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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169화 (169/257)

169화. 아프리카에 도착하다 (1)

두바이에서 한 번 경유한 뒤 은우 일행은 잠비아의 수도인 루사카 공항에 도착했다.

은우는 오랜 비행으로 인해 지쳐있었다.

백수희가 은우를 걱정하며 물었다.

“은우야, 힘들지?”

“자고 시퍼요.”

다리를 펴고 싶었지만 동생을 볼 생각에 은우는 힘을 내었다.

길동이 백수희에게 말했다.

“근데 여기 공항이 아니라 버스 터미널 같지 않아요? 너무 작다.”

“그래도 저기 LG 광고 있네요. 힘내라. LG! 외국에서 우리나라 기업 광고 보니 너무 좋아요.”

은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묘한 기분이었다.

‘파드와일 땐 이렇게 발전한 곳이 아프리카에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살았었는데 아프리카에도 공항이 있었구나. 이곳은 내가 살던 마을과는 달리 발전된 것처럼 보여.

은우로 태어나지 못했다면 이곳에 와 보지 못했겠지.’

길동이 백수희에게 말했다.

“배고픈데 여기 음식 맛있는 거 있을까요? 혹시 몰라 라면은 잔뜩 가져오긴 했는데.”

“찾아봐야죠. 저도 혹시 몰라서 김이랑 고추장은 잔뜩 가져왔어요.”

멀리서 키가 큰 흑인 하나가 다가왔다.

“이태석 신부님, 아벤입니다. 제가 캠프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길동은 백수희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아, 저 사람이 우릴 캠프까지 데려다준대요.”

길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미국에 갔었을 때도 그랬지만, 영어를 못 하니 보통 불편한 게 아니네. 근데 아프리카 사람들도 영어를 쓰는구나. 영어 공부 좀 해 놓을 걸 그랬나?

은우가 앞으로도 해외 활동이 많은 거 같은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 ’

이태석 신부가 아벤에게 물었다.

“유심 좀 살 수 있나?”

“저쪽으로 가시죠. 신부님.”

아벤이 유심을 파는 곳으로 안내했다.

“혹시 다른 분들도 필요하신가요?”

“괜찮아요. 저흰 로밍해 왔어요.”

백수희와 길동은 한국에서 로밍을 해 온 덕에 유심을 사지 않고 기다렸다.

유심을 파는 가게에서 길동은 여러 가지 물건을 구경하며 말했다.

“여기 사탕도 팔고 별거 다 파네요. 잡화점인가?”

백수희도 물건을 구경하며 대답했다.

“마치 6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거 같아요. 전 태어나지 않아서 모르지만, 60년대나 70년대가 이랬던 거 같은데.”

길동이 맞장구쳤다.

“전 90년대 같은데. 왜 있잖아요. 그 드라마 [대답하라 시리즈].”

듣고 있던 이태석이 말했다.

“내 생각엔 말이야. 백수희 씨 말이 더 가까울걸. 70년대랑 비슷한 거 같아. 건물도 그렇고. 그런데 여긴 도시라서 그렇고, 작은 마을로 들어가게 되면 그곳은 여기랑 또 다를 거야. 우리가 봉사하게 되는 곳은 더 작은 마을이니까.”

백수희가 물었다.

“길동 씨, 우리 봉사하고 나서 은우 촬영은 언제부터 시작돼요? 은우는 나중엔 촬영팀과 함께 움직이게 될 거 아니에요?”

“이 주 후요. 그때 촬영팀에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차량을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백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는 가게에 있는 간식들을 살펴보았다.

‘파드와일 땐 먹어보지 못한 간식들이 잔뜩 있구나. 그땐 저 사탕 하나만 먹어도 소원이 없을 거 같았지. 지금은 한국에서 더 맛있는 과자들을 잔뜩 먹어봤지만.’

은우는 마을에 있을 다른 아기들이 떠올랐다.

‘아마 마을엔 나 같은 아기들이 많이 있을 거야. 한국에서 과자를 많이 가져오긴 했지만 모자랄지도 모르니 더 사고 싶어.’

은우가 백수희의 손을 흔들었다.

“눈나.”

“왜애?”

“비밀 얘기가 이떠요.”

은우는 백수희에 귀에 대고 말했다.

“사탕을 더 사고 시퍼요.”

“그게 무슨 비밀이야? 눈나가 사 줄게.”

백수희가 점원에게 사탕의 가격을 물었다.

“이 사탕 얼마예요?”

“20콰차.”

백수희는 머릿속에서 빠르게 가격을 계산했다.

‘1달러가 14콰차쯤 되니까 1달러 좀 넘는 거구나. 괜찮은 가격 같아.’

백수희가 점원에게 물었다.

“그럼 두 개만 주세요.”

