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72화 (172/257)

172화. [블랙 레오파드 2]

은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케미기샤가 있는 방으로 갔다.

케미기샤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 7명과 함께 방을 쓰고 있었다.

“케미기샤.”

자리에서 일어난 케미기샤가 은우를 보고 웃었다.

“잘 잤어? 은우야?”

“응, 냐도. 아침 머그러 가쟈.”

은우가 케미기샤의 손을 꼬옥 잡았다.

“여기서 먹어도 괜찮아.”

“나랑 가자.”

은우는 케미기샤에게 더 많은 것을 먹이고 싶었다.

‘여기서 단체로 식사를 하면 맛있는 걸 많이 먹을 수 없잖아. 그리고 오늘 점심땐 채드윅 감독이 온다고 했으니까.’

케미기샤를 그리워한 오 년의 시간에 비하면 이 주는 짧은 시간이었다.

‘촬영이 끝나면 다시 널 보러 올게.’

은우와 케미기샤는 함께 손을 잡고 식당으로 갔다.

백수희가 망고를 자르고 있었다.

“잘 자떠요? 눈나.”

“잘 잤어? 와찰라?”

“네에. [와따따 포에버]”

은우가 [블랙 레오파드]의 주인공 와찰라의 멘트를 따라 했다.

가슴 앞으로 엑스자를 만들며 양다리를 크게 벌렸다.

케미기샤도 은우의 동작을 따라 했다.

“[와따따 포에버].”

백수희가 신기한 듯 케미기샤에게 물었다.

“케미기샤도 [블랙 레오파드] 봤어?”

“두 번 봤어요. 너무 재밌는데 선생님들이 가끔만 봐야 한대요.”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린다가 말을 보탰다.

“애들이 정말 좋아해요. 흑인 영웅이잖아요. 동화책도 그렇고 티비도 그렇고 온통 백인들 이야기뿐인데 흑인이 주인공이 된 영화니까요. 그리고 거기선 아프리카가 슬픔의 땅이 아니잖아요.”

백수희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간 영화 속에서처럼 아프리카가 잘사는 나라가 돼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활동가가 없어도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게요. [블랙 레오파드 2]가 개봉하면 애들한테 제일 먼저 보여줄 거예요.”

“은우가 출연한 걸 알면 애들이 놀라겠네요?”

“그렇죠. 오늘은 은우가 떠나는 날이라 제가 이따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거예요.”

케미기샤는 린다와 백수희의 이야기를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늘 떠나? 은우?”

“미아내. 어떠케 말해야 할지 몰라떠.”

여러 번 말하려고 망설였지만 즐거워하는 케미기샤에게 다시 또 헤어져야 한다는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케미기샤야. 내 꿈을 이루면 너에게 더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잠시만 날 기다려줘.’

케미기샤는 은우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이 싫었다.

“네가 와찰라야?”

“응, 아기 와찰라.”

“멋지다. 잘 찍고 와.”

영화 속의 멋진 인물이 된다니.

슬프지만 은우를 보내줘야 한다고 케미기샤는 생각했다.

길동이 라면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모닝 라면 드실 분? 짜장라면도 있어요.”

백수희와 이태석은 라면을, 린다와 은우, 케미기샤는 짜장라면을 선택했다.

길동이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린다가 이태석에게 물었다.

“오늘 길동 씨랑 은우만 떠나는 거죠?”

“네, 저랑 백수희 씨는 남아서 봉사를 더 하기로 했어요. 은우도 촬영이 끝나면 다시 이곳으로 올 거예요.”

“신부님이 오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길동이 라면을 완성해서 테이블로 가져왔다.

식탁 위에는 백수희가 차려놓은 과일과 린다가 차린 차슈와 옥수수가 놓였다.

“잘 머게뜸니댜.”

은우의 씩씩한 인사와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이태석 신부와 린다는 눈을 감고 기도를 마친 뒤 식사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라면 먹으니 좋다. 이게 한국의 맛이야.”

백수희가 라면을 먹고 감탄했다.

대체 이 까맣고 구불구불한 음식은 뭐지? 라고 생각하던 케미기샤는 예상치 못한 짜장라면의 맛에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었다니.

케미기샤가 길동에게 외쳤다.

“더 주세요.”

