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형제의 이름으로
“와아, 휴이리다.”
상쾌한 휴일 아침, 은우는 케미기샤를 만날 생각에 설렜다.
‘오늘은 케미기샤랑 수영장도 가기로 했고 또 채드윅이 준 사과폰도 전해줘야 하니까.’
은우가 잠이 든 길동을 깨웠다.
“횬아, 횬아. 아치미예요. 이러냐요.”
길동은 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네. 은우야 휴일인데 더 자자. 형아, 졸려.”
“아침 머꼬 준비하고 케미기샤 보러 가야 해요. 횬아. 오늘 수영장 가기로 했단 마리예요.”
“알았어.”
길동은 졸린 눈을 부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 케미기샤를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은우와 길동은 조식을 먹으러 호텔 식당으로 갔다.
“횬아, 요플레 마니요.”
은우는 초코 시리얼 위에 요플레를 얹은 것과 미니 햄버거를 아침으로 먹었다.
길동은 햄을 잔뜩 넣은 토스트와 치킨을 먹고 있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은우가 접시를 가지고 일어섰다.
“은우야, 벌써 다 먹었어?”
“네. 가일 좀 가져올게요. 햄버거랑.”
“다 먹었다면서?”
“케미기샤 주게요. 마디떠더요.”
은우가 접시 가득 과일과 미니 햄버거를 가지고 왔다.
“가요.”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는 은우를 보며 길동은 걱정이 되었다.
‘음식 저렇게 가져가도 되는 걸까? 영어를 못 하니 영 답답해서. 한국 같으면 물어봤을 텐데.’
길동은 테이블 위에 평소보다 많은 팁을 올려놓았다.
은우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비닐에 넣었다.
‘케미기샤가 좋아하겠지?’
은우는 케미기샤를 생각하며 웃었다.
***
길동의 차가 캠프에 도착했다.
케미기샤와 백수희, 이태석 신부가 은우를 맞이했다.
“케미기샤.”
“은우야.”
케미기샤와 은우는 서로를 보자마자 얼싸안았다.
백수희가 큰 가방을 멘 채 웃었다.
“은우 덕분에 수영장도 다 가 보겠네. 아프리카에서.”
이태석 신부도 웃었다.
“아프리카에 5년 동안 있었는데도 수영장에 가는 건 처음이야. 그거 알아요? 현지 물가로 생각하면 꽤 비싸다는 거.”
“그럴 거 같아요. 여기 사람들 중엔 죽을 때까지 수영장에 못 가 보는 사람도 많겠죠.”
“그렇죠. 물이 귀하기도 하고.”
다섯 사람은 길동의 차를 탔다.
은우가 가방에서 음식을 꺼냈다.
“머거. 케미기샤. 내가 가져와떠.”
“거마어.”
케미기샤는 미니 햄버거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와아, 진짜 마디떠.”
은우가 맛있어하는 케미기샤를 보며 방긋 웃었다.
백수희가 서운한 듯 은우를 보며 말했다.
“은우야, 눈나는? 케미기샤만 주고 눈나는?”
“눈나. 미안해여.”
백수희는 가끔 지나치게 케미기샤만 챙기는 은우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전엔 나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은우가 백수희에게 바나나를 주면서 말했다.
“케미기샤는 햄버거 주고 눈나는 바나나 주고. 눈나도 햄버거 먹고 싶어. 으앙.”
백수희가 우는 흉내를 냈다.
백수희가 진짜로 운다고 생각한 은우는 당황했다.
“눈나, 울지 마라요. 여기 햄버거 머거요.”
은우가 한 손엔 햄버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론 백수희의 등을 토닥였다.
“눈나, 미안해요. 우지 마요.”
백수희는 은우의 반응이 궁금해서 더 서럽게 우는 척을 했다.
은우가 백수희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눈나. 눈나. 미안해요.”
은우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백수희는 너무 놀라 일어나고 말았다.
“은우야, 누나 괜찮아. 울지 마.”
“눈나도 따랑해요.”
“알지. 알아. 눈나가 장난을 지나치게 쳤어. 미안해.”
“눈나.”
은우가 백수희에게 안겼다.
백수희는 그동안 은우에게 가졌던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순수한 우리 은우. 내가 조금 서운하다고 했더니 금방 울음을 터트리고. 이젠 서운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게. 은우야.’