백수희의 말을 들은 은우가 조용히 백수희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

“눈나, 비밀 얘기 이떠요.”

백수희가 은우에게 귀를 가져다 댔다.

은우가 속삭이며 말했다.

“백 개요.”

“백 개?”

백수희는 예상치 못한 사탕의 개수에 놀랐다.

“그걸 다 먹으려고?”

“칭구들 줄 거예요.”

백수희는 은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캠프에 가면 배고픈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백수희가 점원에게 말했다.

“백 개 주세요.”

점원은 생각지도 못한 사탕의 개수에 놀라 신이 났다.

“잠깐만 창고에 가볼게요. 백 개나 있을지 모르겠는데 혹시 다른 사탕도 괜찮아요?”

“가격이 비슷하면 괜찮아요.”

점원은 창고에 있던 모든 사탕을 털어왔다.

“자, 여기 100개. 많이 샀으니까 금액은 할인해 줄게. 2000콰차에서 200콰차를 빼면 1800콰차.”

듣고 있던 아벤이 나섰다.

“1500콰차. 난 현지인이야.”

점원은 아벤이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1600콰차. 더 이상 할인은 없어.”

아벤은 단호했다.

“현지인이 사탕 100개를 사 가진 않잖아. 다른 가게에 가서 살게.”

“알았어. 알았어. 1500콰차.”

백수희가 1500콰차를 지불했다.

점원은 100개의 사탕을 봉지에 나눠서 담아주었다.

일행 모두는 사탕을 들고 차로 향했다.

백수희는 아벤의 흥정 실력에 감탄했다.

“멋져요. 아벤. 혼자 있었으면 그냥 샀을 텐데.”

“아프리카에선 가격이 적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흥정이 가능해요.”

아벤이 지나가는 상점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고기가 50콰차라고 쓰여 있죠? 저건 많이 깎을 수 없어요. 그래도 아는 사람이거나 많이 사면 3콰차쯤은 깎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가격이 적혀져 있지 않은 물건은 무조건 깎고 봐야 해요. 특히 외국인이라면 바가지였을 확률이 높거든요.”

“그렇군요.”

백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아벤의 차에 도착했다.

길동이 차를 보며 말했다.

“이거 20년도 더 된 차 같은데. 굴러가요? 그래도 우리나라 차네.”

이태석이 대답했다.

“우리나라에서 못 쓰는 차들이 러시아에도 가고 몽골에도 가고 아프리카에도 오지. 여기선 이 정도 차면 훌륭한 차야.”

백수희가 이태석의 말에 감탄했다.

“신부님은 아프리카에 대해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3년 동안이나 이곳에 있었으니까. 아프리카는 참 아픈 곳이지.”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더러운 물을 먹고 죽어가는 아이들. 약이 없어서 살릴 수 없는 아이들. 그 눈망울을 마주하는 게 힘들었었지.’

아벤이 운전석에 앉아 일행에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3시간을 달려야 우리의 목적지인 [카포라음포시]에 도착할 겁니다.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자갈이 많은 곳인지 차가 튀기 시작했다.

“아이고, 머리야.”

키가 큰 길동은 차가 튕길 때마다 머리를 천장에 부딪혔다.

이태석 신부가 말했다.

“여긴 전부 다 비포장도로라서 먼지도 심하고. 그래서 차가 달릴 땐 문을 열어놓지 않는 게 좋아. 그리고 옆에 손잡이가 있으면 꼭 잡아요.”

은우는 덜컹거리는 차가 오히려 재미있었다.

“헤헤헤헤. 노리기구 가따.”

1시간쯤 달렸을 때 백수희가 말했다.

“아벤 화장실 가고 싶은데 차 좀 세워줄 수 있어요?”

아벤이 차를 세우며 말했다.

“저기 덤불에 가서 싸요. 여기 휴지랑 물 있어요.”

“화장실은요?”

“아프리카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덤불에 가서 싸요.”

“네에?”

백수희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나섰다. 길동이 걱정이 되는지 함께 가겠다고 했다.

이태석이 은우도 소변을 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아벤을 뺀 일행은 모두 차에서 내렸다.

덤불 근처로 가자 똥오줌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은우는 오랜만에 맡아보는 구수한 향에 몸서리를 쳤다.

‘기억이란 참 간사하군. 예전엔 늘 이런 냄새를 맡았었는데.’

이태석이 은우의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게 해주었다.

“우리 은우, 쉬이. 쉬이.”

“쉬이.”

은우의 오줌이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백수희는 조금 더 깊은 덤불로 들어갔다.

“똥 밟을까 봐 무섭네. 여기. 똥지뢰밭이야.”

백수희도 적절한 자리에서 소변을 보았다.

백수희가 차로 돌아간 뒤 이태석과 김길동도 소변을 보았다.

길동이 이태석에게 물었다.

