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귀국 (1)
케미기샤는 비행기에서 먹은 것을 토하기 시작했다.
‘너무 정신이 없어. 속이 너무 안 좋아.’
은우는 케미기샤가 걱정이 됐다.
백수희가 옆에서 케미기샤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멀미약을 먹고 올 걸 그랬다. 그랬으면 안 토했을 텐데.”
길동도 케미기샤를 걱정했다.
“비행기를 처음 탄다는 걸 감안하고 생각을 했었어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무심했나봐.”
비행기는 경유지인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아.”
공항에 내리자 케미기샤가 헬쓱해진 얼굴로 말했다.
은우가 케미기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여기서 비행기를 다시 가라타고 가야해.”
길동이 은우와 케미기샤에게 대기시간을 알려주었다.
“두 시간 후에 다시 비행기를 타게 될거야. 그리고 여덟 시간 정도를 더 가야만 해.”
케미기샤가 힘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덟 시간이나?”
처음에는 신기했던 비행기가 이제는 무서워보이기만 하는 케미기샤였다.
길동이 백수희에게 말했다.
“근처에 약국 있나 찾아볼테니까 은우 뭐 좀 먹이고 있어요.”
“네.”
백수희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은우와 케미기샤를 데리고 갔다.
백수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케미기샤는 속이 안 좋으면 안 먹어도 돼. 앉아있을 곳이 없어서 들어온 거니까. 은우는 어떤 맛 먹을래?”
“망고맏.”
“케미기샤는?”
“괜찮아요.”
백수희가 망고맛 아이스크림 하나와 딸기맛 아이스크림 하나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은우가 케미기샤에게 물었다.
“머글래?”
케미기샤는 아이스크림이 너무나 먹고 싶었지만 먹을 수 없었다.
‘맛있겠다. 시원할 거 같기도 하고. 근데 먹었다가 또 토할까봐 먹을 수가 없어. 두려워.’
은우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그 때 길동이 멀미약을 사서 들어왔다.
“케미기샤야. 이거 먹어봐. 괜찮아질거야.”
케미기샤는 길동이 준 멀미약을 먹었다.
길동도 백수희의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얻어 먹으면서 말했다.
“난 비행기밥이 부실한 거 같아서 여기서 뭘 더 사먹고 싶은데 케미기샤가 힘들 거 같아서 참아야할 거 같아요.”
백수희가 말했다.
“공항에서 산 음식은 괜찮으니 그럼 포장해 가요. 길동씨. 제가 케미기샤랑 은우 옆에 앉을테니 좀 떨어진 자리에서 드세요.”
“고마워요.”
길동은 햄버거 가게에서 커다란 햄버거를 두 개나 샀다.
케미기샤가 은우에게 속삭였다.
“길동형은 정말 많이 먹는 거 같아. 난 태어나서 저렇게 많이 먹는 사람 처음 봤어.”
“한구게 가면 길동이 횬아보다 더 마니 먹는 사럄드리 마니 이떠. 그 사람들은 인기도 마나서 돈도 마니 벌고 티브이에도 나와.”
“그걸 좋아한다고?”
케미기샤는 한국의 방식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프리카에선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부자들만 돈걱정 없이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부자가 아닌 사람이 음식을 많이 먹는 걸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럼 길동이 형은 인기 있는 사람이야?”
“응, 횬아도 너투버해. 구독자가 오만명이야. 나도 가끔 추련해. 고기 굽는 영상이랑 멍는 영상이 나와. 횬아는 진짜 잘 머거.”
먹는 것을 본다니. 그건 배가 고파서 그러는 걸까?
케미기샤는 한국은 수수께끼 같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약기운이 점점 퍼지면서 케미기샤는 다시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했다.
“은우야, 나 이제 다 나은 것 같아. 근데 비행기 타면 다시 아픈 거 아니겠지?”
백수희가 케미기샤에게 설명해 주었다.
“걱정마. 케미기샤. 네가 먹은 약은 앞으로 열시간 이상 효과가 지속될거야. 한국에 돌아갈 때까진 이제 속이 편안할 거야.”
“다행이다.”
케미기샤가 밝게 웃었다.
속이 괜찮아지고 보니 공항엔 너무 맛있는 게 많아보였다.