이태석이 말했다.
“누나가 나빴네. 우리 착한 은우를 울리고. 그지 은우야?”
“눈나 안 나빠요. 눈나 조아요.”
백수희가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울면서도 눈나 편들어주는 거야? 고마워. 은우야. 사랑해.”
이태석이 말을 이었다.
“은우야. 백수희 누나만 사랑해? 신부님은? 신부님은 안 사랑해?”
“신부님도 따랑해요.”
“나도 울면서 사랑한다고 해 줘. 내 건 너무 밋밋하잖아.”
듣고 있던 길동이 말했다.
“은우야, 나도. 나도 사랑한다고 해줘야지. 누구랑 가장 많이 다녀? 나잖아. 나를 제일 사랑해야지.”
은우는 누구 말을 따라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다 따랑해요. 싸우지 마요.”
***
어느덧 차가 수영장에 도착했다.
케미기샤는 처음 본 수영장에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크다. 이렇게 크고 깨끗한 물은 처음 봤어.”
케미기샤가 보아온 물은 대부분 더러운 흙탕물이었다. 캠프에 온 이후로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었지만 물은 언제나 귀했다. 마실 물이 귀했으므로 씻을 물 또한 넉넉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깨끗한 물이 이렇게 큰 곳에 잔뜩 있다니. 너무나도 신기할 뿐이었다.
“사진 찍고 싶어. 여기서. 여기 온 걸 평생 기억하고 싶어.”
케미기샤의 말을 듣고 길동이 카메라를 꺼내며 말했다.
“여기서 단체 사진 한 장 찍어야겠네. 아프리카에서 방문한 수영장. 모두의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니까.”
백수희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길동을 보며 말했다.
“저기 직원 있으니까 직원한테 찍어달라고 해요. 길동 씨도 같이 왔는데 사진 찍어야죠.”
백수희가 수영장에 서 있는 직원에게 부탁을 하자 직원이 방긋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러 왔다.
“자, 웃어요. 치즈.”
치즈 소리가 나자마자 케미기샤가 은우의 뺨에 뽀뽀를 했다. 은우가 부끄러워 웃었다.
“다시 한 번 찍어요. 치즈.”
케미기샤가 은우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방긋 웃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은우가 케미기샤에게 물었다.
“케미기샤, 수영복 이떠?”
“수영복?”
“수영할 때 임는 거야. 엄뜨면 사야 해. 횬아.”
은우가 길동을 불렀다.
“케미기샤 수영복 엄때요.”
“그래, 그럼 사야겠네.”
수영장 근처의 매점에서 수영복과 음료,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다.
“골라뱌.”
케미기샤는 처음 보는 수영복이란 옷에 당황했다.
‘정말 작은 바지네. 저걸 왜 입지?’
길동이 점원에게 말했다.
“어울리는 걸로 골라주세요. 사이즈 잘 맞는 걸로요.”
점원이 케미기샤를 유심히 보더니 옷을 골라주었다.
“사이즈는 이걸 입으면 될 거 같고 디자인은 두 개가 있단다. 둘 중에 골라보렴.”
점원은 까만색 수영복과 빨간색 수영복 두 개를 내밀었다.
“이거요.”
케미기샤가 빨간색 수영복을 집으며 말했다.
은우와 케미기샤, 길동, 이태석 신부님은 남자 탈의실로 들어가고 백수희는 여자 탈의실로 들어갔다.
“횬아.”
은우가 수영복을 가지고 길동 앞에 섰다.
길동이 은우의 수영복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은우는 공룡변신로봇이 그려진 파란색 수영복을 입었다.
케미기샤가 수영복을 들고 울상을 지었다.
“은우야, 이거 어디가 앞이야? 못 찾겠어.”
“여기가 앞이야.”
이태석 신부님이 케미기샤가 수영복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근데 이 수영복 너무 촌스럽다. 가격은 꽤나 비싸던데 이런 건 차라리 한국에서 사 오는 게 쌌을 거야.”
길동이 대답했다.
“왜 우리도 캐리비안 바이 같은 데서 수영복 사면 비싸잖아요. 비슷한 거겠죠.”
수영복을 입은 은우가 케미기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가쟈. 케미기샤.”
“응.”
길동은 튜브를 꺼내 바람 넣는 기구로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이태석 신부가 길동에게 말했다.
