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아프리카에 도착하다 (2)
케미기샤는 처음 보는 동양의 아기가 자신을 보자마자 우는 것에 놀랐다.
‘왜 나를 보며 울지? 엄마를 잃어버렸나?’
케미기샤는 우는 아기에게서 자신의 옛 모습을 보았다.
‘엄마, 아빠가 죽고 형마저 죽었을 때 내 인생은 암흑이었어.’
케미기샤는 울면서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먹을 것이 없어 거리에 버려진 음식과 빗물을 마셨다.
사람들은 케미기샤를 손가락질할 뿐 누구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케미기샤는 형이 그리웠다.
‘형, 어디 있어? 형, 어디 있어?’
케미기샤는 형이 그리울 때마다 형이 불러주던 노래를 불렀다.
“잘 자라 내 동생 케미기샤.
너를 위해 별님이 노래하고 너를 위해 꽃님이 활짝 피었어.
잘 자라 내 동생 케미기샤.
꿈속에선 너를 위해 사탕을 줄게.
꿈속에선 우리 같이 고기를 먹자.”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파드와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케미기샤는 점점 말라가서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인형처럼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졌다.
뼈만 남아 배만 불룩 나오고 큰 머리만 보이는 케미기샤를 사람들은 마녀라고 놀렸다.
“저 아기는 마녀의 아기야. 그렇지 않고선 저렇게 흉하게 생길 수가 없어.”
“저 아기랑 놀지 말렴. 저 앤 불행의 씨앗이야.”
케미기샤는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케미기샤는 거리에서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 케미기샤의 앞엔 백인 여자가 있었다.
“안녕, 난 린다야. 넌 이름이 뭐니?”
“케미기샤.”
“케미기샤야. 물을 좀 마실래? 깨끗한 물이야. 그리고 수수죽도 좀 먹어봐.”
린다는 케미기샤에게 수수죽을 주었다.
“너무 오래 굶은 거 같아서 빵은 지금 먹으면 안 될 거 같아. 일단 이걸 먹고 병원에 가 보자.”
케미기샤는 혹시 이곳이 천국일까 하고 생각했다.
파드와는 케미기샤에게 자주 천국에 대해 이야기해 주곤 했다.
“아빠, 엄마는 천국에 있어. 거긴 건기처럼 춥지도 않고 맛있는 것도 많고 하루 종일 배가 부른 곳이야. 장난감도 가득하고. 우리도 죽으면 그곳에 갈 수 있어.”
어린 케미기샤는 파드와의 말을 듣고 천국에 가고 싶었다.
“횬아, 나도 천구게 가고 시퍼. 엄마, 아빠도 보고 시퍼. 사탕도 너뮤 머꼬 시퍼.”
파드와가 불같이 화를 냈다.
“안 돼. 케미기샤. 천국은 좋은 곳이지만. 우린 천국에 가지 않을 거야. 너마저 없으면 난…….”
파드와가 울면서 말했다.
“맛있는 거 못 사줘서 미안해. 내일은 형이 더 열심히 일할게.”
케미기샤는 파드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파드와가 우는 것이 싫었다.
“내가 잘못해떠. 횬아. 울지 먀. 울지 먀.”
그렇게 어린 파드와와 케미기샤는 서로를 안고 울었다.
케미기샤가 린다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가 천국인가요?”
“아니. 여긴 내 집이야. 넌 죽지 않았단다. 난 구호 활동을 하고 있어. 여긴 너와 같은 아기들이 더 있단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 너에게 친구들을 소개시켜 줄게.”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말에, 이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말에 케미기샤는 놀랐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었는데. 내가 굶고 거리를 헤매도 아무도 나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었는데. 린다는 천사일 거야. 어쩌면 형이 나를 걱정해서 보낸 걸까?’
그 밤 케미기샤는 파드와가 죽고 난 뒤 처음으로 편안한 잠을 잤다.
***
케미기샤의 노래를 은우가 이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널 위해 더 큰 사람이 될게. 케미기샤야.
내가 너의 해가 돼서 너를 비출게.
내가 너의 달이 돼서 너를 비출게.
하늘에 계신 엄마, 아빠가 슬퍼하지 않게.
내가 너를 지킬게. 케미기샤야.”
케미기샤는 처음 보는 동양의 아기가 형이 불러주던 노래를 알고 있는 것에 놀랐다.
“형?”
은우가 대답 대신 케미기샤의 손을 꼬옥 잡고 손등에 뽀뽀를 했다.
케미기샤는 파드와가 잠들기 전 자신의 손등에 뽀뽀를 해주던 것을 떠올렸다.
‘그럴 리가 없어. 저 아기는 피부색도 다른데. 형일 리가 없어.’
케미기샤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백수희가 은우의 옆으로 와서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은우야, 이태석 신부님이 교회로 가자고 하셔. 어서 가자.”