‘잠비아 공항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크다. 이게 나라가 아니라 공항이라니. 이 곳에서 평생 살고 싶다.’
케미기샤가 뒤늦게 발견한 두바이 공항의 매력에 빠져 있는 사이 길동이 탑승 시간을 알렸다.
“다시 비행기에 탑승해야 할 시간이야. 이제 여덟 시간만 더 가면 한국이야.”
은우 일행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신기하다. 진짜 안 토하네.”
케미기샤는 비행기가 높은 고도에 접어들었는데도 멀쩡한 자신이 신기했다.
“이제 더 이상 비행기가 두렵지 않다.”
은우가 케미기샤에게 물었다.
“비행기 자주 타도 갠찬게떠?”
“응.”
은우와 케미기샤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길동은 포장해 온 햄버거 두 개를 먹고 스튜어디스에게 맥주를 청해서 마셨다.
비행기 안에는 한국 사람들이 먹는 컵라면 냄새가 진동했다. 모두들 스튜어디스에게 청해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아마 한국의 매운 맛이 그리웠으리라.
케미기샤는 몇 번 캠프에서 길동이 끓이는 한국의 라면 냄새를 맡은 적이 있었다.
케미기샤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한국 사람들은 왜 라면을 좋아해? 그건 너무 맵던데.”
“한구겐 매운 음시기 마냐. 한국 사람드른 매운 건 조아해. 난 아직 아기라서 매운 음시게 야카지만.”
“한국에 가면 매운 음식을 먹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다.”
어느 덧 비행기가 한국에 도착하고 은우 일행은 비행기에서 내렸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캐리어를 찾아서 출구로 나가려는데 출구 가득 은우의 팬들이 서 있었다.
“은우야, 너무 보고 싶었어.”
“악, 은우야 정말 많이 탔다.”
팬들은 플랜카드와 선물을 잔뜩 든 채 환호하고 있었다.
- [블랙 레오파드 2] 흥행의 주역 이은우.
-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가즈아!
- 아프리카에서도 빛난 우리 은우.
- 은우야 너 보고 싶어서 목이 기린될 뻔했다
- 은우야 한국 활동 좀 많이 하자. 한국팬들도 은우 매일 보고 싶어.
취재진도 은우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블랙 레오퍼드 2] 촬영할 때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은우가 카를로스라는 게 밝혀졌는데 앞으로도 그림 활동을 계속할 건가요?”
“[블랙 레오퍼드 2] 출연료를 전액 기부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한 건가요?”
“음반 활동을 재개할 생각은 없나요?”
길동이 취재진을 막아섰다.
“은우가 지금 오랜 시간 비행으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질문은 나중에 따로 소속사를 통해서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케미기샤는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랐다.
‘은우가 인기스타라고 그러던데 정말 인기가 대단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은우를 보려고 오다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으면 좋을텐데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은우라는 이름 뿐이니 답답해.’
HO 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낸 로드 매니저 은석이 공항에 도착했다.
“길동이 형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은석이 빠르게 다가와 취재진과 팬들의 물결 속에서 은우와 케미기샤를 구해냈다. 은석이 가져온 밴에 몸을 싣으며 백수희가 말했다.
“내 팬은 한 명도 안 오고 전부 은우팬이야. 기자들도 내 질문은 하나도 안 해. 나 이제 한물 갔나봐.”
은우가 백수희를 위로했다.
“아니예요. 눈나. [블랙 레오퍼드 2] 때무네 그런거예요.”
"은우, 누나 생각해서 겸손하게 말한 거지? 고마워."
백수희가 은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은우야, 근데 아빠가 기다리실텐데 아빠 선물은 샀어?”
“아, 마따.”
은우는 케미기샤를 신경쓰느라 아빠 선물을 빠뜨린 것이 기억났다.
‘아빠가 서운해 하시겠다. 이런, 뭔가 챙겼어야 하는데. 삼촌 것도 못 챙겼네. 보리 것도 그렇고.’
길동이 은우의 아파트에 차를 세웠다.
은우는 오랜만에 보는 아파트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진짜 오랜만이다. 우리 집. 내 장난감이랑 텐트, 보리도 잘 있겠지?’
케미기샤는 처음 보는 커다란 아파트에 놀랐다.
‘이렇게 큰 건물 속에 사람들이 산다고?’
