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형제의 이름으로 (6)
알폰소가 와찰라에게 물었다.
“와찰라 어떻게 된 거야? 난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어.”
“[위대한 와드리 숲]에 가떠떠. 거기서 [신령한 나무]의 선태글 받다떠.”
알폰소가 와찰라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와찰라, 넌 위대한 왕이구나. 조상들의 선택을 받다니. 그럼 [위대한 왕들의 왕관]도 받았어?”
“응, 바다떠. 그런데 날 위해서 아빠량 하뷰지가 영호늘 거러떠. 실패하면 아빠량 하뷰지의 영호니 사라진대.”
“[위대한 왕들의 왕관]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네가 아니면 [와따따] 왕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어.”
“어서 가쟈, 알폰소.”
와찰라는 거리의 거지들을 보았다.
“한 푼 주세요. 한 푼 주세요.”
와찰라가 알폰소에게 물었다.
“나라에 왜 이러케 거지드리 마나져찌?”
“옴바쿠가 세금을 올려서 버티지 못한 자들이 거지가 되고 있습니다. 옴바쿠는 세금을 내지 못하면 집도 뺏어버려서 다들 갈 곳이 없어졌어요.”
“다 네가 부조칸 타디댜. 나 때무네 백성드리 고생이 마냐.”
“와찰라 왕 때문이 아니라 탐욕스런 옴바쿠 때문입니다. 그놈은 피도 눈물도 없어요. 선왕의 분부를 잊고 어린 조카를 죽이려 들고.”
그때 와찰라 앞에 어린 아기를 안은 여인이 구걸을 했다.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먹을 것이 없어서 아기가 우유를 못 먹고 있어요. 열이 나는데 병원에도 갈 수 없어요.”
와찰라는 차마 여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와찰라는 손목에 있는 금팔찌를 풀어서 여인에게 주며 말했다.
“이거로 아기에게 줄 우유를 사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금팔찌를 받았다.
여인이 사라진 뒤 알폰소가 말했다.
“와찰라여, 저건 차찰라 왕께서 주신 선물이 아닙니까? 가격만 해도 어마어마한 것인데.”
“어마어마한 거시면 무어하겐느냐. 저 어린 아기갸 굴머 죽는 거보단 나따.”
도시의 중심가로 갈수록 사정은 더 심각해졌다.
무거운 쇠사슬을 발목에 맨 죄수들이 성곽을 쌓고 있었다.
“저건 무어슬 하는 거시냐?”
“요새를 만든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군수물자를 만들기 위해 죄수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죄수갸 만지 아나떠는데?”
“죄수의 숫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와찰라 왕께 충성했던 신하들을 전부 잡아서 죄수로 만들었습니다.”
“뭐라고?”
와찰라의 눈에 충신들의 얼굴이 스쳐 갔다. 와찰라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자하라, 알폰소, 루피다, 라몬다, 나키아…….
‘내가 힘이 약하니 신하들마저 고생이구나.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마음 약한 왕은 되지 않겠어.’
와찰라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믿어준 신하들을 위해,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 힘센 왕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지원군이 필요할 거 같아.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파르파르] 왕국에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치타로 변신한 와찰라가 알폰소와 함께 [파르파르] 왕국을 향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파르파르] 왕국의 왕 팔레레는 차찰라의 오랜 친구였다.
와찰라와 알폰소가 [파르파르] 왕국의 궁궐로 들어서자 팔레레가 반갑게 맞이했다.
“와찰라여, 고생이 많도다. 흉악한 삼촌 옴바쿠 때문에 죽을 고비도 넘기고.”
와찰라는 예를 다해 아버지의 친구이자 [파르파르] 왕국의 왕인 팔레레에게 인사했다.
“감사함니댜. 팔레레 왕이시여. 오랜 형제의 나라에 부타글 하러 와뜸니댜.”
“부탁?”
“지금 [와따따]의 백성드리 주거가고 이뜸니댜. 옴바쿠 삼초네 욕심 때무네 전쟁터로 내몰리고 이뜸니댜.”
“안타까운 사정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네를 도와주게 되면 [파르파르]의 백성들 역시 희생을 치러야만 한다. 왕으로서 매우 어려운 결정이란 걸 알아주기 바란다.”