길동이 남아있던 짜장라면을 케미기샤에게 덜어주었다.

은우는 케미기샤를 보며 웃었다.

‘내가 처음에 짜장라면을 먹었을 때 반응이랑 비슷하네. 한국에 가면 짜장라면보다도 맛있는 게 많이 있어. 치킨도 있고 피자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있고 마카롱도 있고.

케미기샤야, 언젠가 널 데리고 한국으로 갈게.’

은우는 미래를 그려보며 웃었다.

즐거웠던 아침 식사가 끝나고 은우와 길동은 짐을 챙기고 있었다.

케미기샤가 은우의 방으로 왔다.

“은우. 이거.”

케미기샤가 내민 것은 작은 나무로 깎아진 인형이었다.

“이게 머야?”

“내가 만들었어. 형이 그리울 때마다 형을 생각하면서 만든 건데. 널 보면 자꾸 형 생각이 나. 이거 행운 나무로 만든 거야. 마을 근처에 있는 나무.”

은우는 나무 인형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고마워. 케미기샤야. 너도 날 잊지 않았구나. 말하지 못했지만, 너도 날 알아보는구나.’

은우가 케미기샤를 세게 안으며 말했다.

“고마어. 케미기샤. 나도 네가 형제 가타. 우린 나미 아냐. 우린 형제야. 촬영이 끝나면 꼭 널 보러 오께.”

케미기샤가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점심때가 되자 채드윅이 차를 몰고 은우를 데리러 왔다.

은우는 케미기샤가 준 인형을 꼭 쥐고 채드윅의 차에 올랐다.

길동이 짐을 채드윅의 차에 실었다.

“땀이 줄줄 나네. 아프리카의 더위 너무 싫다.”

캐리어 몇 개를 차에 실었을 뿐인데 길동의 몸이 땀으로 젖었다.

“제가 뒷자리에 탈게요. 땀 냄새가 너무 나서.”

길동이 뒷좌석에 타고 조수석엔 은우가 앉았다.

“아기용 카시트도 챙겨올 걸 그랬나? 생각이 짧았어.”

길동은 은우가 조수석에 그냥 앉게 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길동이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채드윅에게 혹시 아프리카에 아기용 카시트 파는 곳이 있냐고 물어봐.”

은우가 채드윅에게 물었다.

“채드윅, 근처에 아기용 카시트 파는 고시 이떠요?”

“수도인 루사카 근처로 가거나 관광지인 빅토리아 폭포 근처에 가면 있을지도 모르지. 촬영 스태프에게 부탁해 볼게.”

채드윅이 전화로 촬영 스태프에게 부탁했다.

“구해준다고 했어. 촬영장까지만 가도록 하자.”

채드윅의 차가 촬영장으로 출발했다.

“채드윅, 아기 와찰라에게 가장 중요한 게 머예요?”

“가장 중요한 거?”

채드윅은 은우의 질문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감도기 언하는 거요.”

“아.”

채드윅은 은우의 심도 있는 질문에 깜짝 놀랐다.

‘감독의 의도를 묻다니 역시 대단해. 듀크야, 역시 넌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채드윅이 은우에게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듀크와 난 흑인들의 삶이 백인들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걸 불편하게 생각했어. [블랙 레오파드]는 주체적인 흑인 히어로를 그리기 위해 만든 영화야. 불쌍하고 도와주어야 할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갈 수 있는 그런 나라.

우리 흑인들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런 메시지를 그리고 싶었어.

물론 이게 아직은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하지만 난 언젠가는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들의 삶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

“저도 그러케 생각캐요. 전 아프리카에 학교를 만들고 시퍼요. 아이드리 아프로 행복하게 살 수 이께요.”

“그래, 가장 중요한 건 자립이니까.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건 한계가 있지.”

“이 영화가 잘대서 학교도 만들고 지속적으로 도아주고 시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채드윅의 몸엔 전율이 왔다.

듀크가 떠난 뒤 채드윅은 너무나 외로웠다.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고 지지해 줄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우가 나타난 것이다.

채드윅의 눈엔 은우가 자신과 함께 꿈을 꿀 동료로 보이기 시작했다.

***

촬영장에 도착하자 많은 스테프들이 은우를 반겨주었다.

