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동생을 만나다 (3)
은우는 백수희의 손을 잡고 상담실 앞에 있었다.
상담사인 오미희가 반갑게 백수희를 맞이했다.
“수희씨, 잘 지냈어요? 안 본 사이 더 예뻐졌네. 네가 은우구나.”
“안녕하떼요.”
은우가 고개를 숙여서 배꼽 인사를 했다.
오미희가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선생님이랑 저 방에 가서 즐거운 놀이할까? 은우는 어떤 놀이를 좋아해?”
“로봇 노리도 조아하고 모래노리도 조아하고 잡기 노리도 조아하고.”
“저 방에 로봇도 있고 레고도 있고 모래도 있고 클레이나라도 있거든. 맛있는 젤리랑 초콜릿도 있는데 같이 갈까?”
“백수희 눈나는요?”
은우가 백수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눈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선생님하고 놀고 와. 끝나고 돈까스 먹으러 가자.”
“네네네네네.”
은우가 오미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 손 잡아주는 거야?”
“네네네네네.”
오미희는 은우의 작고 말랑말랑한 손을 잡으며 생각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손을 잡는다는 건 타인에 대한 신뢰가 높다는 건데. 보통 우울증을 겪는 아기들이 보이는 반응이랑은 조금 다른 거 같아. 표정도 밝고.
정말 우울증인 걸까?’
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우는 방 안에 가득 차 있는 장난감을 보고 놀랐다.
“우와.”
은우가 탄성을 질렀다.
“은우야, 마음에 드는 걸 가지고 놀아도 돼. 어떤 거부터 할까?”
은우의 눈에 공중에 매달린 그네가 들어왔다.
“그네요.”
오미희가 은우를 그네에 앉혀 주었다.
“와와.”
오미희가 뒤에서 그네를 밀어주면서 말했다.
“젤리도 줄까?”
“네네네네네.”
은우는 젤리를 먹으면서 그네를 탔다.
“헤헤헤헤헤헤헤.”
은우는 너무 신이 나서 오미희가 그네를 밀 때마다 웃었다.
‘이렇게 잘 웃는 아이가 상담을 받으러 오다니. 대체 어떤 문제가 있을까? 하나씩 물어봐야겠다.’
오미희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는 무얼 제일 좋아해?”
“보이랑 장난가미랑 칭규들, 노랑이, 까망이, 아빠도 조코, 백수희 눈나랑 하뷰지랑 뽀뽀 댄스팀도 조코, 노래 부르는 거도 조코.”
“좋아하는 게 아주 많구나. 그럼 싫어하는 건 어떤 거야?”
은우는 ‘강낭콩, 오이, 당근’을 말하려다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의 약속을 떠올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데메테르와의 약속 이후 채소를 잘 먹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았다.
‘맛이 없는 건 맛이 없는 거니까. 그래도 이젠 골라내려고 하진 않으니까. 대신 애초에 채소가 안 들어간 메뉴를 고르고 있지만.’
데메테르 여신과의 약속도 어기지 않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에 은우는 웃음을 지었다.
“시러하는 건 모르게떠요.”
“그래, 싫어하는 게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어.”
오미희는 은우의 대답이 또래 아기들과 다른 것에 놀랐다.
‘보통 싫어하는 건 환경에 좌우되기 마련인데 부부싸움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기들은 엄마, 아빠가 싸우는 장면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표정을 알 수가 없으니까 은우의 마음을 다 알기가 어려워.
그네를 등 뒤에서 미니 은우 얼굴 표정이 보이지 않잖아.’
오미희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그네 그만 타고 다른 놀이 할까?”
“아니요.”
“그네 더 타고 싶어?”
“네네네네네.”
점점 팔도 아려오던 차라 오미희의 아쉬움은 커졌다.
그때 오미희의 눈에 상담실 벽에 걸려있는 줄넘기가 눈에 들어왔다.
‘저걸 그네 아래쪽에 묶으면 은우의 앞에 앉아서도 그네를 흔들어 줄 수 있겠다.’
유레카를 외친 오미희가 줄넘기 줄을 그네 아래에 묶었다.
줄을 흔들자 오미희의 생각대로 그네가 잘 움직였다.
“와아, 선생님, 천재.”
은우가 오미희의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냈다.