“잘 알고 이뜸니댜. 저 역시 [파르파르] 백성드리 희생대길 언치 안뜹니댜. 하지만 왕이시여, 만약 [와따따]의 백성드리 모두 주꼬 옴바쿠의 히미 더 세지면 [파르파르] 왕국도 전쟁을 해야만 할 거심니댜.”
팔레레는 생각했다.
‘옴바쿠의 정복욕은 대단하다고 들었어. 이미 주변의 세 나라를 모두 정복했으니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복계획도 세우고 있겠지. 듣자 하니 여자와 아이들은 포로로 데려가고 남자들은 해적들에게 팔아넘긴다던데.
우리 요정 부족은 천 살이 넘게 살 수 있는 장수 부족이기 때문에 그것도 옴바쿠가 탐내는 요인이 될 거야. 우리 부족을 데려다가 오래 사는 이유를 연구하려고 할지도 모르지.’
부족의 미래를 생각하자니 팔레레의 머리가 아파왔다.
‘이거야말로 정말 진퇴양난이로군. 어떤 선택을 하든지 위험을 피할 수는 없겠어.’
고심 끝에 팔레레가 입을 열었다.
“짐도 어느 정도 와찰라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 요정 부족이 쓰는 수면 마법은 효과가 있지. 하지만 [알루나늄]을 입고 있는 사람에겐 수면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아.
게다가 옴바쿠에겐 [알루나늄 왕관]이 있지 않느냐? 듣기론 그 왕관을 가진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던데.”
와찰라가 대답했다.
“저에겐 [위대한 왕들의 왕관]이 이뜸니댜. 저는 요정부조기 전며네 나서서 싸우기를 언하지 안뜸니댜. 수면 마버브로 백성드를 지켜주십시오.”
와찰라의 말에 팔레레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게 해준다면 정말 고맙소. 그런데 우리가 싸우지 않고 마법만 부려도 이길 가능성이 있겠소?”
“[위대한 왕들의 왕관]을 미더보세요. 이 왕관 소겐 조상드리 모든 지혜가 드러이뜹니댜.”
“그럼, 지원군을 파견하도록 하겠소. 우리 부족의 자랑. 천마도 함께 빌려드리겠소.”
요정 부족이 자랑하는 천마는 말 그대로 날개가 달린 말이었다. 천마는 여러 가지로 용을 닮아 있었다. 속도, 빠르기. 하늘을 나는 능력 등. 하지만 천마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치유능력이었다.
팔레레가 말했다.
“혹시라도 부상을 당한 자가 있으면 천마가 치유를 해줄 겁니다. 혹시 천마의 능력으로 고칠 수 없다면 천마에게 태워 저에게 보내세요. 그럼 제가 그분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감샤함니댜. 팔레레 왕이시여.”
와찰라가 무릎을 굽히고 예를 다했다.
와찰라와 알폰소, 요정들은 천마를 타고 빠르게 [와따따] 왕국으로 날아갔다.
옴바쿠는 이웃 나라 [할리파] 왕국과의 전쟁에서 얻은 보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할리파]의 요술 장갑이로군. 이걸 끼면 세상에 어떤 것도 부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던데.’
옴바쿠는 지도를 가져다 놓고 각국의 보물 리스트를 체크하고 있었다.
‘땅도 뺏고 보물도 뺏고 사람들은 감옥에 넣어서 죄수로 쓰면 노동력도 확보할 수 있고. 말 안 듣는 놈들은 해적에게 팔면 되니 전쟁만큼 신나는 게 어디 있나?’
옴바쿠는 갈수록 넓어지는 자신의 영토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 경비병이 달려왔다.
“전하, 전하. 와찰라가 오고 있습니다.”
“와찰라는 죽었는데 무슨 말이냐?”
“그건 모르겠사오나 와찰라가 요정 부족과 함께 천마를 타고 오고 있습니다.”
옴바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차찰라 왕과 요정 부족의 왕 팔레레가 친하다고 하더니 와찰라가 얕은꾀를 쓰는군. 그래, 너 혼자 오는 것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그래 봤자 날 이길 순 없어. 난 [알루나늄 왕관]을 가진 데다 전쟁을 통해서 [할리파]의 요술 장갑과 [비요냐]의 하프를 얻었지.’