스태프들 대부분이 흑인인 것에 은우는 놀랐다.

은우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채드윅이 말했다.

“흑인들이 너무 많지? 내가 인종차별을 했다고 생각하진 마. 아프리카에서 촬영하는 영화기 때문에 비용면에서도 할리우드에서 스태프들을 데려오는 것보단 현지에서 사람을 고용하는 게 더 유리했어.”

“전 아무 말도 안 해떠요.”

“그래, 할리우드에서 온 스태프들 중에도 흑인 스태프들이 많긴 해. 하지만 그건 내가 오래 일한 동료들이 흑인이 많았을 뿐이라고.”

“전 아무 말도 안 해떠요.”

채드윅이 웃었다.

“그래 아무 말도 안 하지만 그 순수한 표정 뒤에 사람의 비밀을 술술 털어놓게 만드는 마력이 있지.”

길동이 은우에게 분장사가 왔음을 알렸다.

은우는 길동과 함께 분장실로 갔다.

분장사는 은우의 귀여운 외모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 귀여운 외모를 가려야 하다니 슬픈데.”

길동이 걱정되는 말투로 물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은우가 아직 어려서.”

“분장과 CG를 함께 쓰기로 해서 다른 분장보단 시간이 적게 걸리겠지만 그래도 1시간은 넘을 거예요.”

“은우야 괜찮겠어?”

“개차나요? 횬아. 머찐 와찰라가 돼야죠.”

“은우 멋진데. 우리 아들은 너보다 나이가 한 살이나 많은데도 매일 티비를 보고 싶다고 조르는데 말야.”

“전 꾸미 이떠서요.”

은우는 케미기샤를 떠올리며 말했다.

분장사가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손에 꼭 쥔 그 나무 인형은 뭐야? 분장을 하려면 놓아야 할 텐데.”

“이거 소중한 거예요. 꼭 가지고 이떠야 해요.”

“하루 종일? 잠시도 내려놓을 수 없는 거야?”

“네네네네네.”

“그럼 감독님한테 부탁해서 설정으로 영화에 넣어줄 수 없냐고 물어봐. 그게 아니라면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들고 있을 순 없을걸.”

“네네네네네.”

은우는 채드윅에게 대본을 약간 수정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횬아, 이거 이러버릴 거 가타서 목거리로 만들 수 이떠요?”

“글세. 그게.”

길동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국이라면 목걸이를 만드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여기선 어떻게 해야 목걸이를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

백수희 씨에게 같이 오자고 할 걸 그랬나.

길동은 은우와 둘만 떠나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은우의 말을 들은 분장사가 은우에게 물었다.

“목걸이 만들고 싶어?”

“네네네네네.”

“여기 스태프들에게 물어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가죽끈으로 목걸이를 만들어도 되는 거면 여기 분장실에 남는 가죽끈이 있어.”

분장사는 은우의 다리에 오돌도톨한 까만색 피부를 붙여 주었다.

은우는 신이 나서 외쳤다.

“와찰라가 된 거 가타요. 신난다. 저한테도 초능력기 생기까요?”

“넌 이미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초능력. 이렇게 귀여운데 누가 널 사랑하지 않겠니?”

분장사는 다른 스태프에게 물어 은우의 나무 인형에 작은 고리를 붙여 주었다.

“자, 됐다.”

고리에 가죽끈을 넣은 목걸이가 완성되었다.

“안셩.”

은우가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케미기샤가 준 소중한 목걸이가 은우의 목에 걸렸다.

한 시간의 분장이 끝난 후 은우는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진짜 와찰라 가타요.”

“그치? 요즘 분장은 과학이라니까.”

지켜본 길동도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은우야, 너 정말 흑인 같아.”

하얀 피부는 온통 까만 비늘로 가려졌다.

분장사의 말이 이어졌다.

“와찰라의 상징인 까만 비늘이지. 이거 덕분에 와찰라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똑같이 변할 수 있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가능하고.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와찰라만의 비밀이지.”

은우는 와찰라가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때 촬영감독이 분장실로 들어왔다.

“분장 끝났어요? 현지 스태프 말로는 빅토리아 폭포가 지금부터 3시간 동안 가장 많은 물줄기가 쏟아질 거래요. 지금 촬영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데.”

은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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