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추억은 새록새록 (1)
태원이 말을 이었다.
“이번 코너는 [게스트에게 물어봐]입니다. 오늘은 은우에게 평소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보내주시면 은우가 직접 답해드립니다. 문자 #938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문자는 100원의 정보이용료가 부과됩니다. 채팅창을 통해서도 질문받습니다. 알고 싶은 은우의 모든 것 질문하세요.”
“먀니 보내 주떼요. 열심히 하께요.”
은우가 마이크 앞에서 귀엽게 양손 브이를 그렸다.
“꼭 많이 보내주세요. 은우가 여기서 여러분의 질문을 기다립니다.”
“햐트 먀니먀니.”
은우가 작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채팅창에서는 열띤 반응이 한창이었다.
[네오스] : 보이는 라디오 넘나 좋은 것. 은우 하트 날릴 때 심쿵사.
[가을향기] : 은우야, ‘횬아, 사랑해.’ 한 번만 해 줘. 형아 죽는다.
[류군] : 발그스레한 저 볼 당겨보고 싶다. 아흑.
[mk9] : 은우야 사랑해. 백만 년 사랑해.
태원이 질문을 소개했다.
“문자를 통해 방금 들어온 질문입니다. 은우가 발 사이즈는 몇인가요?”
은우는 입술을 오물거리고 왼손으로 턱을 괴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은우는 발을 들어서 마이크 앞으로 대었다.
“요만해요.”
태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요만해요. 근데 어떻게 발이 거기까지 올라가요? 은우 요가 하나? 저게 되나요? 여러분. 어른은 힘들 거 같은데. 진짜 유연하다. 은우 발 사이즈 잘 모르나 봅니다. 여러분 근데 제가 이렇게 어린 아기 발 사이즈를 몰라서 보통 다섯 살이면 신발 사이즈가 얼마나 되죠?”
은우가 이번에는 손바닥을 두 개 이어서 붙이면서 말했다.
“요만해요.”
태원이 웃음이 터졌다.
“네. 요만하죠? 혹시 아기 키우는 스탭분들이나 청취자분 없으신가요?”
은우가 다시 고민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린이지베서는 수녀님 신뱌리 제일 커요. 그 다으메 준슈 신뱔, 혜리니 눈나 신뱔, 시우 신뱔, 내 신뱔, 지호 신뱔, 정우 신뱌리 제일 기여어요. 정우 신뱌른 요만해요.”
은우가 정우 신발 사이즈를 알려주기 위해 손바닥 하나를 마이크 앞으로 대었다.
“보이는 라디오인 게 정말 다행이네요. 요만한 게 다 다른 요만함이네요.”
“헤헤헤헤. 횬아는 신뱔 몇 시너요?”
태원이 신발을 벗어서 마이크 앞으로 대며 말했다.
“요만해요.”
“우아. 진쨔 크댜. 우리 아뺘 신뱔도 진쨔 큰데.”
“우리 팀에서는 성수가 발이 제일 크거든요. 성수가 왔어야 하는데 성수 신발을 보여주고 싶네요.”
“방금 문자를 통해 은우에 대한 질문이 도착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 은우 치과 간 적 있나요? 참고로 저는 어릴 때 치과가 너무 싫었거든요. 은우는 어떤지 궁금해요.”
“휴우(한숨). 치과 가야 하는데 칭구들이 다 무섭다고 해서 가기 시러요. 지호 마리 치과에 가면 아주 무서운 기계가 이때요. 이뺘를 드르르르르 간대요. 정우는 너무 무서워서 치과에서 한 시간 동안 울었더니 그냥 지베 와때요.
동화채게서 반는데 다 충치 기신 때문이에요. 충치 기시니 이빠를 머거서 그래요.”
“은우 이빨은 열심히 닦아요?”
“요구르트 머따가 잠드러떠요. 차에서요. 지베서도 쿠키 머따가 자떠요.”
“충치 귀신이 또 찾아오겠네.”
은우는 두 눈을 껌뻑이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은우 충치 기신 안 무서어요.”
태원이 은우의 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안 무서운 걸로 할게요. 다음 질문입니다. 은우야 오늘 누나 생일인데 야근하고 있어. 은우에게 생일축하와 라이키 광고에서 나왔던 세리머니를 선물로 받고 싶습니다. 저 요새 그 광고 계속 돌려보고 있거든요. 은우야 부탁해.”
