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형제의 이름으로 (4)
세 번째 휴일.
은우는 케미기샤를 만나기 위해 캠프로 갔다.
“케미기샤.”
은우가 길동의 차에서 내려 케미기샤에게 달려갔다.
“은우.”
케미기샤가 은우를 안았다.
“오늘도 재미이께 놀쟈.”
“네가 준 휴대폰에서 게임을 찾아냈는데 너무 재밌어.”
케미기샤의 말에 은우는 케미기샤에게 휴대폰을 준 것이 잘한 일인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준수가 게임 중독에 걸렸었는데. 게임 중독 걸리면 매일 게임만 하려고 하는데. 밥 먹을 때도 밥도 안 먹고 게임만 하는데. 어쩌지? 케미기샤. 형이 널 안 좋은 길로 인도했구나.’
케미기샤가 빨개진 눈으로 말했다.
“어제도 게임 하다가 잠을 세 시간밖에 못 잤어.”
“에휴.”
은우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본 백수희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은우야 너 꼭 나이 많이 든 할아버지 같아.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세상 다 끝난 것 같은 한숨이라니. 너무 안 어울린다.”
은우는 백수희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누나, 저 할아버지 맞아요. 3회차 인생을 모두 합하면 백인수 할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은걸요.’
케미기샤가 휴대폰을 보면서 말했다.
“또 하고 싶다. 은우야, 너도 같이하지 않을래? 진짜 재밌어. 배터리가 빨리 닳아서 휴대폰을 늘 충전기에 꽂아놔야 하긴 하지만 너무 재밌어.”
“안 대. 재미낀 하지만 게임만 하면 안 된다고 김마리아 수녀니미 그래떠.”
“김마리아 수녀님?”
“내가 다니는 어린이집 수녀니미야, 너도 한구게 가면 거기 갈 거야.”
은우는 케미기샤와 함께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가는 상상을 하며 흐뭇해졌다.
그때 캠프로 커다랗고 까만 승용차와 소를 실은 트럭이 줄지어서 들어왔다.
길동은 그 차를 보자마자 대통령이 타고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
‘갑자기 잠비아 대통령, 탄자니아 대통령, 콩고 대통령의 비서에게서 전화가 와서 놀랐지. 촬영에 지장을 주면 좋지 않을 것 같아 휴일로 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용케 잘 맞춰 주셨네.’
차에서 잠비아의 대통령 카운다와 국무총리 사타가 내렸다.
은우는 카운다를 한 번에 알아보았다.
“대통령 하뷰지.”
“은우, 얼굴이 더 귀여워졌는데.”
“헤헤헤헤, 하뷰지도 안녕하떼요.”
은우가 사타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사타는 은우의 인사성에 절로 웃음이 났다.
“먼저 인사를 해줘서 고맙구나. 난 잠비아의 국무총리 사타라고 한단다.”
“하뷰지, 근데 저 뒤에 소드른 머예여? 음메에에에에. 음모오오오오.”
은우가 갑자기 소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카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은우의 기부 소식을 듣고 잠비아에서 은우에게 선물로 주려고 가져온 소들이란다.”
“저러케 마니요?”
은우는 파드와의 기억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소가 어떤 위치를 가지는지 알고 있었다.
‘소가 있는 집은 평생 굶을 일이 없었지. 엄마, 아빠가 살아계실 때도 우리 집은 소를 살 수 없었어. 우리 마을에서도 소가 있는 집은 두 집뿐이었으니까.’
갑자기 생긴 열 마리의 소에 은우는 기분이 오묘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케미기샤가 은우가 우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은우, 왜 울어? 소가 생긴 건 좋은 일이잖아.”
“너무 조아서 그래.”
은우는 하늘에서 엄마, 아빠가 자신을 보고 있다면 오늘 같은 날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실 거라고 믿었다.
‘엄마, 아빠. 잘 보고 계시죠? 저 열심히 살았어요. 캐미기샤를 지키기 위해서요. 파드와일 땐 그 약속을 다 지키진 못했지만, 은우가 돼서 그 약속을 꼭 잘 지킬게요.
저 이제 소도 생기도 케미기샤도 한국에 가서 매일매일 행복하게 지낼 거예요.’
카운다가 은우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감사패도 있단다. 은우야. 사타, 증정식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주세요.”
“네, 대통령님. 증정식을 준비하라.”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수행원들이 붉은색 카펫을 바닥에 깔았다.
카펫 옆으로는 수행원들이 일렬로 나란히 섰다.
사타가 카운다에게 감사패를 건네주었다.
