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59화 (159/257)

159화. 음악방송 1위 (2)

케찹 피를 잔뜩 묻힌 무시무시한 은우가 외쳤다.

“좀비에겐 음아기 피료해.”

백수희가 스마트폰으로 수박 어플에서 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이거다.”

백수희가 찾아낸 것은 유명한 좀비 드라마 [좀비의 저주]의 타이틀곡 [아이좀비]였다.

백수희가 음악을 틀자 방 안에는 긴장감이 가득 찼다.

[따단 따단 따단 따단 따단 따단 따단]

명석이가 두 팔을 앞으로 든 채 외쳤다.

“으마기 무서여서 심장이 두큰두큰해.”

은우가 고개를 45도 삐뚤게 한 채 외쳤다.

“냐는 좀비댜. 으하하하하.”

보리가 왼쪽 앞발을 든 채 짖었다.

“멍멍(나는 좀비 강아지다. 나한테 물리면 모두 좀비가 된다. 무섭지?)”

백수희가 두 눈을 가리며 말했다.

“무서워요. 좀비님. 살려주세요.”

은우 좀비가 말했다.

“살려두겠댜. 대신 초콜리슬 가져아라. 며서갸 머꼬 시픈 거 이떠?”

“젤리.”

“젤리도 가져아라.”

“네, 좀비님.”

은우와 명석이는 좀비춤을 추고 있었다.

은우가 가사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아기 좀비. 세상에서 제일 뮤셔운 아기 좀비.

우리가 나타나면 모두 댜 도망갸지.

아기라고 얕보지 먀라.

우리는 좀비.]

은우의 노래에 맞춰 명석이가 좀비 걸음을 흉내 내며 앞으로 걸어갔다.

팔을 앞으로 들고 고개를 덜렁덜렁거리며 죽은 흉내를 내는 것이 포인트였다.

보리도 왼쪽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든 채, 왼쪽 발을 들고 천천히 걸었다.

“멍멍(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아기좀비단이다. 우리에게 물리면 너도 좀비다. 우리가 무서우면 먹을 것을 모두 바쳐라. 특히 고기를 바쳐라.)”

백수희가 초콜릿과 젤리를 들고 오다가 그 장면을 보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너무 귀여운데 이걸 찍어야겠어.’

백수희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은우가 백수희를 발견하고 백수희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초콜릿 어딘냐?”

“여기 있습니다. 아기 좀비님. 목숨만 살려주세요. 저는 좀비가 되고 싶지 않아요.”

백수희가 은우에게 초콜릿을 주었다.

은우가 비닐을 까서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마디꾼. 초콜리시 마디떠서 살려주겠다. 초콜리세게 감사해라.”

“감사합니다. 초콜릿님. 저를 살려주셨네요. 다음에도 잘 부탁드려요.”

명석이가 화면 앞으로 왔다.

“젤리는? 어딘냐?”

백수희가 젤리 봉투를 명석이에게 주었다.

명석이가 젤리 봉투에서 가장 큰 왕젤리를 찾고 있었다.

“왕젤리는 어딘냐? 왕젤리가 안 보여.”

왕젤리는 젤리 봉투당 한 개만 들어있는 것으로 아기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이었다.

명석이도 늘 젤리를 먹을 때면 왕젤리를 가장 먼저 찾아서 자랑스럽게 쭈우욱 늘리면서 먹곤 하였다.

백수희가 젤리 봉투를 쫘악 뜯어서 왕젤리를 찾아냈다.

“여기 있습니다. 왕젤리. 어서 왕젤리를 드시고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명석이가 젤리를 쭈욱 잡아당겨서 늘였다.

“마디구나. 용서해 주겠다. 젤리에게 감샤인사를 해라.”

“고마우신 젤리님.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잘 부탁드려요.”

아무것도 먹지 못한 보리가 외쳤다.

“멍멍(나는? 나는? 나도 강아지 좀비잖아. 먹을 것을 바쳐라.)”

은우가 보리의 말을 알아듣고 백수희에게 외쳤다.

“보리 좀비도 간시기 피료하다.”

보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릉하는 연기를 펼쳤다.

“아이, 무서워.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보리 좀비님.”

백수희가 서랍장에서 보리의 간식을 가져왔다.

“여기 닭가슴살과 황태 트릿이 있습니다. 뭐부터 드릴까요?”

보리가 으르렁대며 외쳤다.

“멍멍(내가 많이 먹을 수 있게 밥그릇에 넣어달라고.)”

은우가 백수희에게 말했다.