“신부님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이런 곳에서 3년이나 봉사를 하셨어요?”

“아프리카는 불편한 곳이죠. 우리가 누리던 편리함을 대부분 내려놓아야 하니까. 그런데 여기도 다 똑같아요. 사람 사는 곳인 거. 순수한 사람들도 많고.”

“화장실은 좀 쇼킹하네요. 전 어릴 때 할머니 댁에 갔다가 푸세식 화장실에 놀랐는데, 푸세식 화장식보다도 심한 것 같아요.”

“푸세식 화장실도 곧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헉.”

볼일을 마친 뒤 일행은 다시 차에 올랐다.

은우는 동생을 볼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기다려. 케미기샤. 파드와가 왔어. 그 긴 시간을 건너 네 형 파드와가 왔어. 이제 우린 더 이상 가난하지 않아.’

은우는 동생에게 먹을 것을 마음껏 줄 수 있어 좋았다. 아까 공항 근처에서 산 사탕과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들을 보고 기뻐할 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렜다.

‘케미기샤야, 형이 더 유명한 스타가 돼서 널 학교에도 보내주고 좋은 장난감도 사 줄게.’

차는 어느덧 [카포라음포시]에 도착했다.

아벤이 차를 세우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일행은 차에서 내렸다.

길동이 말했다.

“정말 조용한 마을이네요.”

그때 청년 한 명이 은우 일행을 보고 가더니 외쳤다.

“마쿠아.”

청년의 말에 우르르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을 사람 중에는 은우 나이의 어린 아기들도 있었다.

“마쿠아.”

“마쿠아.”

아기들이 은우를 보며 외쳤다.

은우는 기분이 묘했다.

‘나 원래 여기 사람이야. 나를 여행자라고 부르다니. 난 여행자가 아닌데.’

아벤이 아프리카어로 대답했다.

“우릴 도와주러 온 손님이야. 여행자가 아니고. 교회로 가자.”

이태석 신부가 일행을 위해 설명을 보탰다.

“잠비아엔 총 75개 부족이 있어요. 부족 언어는 다 다르고 공용어가 영어예요. 도시로 가면 영어를 많이 쓰지만, 시골로 오면 부족 언어를 더 많이 써요.”

백수희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신부님 없으면 우린 어떻게 해요?”

은우는 생각했다.

‘제가 다 알아들어요. 제가 전에 여기 살았거든요. 그걸 말할 수 없어서 그렇지.’

이태석 신부가 대답했다.

“마을에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벤처럼. 다는 아니지만.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요. 다만 영어를 할 줄 알아도 자기들끼리 있을 땐 부족 말을 쓰더라구요. 아마 더 편한가 봐요.”

길동이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사투리랑 비슷하네. 사투리. 저도 경상도 친구가 있는데 서울에선 서울말 하다가 엄마 전화 오면 말투가 확 바뀌더라구요.”

그때 은우의 시선에 멀리 혼자 서서 은우 일행을 바라보고 있는 한 아이가 들어왔다.

‘케미기샤.’

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은우는 한눈에 케미기샤를 알아보았다.

‘많이 컸구나. 우리 케미기샤. 살아있어 줘서 너무 고마워.’

은우는 천천히 케미기샤에게로 걸어갔다.

케미기샤는 처음 보는 동양인 아기가 신기한 듯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은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케미기샤.”

케미기샤는 처음 보는 아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놀랐다.

‘누구지? 어떻게 나를 알지?’

은우의 작고 하얀 손이 케미기샤의 까맣고 거친 손을 잡았다.

은우는 형이라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케미기샤. 나야. 파드와. 네 형. 파드와. 너를 위해 매일 금을 찾던 파드와.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배불리 먹이지 못해 늘 미안했었는데. 우리 케미기샤. 잘 자랐어. 정말. 잘 자랐어.’

은우의 눈에서 쉴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은우는 작은 몸으로 케미기샤를 안았다.

은우의 작은 머리가 케미기샤의 배에 닿았다.

케미기샤가 울먹이는 은우는 작은 머리를 토닥이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잘 자라 내 동생 케미기샤.

너를 위해 별님이 노래하고 너를 위해 꽃님이 활짝 피었어.

잘 자라 내 동생 케미기샤.

꿈속에선 너를 위해 사탕을 줄게.

꿈속에선 우리 같이 고기를 먹자.

미안해. 내 동생 케미기샤.

내일은 꼭 맛있는 걸 먹여줄게.

사랑해. 내 동생 케미기샤.

넌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은우는 케미기샤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건 내가 케미기샤를 재울 때 부르던 노래잖아.’

바람 소리가 들리는 무너져가는 흙집.

엄마를 찾는 케미기샤에게 파드와가 불러주는 노래.

케미기샤는 여전히 그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은우의 눈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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