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동생을 만나다 (1)
은우는 보리와 함께 어린이집에 가는 길이었다.
“멍멍(노랑이, 까망이는 많이 컸어?)”
“이제 캐초딩이래. 기여어.”
“멍멍(그렇군, 어떤 고양이일까 궁금해지는데. 혹시 전생을 기억하는 고양이일까?)”
“그런 거양이는 엄뜰 걸.”
“멍멍(나 말고도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동물이 있는지 궁금해. 만약 그런 동물이 있다면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텐데).”
은우는 보리의 그 감정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전생과 전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긴 해. 누군가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그 사람과 내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텐데.
가끔은 나만 혼자 너무 큰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 외롭거든.
보리도 같은 기분이겠지?
그래도 보리가 있어서 난 참 좋아. 동물과 사람인 건 다르지만 전생을 기억하는 걸 보리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
보리가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노랑이, 까망이를 보고 싶어서라니.
은우는 걱정이 되었다.
‘만약 노랑이, 까망이가 그냥 고양이라면 보리가 많이 실망할 텐데.’
창현이 어린이집에 차를 세웠다.
“아뺘, 잘 다녀오께요.”
“멍멍(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은우는 씩씩하게 인사를 한 뒤 보리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우가 은우에게 인사를 했다.
“횬아, 와 떠? 오, 강아지!”
보리를 처음 본 정우는 보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횬아가 키우는 강아지야. 이름은 이보이.”
“너무 기여어.”
“멍멍(어딜 가나 이놈의 인기란 참.)”
보리는 고개를 45도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한쪽 발을 들어 정우에게 주었다.
“멍멍(이 몸이 몸소 인사를 하겠다고 해 줘.)”
“정우야. 보이가 인사한대. 손 자뱌져.”
정우가 보리의 앞발의 잡고 인사했다.
“안녕하떼요.”
“멍멍(귀엽게 생겼네. 아가. 친하게 지내자.)”
노랑이가 은우를 보고 다가오다가 보리를 보더니 멈칫하고 멈춰 섰다.
노랑이는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허리를 웅크려 몸을 크게 보이게 했다.
정우가 노랑이를 보고 놀라서 말했다.
“횬아, 노랑이 고슴도치 가탸.”
“멍멍(노랑이 놀랐나 본데. 쟤 강아지 싫어하나.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내가 피해줘야겠다.)”
보리가 노랑이를 피해 다른 방으로 들어가자 노랑이는 미끄럼틀 뒤로 숨어버렸다.
다른 방에선 현정이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은우가 현정이에게 물었다.
“현정아, 그게 머야?”
“안테나. 우주로 신호를 보낼 거야.”
정우가 현정이가 만든 것을 보고 감탄했다.
“우아. 머찌다.”
“멍멍(나무젓가락 이어붙인 거에 일회용 접시 붙이면 우주로 신호가 갈까? 모양은 안테나랑 비슷하긴 한데. 우주에서 생명체가 사는 곳까지 신호를 보내는 건 인공위성이나 가능할 텐데.)”
은우는 가끔은 보리가 너무 똑똑하고 너무 사실적이어서 강아지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은우는 현정이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라고 생각했다.
“잘 마드러따. 어떤 신호를 보내고 시퍼?”
현정이는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소소소소소소소소소소소.”
그래도 현정이가 많이 밝아져서 다행이라고 은우는 생각했다.
정우가 옆에서 소원을 외웠다.
“치과 안 가게 해주떼요. 치과가 무떠어요. 젤리 조금만 머글게요.”
“멍멍(저건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는 마법의 램프 같은 거야? 그럼 나도 소원 하나만 동물로 환생한 사람 하나만 만나게 해주세요.)”
혜린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 이거 샀다. 우리 이거 해볼래?”
혜린이의 손에는 작은 기계가 들려져 있었다.
저건 무슨 기계지? 라고 은우는 생각했다.
“이건 고양이 말 번역기야. 목에 달아놓으면 고양이가 하는 말을 알려준대. 재밌겠지?”
“멍멍(살다살다 별 걸 다 만들어 내네. 근데 저거 믿을 만한 거야? 현정이 안테나처럼 모양만 똑같은 거 아니고?)”
어느새 옆으로 온 연아가 말했다.
“재미께다. 어서 해보쟈.”
시우도 달려왔다.
“보리한테 먼저 해보쟈. 강아지한테도 할 뚜 이찌 아늘까?”
