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동생을 만나다 (2)
백인수는 티비를 보다가 갑자기 오열하는 은우를 보며 놀랐다.
“은우야,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백수희도 은우에게 달려왔다.
“은우야. 왜 울어?”
창현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은우를 바라보았다.
‘제 동생이 살아있다는 게 너무 기뻐서요. 너무 기쁜데 나만 잘 지낸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고. 너무 보고 싶고. 너무 걱정되고. 너무 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는데 이 상황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은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티비 화면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었다.
“멍멍(은우야, 왜 그래? 아프리카 아이인 걸 보니. 혹시 저 아이가 네가 그토록 걱정하던 동생이야?).”
은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멍멍(잘됐다. 은우야. 잘됐어. 정말 잘됐어. 동생이 살아있었구나. 하늘이 도왔네. 하늘이. 하느님, 은우 동생 살아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우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보리가 고마웠다.
백수희가 휴지로 은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좋은 날 왜 울어? 1등 한 게 너무 기뻐서 우는 거야?”
백인수가 말을 이었다.
“기쁠 때 우는 건 좋은 거지. 우리 은우 앞으로도 좋은 일 많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눈물은 조금만 아껴두자.”
창현은 은우가 걱정되었다.
‘저건 기뻐서 우는 게 아냐. 슬퍼서 우는 거야. 기뻐서 우는데 저렇게 대성통곡을 할 리가 없지. 은우한테 무슨 일이 있나? 음반 활동이 너무 힘들었나?’
창현은 백수희와 백인수가 걱정할까 봐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시는 것 같으니 이제 그만 울어야겠어.’
은우는 울음을 그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울음은 더 터져 나와서 흐느낌이 되었다.
“끄윽. 끄윽. 끅.”
은우의 울음은 이제 딸꾹질이 되어 나오고 있었다.
백인수가 걱정되는 듯 말했다.
“너무 우는데 병원이라도 데려가 봐.”
은우를 보는 백수희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은우야, 왜 그래? 어디가 아파서 그래?”
은우는 아무런 대답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은우는 좋아하는 케이크도 먹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보리가 은우가 걱정되는 듯 은우의 침대에 함께 누웠다.
“멍멍(좋은 날인데 왜 울기만 해? 동생이 죽었을까 봐 걱정했는데 살아있잖아.)”
“바보가치 내갸 동생이 힘든데 차자볼 생각도 모 해떤 거 가타. 내 동생은 뱝도 잘 몬 먹는다는데 형이 아이스크리믈 먹꼬 이따니 내갸 너무 한심해.”
“멍멍(너무 그렇게 생각하진 마. 지나간 시간들은 후회한다고 해서 돌아오는 게 아니야. 나도 전생에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정말 많이 후회했거든. 근데 아무리 후회해도 엄마가 살아오는 건 아니니까. 네 동생은 살아있으니까. 잘 해주면 되지.)”
“거마어. 보이야. 너 바께 엄떠. 오느른 내 마음은 말할 뚜 엄는 게 더 힘드러떠. 진시를 말할 뚜 엄뜨니까.”
“멍멍(천천히 마음을 추스려봐. 그리고 동생을 만날 방법을 찾아야지. 살아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마쟈. 동생을 만냐야 해.”
어둡기만 했던 은우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비추었다.
‘동생을 만나야 해. 이제 난 유명한 스타가 되었으니까. 얼마나 있는진 모르지만, 돈도 있을 거고. 동생을 도와줄 수 있어.’
***
아침에 눈을 뜬 은우는 일어나자마자 돼지 저금통을 찾았다.
‘열심히 모아뒀는데 얼마나 모였을까? 근데 어떻게 꺼내지?’
보리가 옆에 와서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멍멍(동전 들어가는 입구를 가위로 자르면 돼. 조심해서 잘라. 다치지 않게. 보통 이런 건 엄마, 아빠랑 같이 해야 하는데. 같이 할 수가 없으니.)”
“아라떠.”
은우가 가위로 돼지 저금통의 동전 들어가는 부분을 가위로 잘랐다.
“와, 대따.”
은우는 돼지 저금통을 뒤집어 동전을 바닥에 쏟았다.
“이제 세 보쟈.”
“멍멍(100원짜리랑 500원짜리를 구분해야 해. 작은 게 100원, 큰 게 500원. 지폐가 많이 들어있으면 좋겠다.)”
은우는 보리가 알려준 대로 동전을 나누었다.
저금통 안에는 지폐도 몇 장 들어있었다.
“이건 세배하고 바든 만 언. 이건 할아버지가 장난감 사라고 주신 오만 언.”