사타가 감사패에 적힌 문구를 읽어내려갔다.
“이은우 군은 잠비아에 대한 큰 사랑으로 잠비아의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큰 금액을 기부하여 잠비아를 더욱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으므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2021년 5월 12일 잠비아 대통령 카운다.”
수행원들과 캠프의 아기들이 박수를 쳤다.
카운다가 허리를 굽혀 은우에게 상장을 수여했다.
“고맘뜹니댜. 하뷰지. 더 열심히 하게요.”
“은우야, 우리나라에 와줘서 정말 고맙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줘서 정말 고마워.”
갑자기 까만색 리무진 두 대와 거대한 화물 트럭 한 대가 캠프로 들어왔다.
카운다가 사타에게 물었다.
“저건 누구지? 우리 말고 또 누가 오나?”
사타가 카운다에게 귓속말로 대답했다.
“차 위에 달린 국기를 보니 탄자니아의 대통령 존이 오는 것 같습니다.”
“존이? 설마? 우리처럼 감사 표시를 하려고.”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차에서 내린 대통령 존이 두리번거리며 은우를 찾았다.
길동이 존에게 인사를 먼저 건넸다.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제가 비서의 전화를 받았던 은우 매니저 김길동이라고 합니다.”
“아, 반갑습니다. 탄자니아의 대통령 존입니다.”
“안녕하세요. 대통령 하뷰지. 저는 이은우임니댜.”
“네가 은우구나. 사진보다 훨씬 예쁘구나. 할아버지가 내게 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서 왔는데 한번 보지 않으련? 은우에게 줄 과자집을 내리세요.”
열 명이 넘는 수행원들이 화물 트럭에 실린 과자집을 낑낑거리며 내렸다.
“우와아아아아아. 이거 다 과자예요?”
케미기샤도 은우의 옆에서 탄성을 질렀다.
“저기 사탕도 있고 젤리도 있어. 은우야. 한 달 내내 배부르겠는데.”
“헨젤과 그레텔 가타. 헤헤헤헤. 우리 이따 저 집에 들어가서 과자 뜨더머꼬 놀쟈. 대신 게임을 조금만 해야 해.”
“응.”
옆에 서 있던 탄자니아의 국무총리 마젱고가 존에게 말했다.
“대통령님 증정식 준비를 할까요?”
“시작하시오.”
“수행원들은 증정식을 준비하라.”
마젱고의 말이 떨어지자 수행원들이 바닥에 붉은 카펫을 깔았다.
양옆으로는 나팔을 든 수행원들이 일렬로 서 은우의 등장에 맞추어 나팔을 불었다.
마젱고가 문구를 읽기 시작했다.
“이은우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힘든 삶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물심양면으로 도왔기에 우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증을 수여한다. 이 증은 이은우가 죽을 때까지 탄자니아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음을 증명하며 체류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또 이은우는 세렝게티 초원에서 원하는 관광상품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만약 함께 사용하고픈 가족이 있다면 가족 역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증의 기한은 평생이다.”
존이 무릎을 굽혀 은우에게 상을 주었다.
“은우야, 탄자니아에 놀러 오렴. 탄자니아의 국민들이 너를 환영할 거야.”
“감샤함니댜. 하뷰지.”
은우가 상을 받고 돌아오자 케미기샤가 은우에게 말했다.
“우와, 은우 정말 대단하다. 대통령 할아버지한테 상을 두 개나 받았어. 세렝게티도 갈 수 있고. 진짜 멋져.”
“게임 가튼 건 비교갸 안 대지? 나중에 가치 가쟈.”
은우가 케미기샤의 손을 꼬옥 잡았다.
잠비아의 대통령 카운다가 사타에게 속삭였다.
“아니, 왜 우린 저런 생각을 못 한 거요? 은우 표정을 보니 저쪽 선물을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사타도 속으로는 뜨끔했지만 인정할 수는 없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저희가 은우에게 준 소 열 마리 중 일곱 마리가 암소고 그중 세 마리가 현재 임신 중입니다. 소가 새끼를 낳으면 달라질 거예요. 우리는 그러니까 총 13마리의 소를 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이따 헤어지기 전에 은우에게 그 말을 꼭 하시오.”
사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캠프 안으로 여러 대의 차량이 들어오고 있었다.
카운다가 짜증을 냈다.
“대체 이번엔 또 어느 나라란 말이오?”
사타가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깃발을 보니 콩고의 대통령 시마가 오는 것 같습니다.”
“시마까지.”