지호가 동의했다.
“조은 생갸기야. 보리한테 해보자.”
“멍멍(왜 갑자기 나야? 내가 실험용이야?)”
보리는 울상이었다.
은우가 보리를 달래며 보리의 목에 번역기를 달아주었다.
“재미뜰 거야. 보이야. 기분 푸러.”
“멍멍(진짜 재밌는 거 맞아? 애기들 장난감 같은데. 진짜 작동하긴 해?)”
혜린이가 번역기를 바라보았다. 번역기에서 한글로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배고파. 밥 줘.]라는데? 은우야, 보리 밥 언제 먹었어?”
“아치메 머거는데.”
연아가 그 말을 듣더니 사료를 찾으러 갔다.
“요기, 노랑이, 까망이 따료.”
연아가 손에 가득 움켜쥔 사료를 바닥에 흩뿌려 놓았다.
“멍멍(왜 개한테 고양이 사료를 주고 그래? 근데 이 고소한 냄새는 뭐지?)”
보리는 킁킁 냄새를 맡다가 고양이 사료 하나를 먹었다.
‘뭐지? 이 의외의 맛은? 강아지 사료보다 맛있잖아. 고기 맛이 많이 나. 역시 인생은 고기지.’
보리는 신이 나서 연아가 가져온 사료를 많이 먹었다.
고양이 사료가 강아지 사료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서 맛있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보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보리는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었다.
“멍멍(강아지 번역기 좋은데. 계속하자.)”
“거 뱌. 이보이. 내가 그럴 뚤 아라떠.”
은우가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이 나서 말했다.
혜린이가 번역기를 바라보았다.
“[심심해서 놀고 싶어.]라는데? 보리 뭐 하고 노는 거 좋아해?”
“보리 퍼즐 맞추는 거 조아하는데.”
“퍼즐 가져와.”
연아가 커다란 퍼즐을 가져왔다.
보리는 신이 났다.
“멍멍(퍼즐 맞추기를 할 수 있다니. 시간 걸린다고 집에선 나랑 같이 잘 안 해주는데. 오늘 내 생일인가? 강아지 번역기 너무 좋은데. 요술 램프 같아. 어쩜 내 맘을 그리 잘 아는지. 저거 만든 사람 상 줘야 해.)”
은우가 퍼즐을 바닥에 쏟았다.
바닥에는 신데렐라 그림 퍼즐이 흩뿌려져 있었다.
“멍멍(머리 쓸 생각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네.)”
보리는 첫 번째 퍼즐을 찾아내고 신이 나서 짖었다.
“멍멍(이게 첫 번째 퍼즐이야. 어서 놓아줘.)”
은우가 보리가 찾아낸 퍼즐을 가장 구석에 놓았다.
“멍멍(또, 찾았어. 두 번째 퍼즐)”
연아가 두 번째 퍼즐을 은우가 맞춘 퍼즐 다음에 놓았다.
***
“다녀와뜹니댜.”
은우는 보리와 함께 창현의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서 돌아왔다.
백수희와 백인수가 은우를 맞이했다.
“은우 왔어. 어서 손 닦자.”
“은우 1등 한 거 축하해. 할아비가 선물 사 왔지.”
은우는 반가움에 백인수의 다리를 잡고 인사했다.
“하뷰지. 보고 시퍼떠요.”
보리도 꼬리를 치며 인사했다.
“멍멍(오늘 파티인가? 어린이집에서부터 하루 종일 운이 좋네.)”
은우가 손을 닦는 사이 백수희가 거실에 케이크와 과일을 차려 놓았다.
백인수는 풍선으로 벽을 장식했다.
벽에는 하늘색 풍선으로 [1st Anniversary(첫 번째 기념일)]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은우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발견하고는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다. 민트초코 마디는데.”
백인수가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다.
창현이 외쳤다.
“불 끈다.”
전깃불이 꺼지고 은우가 촛불 앞에 섰다.
백수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은우야, 소원 빌어.”
백인수가 말을 이었다.
“음악 방송 1등도 했는데 소원이 또 있을까?”
백수희가 대답했다.
“은우는 월드 스타니까 또 다른 소원이 있을지도 모르죠.”
은우는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동생을 만나고 싶어요. 전 이렇게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동생은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 걱정돼요. 살아있긴 한 걸까요? 내 동생 케미기샤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
은우가 촛불을 불었다.
“휴우.”
