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형제의 이름으로 (5)
잠비아, 탄자니아, 콩고의 대통령이 다녀간 후 이태석 신부와 낸시는 바빠졌다.
이태석 신부가 말했다.
“소가 생겼으니 농사를 지어볼 수도 있겠어요. 열 마리나 되니까요.”
낸시가 대답했다.
“아프리카에선 소가 정말 유용하죠. 물도 더 많이 나를 수 있고 농사도 지을 수 있고. 그런데 우선은 소가 머물 장소가 필요한 것 같아요. 외양간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볼게요.”
“낸시, 오랑우탄들도 머물 장소가 필요할 거 같은데.”
“외양간과 멀리 떨어진 곳에 짓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서로 붙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까. 근데 오랑우탄들은 어떻게 하죠? 기르자니 식비도 만만치 않을 거 같은데.”
“그건 그래요. 아이들도 케어하기 힘든데 오랑우탄도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할 거 같은데. 일단은 보낼 곳이 없으니 아이들이 오랑우탄을 돌볼 수 있도록 가르쳐 봐야겠어요.”
“그래요.”
은우와 케미기샤는 과자집에 들떠 있었다.
“이렇게 큰 과자집은 처음 봐. 정말 멋지다.”
은우가 초콜릿으로 된 문고리를 뜯어서 케미기샤에게 주었다.
“케미기샤, 아아아.”
“헤헤헤헤. 맛있어.”
케미기샤가 초콜릿을 먹으며 웃었다.
은우와 케미기샤 주변에 캠프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와아, 저기 젤리가 이떠.”
“지붕 끝에 달린 우산 모양 사탕 먹고 싶다.”
“마디게따.”
그중의 한 명이 은우에게 말을 걸었다.
“은우야, 우리도 조금만 먹으면 안 될까? 조금만 먹을게.”
“그래, 조금씩만 머거.”
“고마워, 은우야.”
은우의 말에 캠프의 아이들이 과자집을 둘러쌌다.
“이건 콜라 맛 사탕인데.”
“이건 바나나 맛인데.”
“우와, 초콜릿 안에 아몬드가 들었어.”
아이들은 과자집의 지붕과 창문을 든 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케미기샤가 은우에게 말했다.
“네가 오고 난 후엔 좋은 일만 생기는 거 같아. 가끔 너무 행복해서 이게 꿈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아니야, 케미기샤. 이건 꾸미 아니야.”
은우가 케미기샤의 손을 꼬옥 잡았다.
오랑우탄 두 마리가 은우를 따라다녔다.
케미기샤가 은우에게 말했다.
“오랑우탄이 널 좋아하나 봐. 오랑우탄은 너무 웃겨.”
“우리 오랑우탄 이름 지어주쟈. 오랑이 어때?”
“그럼 나머지 한 마리는?”
“우탄이.”
“좋아.”
오랑이가 과자집 근처에서 울음소리를 내었다.
“아아아아아아.”
우탄이가 그 소리를 듣고 따라 울며 가슴을 때렸다.
“아아아아아아.”
은우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왜 그러는 거찌?”
“배가 고파서 그런 거 아닐까?”
“아하.”
은우가 오랑이와 우탄이에게 과자집에서 떼어낸 쿠키를 주었다.
오랑이가 쿠키를 먹더니 기분이 좋은지 은우의 주변을 맴돌며 왔다 갔다 했다.
우탄이는 아랫입술을 뒤집고 울음소리를 냈다.
“우히히히히히. 이히히히히히.”
은우가 쿠키를 더 떼서 오랑이에게 내밀자 오랑이가 쿠키를 가져갔다. 우탄이도 손바닥을 내밀었다.
“헤헤헤헤헤. 보리 가타.”
은우는 집에 두고 온 보리가 생각났다.
‘보리는 잘 있을까? 날 보고 싶어 하겠지? 보리랑 대화하고 싶은데 휴대폰이 없으니 불편해. 영상통화를 하면 좋은데 보리 전화기가 없어서 보리랑 둘이서만 대화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보리 보고 싶다.’
은우는 언젠가 보리를 아프리카에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은우가 점심을 먹으러 케미기샤와 식당에 간 사이, 캠프 근처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과자집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우와, 이것 좀 봐. 사탕이 이렇게나 많아.”
“이건 젤리 같은데.”
“지붕이 초콜릿이야. 초콜릿 먹고 싶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과자집을 뜯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입에는 초콜릿이 묻고 쿠키 부스러기가 잔뜩 묻었다.