옴바쿠는 두렵지 않았다.
천마가 궁궐의 입구로 날아들었다.
와찰라가 천마에서 뛰어내리며 멋지게 플래티넘 드래곤으로 변신했다.
생각지도 못한 와찰라의 변신에 옴바쿠가 놀랐다.
“저것은 용들의 왕. 바하마쿠.”
옴바쿠는 생각했다.
‘와찰라가 [위대한 왕들의 왕관]을 얻었단 말인가? 그 말은 와찰라가 [위대한 왕들의 숲]에 갔단 말인데. 대체 왜? 왜? 아버지, 당신은 죽어서마저 내가 아니라 와찰라란 말입니까.’
옴바쿠가 황금 드래곤으로 변신해 포효했다.
“덤벼라.”
요정 부족이 날갯짓을 시작하자 날개에서 금빛 가루가 떨어지며 수면 마법이 시작되었다. 궁궐 안에 있던 하녀와 경호원들이 잠에 빠졌다.
옴바쿠가 그 장면을 보고 웃었다.
“어차피 저들은 함께 있다고 해도 도움도 안 돼. 요정 부족의 장기 중 수면 마법을 가져오다니. 와찰라답군. 나라면 수면 마법 대신 독살마법을 선택했을 텐데 말이야.”
요정 부족의 독살마법은 지목한 상대에게 독이 든 가루가 날아가 죽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독살마법에 지목된 사람은 숨이 끓어질 때까지 코와 입으로 독살가루가 가득 차 피를 토하며 고통스럽게 죽어야만 했다.
와찰라의 플래티넘 드래곤이 황금 드래곤을 공격했다.
“소환 마법. 황금 드래곤.”
옴바쿠의 황금 드래곤이 카피캣으로 유명하다면 플래티넘 드래곤은 소환술로 유명했다. 자신이 만난 모든 존재를 소환할 수 있는 능력. 플래티넘 드래곤이 황금 드래곤보다 강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소환할 수 있는 대상의 개수도 종류도 정해져 있지 않은 무적의 능력.
요정 부족의 대장 아르세데인이 말했다.
“말로만 듣던 바하마르가 실제로 있었군요. 제 나이가 천 살인데 바하마르는 처음 봅니다. 정말 놀라운 능력이네요. 소환술이라.”
옆에 있던 요정 부족의 부대장 베오르가 말했다.
“황금 드래곤의 복사 능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소환술에 비하면 보잘것없죠. 이건 보나마나 이긴 게임이네요. 편안히 구경만 하면 되겠는데요.”
알폰소가 아르세데인에게 말했다.
“와찰라가 자하라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는데 천마를 자하라가 있는 곳으로 보내면 안 될까요?”
“자하라는 죽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을지 모르니 천마에게 국경으로 가 자하라를 찾아서 [파르파르] 왕국으로 돌아가라고 해주세요.”
베오르도 동의했다.
“어차피 여기선 우리가 싸우지 않아도 와찰라가 이길 것 같군요.”
아르세데인이 천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국경으로 가 자하라를 태워 [파르파르] 왕국으로 가라.”
“히이이잉.”
천마가 알았다는 듯 길게 울음을 운 뒤 하늘로 날아갔다.
옴바쿠의 황금 드래곤이 바닥을 치며 주문을 외웠다.
“파워 워드, 킬(Power Word, Kill).”
지난번과 똑같이 옴바쿠는 [파워 워드, 킬]을 썼다.
와찰라는 옴바쿠의 비열함에 몸을 떨었다.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삼촌은 너무 악랄해.’
와찰라가 소환한 황금 드래곤이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와찰라의 바하마드가 그것을 막아섰다.
“내갸 해결하게땨. 소환쑬. 차원의 정령.”
바하마드가 주문을 외우자 커다란 블랙홀이 공중에 생겨났다.
“맙소사 저건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이잖아.”
차원의 문을 알아본 아르세데인이 외쳤다.
“소환쑬. 바람의 정령.”
커다란 블랙홀 안에서 거대한 바람이 불어왔다.
“갸랴 황금 드래곤.”
와찰라의 황금 드래곤이 옴바쿠의 황금 드래곤에게 일격을 날렸다.
