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형제의 이름으로 (7)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분장사 루시가 은우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은우야, 이제 와찰라 분장 더 이상 안 해도 되겠다. 분장할 때마다 힘들었지?”
“하나도 안 힘드러떠여. 재미떠는데 이제 더 모태서 아시어요.”
“다음에 더 멋진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거야. 그때 내가 더 멋진 분장을 해 줄게.”
“네네네네네.”
은우는 더 멋진 히어로가 되는 상상을 했다.
‘슈퍼맨, 앤트맨, 스파이더맨, 박쥐맨 등 해 보고 싶은 히어로가 너무 많아.’
채드윅이 은우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은우야 마지막 촬영까지 잘해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특별한 경험을 했어. 너로 인해 나도 아프리카에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돼서 기뻐.”
“감독님과 함께해서 행보캐떠요. 더부네 와찰라가 댈 뚜 이떠서 조아떠요.”
은우는 채드윅 감독이 몇몇 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캐스팅할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촬영감독 룬다가 은우에게 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은우와 함께 한 걸 감사합니다.”
은우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생일축하 노래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가사만 바꿨네. 감사송인가?’
룬다가 감사패와 사탕 목걸이를 들고 나왔다.
“촬영팀이 은우에게 감사의 선물로 주는 거야. 은우와 함께 촬영했던 모든 순간이 즐거웠어. 네가 없었으면 정말로 힘들었을 거야.”
“헤헤헤헤헤. 저도 재미떠더요.”
은우는 밝게 웃으면서 사탕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마디께땨.”
은우가 사탕을 하나 풀어서 입에 넣으니 사탕 목걸이가 금방 풀어져 버렸다. 길동이 와서 은우의 사탕 목걸이를 받아주었다.
“마디떠요.”
은우가 사탕을 문 채 밝게 웃었다.
그때 루시가 울음을 터트렸다.
“은우야, 보고 싶을 거야. 매일 널 보면서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서운해. 너처럼 즐거워하면서 분장을 받는 아기를 세상 어디에 가서 더 만날 수 있겠어?”
은우가 루시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걱정 마요. 루시. 내갸 다릉 영화를 찌글 때도 루시를 꼭 부를게요. 따랑해요. 슬퍼하지 마요.”
촬영장의 스태프들은 모두 루시와 같은 마음이었다.
두 달여의 촬영 기간 동안 은우는 사람들에게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더운 날씨 속에서도 웃고 촬영이 꼬일 때에도 밝게 웃으며 장난을 치러 다녔다.
은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사람들은 오늘 촬영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룬다가 말했다.
“촬영 마지막 날은 늘 홀가분함과 아쉬움이 함께하기 마련인데 오늘은 아쉬움뿐이네. 영화는 잘 만들어질 거 같은데. 은우랑 정이 많이 들었어.”
“저도요. 룬댜.”
은우가 룬다의 손을 꼬옥 잡으며 외쳤다.
“다으메도 우리 꼭 가치 촬영해요. 제가 꼭 부를게요. 한국에 꼭 놀러오떼요. 제가 초대하께요.”
채드윅이 말했다.
“왜 다들 슬퍼하고 그래? 영화 개봉할 때 단체로 한국에 가서 홍보하고 놀면 되겠다. 안 그래? 우리 영화가 대박 나면 내가 제작자에게 한번 건의해 볼게.”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스태프들이 호응했다.
“브라보.”
“[블랙 레오파드 1]만큼만 성공해도 가능하겠네요. 전작이 워낙 넘사벽이어서.”
“무슨 소리야. [블랙 레오퍼드 2]가 훨씬 더 잘될 테니까 두고 봐.”
“모두들 은우 팬이 될 거라고.”
채드윅이 말했다.
“우리 신나는 포즈로 단체 사진 찍을까? 오늘을 추억할 수 있게 말이야.”
룬다가 제안했다.
“제가 올린 동영상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게 똥침 동영상이었는데 다 같이 똥침 포즈 어때요?”
스태프들도 동의했다.
“재밌겠어요.”
“진짜 웃기겠다.”
촬영감독 룬다가 카메라를 세팅한 뒤 리모컨을 쥔 채 자리로 돌아갔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앞에 사람에게 똥침을 하세요.”
“잠깐만, 잠깐만.”