백수희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초가 한 번에 꺼졌어. 우와. 은우 소원 이루어지려나 보다. 무슨 소원 빌었어? 은우야.”
“비미리예요. 헤헤헤헤헤.”
“멍멍(나는 알 것 같아. 어떤 소원 빌었는지. 은우 소원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동물로 태어난 사람을 만나는 내 소원도 언젠간 이뤄지겠지?)”
백수희가 접시를 가져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덜었다.
“민트초코. 민트초코.”
“알았어. 은우야. 눈나가 다 기억하고 있지.”
백수희는 은우가 좋아하는 민트초코맛 아이스크림을 접시에 담아주었다.
은우는 민트초코맛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백인수가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말했다.
“티비 좀 틀어봐라. 우리 은우 1등 한 거 다시 보게.”
“아빠 그거 벌써 많이 봤잖아요.”
“계속 봐도 자랑스러우니까 그렇지. 어서 틀어봐.”
백수희는 백인수의 성화에 못 이겨 티비를 틀었다.
화면 속에서는 은우가 [난 너무 귀여워]를 부르고 있었다.
백인수가 화면 속의 은우를 보며 감탄했다.
“누구 손잔지 정말 귀엽네.”
은우가 강아지처럼 백인수의 품을 파고들면서 말했다.
“하뷰지 손쟈.”
“그럼. 할아버지 손자지. 우리 은우.”
백인수가 은우를 꼬옥 안고 무릎에 앉힌 뒤 티브이를 시청했다.
노래는 어느새 [따따따]로 넘어갔다.
백인수가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다아하암께에. 워어언. 따아따아따아따아 따아따아따아따아.]
백수희가 백인수의 노래를 듣더니 웃음보가 터졌다.
“아빠. 그게 뭐예요. 대체. 은우가 부를 때는 댄스곡이었는데 아빠가 부르니까 목욕탕에 앉아서 ‘아아, 따뜻하다’하고 외치는 감탄사 같은 노래가 돼버렸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좋으면 됐지? 내 손자 노래 부르는데 꼭 잘 부르라는 법이 있나?”
창현이 맞장구를 쳤다.
“멋지십니다. 아버님. 티브이에서 들었던 판소리 같기도 하고 시조창 같기도 한데요. 전 아버님이 부르는 [따따따]가 더 좋은데요.”
“거봐. 창현이는 내 노래가 더 좋다고 하잖아.”
“헤헤헤헤. 저도 하뷰지 노래가 좋아요.”
“나만 빼고 다 아빠 편이네. 아이고, 은우야. 눈나 서럽다. 눈나 편도 들어줘라.”
은우가 백수희에게 하트를 날리며 말했다.
“따랑해요. 눈나.”
“역시 은우밖에 없어.”
은우의 영상 중간에 광고가 나왔다.
백수희가 광고를 보며 외쳤다.
“이놈의 광고. 프리미엄 결제하라 이거지? 이참에 프리미엄을 신청해야 하나?”
백인수가 동의했다.
“은우 노래 듣다가 이게 뭐니? 어서 프리미엄을 신청해. 맥이 끊겼잖아. 맥이. 나던 흥이 다 사라지겠다.”
은우는 광고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광고 속에는 아프리카의 한 아이가 하얀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사는 케미기샤는 오늘도 한 끼를 걱정합니다. 케미기샤의 부모님은 케미기샤가 세 살이던 때 내전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뿐인 형이 하루 종일 금을 주우며 케미기샤를 먹여 살렸지만, 형마저도 케미기샤가 다섯 살이던 해에 죽었습니다.
혼자 남은 케미기샤는 세이브 더 월드의 도움으로 간신히 끼니를 연명하고 있습니다.]
화면 속에는 세련된 정장 차림을 한 중견의 여자 배우 허희라가 나타났다.
[한 달에 삼만 원이면 케미기샤와 같은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홀로 된 케미기샤에게 힘을 주세요.
우리가 아끼는 커피 한 잔이 아이에게 미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후원번호는 070- 1544- ○○○○]
은우는 광고를 보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케미기샤야. 케미기샤야. 네가 왜 거기?’
은우가 백인수의 품에서 내려가 티브이 화면 앞으로 다가갔다.
은우는 화면이 오랫동안 그리워한 케미기샤의 얼굴인 듯 어루만졌다.
‘그래도 살아있었구나. 내 동생. 보고 싶었던 내 동생.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들이 우릴 버리지 않았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은우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코에서도 콧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