“파워 워드, 킬(Power Word, Kill).”
옴바쿠가 지지 않고 맞섰다.
“파워 워드, 킬(Power Word, Kill).”
아르세데인이 긴장했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를 죽이려는 건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아. 왜 와찰라의 바마하드는 가만히 있는 거지?’
2배가 더 세진 [파워 워드, 킬]의 마력이 공중을 맴돌고 있었다.
옴바쿠가 [비요냐]의 하프를 연주했다.
[파워 워드, 킬]이 하프의 가락을 따라 요정 부족과 와찰라 쪽으로 오고 있었다.
바하마드가 외쳤다.
“소환술. 자꼬 빠른 쟈.”
차원의 문에서 작은 벌 한 마리가 날아왔다.
그 벌은 작지만, 매우 빨라서 눈 깜짝할 사이 옴바쿠의 황금 드래곤에게 다가가 발등을 쏘았다.
“어이쿠.”
옴바쿠의 황금 드래곤이 발을 쥐고 뒷걸음질하다가 공중을 맴돌고 있는 [파워 워드, 킬]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때를 놓칠세라 와찰라의 황금 드래곤이 옴바쿠의 황금 드래곤을 차원의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아악. 안 돼.”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옴바쿠는 다른 차원으로 사라져 갔다.
“와찰라.”
알폰소가 와찰라에게 뛰어왔다.
바하마드가 다시 다섯 살의 와찰라로 돌아왔다.
“아아아, 힘드러따.”
아르세데인이 요정 부족에게 명령했다.
“수면 마법을 풀어라.”
요정 부족들이 날개를 흔들어 마법 가루를 뿌리자 왕궁의 하녀와 경비병들이 긴 잠에서 깨어난 듯 기지개를 켰다.
“아아, 잘 잤다.”
아르세데인이 와찰라에게 말했다.
“천마가 자하라를 구했다고 합니다. 함께 [파르파르] 궁궐로 가보시겠습니까?”
“자하라가?”
와찰라는 생각지도 못한 기쁜 소식에 들떴다.
바하마르로 변한 와찰라가 요정 부족과 알폰소를 태우고 [파르파르] 궁궐로 향했다.
팔레레 왕이 자하라를 부축하면서 일행을 마중 나왔다.
“자하라.”
와찰라가 울면서 자하라에게 뛰어갔다.
“미아내. 미아내.”
자하라가 웃으면서 와찰라에게 대답했다.
“미안하긴요. 참 잘하셨습니다. 혼자서 [와따따] 왕국을 구하셨다니. 전 죽어도 여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팔레레가 말을 이었다.
“가수면 상태에 있어서 다행히 살려낼 수 있었어. 역시 드래곤의 치유능력은 대단해.”
자하라가 물었다.
“와찰라, [알루나늄 왕관]은 찾으셨습니까?”
“아, 그게 옴바쿠 땸톤과 함께 다른 차어느로 가버려떠.”
알폰소가 웃으며 말했다.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릅니다. 자하라 님. 직접 보셨어야 했는데.”
와찰라가 말했다.
“근데 마랴. [알루나늄 왕관]이 엄는 게 더 나을 거 가끼도 해. [신들의 왕관]도 [위대한 왕들의 숲]에 가서 돌려 드려야지.”
자하라가 웃었다.
“역시, [와따따] 왕국의 왕은 와찰라 왕뿐입니다.”
와찰라는 자하라, 알폰소와 함께 [와따따] 왕국으로 돌아갔다.
[와따따]의 백성들이 와찰라를 알아보고 감사 인사를 했다.
“위대한 와찰라 왕이시여.”
“백성을 사랑하는 진정한 왕.”
“우리와 오래오래 함께해 주세요.”
와찰라는 백성들의 밝은 미소를 보며 행복함을 느꼈다.
그때 와찰라가 금팔찌를 주었던 아기를 안은 여인이 와찰라에게 와 감사 인사를 했다.
“위대한 왕이시여, 주신 금팔찌 덕분에 제 아기가 굶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성들이 이야기를 듣고 술렁였다.
“굶는 아기를 위해 금팔찌를 내어주다니 역시 와찰라 왕이야.”
“와찰라 왕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