“준비성 철저하네. 한국에서 가져온 거야?”
“혹시 몰라서 챙겨왔죠. 촬영이 길기도 하고 한 번은 수영장에 갈 거 같기도 해서.”
“힘들 텐데. 도와줄까?”
“괜찮아요. 그보다 먼저 나가서 은우랑 케미기샤 좀 돌봐 주세요.”
이태석 신부가 먼저 수영장으로 나갔다.
은우가 케미기샤에게 말했다.
“물 소게서 놀면 신냐. 어서 드러가쟈.”
“물이 너무 많아서 무서워.”
“갠차나. 시언해.”
은우가 두려워하는 케미기샤의 손을 잡아주었다.
은우와 케미기샤는 낮은 풀에 들어갔다.
“와아.”
케미기샤는 깨끗한 물속에 몸을 담그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이 너무 깨끗해. 내 발이 보여.”
케미기샤가 신이 나서 손과 발을 마구 움직였다.
이태석 신부가 은우와 케미기샤를 위해 구명조끼 두 개를 가져왔다.
“이거 입고 놀아. 위험해.”
“여긴 갠차나요.”
“그래도 모를 일이야. 물은 항상 조심해야 해.”
이태석이 은우와 케미기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주었다.
은우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헤헤헤헤헤.”
케미기샤는 물에 뜨는 은우를 보며 놀랐다.
“물에 안 빠지네?”
“응. 이거만 이뜨면 천하무저기야.”
케미기샤는 물속에 들어가자 붕붕 뜨는 자신의 몸이 신기했다.
‘세상에 이렇게 놀라운 것들이 많이 있었다니.’
케미기샤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을 잃은 뒤 자신의 인생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었다. 죽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 우연히 만난 린다가 빛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캠프에 와선 먹을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학교에 다니며 선생님이 되겠다는 작은 꿈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은우를 만났다. 은우를 만나고 나선 자신의 삶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은우는 많은 것을 주었다. 먹을 것, 입을 것, 학용품도. 함께 영상도 찍고 수영장에도 왔다.
‘은우를 만나고 나서 내 인생이 너무 달라졌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한국엔 여기보다 좋은 게 더 많이 있다고 했지? 꼭 한국에 가고 싶어.’
더 큰 욕심을 가져보는 케미기샤였다.
은우는 구명조끼를 입고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백수희가 쟁반에 든 음료수와 도넛을 들고 왔다.
“애들아, 이거 먹고 해.”
“눈나. 케미기샤야 머그러 가쟈.”
은우와 케미기샤가 신이 나서 물 밖으로 나왔다.
“우와. 마디께댜.”
은우가 도넛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케미기샤도 은우를 따라 도넛을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에 케미기샤는 깜짝 놀랐다.
“진짜 맛있어. 와.”
“마디찌?”
은우가 케미기샤를 보며 방긋 웃었다.
길동이 커다란 오리 모형 튜브를 들고 나왔다.
“은우야, 이거 타고 놀아.”
이태석이 길동을 걱정하며 말했다.
“힘들었지? 시간 오래 걸린 거 봐.”
“바람 넣는 게 있어도 족히 이십 분은 걸리는 거 같아요. 노가다예요. 노가다.”
“헤헤헤. 오리 튜브다.”
은우가 신이 나서 오리 튜브를 안았다.
“힘든데 좋아하는 걸 보면 안 줄 수도 없고. 재밌게 놀아. 은우야.”
케미기샤가 처음 보는 튜브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이거 물 위에서 뜨는 거야. 케미기샤. 이거 타고 놀면 재미떠.”
은우가 백수희에게 물었다.
“눈나. 튜브 위에서 도너츠 머거도 대요?”
“그래.”
길동이 오리 튜브를 물속에 넣고 잡아주었다.
케미기샤와 은우는 튜브 위에 앉아 여유롭게 도넛을 먹었다.
“진짜 꿈만 같아.”
케미기샤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똑같은 아프리카였지만 은우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 느껴지는 아프리카는 너무도 달랐다.
‘나를 위해 좋은 것만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은우는.’
시원한 물 위에 앉아 달콤한 도넛을 먹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싶었다.
은우가 케미기샤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케미기샤도 은우를 보며 웃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케미기샤는 은우와 함께라면 세상 어느 곳에 가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