스태프들은 서로 자리를 바꾸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맨 끝자리에 서면 똥침을 당하지 않고 똥침을 할 수 있는 기회만 얻기 때문이었다.
“내가 맨 뒤에 설 거야.”
“내가 설 거라고.”
결국 채드윅이 정리에 나섰다.
“자, 가위, 바위, 보를 합시다.”
그때 은우가 외쳤다.
“제갸 심판하고 시퍼요.”
은우 심판이 심사하는 가위, 바위, 보가 시작됐다.
은우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가위, 바위, 보를 많이 해 봤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조율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세 명씩 짜글 지어서 가이, 바이, 보를 하떼요. 이긴 사람 한 사라미 나올 때까지요. 이긴 사람만 손들고 아프로 오떼요.”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스태프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왔다.
“이긴 사람끼리 모여서 다시 가이, 바이, 보를 하떼요.”
그렇게 해서 최종 남은 사람은 루시와 사이먼이었다.
“가이, 바이, 보. 다시, 다시.”
두 사람은 두 번 다 똑같은 것을 내서 무승부가 되었다.
은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상하네. 두리 마으미 또가튼가? 마지마그로 가이, 바이, 보.”
루시가 가위를 사이먼이 보를 냈다.
“루시 승.”
“아싸.”
루시가 신이 나서 기쁨의 막춤을 추었다.
은우도 루시의 옆에서 개다리춤을 추었다.
‘춤은 역시 막춤이야.’
은우는 오랜만에 흥이 잔뜩 올라서 몸을 흔들어대다가 사이먼에게 똥침을 하는 흉내를 냈다.
‘가만 보자. 똥침을 춤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은우는 자연스럽게 양팔을 흔들면서 리듬을 타다가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똥침을 놓는 똥침 춤을 개발했다.
‘이게 재밌네.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한테 알려줘야지. 보나 마나 친구들이 좋아할 거야.’
채드윅이 은우의 춤을 보고 흉내를 냈다.
“은우 천잰데, 이런 춤을 개발하다니.”
룬다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촬영을 시작했다.
“다 같이 똥침춤 갈까요?”
루시가 말했다.
“이 춤을 더 발전시켜서 똥침을 하는 사람과 똥침을 받는 사람의 춤으로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똥침을 받는 사람의 춤을 춰 볼게요.”
루시가 엉덩이를 손으로 쥐고 뛰는 동작을 하면서 한 손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입에 가져다 대는 춤을 추었다.
은우가 루시의 춤을 보고 웃었다.
“헤헤헤헤헤. 루시 천재. 너무 재미떠요.”
채드윅이 말했다.
“루시 표정이 너무 재밌는데 우리 저 표정으로 다 같이 단체 사진 한번 가죠.”
스태프들은 삼 열로 나란히 서서 똥침 자세를 취했다.
재미있어 보이도록 과장된 표정으로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은 크게 벌려서 매우 아픈 표정을 지었다. 한 손은 똥침을 당하지 않도록 막는 사람도 있었고, 똥침 당한 엉덩이가 아프지 않도록 문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룬다가 촬영된 사진을 보면서 외쳤다.
“좋아. 내 평생 이렇게 재밌는 사진은 처음이야.”
***
룬다가 올린 마지막 촬영장의 영상은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 똥침춤 너무 웃기다. 은우 천재 아님?
- 저 춤 인기 끌겠는데. 나이트 클럽에 가서 춰 볼까요?
┗ 저걸 처음 보는 여자 앞에서 추면 미친놈 소리 듣지 않을까요?
┗ 나라면 따귀 날림.
┗ 동성 친구 사이에선 재밌을 거 같은데요. 이성 사이엔 추천 안 함.
┗ 졸업 파티에서 해 봐야지.
┗ 위의 님. 졸업 파티 파트너 못 구하시고 혼자 가실 듯.
- 사진은 유행할 거 같은데요. 저도 친구들이랑 저 단체 똥침 사진 찍어보고 싶어요.
┗ 인정. 사람이 많고 표정이 다양할수록 재밌는 사진이 나올 거 같아요.
┗ 예전에 유행했던 몰아주기처럼 한 사람만 멀쩡하게 있고 나머지 사람이 다 망가지는 그런 컨셉으로 해도 재밌을 듯.
***
은우는 캠프로 가 케미기샤, 길동, 백수희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케미기샤와 은우는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비밀 아지트인 나무집으로 향했다.