“멍멍(은우 부잔데. 지폐가 32만 원이나 되네. 동전은 12만 5100원. 다 합쳐서 44만 5100원.)”
“광고에서 보니까 삼만 언이면 케미기샤가 한 다를 살 뚜 이따던데. 그럼 이걸로 몇 달 살 뚜 이떠?”
“멍멍(11달. 조금 보태면 1년도 살 수 있겠는데.)”
은우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와아, 나 부자댜.”
“멍멍(근데 은우야. 너 이번에 음악 방송 1위도 했는데 네 돈이 저게 전부겠어? 훨씬 더 많을걸. 아빠한테 돈을 달라고 해 봐. 네가 번 돈은 저것보다도 훨씬 많을 거야.)”
“긍데 머라고 해야 해? 장난걈 산다고? 젤리 사 먹는다고?”
“멍멍(그게 문제네. 장난감이나 젤리를 산다고 해서 큰돈을 받을 순 없을 텐데.)”
은우와 보리는 큰 난관에 봉착했다.
“역시 아기는 똑땅해. 아기는 모타는 게 마냐.”
“멍멍(아니야. 넌 다섯 살이지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도 받았고 음악방송 1위도 했잖아. 할 수 있을 거야. 방법을 생각해 보자.)”
“케미기샤 목소리 듣고 시픈데. 드를 뚜 있을까? [세이브 더 월드]에 전화해 보고 시퍼. 케미기샤가 잘 인는지 너무 궁금해.”
“멍멍(그때 봤던 번호는 후원번호 같은데 본사로 전화를 해 보자. 그 사람들은 케미기샤랑 연락할 방법을 알고 있을 거야.)”
“그으래.”
은우가 키즈폰을 꺼냈다.
보리가 초록창에서 [세이브 더 월드]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멍멍(02- 6800-○○○○이야.)”
은우는 보리가 알려주는 대로 번호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세이브 더 월드]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후원이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후원 문의는 1번, 기부금 영수증 발행은 2번.”
은우가 1번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세이브 더 월드]입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떼요. 저는 은우임니댜.”
“전화 잘못 거신 거 같은데요. 몇 살이에요?”
“다섯 짜료. 후언하려고 전하해떠요.”
“혹시 집에 엄마 안 계세요? 엄마랑 전화해야 할 거 같은데.”
은우는 상담원이 전화를 끊을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케미기샤요. 광고에 나오는 케미기샤요. 잘 인나요? 아픈 고슨 엄때요?”
“요즘 광고에 나오고 있는 케미기샤요. 케미기샤와 연락을 하고 싶으시면 일대일 결연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으실 수 있어요. 그런데 케미기샤는 이번에 광고에 나가면서 이미 일대일 결연 신청이 여러 명 들어와서요. 케미기샤 말고 다른 어린이는 어떠세요?
다른 어린이 중에도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많이 있어요.”
“케미기샤 목소리를 듣고 시퍼요. 우리 케미기샤 잘 인나요?”
“개인 전화번호는 알려드리지 않아요. 그런데 엄마 안 계세요? 아니면 아빠라도? 옆에 어른 없나요?”
“제가, 제가 할 뚜 이떠요. 저는 이은우예요.”
은우는 다급한 마음에 전화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거리를 냐셔면 날 보는 시션들.
누냐, 횬아, 할뷰지, 할모니
내갸 그러케 기여운가여.]
상담원은 전화를 받은 채 팀장을 손으로 불렀다.
팀장이 상담원의 근처로 왔다.
“왜 그래? 진상 전화야?”
상담원이 잠시 헤드셋을 벗고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어떤 아기가 후원을 하고 싶다는데 5살이래요. 그래서 제가 옆에 엄마, 아빠, 어른 없냐고 했는데. 계속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우기는데. 자기가 이은우라고 하는데 이 말을 믿어야 해요? 말아야 해요?”
“이은우? 그 국민 아기?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 받은 그 아기?”
“네, 지금 전화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는 똑같아요. 이걸 믿어야 할까요?”
“이리 줘 봐.”
팀장이 전화를 받았다.
은우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난 너무 기여워. 난 너무 사랑스러어.
여러분도 너무 기여어. 여러분도 너무 사랑스러어.
우린 모두 소중해.]
“은우, 은우 맞나요? 진짜 은우예요.”
은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나를 알아보는구나. 그럼 이제 후원도 할 수 있고 케미기샤도 만날 수 있겠지.’
은우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이은우임니댜.”