카운다는 자신의 계획이 점점 틀어지는 것 같아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긴 다른 나라의 대통령들도 자국의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순 없겠지. 하지만 은우가 처음 봉사를 시작한 나라가 우리나라니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해 주면 좋으련만.’
차에서 내린 시마가 은우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했다.
“안녕, 은우야. 난 콩고의 대통령 시마란다. 어제 네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노래를 정말 잘하더구나.”
시마가 은우의 엉덩이 댄스를 추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난 너무 기여억.
커리를 나서면 날 보는 시션틀.
누나, 요나, 하뷰지, 할모오니.
내갸 그러켁 기겨운 가요.]
카운다가 사타에게 말했다.
“대체 언제 시마가 춤 연습까지 했단 말이오. 나도 좀 더 철저하게 준비했어야 해.”
“저도 다음엔 은우 앨범 전곡을 커버해 오겠습니다.”
은우가 시마의 노래에 박수를 쳤다.
“와아 너무 머디떠요.”
“칭찬해줘서 고맙구나. 그렇지만 은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은우야, 콩고의 국민들이 은우를 위해 작은 선물을 마련했는데 받아주지 않으련?”
“선무리요. 와아아.”
케미기샤가 은우의 옆에서 속삭였다.
“은우 선물 많이 받아서 부러워. 오늘 은우 생일 같다.”
“헤헤헤헤. 이러케 마는 상과 선뮤를 받댜니. 꿈만 가타.”
시마가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오랑우탄을 데려오라.”
“네.”
수행원들이 트럭에서 오랑우탄을 데려왔다.
“은우야, 널 위한 선물이란다.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오랑우탄이란다.”
은우는 겁에 질린 오랑우탄의 두 눈을 보았다.
‘나 때문에 나라를 떠나서 멀리 왔구나. 불쌍해.’
은우가 시마에게 말했다.
“하뷰지, 오랑우탄 발모게 인는 쇠사슬 좀 푸러 줄 뚜 이떠요.”
“그럼 오랑우탄이 도망갈지도 모르는데.”
“개차나요. 아플 거 가타요.”
“알았다. 오랑우탄의 쇠사슬을 풀어줘라.”
수행원들이 오랑우탄의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오랑우탄은 쇠사슬이 사라진 발목을 만져보더니 은우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케미기샤가 말했다.
“배고파서 저러는 거 아닐까? 나도 예전에 배고플 때 사람들이 뭐 줄까 하고 계속 따라다녔거든.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은우가 백수희에게 물었다.
“눈나, 머글 거 이떠요?”
“식당에 가서 가져올게.”
백수희가 식당에 가서 사과와 빵을 가져와 오랑우탄에게 주었다.
오랑우탄은 허겁지겁 빵과 사과를 먹기 시작했다.
“근데, 은우야 오랑우탄이 저런 거 먹어도 될까?”
“대통령 하뷰지, 오랑우탄 머 머꼬 사라요?”
“과일을 먹고 살지. 바나나를 좋아하고.”
“아아.”
오랑우탄이 배가 부른지 흡족하게 웃으며 은우를 따라다녔다.
케미기샤는 처음 보는 오랑우탄이 신기한지 오랑우탄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
케미기샤가 아랫입술을 뒤집고 한쪽 팔을 위로 올리고 다른 쪽 팔은 아래로 향하게 하여 울음소리를 내었다.
오랑우탄이 황당한 듯 케미기샤를 바라보았다.
“오오오오오오,”
케미기샤가 오랑우탄을 보고 울었다.
은우도 장난기가 발동하여 오랑우탄 흉내를 시작하였다.
“오오오오오오오오.”
놀란 오랑우탄이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
케미기샤와 은우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대통령 시마의 옆에 서 있던 국무총리 바하티가 말했다.
“어서 명예국민증을 수여하셔야죠.”
“아, 그렇지. 수행원들은 수여식을 준비하라.”
“네.”
빨간색 레드 카펫이 깔리고 수행원들이 은우의 발걸음에 맞추어 북을 쳤다.
바하티가 문구를 읽기 시작했다.
“이은우는 평소 콩고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사랑으로 콩고 국민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또한 외국인이라고 믿기지 않는 봉사 정신과 인류애로 자국민도 하기 힘든 여러 선행을 하였다. 콩고의 국민은 이은우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명예국민증을 수여한다.”
“걈샤함니댜.”
은우가 배꼽 인사를 했다.
길동은 오늘의 상황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캐스팅 전쟁은 저리 가라네. 이제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가도 국빈 대접을 받겠어. 은우 정말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