오랑이와 우탄이가 은우와 케미기샤를 따라 나무집으로 올라왔다.
은우는 한동안 그리워했던 아프리카를 다시 떠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오묘했다.
‘케미기샤를 그리워하면서 내내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기적처럼 오게 됐어. 그리고 기적처럼 내가 다른 아기들을 도와줄 수 있었고.’
은우는 환생을 할 때 보았던 신들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신들은 나의 불행한 죽음에 연민을 느꼈지. 하지만 날 살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들마다 생각이 달랐어. 날 다시 살려낸 건 인간을 시험해 보고 싶은 신들의 마음이었지. 난 내 삶을 통해서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보여줄 거야. 인간이 세상 어떤 존재보다 큰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걸.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오랑이가 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우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지 오랑이는 유난히 은우를 잘 따르고 좋아했다.
“미아내. 널 데려갈 뚜 엄떠서.”
은우는 오랑이와 우탄이를 데려가는 것이 오랑이와 우탄이에게도 나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물원보다는 여기가 더 편할 거야. 오랑아, 우탄아. 그러니까 여기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내가 곧 또 보러올게.’
은우가 오랑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케미기샤가 은우에게 물었다.
“정말 내가 같이 가도 돼? 은우야.”
“응, 걱정하디 먀. 신부니미 다 알아서 해주셔따고 해떠.”
케미기샤가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한국은 어떤 나라야? 너투브에서 찾아봤는데 너무 대단한 나라 같았어. 거리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다 예쁘고.”
“한구근 조은 나라야. 거긴 머글 거또 만코 공부도 마니 할 뚜 이떠. 원하는 건 다 배울 뚜 이떠.”
케미기샤는 내일이면 한국으로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설레면서도 긴장이 됐다.
“한국말은 어려워?”
“한국마른 아프리카 말하고는 달랴. 햐지만 금뱡 배울 뚜 이뜰 거야. 한구게 가면 조은 떤생님드리 마니 계시거든. 너무 걱정하디 먀. 케미기샤.”
은우는 케미기샤의 걱정이 이해가 되면서도 위로해 주고 싶었다.
‘여기서부터 비행기로 20시간가량 걸리는 먼 나라니. 걱정이 되겠지. 게다가 한국에서 케미기샤가 아는 사람은 거의 내가 유일할 테니.’
백수희와 길동도 케미기샤를 알고 있긴 하지만 케미기샤가 의지할 수 있는 상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내가 파드와라는 걸 알면 네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질 텐데.’
은우는 케미기샤의 손을 꼬옥 잡았다.
***
다음 날 아침 은우 일행은 잠비아 공항에 서 있었다.
이태석 신부가 은우와 케미기샤, 백수희, 길동을 배웅했다.
“난 여기 남아서 아이들을 돌봐줘야 할 것 같아. 은우야, 김마리아 수녀님께 내 안부를 전해주렴.”
“네네네네네.”
은우는 잠비아 공항의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줄 오랑우탄 인형을 샀다.
“헤헤헤. 오랑우탄 인형 실감 난댜. 그지? 케미기샤. 오오오오오. 히히히히히히. 오와오와오아오아.”
은우는 오랑이, 우탄이와 함께 지내면서 오랑우탄 흉내를 매우 실감 나게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오랑우탄 흉내를 내곤 했다.
“오랑이랑 우타니 진짜 재미떠.”
은우는 오랑이와 우탄이가 없는 곳에서도 오랑이와 우탄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백수희가 은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은우, 오랑이랑 우탄이 못 봐서 섭섭해서 어쩌니?”
“갠차나요. 다으메 또 보러 올 거예요.”
아프리카는 은우에게 의미가 큰 땅이었다. 그리고 아직 케미기샤의 비자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은우는 앞으로도 아프리카에 더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건 날 바라보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눈망울이지.’
친구들을 위해 산 인형과 일행의 캐리어를 수화물로 먼저 보내고 은우 일행은 탑승 수속을 마쳤다.
비행기를 처음 본 케미기샤는 매우 놀랐다.
“진짜 크다. 이거 타면 하늘을 나는 거야?”
“응, 케미기샤. 하느를 나라서 빨리 갸는 거야. 비행기 안에서 마디는 거도 마니 줘.”
“먹을 것도 준다고?”
“응, 눈나랑 횬아한테 말하면 대.”
“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