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음악방송 1위를 향하여 (5)
길동은 오랜만에 동창회에 참석했다.
친구들은 왁자지껄하게 길동을 맞아주었다.
“오랜만이다. 김길동.”
“스타 매니저 되더니 얼굴 보기가 힘들어.”
“우리 와이프가 은우 사인받아 달라고 하더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가 된 것은 길동이었다.
각종 티비 프로에 연예인 매니저들이 출연하면서 일반인들도 연예인 매니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은우 매니저라니 출세했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까지 탔는데 넌 평생 먹고 사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
“티비 보니까 박진수 매니저는 박진수가 따로 성과금 같은 것도 챙겨준다더라. 너도 그런 거 받냐?”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길동에게 물었다.
“요즘 매니저 연봉도 많이 올랐다던데. 은우 매니저 정도면 나보다 많이 버는 거 아냐?”
친구들의 주된 관심은 길동의 연봉이었다.
‘다른 매니저보다 많이 받고 있는 건 맞지만 직업을 돈으로만 하나.’
은우 매니저가 되고 나서 은우가 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속 한켠이 몽글몽글해져 오는 길동이었다.
“우리 은우 보는 재미에 하지. 니들은 모른다. 매니저라는 게 돈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냐. 스타에 대한 애정. 그게 없으면 힘든 스케줄을 못 버텨.”
친구들이 다시 말을 이었다.
“부럽다. 귀여운 은우를 매일 보고.”
“넌 매일매일이 힐링이겠네.”
“돈도 받고 은우도 보고 아주 꿀이겠다. 꿀.”
“경력 없는 신입도 받아주냐? 너 그만두면 나에게 꼭 연락 줘라. 알았지?”
친구들의 몰아가기에 길동은 할 말이 없어 그저 너털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
눈을 뜨자 머리를 파고드는 두통에 길동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셨어.’
동창회에서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 길동은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권하는 소주잔에 정신을 놓았다.
‘집까지 찾아오긴 했는데 대체 몇 잔을 마신 걸까?’
어디서부터 기억이 끊긴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간신히 물을 마시고 습관처럼 수박 어플을 켰다.
‘오늘은 은우가 몇 위를 했을까? 요새 강라온 대표님이 은우 순위를 계속 신경 쓰시던데.’
[난 너무 귀여워]가 차트에서 3주간 2위에 머무르면서 만년 2등이 될까 봐 길동도 조마조마하던 차였다.
‘[나의 강아지에게]가 7위에 있긴 하지만 [나의 강아지에게]는 1위가 되긴 힘든 곡 같고.’
음반 발매 후 한 달 음반 판매량 역시 서서히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HO 엔터테인먼트와 강라온 대표도 조바심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길동도 마찬가지였다.
실시간 차트 1위를 확인한 길동은 눈을 비볐다.
‘잠깐만 이거 술 취해서 잘못 본 거 아니지?’
실시간 차트 1위는 은우의 [따따따]였다.
2위는 은우의 [난 너무 귀여워]
5위는 [나의 강아지에게]
‘실시간 순위이긴 하지만 10위 안에 세 곡이 올라가다니.
게다가 [따따따]는 강라온 대표님이 촌스럽다고 앨범에 넣긴 넣었지만 타이틀로 밀지는 않았던 곡인데.’
***
강라온은 [따따따]의 차트 역주행에 아침부터 싱글벙글이었다.
‘은우 티비에서 [따따따]가 나오고 너투브 크리에이터 라라가 [따따따]를 소개한 뒤 역주행이 시작됐어. 차트에 진입조차 못 했던 곡이 1위에 오르다니.’
예상조차 못 했던 반응이었다.
너투브에서는 각종 패러디 영상이 올라오고 있었다.
강라온이 너투브에서 [따따따]를 검색하자 검색창 밑에 [따따따 패러디], [따따따 안무]와 같은 검색어가 함께 올라왔다.
강라온은 [따따따 패러디]를 눌렀다.
첫 번째 영상에서는 10살짜리 남자 초등학생이 카메라를 보며 개구쟁이 웃음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문진 초등학교 삼학년 백진우입니다.
제가 요새 이은우의 [따따따]를 좋아하는데 가사를 바꿔서 [싸싸싸]로 만들었어요.
이 노래는 그러니까 화장실 버전입니다.”
초등학생이 화장실로 뛰어가 화장실 변기 뚜껑을 닫고 변기 위에 앉았다.
“시작할게요.”
[방구가 뽕 싸싸싸싸 싸싸싸싸
배아파 뽕 싸싸싸싸 싸싸싸싸
참을 수 없어 뽕 싸싸싸싸 싸싸싸싸
초등학생은 휴지를 손에 꼬옥 쥐고 힘을 주는 표정을 지었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가치
힘을 줘 뿡뿡 기운 내 뿡뿡
오늘은 쌀 쑤 있다.