“너무 맛있어.”
“어젠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오늘 이렇게 맛있는 걸 잔뜩 먹다니 너무 신난다.”
“내 꿈이 이루어졌어. 이렇게 잔뜩 먹을 게 있다니.”
아이들은 정신없이 과자집을 뜯기 시작했다.
캠프에 있던 한 아이가 동네 아이들을 말렸다.
“안 돼. 이건 은우가 선물로 받은 거야. 은우 거라고. 은우 허락을 맡고 먹어야 해.”
하지만 동네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캠프에 있던 몇몇 아이들 중에서도 이탈자가 생겨났다.
“나도 더 먹을래. 쟤네도 먹는데 나는 왜 더 못 먹어?”
“다 사라지기 전에 먹을 거야.”
아이들의 손길에 과자집은 금방 앙상해져서 뼈대만 남았다.
점심을 먹고 케미기샤와 함께 돌아온 은우는 사라진 과자집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내 과쟈집. 으앙.”
은우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꿈에 그리던 과자집이었는데. 아껴서 천천히 한 달 동안 먹으려고 한 건데.’
케미기샤가 은우의 맘을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슬퍼하지 마. 은우야. 내가 나중에 다시 만들어 줄게.”
“갠차나. 아마 배고파서 머거뜰 거야. 아는데 나도 다 아는데. 자꾸만 눈무리 나.”
은우의 눈물에 동네 아이들이 사과를 했다.
“미안해. 은우야.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어. 미안해.”
“아니야, 너희 때무네 속상해서 우는 거 아니야.”
은우는 생각했다.
‘파드와일 때 저런 과자집이 눈앞에 있었으면 분명 나도 먹었을 거야. 누군가에게 물어볼 생각보단 배고픔이 먼저였을 테니까.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서운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 내가 울면 동네 아이들이 난처해할 텐데 말이야. 그만 울어야 하는데.’
은우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다른 동네에서 온 아이가 말했다.
“은우야, 미안해. 과자가 다 사라졌어. 내가 네 마음을 생각하지 못했어. 미안해. 대신 우리가 나무집을 지어 줄게. 나무집은 멋있어.”
다른 아이들도 동의했다.
“나무 위에 집을 지으면 치타나 하마가 와도 안전해. 그리고 시원하고 친구들하고 놀기도 좋을 거야.”
“나무집?”
은우가 울음을 멈추었다.
“우린 여러 명이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사과의 의미로 나무집을 지어 줄게.”
“거마어.”
은우가 밝게 웃었다.
“애들아 우린 나무 가지러 가자.”
동네 아이들과 캠프의 아이들이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태석 신부가 낸시에게 말했다.
“낸시, 아무래도 옆 동네의 아이들도 우리가 도와줘야겠죠?”
“여기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파요. 먹을 거만 준다면 하루 종일도 걸어올 아이들이죠. 주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늘 가진 게 모자라요.”
“아무래도 근처의 땅을 사들여야겠어요. 저 아이들이 나무집을 짓는 의지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면 농사도 잘되지 않을까요?”
“여기선 농사가 그나마 아이들에게 먹을 걸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긴 해요. 공장이 들어설 수도 없는 곳이니까.”
“어린 나이에 일해야 하는 게 맘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굶는 것보단 나으니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빨리 만들어줘야겠어요.”
***
다음 날 은우는 오랑이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오랑아, 어떠케 드러와써?”
“아아아아아아아아.”
오랑이가 울면서 부엌 쪽을 가리켰다.
“아, 배고프다고?”
은우가 오랑이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가니 백수희가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랑이가 은우 좋아하네.”
“자꾸 따라아요.”
“대통령님이 너에게 준 선물인 걸 아는 걸까? 신기하다.”
“아치메 일어나는데 여페서 우러서 놀라떠요.”
“오랑우탄은 손이 있으니까 문도 열 수 있고 못 하는 게 없지. 아마 보리랑은 다를걸.”
“아, 마따. 소니 이떠찌.”
백수희가 오랑이에게 바나나를 주었다.
“이거 먹어. 오랑아.”
오랑이가 기분이 좋은지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 웃더니 바나나를 까기 시작했다.
은우가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
“와, 바나나 정말 잘 깐다.”
어디선가 나타난 우탄이가 백수희에게 바나나를 달라고 졸랐다.
“우탄이도.”
우탄이가 이빨로 바나나를 깠다.
“와, 사람가타.”
은우는 오랑이와 우탄이의 행동에 놀랐다.
