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블랙 레오파드 2] (13)
식사를 마친 뒤 은우가 길동에게 말했다.
“횬아, 고프로 이쬬?”
길동은 늘 고프로를 가지고 다녔지만 한 번도 은우가 먼저 고프로를 찾았던 적은 없었기에 놀랐다.
“영상 찍게?”
“네, 케미기샤랑요.”
은우가 고프로를 받아서 켰다.
“우와, 여기 내 얼굴이 보인다.”
케미기샤는 고프로 전면화면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신기하찌? 이걸로 찌그면 떨어져 이뜰 때도 서로를 기억할 뚜 이뜰 거야.”
“오, 좋다.”
케미기샤는 세상이 이토록 발전하고 대단해졌다는 것에 놀랐다.
은우는 케미기샤에게 휴대폰을 선물하고 싶었다.
‘케미기샤가 휴대폰을 가지면 언제든 나랑 전화를 할 수 있을 텐데. 여긴 아프리카라 휴대폰을 사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돈이 얼마나 드는지도 모르겠고.’
은우는 그동안 돈을 벌면서도 자신이 버는 돈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별로 없었다. 은우에겐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한 일로 여겨졌고 숫자는 전생과 전전생을 통틀어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도 숫자를 배우는 일이 느렸다.
하지만 케미기샤에게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이제부턴 숫자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은우가 케미기샤에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말했다.
“케미기샤야, 우떠뱌.”
케미기샤가 고프로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너무 이상해. 은우는 예쁜데.”
“아니야. 케미기샤도 이뻐.”
은우가 케미기샤의 볼에 뽀뽀를 해 주었다.
“헤헤헤헤헤헤.”
“헤헤헤헤헤헤.”
은우와 케미기샤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은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조아. 아이스크림이 머꼬 시퍼.
아이스크리믈 너무 마니 머거셔 배타리 나떠요.
병언에 가니 천사가튼 간호샤 눈냐가 내 엉덩이를 찔러요.
아이이아이이아아아앙.
어셔 도망갸쟈.
아이아아아아아아아앙.
어셔 도망가쟈.”
케미기샤는 은우가 형과 함께 부르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건 파드와 형이랑 같이 밤마다 부르던 노래인데. 은우가 파드와 같아.’
파드와와 케미기샤는 깜깜한 밤이면 뚫린 지붕 사이로 들어오는 별빛을 의지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슬픔도 배고픔도 잊을 수 있었다.
파드와는 재미있고 웃기는 가사를 잘도 지어냈다.
파드와의 노래 덕분에 케미기샤는 웃을 수 있었다.
케미기샤가 2절을 이어서 불렀다.
“초콜릿 좋아. 초콜릿 먹고 싶어.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어서 충치가 생겼어요.
병원에 가니 멋진 치과의사 선생님이 내 입을 벌려요.
아이이아이이아아아앙.
어서 도망가자.
아이아아아아아아아앙.
어서 도망가자.”
은우는 노래를 부르면서 돼지코 만들기를 했다.
케미기샤가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터졌다.
은우가 케미기샤의 볼을 잡아당겼다.
케미기샤의 볼이 쭈욱 늘어났다.
케미기샤가 은우의 볼을 잡아당겼다.
“헤헤헤헤헤헤.”
“헤헤헤헤헤헤.”
두 사람은 정신없이 웃었다.
“케미기샤. 공기 노리 하까?”
“좋지.”
은우가 주머니에서 돌멩이를 꺼냈다.
백수희가 그걸 보고 놀라서 물었다.
“아프리카에도 공기가 있어? 우리나라에서 하는 거랑 비슷한가?”
은우가 바닥에 돌멩이를 던지고 한 알씩 주워서 담기 시작했다.
케미기샤가 은우의 공기 실력에 감탄했다.
“우와.”
“헤헤헤헤헤헤.”
은우는 환생의 긴 시간 동안 자신의 공기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파드와일 땐 케미기샤랑 매일 공기를 하고 놀았었는데.’
길고 배고픈 밤, 놀잇감이 없는 긴 시간을 파드와와 케미기샤는 함께 노래를 부르며 공기놀이를 하며 이겨내곤 했었다.
은우는 꺾기까지 거침없이 질주했다.
“우와, 은우 잘하네. 그 작은 손으로. 나도 학교 다닐 때 공기 좀 했었는데 같이 해도 될까?”
“조아요.”
두 번째 선수는 케미기샤였다.
케미기샤는 꺾기에서 세 알을 먹고 다음 판으로 넘어갔다.
“우와, 케미기샤 잘하네. 케미기샤만 삼 점이야.”