“보리가 머글 두 있게 밥그르세 너어라. 먀니.”

백수희가 닭가슴살 트릿과 황태 트릿을 보리의 밥그릇에 부어주었다.

보리가 신이 나서 꼬리를 쳤다.

“멍멍(내 소원이 간식을 사료만큼 많이 먹는 거였는데 이뤄졌다. 좀비 만세.)”

보리는 신이 나서 밥그릇 앞에서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

여행사에 다니는 직장인 모모 씨는 퇴근 중인 지하철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모모 씨, 내일 출발할 신우기업 단체여행 건 말이에요. 그거 출발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데. 몇 시로 바꿔줄 수 있어요?”

“내일 출발인데요?”

모모 씨는 머릿속에서 지진이 나는 것만 같았다.

‘제발 퇴근한 이후에는 연락 좀 하지 말라고요. 전 24시간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채 모모 씨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관광버스 회사부터 전화를 돌리고 숙박 업체에도 전화를 하고. 그래도 비행기가 아니라서 다행인가?’

모모 씨는 지하철에서 내려 정신없이 이곳저곳 전화를 돌렸다.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다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말씀하신 대로 출발 시간 조정했어요. 오전 9시 출발이 아니라 오후 1시 출발로요. 즐거운 여행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감사해요. 감사해요. 모모 씨. 역시 모모 씨는 일을 정말 잘한다니까.”

전화를 끊고 나자 긴 한숨이 나왔다.

“휴우.”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지하철에서 한 시간이나 통화를 하다니. 집에도 못 가고 내 신세도 참.’

대학생 때부터 여행을 좋아했던 모모 씨는 처음 여행사에 입사했을 때 너무나도 설레였다.

‘그땐 여행사에서 일하면 평생 여행 다니고 신이 날 줄 알았지. 이렇게 자주 야근을 하고 회사에서 오는 연락을 받게 될 줄은 미처 몰랐어.

힐링여행은 소비자에겐 힐링이지만 여행사 직원에게도 힐링은 아니니까.’

모모 씨는 여행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여행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직장인이 된다는 것은 보기보다 혹독한 일이었다.

모모 씨는 긴 퇴근길을 끝내고 집에 도착했다.

노란색 치즈태비 고양이 감자가 모모 씨를 맞이했다.

“냐옹.”

모모 씨는 감자의 인사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1.5룸 내 방으로 돌아오기까지가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모모 씨는 가방을 옆에 둔 채로 바닥에 누웠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진심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다. 옷도 갈아입기 싫고. 밥도 먹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모모 씨는 어쩌면 자신이 번아웃 증후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모든 게 하기 싫어지고 있어. 예전엔 화장도 하고 예쁘게 꾸미는 것도 좋아했는데 요즘은 매일 같은 옷만 입고. 쉬고만 싶어.’

모모 씨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태블릿을 켰다.

‘은우 영상이나 봐야지. 오늘 같은 날은 은우가 필요해.’

너투브에 접속하자 너투브가 은우의 [당신의 가요] 1등 영상을 모모 씨에게 추천했다.

‘은우 1등 했나 보네. 봐야지.’

은우가 화면 속에서 편곡된 [난 너무 귀여워]를 부르고 있었다.

모모 씨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편곡한 노래 진짜 좋다아. 무대에 나온 아기들도 너무 귀여워.”

모모 씨는 무대에 나온 아기가 발가락이 귀엽다고 하는 장면에서 빵 터졌다.

고양이 감자가 유연하게 몸을 숙여 뒷발을 그루밍하고 있었다.

모모 씨는 자신의 발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 발도 귀엽나?’

모모 씨는 오랜만에 서랍장에서 페디큐어용 스티커를 찾아서 붙였다.

모모 씨의 발가락에 귀여운 판다가 그려졌다.

‘이제 좀 귀엽네. 귀여운 발가락 좋지.’

화면에서는 은우가 바닥에 누워서 지렁이춤을 추고 있었다.

‘은우 지렁이 너무 귀엽네.

은우는 천진난만한 게 너무 예뻐.

나도 은우처럼 순수했던 적이 있었지.

그땐 세상이 참 행복했는데.’

모모 씨는 침대에서 내려가 방바닥에 누워 지렁이춤을 추기 시작했다.

감자가 모모 씨의 옆으로 와 작게 울었다.

“야옹.”

“감자야. 나 지렁이춤 추는 거야. 오늘 하루는 모모 씨 아니고 은우로 살 거야.”