“저 재롱이들인데 처음에 은우가 [내일도 사랑해]에 나왔을 때부터 팬이었어요.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악, 영광이에요. 은우랑 전화 통화했다고 이따 자랑해야겠다. 은우 [당신의 가요]에서 1위 할 때도 보러 갔었는데. 맙소사. 맙소사. 내 심장.”
“고맘뜹니댜. 후언은 할 뚜 인나요?”
“은우가 원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죠. 후원 신청서라는 걸 작성해야 하는데 한글은 쓸 수 있어요?”
“조금 뜰 뚜 이떠요. 내 이르미랑 보이이르미랑.”
“못 쓰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후원 신청서 작성을 도와주러 집으로 방문할 수도 있는데 집으로 방문할까요?”
통화를 듣는 상담원은 팀장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끔 거리에 나가 후원자를 모집할 때는 신청서 작성을 도와주긴 하지만 전화로 신청이 들어왔을 때 신청서 작성을 도와주러 나간 적은 없었는데 일을 하는 거야? 자기 흑심을 채우는 거야?
워커홀릭인 줄 알았던 팀장이 은우 팬일 줄이야. 팬심으로 안 되는 일도 다 된다고 하는 거 아냐?
부모랑 얘기를 해야지 5살에게 후원 신청서를 받았다가 나중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지?’
***
창현은 백수희와 은우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다.
백수희가 창현에게 물었다.
“은우가 갑자기 왜 운 걸까?”
“모르겠어. 잘 지냈는데. 혹시 몰라서 아까 어린이집에 전화했는데 수녀님도 모르겠다고 하셔. 친구들이랑도 잘 놀고 특별히 문제는 없다고 그러셨는데.”
“음반 활동이 힘들었던 걸까?”
“무대에 설 때마다 신난다고 해서 그 말을 믿고 시켰던 건데. 말이랑 다르게 스트레스받고 있었던 걸까?”
“그럴 수도 있어. 나도 예전에 [페퍼민트]라는 드라마를 찍으면서 주말극 시청률 1위를 찍을 때 속으로는 굉장히 우울했거든.
사람들은 나만 보면 환호하는데 촬영현장에 가면 나만 연기를 못하는 거 같고. 그땐 또 악성댓글도 많이 달려서 [연기도 못하는데 얼굴로만 승부한다]는 댓글도 많았고 [목소리 거슬린다]는 댓글도 많았고 갑자기 모든 관심이 나에게로 향하는 거 같아서 부담스러웠어.”
“역시 음반 활동밖엔 의심할 게 없는 걸까?”
“그게 제일 확률이 높아 보이긴 하는데. 혹시 은우 한글 읽어?”
“아직 다 잘 읽진 못하지만, 예전보단 읽는 단어가 늘어나긴 했어. 가르치진 않았는데 가사도 외우고 대본도 외우고 하면서 조금씩 늘더라고.”
“그럼 혹시 댓글을 봤나?”
“설마?”
“은우 키즈폰에서도 느리지만 기사는 볼 수 있잖아.”
“맙소사.”
창현이 은우의 최신 기사를 검색해서 댓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최빛나랑 윤태호의 자살 사건 이후 초록창과 노란창에서 연예 기사에 댓글 작성을 못 하도록 막긴 했는데.”
창현은 여러 개의 기사를 클릭해 보았다.
“연예란에 뜬 기사는 막혀 있는데 사건, 사고란에 뜬 기사는 막혀 있지 않아.”
백수희도 은우 관련 영상을 검색해 보다가 외쳤다.
“은우 티비는 실시간 댓글이 올라오네. 초록창에 다른 영상들도 영상엔 댓글을 달 수 있게 돼 있어.”
“나쁜 댓글도 있어?”
“대부분 좋은 댓글이긴 한데. [다섯 살짜리 데리고 벌써부터 돈 버냐?], [쟤 하나도 안 귀여운데 왜 귀여운 척함?], [남우조연상 받은 인기로 걍 음악방송 1위 하는 거 같아서 별로.], [춤 너무 못 춘다. 어린이집 율동도 아니고? 댄스 가수가 저래도 돼?]
안 좋은 댓글도 있네. 정말 이걸 읽었을까?”
백수희가 울상을 지었다.
창현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설마 이걸 다 보진 않았을 거야. 봤다면 그렇게 씩씩하게 그렇게 해맑게 지냈을 수가 없는데.”
백수희가 창현을 위로했다.
“은우 상담 한번 받아보는 게 어떨까? 내가 전에 힘들었을 때 상담해주셨던 분이 있는데. 우리한테 하지 않는 이야기도 그분에겐 할 수도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