“헤헤헤헤헤. 놀 게 별로 없어서 애들끼리 공기를 많이 하거든요.”
케미기샤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케미기샤는 두 번째 꺾기에 들어가기 전에 죽었다.
“자, 이제 내 차례.”
백수희가 자신 있게 돌을 바닥에 던졌다.
1단계인 하나의 돌을 던져서 받는 도중에 백수희는 손이 아파 돌을 놓치고 말았다.
“아우, 아파. 이거 대체 어떻게 했어?”
백수희는 돌을 던져서 받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묵직함에 놀라고 말았다. 한국에서 하던 플라스틱 공기와 다르게 돌을 주워서 하는 아프리카식 공기는 돌이 단단하고 부드럽지 않아 손이 아팠다.
백수희는 그제서야 케미기샤의 손을 보았다.
케미기샤의 손은 매우 거칠었다.
“케미기샤, 손이 왜 이렇게 거칠어?”
“여기선 다들 이래요. 아이들도 대부분 일을 하니까요. 캠프에 와서 큰일을 하진 않지만, 땔감을 줍거나 흙집을 고치거나 물을 길어오거나 그런 일을 매일 해요. 캠프에서 가장 어린 아기인 세 살짜리 알지히도 집 고칠 흙을 날라오는걸요.”
“그렇구나.”
은우는 케미기샤의 말을 들고 파드와였을 때가 기억났다.
‘자주 고쳐야 하는 흙집을 고쳐줄 부모님이 없으니 우리 집은 점차 낡아갔었지. 케미기샤와 내가 흙을 날라다 붙여도 역부족이었어. 천장은 키가 닿지 않아 어쩔 수도 없었고. 비가 오면 비가 새고 건기가 돼서 기온이 내려가면 추위가 몰려들었지.
그래도 추억이 깃들었던 우리 집인데 지금쯤 그 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프리카에 오니 추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은우였다.
“자, 이제 가야 하지 않을까?”
옆에서 공기놀이를 구경하던 길동이 일행을 재촉했다.
“캠프까지 갔다가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은우는 케미기샤와의 짧은 이별이 아쉬웠다.
“케미기샤. 다으멘 가치 수영장에 가자.”
“수영장?”
“응, 내가 촬영하면서 룬다에게 드러는데 조은 수영장이 이따고 해떠. 더울 때 수영하면 조커든. 무레 드러가면 아주 시언해.”
“응.”
케미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는 내가 모르는 좋은 것을 많이 알고 있구나.’
네 사람은 함께 길동의 차에 탔다.
길동의 차가 캠프 근처에 갔을 무렵 케미기샤가 외쳤다.
“잠시 차를 세워요. 여기 반딧불이 나와요.”
백수희가 케미기샤의 말을 듣고 놀랐다.
“반딧불이 있어? 여기에? 나 반딧불 보고 싶은데.”
“그럼 일단 세웁니다.”
길동이 차를 세웠다.
백수희가 길동에게 말했다.
“아프리카가 확실히 환경오염도 적나 봐요. 반딧불이 있다니.”
“그게 그렇게 보기 힘든 건가요?”
“보기 힘들죠. 반딧불 정말 예쁜데. 예전에 제가 드라마에서 반딧불이 나오는 장면을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다 CG로 만들어서 넣었거든요. 우리나라에선 정말 깊은 시골에 가지 않으면 보기 힘들어요. 1년 내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억에 한두 달 정도만 볼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시간도 깜깜해진 밤이어야만 가능하고.”
길동은 백수희의 말을 들었지만, 반딧불에 관심이 가진 않았다.
‘하지만 뭐든 귀한 건 오래 기다려야 하지. 맛집도 그렇거든. 맛있는 집은 오래 줄을 서야 하니까.’
세 사람은 케미기샤가 이끄는 대로 풀숲으로 들어섰다.
거기에 작은 요정과 같은 반딧불들이 날고 있었다.
“너무 예뻐.”
은우는 다시 반딧불을 보게 된 것이 너무도 반가웠다.
케미기샤는 자신도 작지만 무언가 은우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기뻤다.
“네가 기뻐해서 나도 기뻐. 은우야.”
백수희가 케미기샤와 은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한국에선 말야. 반딧불이를 보면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소원 빌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은우랑 케미기샤는?”
은우가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케미기샤와 한국에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케미기샤가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은우가 행복하게 해 주세요. 저에게 잘해 주는 은우에게 좋은 일만 생기게 해주세요.’
길동은 고프로로 케미기샤와 은우를 촬영 중이었다.