더 크게 더 빨리 더 시원하게 뽕뽕뽕뽕
싸싸싸싸 싸싸싸싸]
영상을 보던 강라온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강라온은 너무 웃어서 옆구리가 저릴 지경이었다.
‘패러디 너무 잘 만들었네. 요즘 초등학생은 창의력이 대단한데. 저거 소장하고 매일 우울할 때 보면 대박이겠다.’
강라온은 다른 [따따따 패러디]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 속에서는 예쁜 20대의 여자가 나왔다.
여자는 세련된 화장을 하고 있었고 웨이브 진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하얀 피부에 발그레한 볼터치와 짙은 눈썹이 복숭아를 연상시키는 청순한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뷰티 너튜버 승아입니다.
오늘은 화장품 리뷰가 아니라 [따따따 패러디]를 하려고 나왔는데요.
며칠 전에 [따따따] 노래를 듣고 재밌는 생각이 나서 패러디 영상을 만들어 봤어요.
노래는 잘 못 부르지만 재밌게 봐 주세요.
제목은 [쪽쪽쪽]입니다.”
여자가 립스틱을 꺼내 들고 거울 앞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입술을 원 쪽쪽쪽쪽 쪽쪽쪽쪽
뽀뽀를 투 쪽쪽쪽쪽 쪽쪽쪽쪽
준비해 뜨리 쪽쪽쪽쪽 쪽쪽쪽쪽
연상도 연하도 모두
일루와 쪽쪽 키스해 쪽쪽]
여자는 [쪽]이라는 가사가 나올 때마다 자신의 손가락에 뽀뽀를 했다.
열 손가락에 모두 뽀뽀를 한 여자는
키스해 부분에서는 카메라에 대고 뽀뽀를 했다.
영상을 보는 강라온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런 가사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네. 이건 에로 버전인가.
은우가 불렀던 노래에선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거야.’
강라온은 홀린 듯 아래에 있는 다른 영상을 클릭했다.
주차단속원 복장을 한 40대의 중년 남성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등포구에서 주차단속원으로 일하는 김복태라고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따따따]를 듣고 패러디를 해 볼까 합니다.”
도로엔 불법 주차된 차들이 여러 대 서 있다.
김복태는 불법 주차 스티커를 붙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귀찮아. 원. 딱딱딱딱 딱딱딱딱
잠깐인데. 뭐. 딱딱딱딱 딱딱딱딱
일단 대고 봐. 딱딱딱딱 딱딱딱딱
옆집 사람 앞집 사람 다 같이.
대 보자 쿵쿵 아무 데나 쿵쿵
더 빨리 더 쉽게 더 편하게 아무 데나
딱딱딱딱 딱딱딱딱
남는 건 딱지뿐 불법 주차.
이제 그만 제발 그만 불법 주차.
세금 기부 하고프면 계속해라.
난 열심히 끊는다.
나는 계속 끊는다.]
강라온은 [따따따]의 다양한 패러디 버전에 놀랐다.
‘다양한 사람들의 은우의 노래를 듣고 일상에서 공감할 만한 요소를 넣어 패러디를 만들어내고 있어.
이건 마치 무슨 놀이 같잖아.
인터넷을 통한 어른들의 놀이. 모든 사람들의 놀이.’
***
은우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준수가 작은 통을 꺼내 놓으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이거 뱌랴. 내갸 주말에 경보꿍에 가서 자뱌떠.”
“이게 머야?”
연아의 물음에 준수가 뚜껑을 열며 말했다.
“지렁이야. 꾸불꾸불하댜. 요로케 요로케 기어 다녀. 라면 가탸.”
“악. 징그러.”
연아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
“머갸 징그러. 재민는데. 이따갸 바테다 푸러져야지. 엄먀가 그러는데 지렁이갸 살면 콩이 쟐 자랸대.”
혜린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이집에 지렁이를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해? 이상해.”
“뭐갸 이땅해? 기여운데.”
준수는 통을 들고 텃밭 쪽으로 사라졌다.
은우는 오늘도 여전히 혼자 미끄럼틀 옆에 앉아있는 현정이가 신경 쓰였다.
‘왜 매일 혼자 있지?’
현정이는 은우가 준 퐁퐁이 인형을 꼬옥 안고 있었다.
현정이가 혼잣말로 퐁퐁이에게 말했다.
“퐁퐁아, 내갸 마를 걸면 칭규드리 시러하까?”
현정이는 퐁퐁이를 등에 업었다.
김마리아 수녀님이 현정이가 퐁퐁이를 업을 수 있도록 스카프로 묶어 주었다.