오미희가 앞에 앉아 줄을 흔들며 은우에게 물었다.
“가장 슬펐던 일은 뭐야?”
가장 슬펐던 일은 동생의 소식을 몰랐던 일이지만, 그것을 오미희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전전생과 전생에 대한 일은 말할 수 없으니까.
이번 생에서는 슬펐던 일이 없는데.’
은우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엄떠요.”
오미희는 은우와 상담을 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분명 티브이를 보다가 펑펑 울었다고 했는데. 한 시간 이상 울었다면 그건 평범한 다섯 살 아기가 할 행동은 아니거든.’
오미희는 질문을 이어갔다.
“얼마 전에 1위 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 은우야?”
“신나떠요. 하느를 나는 거처럼 헤헤헤헤. 팬들도 조아하고 또 하고 시퍼요.”
“너무 기쁘면 어때? 은우야? 너무 기쁠 때 눈물이 많이 나?”
“기쁘면 우서요. 마니마니 우서요. 너무너무 신나요.”
오미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질문으로는 도저히 찾기가 어려울 거 같은데. 다른 걸 시도해봐야겠어.’
오미희가 그네를 멈추며 말했다.
“은우야. 선생님이랑 같이 그림 그리기 해 볼까?”
“네네네네네.”
은우는 그네에서 내려와 만들기 테이블에 앉았다.
오미희가 은우에게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주었다.
‘백수희 씨 말로는 은우가 [세이브 더 월드] 광고를 보면서 울었다고 했어. 그 광고가 은우에게 평소와 다른 감정을 일으켰을지도 모르니까 그 광고와 관련한 은우의 생각을 알아보는 게 좋겠어.’
오미희가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아프리카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래?”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은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한동안 마음속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던 그 단어. 아프리카.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아프리카에서의 삶이 떠올랐다.
끝없는 배고픔과 절망.
그리운 내 동생. 케미기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았던 그때의 삶.
나의 케미기샤가 아직도 그곳에 있다니.
오미희는 은우의 갑작스런 울음에 놀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밝던 아기가 아프리카란 단어를 듣자마자 울음을 터트렸어. 다섯 살짜리가 아프리카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가 없는데.
보통의 다섯 살은 아프리카란 단어를 아는 것도 힘들 때니까.’
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로 돌아가야만 해. 그곳에 나의 케미기샤가 있으니까.
케미기샤를 구해야만 해. 그리고 지금의 난 파드와가 아닌 이은우니까 할 수 있을 거야.
기다려. 케미기샤.’
오미희는 은우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은우야. 아프리카에 대한 그림은 다음에 그리는 게 좋겠구나. 아프리카에 대한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좋겠어.”
은우의 코에서 콧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오미희가 은우의 콧물을 닦아주었다.
“이제 백수희 눈나를 만나러 갈 거야. 선생님이 재밌게 놀아주지 못한 거 같아서 미안해.”
“아니에요. 떤생님. 재미떠더요.”
은우가 딸꾹질을 하면서 대답했다.
백수희는 울고 있는 은우를 보고 당황했다.
“은우야.”
백수희가 은우를 안았다.
오미희가 은우에게 말했다.
“다음에 또 놀러와. 그땐 선생님이 재밌게 놀아줄게.”
오미희는 백수희에게 손짓으로 전화기 표시를 했다.
나중에 전화하겠다는 뜻이었다.
백수희는 조용히 은우의 손을 잡고 상담센터를 빠져나왔다.
***
백수희와 창현은 은우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다.
“선생님 말이 은우가 감정조절이 안 된대.”
백수희의 말을 들은 창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백수희를 바라보았다.
“상담 중에 아프리카란 말을 듣고 울음이 터졌다는데 지난번처럼 멈추지 못할 정도로 계속 울었대.”
창현의 마음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항상 밝게 웃는 아이여서 눈치를 채지 못했던 건지도 몰라. 어릴 땐 엄마 없이 나 혼자 기르느라 우유 시간도 제대로 못 맞추고. 조금 자라선 업고 다니면서 장사하고. 그렇게 자란 환경이 은우에게 좋을 수만은 없었겠지?
그 영향이 지금 나타나는 걸까? 그래서 감정조절이 안 되는 걸까?’
창현은 은우의 문제가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백수희가 말을 이었다.
