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새로운 꿈
은우는 무대에 올라가면서 어떤 춤을 출지 고민했다.
‘[난 너무 귀여워]나 [따따따]를 출 수도 있긴 하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춤을 추고 싶어.’
은우는 촌장인 가나메에게 말했다.
“할뷰지. 전통 음악 트러주떼요.”
가나메가 아프리카 전통 음악을 틀었다.
“움바야~~~ 아아아아.”
빠른 비트와 함께 은우의 발이 빠르게 움직였다.
두 팔을 위로 펼쳤다 내리며 은우는 혀를 내밀었다.
남녀의 사랑을 표현한 아프리카의 전통춤은 격동적이고 열정적이었다.
은우의 춤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환호했다.
“저거 우리 춤인데 어떻게 알았지?”
“아프리카인인가?”
“티비에서 본 거 아냐? 외국엔 티비가 집집마다 있대.”
“그럴 리가 있어? 우리 마을엔 한 대뿐이잖아.”
“바보. 우리 마을만 그런 거지. 수도인 루사카에만 가도 티비는 흔하다고.”
케미기샤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은우는 케미기샤와 어깨동무를 하고 빠르게 발을 움직이며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케미기샤의 키가 더 커서 어깨의 높이가 달랐지만, 함께 춤을 추고 있다는 마음만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케미기샤가 은우를 보며 혓바닥을 내밀었다.
은우도 케미기샤를 보며 혓바닥을 내밀었다.
“메에에롱.”
은우가 케미기샤에게 장난을 쳤다.
케미기샤는 순간 은우의 얼굴에서 파드와를 보았다.
‘형도 늘 저렇게 장난을 치곤 했었는데.’
케미기샤는 은우를 볼 때마다 기쁘면서도 슬펐다.
‘이상하게 은우는 내게 자꾸만 형을 떠올리게 해.’
길동은 신이 나서 은우의 춤을 따라 했다.
“이거 좋은데요. 잘 추는지 못 추는지 전혀 티도 안 나고.”
백수희가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그건 그런데 숨이 너무 차요. 여기 사람들 에너자이저인가 봐요. 대체 언제 끝나? 끝이 없어요. 다이어트 댄스 같은데요. 차라리 걸그룹 댄스가 낫지.”
길동과 백수희는 함께 두 팔을 들었다 올렸다 하면서 발을 빠르게 동동동 굴렸다.
이태석 신부는 사람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다시 이 땅에 왔구나. 아프리카.
너무 많은 슬픔이 두려워서 도망쳤던 이 땅에.
이번엔 잘할 수 있을까?’
이태석 신부는 흥겨운 음악 속에서 홀로 섬처럼 고요히 서 있었다.
***
케미기샤는 은우가 선물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생각보다 옷이 커서 소매도 접고 바지도 접어야 했지만, 감촉이 너무나도 좋았다.
가슴에는 커다랗게 공룡 변신 로봇이 그려져 있었다.
케미기샤는 공룡 변신 로봇을 몰랐지만 알록달록한 프린트가 너무나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온 케미기샤를 발견한 은우가 탄성을 질렀다.
“이야. 머찌댜. 케미기샤.”
“고마워. 사이즈도 잘 맞고 색깔도 너무 예뻐.”
케미기샤의 접힌 소매를 보면서 은우는 생각했다.
‘10살이라고 말하고 산 건데 옷이 저리 큰 거 보면 케미기샤가 잘 먹지 못해서 못 큰 모양이야. 이제부턴 내가 잘 돌봐줄게. 케미기샤야. 많이 먹고 키도 많이 크고 건강해지자.’
케미기샤를 바라보던 은우의 마음이 짠했다.
은우는 케미기샤의 손을 잡고 교회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중앙에는 커다란 나무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우와, 고기다.”
오랜만에 고기를 본 케미기샤의 눈이 동그래졌다.
린다가 상 위에 옥수수와 쉬마(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빵), 콩을 세팅하고 있었다.
길동도 고기를 보면서 신나 했다.
“역시 고기지.”
길동의 손엔 컵라면이 들려 있었다.
백수희는 옥수수에 환호했다.
“와, 옥수수다. 옥수수 많이 먹어야지.”
이태석 신부도 자리에 앉았다.
은우는 테이블 위의 음식을 훑어보았다.
‘옥수수는 개수가 많지만 고기는 많지 않아. 고기가 좀 크긴 하지만 한 사람당 하나만 가져가면 전부 사라질 것 같은데.’
린다가 개인 접시에 고기를 덜어주었다.
“제 건 케미기샤 주떼요. 전 고기 안 조아해요.”
길동은 미국에 갔을 때 자신과 함께 햄버거 대결을 하던 은우가 맞나 의심스러웠다.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기는 나나 은우나 똑같은데.’
접시 위의 고기를 보던 길동이 눈치를 챘다.
‘고기가 많지 않구나. 난 한국에서 많이 먹었으니 한 번쯤 양보하는 것도.’