은우와 케미기샤는 백수희의 손을 잡고 교회로 갔다.
먼저 온 길동이 케미기샤의 손을 꼬옥 잡고 있는 은우를 보며 물었다.
“은우야, 아는 사람이야?”
“제가 후언하는 아기요.”
은우는 자신의 동생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길동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백수희와 파드와에게 말했다.
“여기가 이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래. 다들 여기로 온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래요.”
은우는 케미기샤에게 영어로 말했다.
“영어 하 쭈 아라?”
“학교에 다녀서 배우고 있어.”
“져 횬아는 여기 마를 모태. 여기로 다들 모일 거래.”
케미기샤가 은우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백수희는 은우의 영어 실력에 놀랐다.
“아프리카 영어는 조금 다른 거 같은데 잘 알아듣네. 은우.”
“저네 영화 찌글 때 아프리카 영어 쓰는 사라미 이떠떠요.”
은우는 대충 얼버무렸다.
은우가 백수희에게 물었다.
“눈나, 사탕 어디떠요? 아까 산 거?”
“아, 그거. 저기 놨는데. 가져다줄까?”
“네네네네네.”
백수희가 은우에게 사탕 한 봉지를 가져다주었다.
은우가 사탕 봉지를 뜯어 케미기샤에게 주었다.
“이거 머거. 너 주려고 사떠.”
케미기샤는 동그란 사탕의 껍질을 녹여 입안에 넣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맛.
케미기샤가 방긋 웃었다.
은우가 케미기샤를 보며 미소 지었다.
“내일은 더 마디는 거 주께. 매일매일 주께.”
케미기샤는 자신보다 어린 동양의 아기가 왜 자신을 챙기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형이 떠난 뒤 이런 기분을 느껴보는 것이 오랜만이라 왠지 모를 포근함을 느꼈다.
“은우.”
은우는 케미기샤가 자신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 것에 놀랐다.
“나한테 편지 보냈지?”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편지 받은 날 행복했어. 우리 형이 살아온 거 같아서.”
은우는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다.
‘케미기샤. 내가 네 형이야. 내가 파드와야.’
케미기샤가 말을 이었다.
“우리 가족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이야. 늘 배가 고팠지만 외롭지 않았어. 엄마 아빠도 형도 나를 참 많이 사랑해 주었어.”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미기샤. 난 널 항상 생각했어. 우리 가족은 늘 서로를 사랑했지.’
자신의 돌아온 인생을 모두 돌아보자면 파리넬리이던 시절은 돈과 명예를 가졌지만 늘 외로웠다. 부모님은 파리넬리가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고 형은 파리넬리의 재능을 이용하려고 들었다. 많은 여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거세된 몸은 완전한 사랑을 하기 힘들었다.
파드와의 삶은 굶주림과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늘 가족의 사랑이 함께했다.
‘물론 가장 행복한 삶은 은우의 삶이지. 은우는 사랑해 주는 부모님이 있고 사랑해 주는 팬들이 있고 굶주림과 고통도 없으니까. 다른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줄 수 있고.’
은우는 자신이 파드와라는 걸 케미기샤에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은우로 태어난 것이 파드와일 때보다 케미기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케미기샤. 내갸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도 가져와떠.”
“우와.”
린다를 만나게 된 후로 케미기샤는 건강을 되찾았고 더 이상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일 간식을 먹거나 필요한 필기구를 마음껏 가질 수는 없었다.
린다에게는 케미기샤 말고도 35명의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우가 길동에게 물었다.
“횬아, 내 캐리어 어디떠요?”
“짐은 이따 풀어도 될 텐데.”
“꼭 피료한 게 이떠요.”
“알았어.”
길동이 아벤의 차에서 은우의 캐리어를 가져다주었다.
은우는 공룡 변신 로봇이 그려진 캐리어를 열었다.
캐리어 속에는 은우가 케미기샤를 생각하며 준비한 필기구가 들어있었다.
“생녀필. 크레파스. 공책, 스케치북. 클레이점토.”
은우의 캐리어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케미기샤는 홀린 듯 쳐다보았다.
캐리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은 알록달록하고 예뻤다.
케미기샤는 정신없이 은우가 꺼낸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예쁘다.”
케미기샤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알록달록 고운 빛깔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선생님 것보다도 좋아.’
케미기샤는 크레파스를 학교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것이라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은우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다 네 거야. 케미기샤. 다 쓰면 또 줄게.”
“고마워.”
케미기샤는 자꾸만 이곳이 천국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날아온 편지처럼 은우의 존재는 케미기샤에게 너무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이태석 신부님이 은우와 케미기샤에게 와서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릴 위해서 파티를 열어준대. 어서 가자. 은우야.”