‘은우가 케미기샤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만날 때마다 볼 수 있도록 촬영해 줘야겠어.’
반딧불에 소원을 빌고 난 후 네 사람은 캠프로 향했다.
“케미기샤야 다음 휴이레 보쟈. 다으멘 더 마시는 거 먹쟈. 수영장도 가고.”
“은우야. 촬영 잘해.”
케미기샤와 백수희를 뒤로 하고 길동과 은우가 차에 올라탔다.
돌아가는 차 안, 은우는 길동에게서 고프로를 받아 녹화된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케미기샤가 웃고 있었다.
‘케미기샤, 형이 더 열심히 해서 네 꿈도 이루고 아프리카의 다른 아기들도 도울 수 있도록 할게.’
***
다음 날 아침 은우는 조식을 챙겨 먹고 촬영장에 나갔다.
채드윅이 은우를 보며 웃었다.
“일찍 왔네. 은우야. 다른 스태프들은 아직 안 왔는데. 스태프보다 부지런한 배우라니.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겠어.”
할리우드의 유명한 배우들 중 몇몇은 지각이 습관이어서 늘 촬영을 지연시키는 원인이 되곤 했다. 그래도 스타파워를 누리고 싶은 몇몇 감독들은 그런 할리우드의 스타마케팅에 기대어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촬영을 하곤 했다.
채드윅 감독은 촬영을 시작하고 난 후 은우의 성실함과 준비성에 놀라곤 했다.
“은우는 촬영하는 게 재밌어?”
“네, 재미떠요. 그리고 케미기샤랑 약속해 떠요. 가치 극장에 가서 보기로. 그래서 잘해야 해요.”
“케미기샤가 누구야? 은우 친구?”
“후언하고 인는 칭규인데 가치 한구그로 도라갈 거예요. 특별한 사라미거든요.”
“이야, 은우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니 부러운데.”
“긍데 감독님, 그 핸드포는 얼마예요?”
아까부터 은우는 채드윅의 핸드폰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빠 것만큼이나 좋아 보이는데 비싸겠지?’
채드윅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놀랐다.
“글쎄,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왜, 사과폰이 가지고 싶니?”
채드윅은 은우의 키즈폰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것이 은우의 아빠가 은우가 여러 가지 인터넷 환경에 노출될 것을 걱정해서 사 준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교육적인 이유로 키즈폰을 준 것이니 사과폰을 사 줄 수도 없고.’
은우 정도라면 휴대폰 광고 모델을 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블랙 레오파드 2]에서 받기로 한 출연료만 해도 300만 달러.
이미 ‘위대한 목소리’로 인해 이름값이 생긴 은우라면 영화촬영 조건으로 휴대폰 몇 개를 더 건다고 해서 무리가 될 일도 없었다.
“케미기샤한테 사 주고 시퍼서요. 저금통에 도늘 모으고 인는데 얼마만큼 필요한지 잘 모르게떠요.”
채드윅은 생각지도 못한 은우의 답변에 놀랐다.
‘더 좋은 휴대폰을 가지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구나. 친구를 생각하느라 그랬어. 은우는 어쩜 이렇게 마음이 천사 같지? 은우는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이야.’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성이 나쁜 사람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간혹 그런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 같은 인터넷 사회에서는 오래갈 수 없었다.
‘은우를 와찰라로 캐스팅하길 정말 잘했어.’
채드윅은 은우의 마음씨에 다시 한 번 감동했다.
“케미기샤 진짜 좋겠다. 동전을 모아서 휴대폰을 사 주다니.”
채드윅은 자신이 쓰던 다른 휴대폰이 생각났다.
‘업무 때문에 휴대폰을 늘 두 개 쓰고 있었는데 어차피 하나가 좀 오래되긴 했으니 이번 기회에 바꿔볼까?’
채드윅이 은우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은우야. 오래된 휴대폰도 괜찮아?”
“전하만 대면 대요.”
“그럼, 내가 내일 휴대폰 하나 가져다줄게. 너 주고 난 이번 기회에 새로 하나 사면 되겠다.”
“고맘뜹니댜. 고맘뜹니댜.”
은우가 배꼽 인사를 했다.
‘녀석, 별거 아닌 일에 이렇게 기뻐하다니.’
채드윅은 친구를 생각하는 은우의 순수한 마음이 너무도 귀엽게 느껴졌다.
은우는 케미기샤를 생각하며 기뻐했다.
‘케미기샤 이제 휴대폰이 생길 거야. 그러면 너랑 나랑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어. 문자도 할 수 있고. 신난다. 다음 휴일엔 즐거운 일이 아주 많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