길동도 린다에게 말했다.
“제 것도 케미기샤 주세요.”
백수희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자신의 고기를 은우에게 양보했다.
“제 건 은우 주세요.”
“눈나 개차나요. 케미기샤 주떼요.”
“케미기샤는 세 개 먹을 수 있으니까. 너도 하나 먹어. 안 먹으면 눈나 화낸다. 배고파서 안 돼.”
“눈나는요?”
“눈난 다이어트 해야지. 여배우는 다이어트 해야 하는 거야.”
케미기샤는 오른손으로 고기를 잡고 먹기 시작했다.
백수희가 케미기샤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이태석이 말했다.
“여기선 모두 손을 사용해서 먹어. 왼손은 화장실 가는 손이라서 오른손으로 먹지 꼭.”
“화장실 가는 손요?”
“볼일을 보면 왼손으로 닦으니까. 왼손은 볼일 볼 때만 쓰는 손이라고 생각해.”
백수희가 옆에 놓인 나이트로 은우의 고기를 잘라주었다.
“손도 잘 못 닦는 거 같은데 그래서 질병이 많은 거 아닐까요? 포크를 쓰는 게 훨씬 좋을 거 같은데.”
“깨끗한 물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질병은 늘 많지. 우린 포크를 쓸 수 있지만 여기선 포크가 비싸거든. 그리고 자랄 때부터 늘 손을 써서 포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은우는 고기를 먹는 케미기샤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케미기샤야. 형이 맛있는 거 많이 많이 사 줄게. 앞으로는 고기도 먹고 싶은 만큼 먹게 해줄게.’
이태석이 린다에게 물었다.
“요즘 여기 사정은 어때요?”
“데려오고 싶은 아이들은 더 있는데 센터 사정이 여유롭지 못해서 데려오지 못하고 있어요. 아프리카엔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지난달에도 근처 마을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할례를 하다가 죽었어요.
손을 쓰고 싶었지만, 너무 늦었죠.
잠비아는 그래도 내전이 없으니까 나아요. 그래서 센터를 여기 세운 것도 있지만.
중앙아프리카 쪽 내전이 심각해지고 있고 수단과 에티오피아도 끝나지 않았죠.”
“전쟁이 일어나면 아이들만 불쌍해져요.”
“그렇죠. 센터의 아이들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제가 이 아이들의 삶을 얼마나 바꿔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후원금은 턱없이 모자라고. 결국 아이들 스스로가 자립을 해야 할 텐데. 자원봉사자들은 짧게 왔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서 지속적인 학습이 힘들어요. 학교에선 1명의 교사가 60명의 아이들에게 전 과목을 가르치죠.”
“전혀 나아지지 않았군요. 제가 있을 때도 그랬어요.”
“맞아요. 아이들에게 더 좋은 걸 해주고 싶은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가끔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어요.”
“린다는 그럴 때 어떻게 견뎠어요? 사실 난 그게 힘들어서 아프리카를 떠났어요.”
“아이들의 눈빛이요. 세계 어딜 가도 저렇게 순수한 눈빛은 없으니까. 묘하죠. 저희 센터에 있는 애들은 모두 상처가 있는 애들이에요. 어려서 부모가 죽었거나 혹은 부모가 있어도 자식을 버리기도 하죠. 그런데도 이 아이들이 저에게 사랑을 줘요.”
사랑.
그 단어가 이태석 신부의 마음을 쳤다.
‘그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일지도 몰라. 끊임없이 서로를 감싸고 사랑해 주는 것.’
식사를 마치고 나서 길동은 린다가 가져다준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건 치부쿠라는 건데 사탕수수를 발효시켜서 만든 술이에요.”
길동이 한 모금 마시고 맛을 평가했다.
“끝 맛이 시큼하긴 한데 술치곤 너무 알콜 맛이 안 나는데. 이거 도수가 몇이에요?”
린다가 포장지에 붙은 설명을 찾아서 읽었다.
“4프로예요. 독한 술은 아니죠. 여기선 이걸 많이 마셔요. 맛은 별로일 수도 있지만 안전하거든요.”
맛없는 술을 마신다니 길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태석이 설명을 보탰다.
“아프리카에선 안전한 음식이 많지 않아. 싸면서 안전해야 하니까. 특히 술은 뭔갈 섞어서 파는 일도 많아서.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맛이면 팔릴 만한 거지.”
길동은 홀짝홀짝 치부쿠를 마셨다.
린다가 안주를 가져다주었다.
“허억. 이거 벌레예요? 벌레? 저한테 지금 벌레 먹으라고 주신 거예요?”
길동은 깜짝 놀라 몸서리를 쳤다.
린다가 웃으며 말했다.
“이건 아프리카에서 많이 먹는 모판 벌레예요. 짐바브웨 누에라고도 하는데. 조리법도 다양해서 감자칩처럼 바삭하게 굽거나 매운맛 소스를 추가해서 먹기도 해요. 이건 땅콩버터를 넣고 구운 거예요.”