케미기샤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잘 잤어? 은우야?”
“응. 오랑이가 와서 금방 깨떠. 케미기샤 게임은 안 해?”
“어제 과자집을 먹고 나서 좀 줄였어. 생각해 보니까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재밌고 또 이제 소도 있고 오랑이, 우탄이도 있으니까 조금씩 줄여보려고.”
“잘해떠. 케미기샤.”
“은우야 나랑 같이 밖으로 나가보지 않을래?”
케미기샤가 은우의 손을 잡고 이끈 곳에는 나무집이 완성돼 있었다.
동네 아이들과 캠프의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은우야, 고마워. 넌 우리에게 많은 것을 해줬어.”
“어제 미안했어. 우리가 소중한 과자집을 다 먹어서 속상했지?”
“은우야 우리 여기서 같이 재밌게 놀자.”
나무집에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가 나무 옆에 놓여 있었다.
케미기샤의 키 정도 되는 곳에 나무집의 입구가 있었다.
케미기샤가 은우가 사다리에 올라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먼저 올라가 은우야.”
나무집에 들어간 은우가 탄성을 질렀다.
“이야. 너무 머찌다.”
시원하고 멋진 집이었다. 그 속에 있으면 재밌고 새로운 생각들이 마구마구 떠오를 것 같았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렸다.
“동화 소게 집 가타.”
은우는 나무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케미기샤도 나무집에 올라와 감탄했다.
“우와, 여기서 자고 싶다. 별도 잘 보일 것 같아.”
“여기다 장난가믈 가져다 노차. 케미기샤. 우리 비밀 아지트로 쓰게.”
“좋아. 은우야.”
땅으로 내려간 은우는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날 위해 나무지블 만드러 져서 거마어. 정말 머찐 지비야. 어제 우러서 미안해. 너무 속상해서 그만.”
동네 아이들과 캠프의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뭐가 미안해? 은우야. 우리가 더 미안하지.”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다. 네가 속상해해서 정말 슬펐거든.”
“나무집 만드는 건 일도 아니야. 몇 개 더 만들어 줄 수도 있어.”
은우는 케미기샤와 함께 장난감을 가지러 갔다.
은우가 방에서 공룡변신로봇과 동화책, 크레파스 등을 챙겨서 나무집에 가져갔다.
케미기샤는 은우에게서 받은 문구용품을 나무집에 가져다 놓았다.
나무집에 오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에서 열릴 전시회에서도 그림이 필요하니 오랜만에 그림을 그려야겠어.’
은우는 스케치북을 꺼냈다.
은우의 크레파스 끝에서 나무집이 완성되었다. 나무집 옆에는 나무집을 만든 아이들이 밝게 웃고 있었다.
‘내 인생의 감동적인 순간이야.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특별한 경험.’
은우는 오늘 자신이 보았던 아이들의 미소와 사랑을 기억하고 싶었다.
케미기샤는 은우의 그림 실력을 눈앞에서 보곤 입이 딱 벌어졌다.
‘나한테 보냈던 카드에서도 그림을 매우 잘 그렸었는데 실제로 보니 대단하네.’
은우는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고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은우와 케미기샤가 수영장에서 함께 놀고 있는 그림이었다.
‘내 인생에 기억하고 싶은 순간 둘. 케미기샤와 함께 수영장에 가서 신나게 놀았던 일. 한국에서 나만 좋은 수영장에 다녀와 미안했는데 케미기샤에게도 수영장을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었어.’
은우가 다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과자집 앞에서 함께 과자를 뜯으며 즐거워하는 은우와 케미기샤.
그 옆에서 쿠키를 더 달라고 조르는 오랑이와 우탄이.
‘모두 행복한 기억뿐이네. 과자집을 받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 생각만 해도 달달한 추억이었어.’
은우는 그림을 그리며 방긋 웃었다.
케미기샤도 은우의 옆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랑 은우를 그려야지. 행복한 우리 가족으로.’
케미기샤는 가족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나, 형, 그리고 은우.’
케미기샤가 그린 가족사진에 은우가 추가되었다.
케미기샤가 완성된 그림을 은우에게 자랑했다.
“은우야, 이거 내가 그렸어. 선물이야.”
은우는 케미기샤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케미기샤, 말할 순 없었지만, 너도 느끼고 있었구나. 그래, 우린 가족이야. 변치 않는 가족. 우리 오래오래 함께하자.’
은우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케미기샤가 선물한 그림을 자신의 방에 걸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