케미기샤가 살던 곳에선 사람들이 흙집에 주로 살았다. 마을에선 이층짜리 건물도 하나 뿐이었다. 수도인 루사까에는 높은 건물이 있기도 했지만 십층 짜리 건물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한국의 건물들은 모두 높고 컸다. 이렇게 커다란 집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길동과 은석이 캐리어를 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은우, 케미기샤, 백수희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케미기샤가 은우에게 물었다.
“이건 뭐야?”
“엘리베이터인데 지브로 빨리 갈 뚜 이께 도와주는 거야. 몇 층인지 누르면 거기로 데려다 져.”
케미기샤는 엘리베이터가 너무 신기했다.
‘숫자를 누르면 불이 들어오는 구나.’
케미기샤가 엘리베이터의 모든 숫자를 다 눌렀다.
“케미기샤. 그러면 안대. 그러면 너무 마니 선댠 마리야.”
“재미짜냐.”
“그럼 힘드러.”
은우가 다시 엘리베이터의 모든 숫자를 눌렀다.
그러자, 숫자의 불이 사라졌다.
“이상하다 사라졌네.”
케미기샤가 다시 모든 숫자를 누르자 숫자에 불이 들어왔다.
백수희가 케미기샤를 말렸다.
“케미기샤. 엘리베이터는 많은 사람들이 타기 때문에 숫자를 눌러서 장난을 쳐선 안 돼. 집에 빨리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케미기샤 때문에 집에 늦게 갈지도 모르거든. 잘못하면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멈출 수도 있어.”
“마자 그러면 가칠 뚜도 이떠. 영화 가튼데 보면 가치거든.”
놀란 케미기샤는 더 이상 숫자를 누르는 걸 멈추었다.
엘리베이터가 십칠층에 도착해 멈췄다.
은우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멍멍.(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보리가 은우에게 달려와 점프했다.
“헤헤헤헤헤. 가아안지러.”
은우가 밝게 웃었다.
보리는 은우의 뺨을 핥았다.
창현과 영탁도 나왔다.
“은우야, 잘 있었어. 보고 싶었어. 우리 아들. 얼굴 잊어버릴 뻔 했어.”
“아빠, 냐도요. 헤헤헤헤헤헤헤.”
은우는 보리의 계속된 핥기로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케미기샤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사람들 말도 알아듣기 힘들고 너무 낯선 것들 뿐이야.’
창현이 케미기샤에게 인사를 건냈다.
“얘기 많이 들었어. 네가 케미기샤구나. 네가 지낼 곳을 마련해 뒀단다. 들어오렴.”
길동과 은석이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창현이 케미기샤에게 작은 방을 보여주었다.
케미기샤를 위해 준비한 어린이용 책장과 침대가 준비된 방이었다.
케미기샤는 처음 보는 물건들에 깜짝 놀랐다.
‘여긴 너무 깨끗하고 물건들도 너무 좋아. 너무 고마우신 분이야.’
은우가 창현의 다리에 안겼다.
“아빠, 보고 시퍼떠요. 마디는 거 해저요.”
“뭐 해 줄까?”
“불꼬기.”
“그래.”
창현이 은우를 위해 불고기를 만들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은우도 창현을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으니 요리라도 도와드려야지. 그동안 못다한 효도를 오늘 해야겠어.’
케미기샤는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집이 너무 깨끗해서 화장실이 어딘지도 모르겠어. 여긴 아프리카처럼 바닥에 쌀 것 같지도 않은데. 캠프에서처럼 분명 화장실이 있을 거 같은데.’
케미기샤는 유일하게 영어를 하는 백수희에게 물었다.
“배가 아파요. 화장실 어딨어요?”
영탁이 백수희에게 질문을 하는 바람에 백수희는 케미기샤에게 손가락으로 화장실의 위치만 알려주었다.
“저기 은우방 옆에 하얀 문.”
케미기샤는 아픈 배를 안고 백수희가 가르킨 문을 열었다.
그 곳에는 처음 보는 양변기가 있었다.
케미기샤는 당황스러웠다.
‘여기가 화장실 맞아? 물이 잔뜩 있는데 목욕을 할 순 없을 거 같고 샘물인가? 화장실은 어디에 있지?’
케미기샤는 아픈 배를 안고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