모모 씨는 저녁 메뉴에 대해 고민했다.

“오늘은 뭐 먹지? 다이어트 중이니까 샐러드 먹어야 하나?”

마음속의 은우가 대답했다.

“젤리. 햄버겨. 행복한 걸로 머그세요.”

모모 씨는 배달 어플을 켜고 치킨과 피자를 주문했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야지.’

1시간 후 모모 씨의 집에 치킨과 피자가 도착했다.

모모 씨는 사진을 찍어 별스타에 올렸다.

#오늘 하루만 은우로 살기 #번아웃 증후군 #은우로 살면 행복해요. #은우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아보기.

***

HO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은 은우의 1위로 잔치 분위기였다.

태현이 강라온에게 말했다.

“드디어 은우가 1위를 했네요. 대표님 예상이 맞았어요.”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그걸 음반에 넣지 않은 걸 진짜 후회했어.”

“그래도 결과가 좋았으니 됐죠.”

“이번 일은 다 예상하진 못했어. [따따따]가 역주행한 것도 그렇고. [따따따] 역주행이 없었으면 [난 너무 귀여워]도 1위를 하지 못했을 거야.”

“[따따따] 역주행은 정말 신기했어요. 팬들이 그걸 놀이로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따따따]는 패러디 영상이랑 안무 영상이 순위를 올려준 일등 공신이었지.”

“패러디 영상 진짜 재밌더라구요. 이번에 개봉한 영화 [빛]도 은우 노래를 활용한 광고가 나와서 자연스레 음반 홍보가 되고 있어요. 덕분에 외국 사람들도 [따따따]를 많이 알게 되고. 외국에선 [난 너무 귀여워]보다 [따따따] 인지도가 더 높더라구요.”

“아무래도 후크가 더 쉽고 강렬해서 그럴지도 모르지.”

“요즘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은우 놀이가 유행한대요.”

“은우 놀이라고?”

“번아웃이 온 직장인들이 하루를 은우처럼 보내는 거예요. 은우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요.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다고 하던데요. 평이.”

“진짜?”

강라온이 초록창에 [은우 놀이]를 검색했다.

첫 번째 블로그 글을 클릭하자 후기가 올라왔다.

┗ 공시생 5년 차예요. 자꾸 시험에서 미끄러지고 자존감도 낮아지고. 자꾸 합격 소식을 묻는 친구들과 연락하기 싫어서 인간관계도 다 끊겼어요. 점점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고 부모님껜 말씀 못 드렸지만, 일주일 동안 학원도 안 가고 고시원에서 혼자 폐인처럼 게임만 하고 그랬어요. 검색해보니 제가 번아웃 증후군인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은우처럼 살았더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고민하다가 결국 공무원 시험을 접고 중소기업에 취직했어요. 안정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에요. 저 내일 출근합니다. 모두 응원해 주세요.

┗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너무 우울했어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약도 받아왔어요. 우울증약을 먹으니 자살 충동은 사라졌는데 무언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아서 방에서 혼자 틀어박혀 멍하니 있었어요.

그러다가 발견한 은우 놀이 추천합니다. 이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웃어요. 제 마음속 은우가 그러더라구요. 제가 절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절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요.

┗ 전 인턴만 5번 했어요. 일명 휴지인턴이라고 부르죠? 그걸 알면서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게 기회인 것 같아서요. 커피도 열심히 타고 복사도 열심히 하고 청소도 열심히 했어요.

어떤 부장님은 저에게 자기 아이 숙제를 해 달라고 했어요. 그것도 열심히 했어요. 정직원이 되고 싶었거든요. 근데 계속 떨어지니까 우울증이 오더라구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직원 될 수 없으니까요.

지난달에 인턴에 떨어지고 나선 지원서를 안 썼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리고 은우 놀이를 시작했어요. 매일 매일 은우처럼 걱정 없이 살았어요.

몰랐었는데 그렇게 참으면서 제 자신이 억눌렀던 게 독이 됐던 거 같더라구요. 이제 더 이상 인턴은 안 하려고요. 대신 좋아하던 애견용품으로 초록창에 똑똑한 스토어를 열었어요. 중국 사이트에서 물건을 구매해서 파는 일인데 단골이 조금씩 늘고 있어요. 응원해 주세요.

태현이 글을 읽으며 강라온에게 말했다.

“대단한데요. 은우 놀이. 저도 해 봐야겠어요.”

“은우는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사람들이 이토록 좋아하다니 말이야.”

“당연하죠. 은우는 힐링 그 자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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