현정이는 퐁퐁이를 업고 티비 속에 나오는 신데렐라 만화를 보고 있었다.
신데렐라 만화는 현정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였다.
“신데렐랴는 어려서 뷰모님을 일코요. 계모와 언니드레게 구뱌글 바다떠래요.”
현정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퐁퐁이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현정이는 리모컨을 눌러 빨리 감기를 했다.
현정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새엄마와 언니들이 무도회장으로 떠나고 혼자 울고 있는 신데렐라 앞에 요정이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티비 속에서 보라색 망토를 두른 요정이 나타나 신데렐라에게 말했다.
“신데렐라야. 신데렐라야. 울지 말렴. 너도 무도회에 갈 수 있단다.
내가 마법을 부려 주지. 바비디 부비디 부.”
요정은 지팡이로 부엌에 있는 낡은 호박을 마차로 바꾸고 쥐를 마부로 바꾸어 주었다.
현정이는 만화를 보면서 두 손을 꼬옥 쥐었다.
‘요정님, 요정님, 저에게도 마법을 부려 주세요. 바비디 부비디 부.’
은우는 현정이를 지켜보며 스케치북을 펼쳤다.
‘재능을 너무 자주 쓰는 건 좋지 않지만, 현정이에겐 내 재능이 필요한 것 같아.
현정이가 신데렐라 만화를 볼 때는 웃는구나.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는데.
신데렐라 만화를 좋아하나 봐.’
은우는 크레파스를 들고 현정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은우의 그림 속에서 현정이는 신데렐라가 되어 예쁜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티아라를 쓰고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를 했다.
손에는 실크 장갑을 낀 신데렐라 옆에는 보라색 망토를 두르고 마법의 지팡이를 든 요정이 서 있었다.
‘다 됐어. 마지막으로 재능을 걸어야지.’
[올림포스의 천마 페가수스의 시인의 상상력 레벨 2.
당신이 상상하는 것을 시각, 청각, 촉각, 후각으로 느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은우는 그림을 가지고 현정이에게로 갔다.
“현정아. 이겨 가져.”
현정이는 은우가 그린 그림 속의 자신을 보았다.
‘내가 신데렐라네. 여기 요정님도 있고.’
현정이는 신데렐라가 되어 요정 앞에 서 있었다.
요정이 현정이에게 말했다.
“현정아, 무도회에 가기 위해 어서 드레스를 입어야지. 마차도 마부도 구해줄 터이니 어서 빨리 준비하렴.”
“요정님. 소언이 이떠요. 제 소언을 드러주세요.”
“무도회에 가서 왕자님과 춤추는 게 신데렐라의 소원이었는데. 다른 소원이 있니?”
“엄마를 만나고 시퍼요.”
현정이는 마음속에 꼭꼭 눌러 담아 주었던 소원을 말했다.
“드러주떼요. 요정은 할 뚜 이쨔냐요.”
현정이에게도 행복한 시간들이 있었다.
엄마가 암에 걸려 죽기 전, 그땐 현정이도 다른 아기들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엄마가 죽고 나서 모든 게 달라졌어. 엄마가 있으면 나도 다시 행복해질 거야.’
현정이는 간절한 마음으로 요정을 바라보았다.
“딱 십 분 만이야. 내 마법으로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안 됐구나. 신데렐라야. 죽은 엄마를 영원히 살릴 수는 없어.”
요정이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십 분 동안 행복한 시간 보내렴. 바비디 부비디 부.”
주문이 끝나자 현정이의 앞에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아프기 전처럼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현정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엄마.”
현정이가 엄마에게 달려갔다.
“잘 지냈어? 현정아. 내 아가.”
엄마가 현정이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엄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엄마.”
현정이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엄마 냄새. 너무 좋아. 엄마 냄새. 이 그리운 냄새.’
현정이는 강아지처럼 엄마의 품을 파고들었다.
“엄마가 미안해. 현정이만 두고 가서 정말 미안해.”
엄마가 현정이를 꼬옥 안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엄마, 보고 시퍼떠.”
그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이 물밀 듯이 터져오는지 현정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수녀님 말씀 잘 듣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항상 씩씩하게 밥도 잘 먹고 알았지?”
“엄마랑 가치 이꼬 시퍼.”
“엄만 현정이랑 계속 같이 있어 줄 수가 없어. 대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림을 보렴. 엄마가 그림 속에서 현정이를 응원하고 있을게.”
“엄마. 냐도 갸치 가요. 냐도. 냐도. 혼자 인는 거 시러.”
“사랑한다. 내 아가. 엄마가 늘 지켜보고 있어. 이제부턴 좋은 일만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야 해. 알았지?”
“엄마. 엄마.”
울고 있는 현정이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은우가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현정아. 내가 널 도와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