“감정 조절을 못 하는 게 시작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상담을 더 진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 약을 복용하면 빠르게 좋아지는데 아직 너무 어려서 약은 안 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내가 말씀드리긴 했는데.”
“잘했어. 아직 약은 나도 좀 그래.”
“내가 아는 은우는 누구보다 팬들을 사랑하고 노래를 사랑하고 연기를 사랑하는 아기였는데.”
백수희는 은우가 아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긴 전에 내가 아플 때도 사람들은 내가 아픈 줄 몰랐을 거야. 겉으로 볼 땐 다른 게 없었을 테니까.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내지 못할 때가 더 많지. 어쩜 은우는 그 어린 나이에 나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
창현은 은우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은우는 주변 사람들을 잘 배려하는 성격이니까 어쩌면 힘든데도 아무 말도 못 하고 활동을 지속했을지도 몰라.
음악 방송 1위 했다고 기뻐하던 내가 너무 어리석게만 느껴져.
다섯 살 아기에게 내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
창현의 전화를 받은 강라온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은우가 감정조절을 못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니?
왜 난 그걸 눈치채지 못했지?
하루 스케줄도 두 개 이상은 잡지 않고 은우의 컨디션을 챙기고 있었는데 역시 다섯 살 아기에겐 이 모든 게 무리였던 걸까?’
태현이 대표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은우는 좀 어떻습니까?”
“상담결과가 좋지 않았나 봐. 길동이는?”
“여기로 오고 있습니다. 음악방송 1위를 했다고 기뻐하던 차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
강라온은 은우의 어린 나이 때문에 [아동학대]라는 댓글에 시달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은우 연습 영상에서 은우에게 열심히 하라고 말했던 것이 그런 평가를 받고 말았지.’
강라온은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은우의 팬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었다.
‘은우에 대한 사랑이 회사에 대한 적대적 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길동이 숨을 고르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표님. 우리 은우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태현이 길동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여기 앉아봐. 오늘 할 얘기가 많을 거 같아.”
강라온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은우가 집에서 가족들이랑 1위 영상을 보다가 울음이 터졌다는데 영상이 끝나고 나서도 한 시간 정도를 계속 울었다는 거야.”
길동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 시간이나요?”
“그래. 거의 오열하는 수준으로 굉장히 감격이 격해져서 나중엔 딸꾹질까지 하고 심하게 울었고. 당연히 그래서 가족들이 은우를 걱정하게 됐고. 백수희가 자기가 아는 상담사에게 은우를 데려갔는데. 그 앞에서도 그렇게 울었대.
상담사는 은우가 감정조절이 안 되는 거 같다고 추가 상담을 제안한 상황이고.”
길동이 강하게 부인했다.
“은우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은우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의 바르고 건강한 아기인데. 장난기가 조금 많긴 하지만 감정조절을 못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강라온이 길동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가족들의 불안한 마음인 거 같아. 은우가 아플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랑.
나도 신경 쓴다고 하긴 했지만, 다섯 살짜리 슈퍼스타는 은우 이전엔 없었던 거니까.”
태현이 강라온에게 대답했다.
“맞아요. 그렇죠. 은우는 세기의 스타이자 세기의 천재죠. 근데 돌아보면 세기의 천재였던 사람 중에 정신질환을 앓았던 사람도 많은 거 같아요. 얼마 전에 티비에서 보니 신동으로 유명했던 전자바이올리니스트였던 박나나도 공황장애로 활동 중단했던데.”
강라온이 말을 받았다.
“공황장애는 연예인에게도 흔하잖아. 그만큼 힘든 사람이 많은 거겠지. 암튼 내 판단은 이대로 은우가 활동을 지속하긴 힘들 거 같다는 거야.”
놀란 길동이 커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활동중단이요?”
“그게 좋을 거 같아. 나중에 활동을 재개하더라도. 지금은 은우의 컨디션이 우선이야.”
태현이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다.
“은우에겐 아직 많은 기회가 열려 있으니까. 꼭 지금이 아니라도 기회는 있을 거예요. 은우 팬들도 은우가 무리하게 활동하는 걸 원하진 않을 테고.”
길동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은우가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은우가 노래 부를 때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 1위 한 날도 얼마나 기뻐했었는데.
정말로 과도한 활동이 은우를 힘들게 했던 걸까?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
이게 정말 최선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