 할머니가 그러시긴 했었는데. 근데 걱정하지 않아도 잘되지 않을까요? 은우잖아요. 은우는 한 번도 절 실망시켰던 적이 없었어요.”
“늘 착하고 늘 너무 잘해줬죠. 힘들다는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많아요.”
은우는 케미기샤, 보리와 함께 케미기샤의 방으로 왔다.
은우는 케미기샤의 방을 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부리 너무 얄븐 거 아니야? 더 두꺼운 걸로 바꺼야겠네.”
케미기샤는 처음 보는 이불의 촉감에 놀랐다.
“너무 부드러워. 솜털 같다. 이걸 덮으면 구름 속에 떠 있는 기분일 것 같아.”
은우가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광벼리 엄네. 아뺘한테 말해서 부쳐달라고 해야지.”
“야광별?”
“부를 끄면 반쟉반쟉 빈나는 건데 아쥬 예뻐.”
“와, 여긴 신기한 게 정말 많구나.”
케미기샤는 자신이 한국에 온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프리카와 한국은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여긴 축복의 땅이야.’
보리가 은우를 보며 웃었다.
“멍멍(은우, 케미기샤 오더니 정말 신났다. 형제 없는 사람은 서러워 살겠나? 이젠 난 안중에도 없어진 거야?)”
“아니야. 보이야. 서운해하지 먀.”
“멍멍.(그치? 나도 오랜만에 봤잖아. 나도 좀 사랑해 줘.)”
보리가 앞발로 자신을 안아달라며 은우의 무릎을 쳤다.
은우가 보리를 안아주었다.
“미아내. 보이. 따랑해.”
“멍멍(그래, 고마워. 은우야. 그리고 내가 너랑 케미기샤를 위해서 찾아낸 좋은 정보가 있는데 미국엔 안졸리나 졸리라는 여배우가 있는데 그 배우가 아프리카에서 한 아기를 입양한 일이 있어. 케미기샤를 입양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입양할 뚜 이떠?”
“멍멍(아니, 그게 문제기는 해. 넌 아직 아기고 결혼도 안 해서 입양을 할 수가 없어. 입양은 결혼한 사람만 할 수 있거든. 내가 생각해 봤는데 백수희 누나랑 아빠를 결혼시켜서 케미기샤를 입양하게 하는 거야. 좋은 방법이지? 역시 난 천재야. 음, 인정? 아, 인정?)”
은우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보단 낫지만 결혼을 시켜서 입양까지라니. 너무 어려운 계획인데. 이거야말로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