은우는 케미기샤의 손을 꼭 잡고 교회의 중앙으로 갔다.
마을에서 가장 좋은 건물인 교회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바닥은 나무로 돼 있었고 앞엔 무대가 있었다.
무대엔 마이크 하나와 오래된 스피커 하나가 있었다.
마을의 촌장인 가나메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머나먼 한국에서 우리를 찾아온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이태석 신부님. 백수희. 백수희 씨는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라고 하네요. 이은우. 은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이자 가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돌보는 사람 김길동. 김길동이 은우를 돌본다고 하네요. 한국은 아프리카와 달리 남자도 육아에 참여하나 봅니다. 자, 모두 박수 쳐 주세요.”
앉아있던 마을 주민들이 박수를 쳤다.
가나메가 이었다.
“우리의 전통대로 다 함께 춤을 추겠습니다. 모두 규칙 알죠? 제가 이 천을 둘러주면 천을 두르게 되는 사람은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춤을 추면 됩니다.”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귀에 익숙한 아프리카의 춤곡.
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였다.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길동은 당황했다.
“나 춤 못 추는데. 갑자기 춤을 추라니.”
은우가 길동을 격려했다.
“횬아. 이러케 이러케 흔드러요. 아프리카 추믄 어렵지 아나요.”
은우가 어깨와 엉덩이를 흔들었다.
“은우 아프리카 춤 왜 이렇게 잘 춰?”
길동은 은우가 현지인과 똑같은 춤을 추는 것에 놀랐다.
촌장이 처음으로 천을 둘러준 것은 백수희였다.
“악, 나야? 왜 나야?”
백수희는 당황했다.
촌장이 백수희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이끌었다.
“이러면서 친해지는 거예요. 모두 추고 있으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백수희가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관광버스 춤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들이 추는 춤 같기도 한데 모두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있잖아.’
아이돌들의 춤만 보던 백수희의 눈에 그들의 춤은 촌스러웠지만, 그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가만있어 봐. 내가 출 수 있는 춤이 뭐가 있더라. 전에 아이돌 준비했을 땐 그래도 춤을 좀 췄었는데.’
백수희는 이제는 희미해질 것 같은 기억의 끝자락에서 걸그룹 안무를 소환해 냈다.
“Give it to me.
Give it to me.”
백수희는 현란한 골반 웨이브를 무대 위에서 선보였다.
“와우, 뷰티풀.”
백수희의 안무를 본 흑인 청년 몇몇이 탄성을 질렀다.
케미기샤는 은우에게 물었다.
“대체 뭘 달라는 거야? 저게 한국 춤이야?”
은우는 고민에 빠졌다.
‘한국 춤이라고 하면 한국의 전통댄스를 말하는 건가? 그건 부채춤 같은 건데. 백수희 누나가 추는 건 걸그룹 춤인데. 아이돌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은우가 대답했다.
“한국추믄 아니야. 저건 한국 아티스트의 추미야. 한국엔 노래 부르는 아티스트드리 마나. 내가 보여줄게.”
은우가 키즈폰을 꺼내 자신의 연습 영상을 재생했다.
화면 속에서 은우가 자신의 노래에 맞춰 뽀뽀 댄스팀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케미기샤는 화면 속의 영상을 보면서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 머찌다.”
아프리카 댄스만 봐 왔던 케미기샤에게 케이팝 댄스는 새로운 세계였다.
‘음악이 너무 세련됐어. 춤도 너무 멋있어.’
케미기샤는 화면 속의 은우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백수희는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서 자신의 천을 길동에게 둘러주었다.
“악, 안 돼. 백수희 씨. 이러면 안 돼요.”
“그렇다고 제가 모르는 아프리카 사람한테 천을 줄 수도 없잖아요. 신부님한테 드릴 수도 없고. 좀 받아요. 길동 씨.”
길동은 울상이 되어 천을 두른 채 무대 위로 올라갔다.
길동은 무대 위에서 국민 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헛 둘 셋 넷.
헛 둘 셋 넷.”
길동은 운동을 하던 시절 국민 체조는 누구보다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들었다.
길동은 무대 위에서 각을 확실하게 잡으며 국민 체조를 이어갔다.
백수희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래도 국민 체조는 좀 아닌 거 같은데.”
케미기샤가 길동을 춤을 힐끗 보더니 은우에게 물었다.
“저건 또 무슨 춤이야? 한국엔 정말 다양한 춤이 있구나.”
은우는 고민이 되었다.
‘저건 춤이 아니라 체조인데 뭐라고 말해야 하지.’
은우가 대답했다.
“저건 군인드리 추는 추미야. 얼마냐 용감한지 보여주는 거야.”
케미기샤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에서 내려온 길동이 은우에게 천을 주면서 말했다.
“자, 다음은 월드 스타 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