땅콩버터라는 말에 은우가 자신의 접시를 내밀었다.
“횬아, 먹기 시르면 저 주떼요.”
“은우야, 너 벌레 먹을 수 있어?”
전생엔 저것도 먹지 못해 굶는 날이 더 많았다는 대답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은우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케미기샤도 접시를 내밀었다.
“저도요.”
린다가 은우와 케미기샤에서 모판 벌레를 담아주었다.
은우는 모판 벌레를 씹어서 먹었다.
“마디떠요.”
“진짜지?”
은우가 먹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길동이 모판 벌레를 입에 집어넣었다.
‘첫맛은 땅콩버터인데 근데 너무 질기잖아. 뒤로 갈수록 끝 맛이 엉망이야. 고무도 아니고 씹어도 씹어도 잘 씹어지지 않아.’
백수희는 은우의 적응력에 감탄했다.
‘아까 무대에서 춤출 때도 그렇더니 처음 보는 벌레도 잘 먹고 은우는 마치 여기서 살았던 사람 같네. 대단하다. 은우. 아기라서 힘들다고 울고 투정 부릴 줄 알았는데.
난 이미 화장실에서 멘탈이 한 번 털렸고 저 벌레를 보니 한 번 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아.’
***
케미기샤와 보낸 꿈같은 일주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은우는 파드와일 때 못 해준 것을 케미기샤에게 맘껏 해줄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뻤다.
재롱이들이 마을 아이들에게 후원한 옷과 과자도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마을 아이들은 모두 새 옷을 입고 사탕을 물고 있었다.
‘더 열심히 해서 이 아이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
은우는 케미기샤에게 물었다.
“케미기샤야 넌 꾸미 머야?”
“형이랑 엄마, 아빠를 만나는 거.”
은우는 케미기샤의 손을 꼭 잡았다.
‘케미기샤야 난 지금 네 옆에 있어. 엄마와 아빠는 지금 당장 함께할 순 없지만 늘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실 거야.’
은우가 케미기샤에게 다시 물었다.
“다른 꾸믄?”
“선생님이 되고 싶어.”
매일 학교에 갈 때마다 만나는 사킬라 선생님은 케미기샤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영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고 과학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다.
“그럼 공부를 마니 해야겐네. 케미기샤는 공부하는 게 조아?”
“응.”
케미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미기샤의 그 말은 은우의 가슴에 또 다른 꿈을 싹트게 했다.
‘이곳에 학교를 세우고 싶어. 이 아이들이 더 많이 배우고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스스로 삶을 바꿀 수 있도록.’
운이 좋게 환생을 하고 신의 재능으로 스타가 되었지만, 자신과 같은 축복이 아프리카의 모든 아이들에게 내려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은우는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려면 공부가 필요해.’
지금까진 돈보다는 좋은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은우였다.
그러나 케미기샤를 만나고 나서 아프리카에 다시 돌아오고 나서 은우에겐 새로운 꿈이 생겼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 내겐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거든.’
은우는 이번에 촬영하게 될 [블랙 레오파드 2]를 반드시 흥행에 성공시키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길동이 전화기를 들고 은우를 찾았다.
“은우야, 채드윅에게서 전화가 왔어. 받아봐.”
은우가 길동에게서 전화를 넘겨받았다.
“하이. 은우. 아프리카는 좀 어때? 너무 덥지 않아?”
채드윅은 은우가 아프리카의 더위를 힘겨워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블랙 레오파드 1]을 찍을 때 자신 역시도 더위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으니까.
“갠차나요. 여기 조아요.”
파드와일 때 더위에 단련이 된 탓에 은우는 아프리카의 더위가 힘겹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곳엔 케미기샤가 있었다. 은우는 케미기샤를 다시 만난 것만으로 모든 불편함은 잊을 수 있었다.
“역시 긍정적이야.”
채드윅은 어린 은우의 프로정신에 감탄했다. 어린 나이에 슈퍼스타가 된 배우들 중에는 말도 안 되는 스타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에게만 비싼 리무진을 불러줄 것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식사를 별도로 부탁하는 배우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은우는 얼마나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가.
‘하긴 아프리카에 봉사를 하러 가겠다고 했으니.’
채드윅은 흑인 팬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블랙 레오파드 2]의 주연역으로 은우를 낙점한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듀크야. 우리가 사람은 제대로 본 것 같아. [블랙 레오파드 2]의 팬들도 은우의 진가를 알게 되면 돌아설 것이라고 믿어.’
채드윅은 식사 등 다른 안부를 물어보려다가 모두 접어두고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 주말에 내가 너를 데리러 갈 거야.
첫 번째 촬영지는 빅토리아 폭포야. 우린 그곳에서 동물들과 함께 촬영을 할 거야.”
“네, 열심히 하께요. 두근두근거려요.”
오랜만에 촬영을 앞두고 은우는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내가 누구보다 흑인 연기를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