“눈나 이르미 머예요?”
“김소원 누나예요. 28번째 생일이라고 하네요.”
“김소언 눈냐. 생일 추카해요. 먀시는 거 먀니 먹꼬 칭구드리랑 잼나게 노라요. 먀니먀니 따랑해요. 초불 먀니먀니 꺼요. 소언도 마니 비러요. 눈냐 따랑해요. 근데 눈나 이름 어떠케 써요. 쓸 줄 모르는데.”
태원이 종이에 [김소원]이라는 이름을 적어주었다.
은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를 손에 꼭 쥔 채 뒤돌아서서 엉덩이로 이름을 썼다.
허공 중에 새겨지는 김소원.
채팅방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던덴장] : 김소원씨 너무 부러워요. 나도 은우에게 생일 축하 받고 싶다. 내 생일은 이미 지났는데 흑흑.
[쭈녀구] : 김소원씨 한턱 쏘셔야겠어요. 은우에게 축하도 받으시고. 부러워요.
[ddag] : 은우 엉덩이로 이름 쓸 때 표정 너무 진지하네요.
[네오스] : 진지한데 귀여워요. 통통한 엉덩이.
[줌마] : 은우야, 엉덩이로 이름 쓰기 왜케 열심히 해? 정말 글자 제대로 쓴다. 나는 저거 벌칙으로 시키면 대충 쓰고 들어갔는데.
[연] : 보이는 라디오는 가서 볼 순 없나요? 눈앞에서 보고 싶어요.
***
길동은 은우와 뽀뽀 댄스팀과 함께 전국 노래 대회 경연대회에 와 있었다.
은우와 뽀뽀 댄스팀은 은우가 예선 때 입었던 노란색 반짝이 자켓을 입고 있었다.
지유가 입이 삐쭉 나와 예은이에게 말했다.
“예은아. 이 옷 너무 촌스럽지 않아?”
“반짝거려서 이쁜데 왜?”
“당장 벗어버리고 싶어. 걸어 다닐 때마다 우릴 쳐다보는 것 같아. 사람들이.”
“어쩔 수 없잖아. 조금만 참아. 지유야. 금방 끝날 거야.”
무대에선 50대의 아주머니가 [인생은 파티]를 부르고 있었다.
[내 나이를 묻지 말아요. 내 마음은 청춘이니까.
인생은 늘 파티처럼.
인생은 늘 20대처럼.]
은우는 처음 자신이 섰던 무대에 축하 공연을 하러 초대된 것이 기분이 오묘했다.
‘처음 이 무대에 섰을 땐 너무 어려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는데.
이 옷도 그렇고 진짜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래도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된 게 내 인생에 큰 기회가 되었지.’
[인생은 파티]는 점점 클라이막스로 접어들고 아주머니는 무대에 무릎을 꿇은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산다는 게 뭔지 다 알 순 없지만, 오늘의 우리 사랑만은 영원히]
높은음 때문에 목에 핏대가 섰다. 결국 마지막 [영원히] 부분에선 음이탈이 나서 목소리가 갈라지고 말았다.
무대 아래서 지켜보고 있던 은우가 파이팅을 외쳤다.
“파이팅! 머쩌요.”
50대의 아주머니가 은우를 보며 손 하트를 날리고 노래를 계속했다.
은우의 옆에 있던 지유가 은우에게 물었다.
“노래도 잘 못 하는데 왜 응원을 해?”
“열심히 하쟈냐. 열심히 햐는 노래는 머찐 거야. 노래엔 마으미 실리니까.”
“아아아아.”
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는 정말 착해.’
은우는 [인생은 파티]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른들은 트로트를 참 좋아하는 거 같아. 지난번에 경로당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트로트만 부르셨는데. 트로트의 창법은 정말 신기해. 나도 심심할 때마다 트로트를 연습하긴 했었는데.’
은우는 작게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불렀다.
[산다는 게 머언지 다아 알 뚠 엄찌먄 우우리 사랑먀는 영언언히.]
은우는 일부러 꺾기를 넣어서 음을 꺾었다.
‘이러면 비슷한가.’
노래가 끝나고 MC 김해가 은우를 소개했다.
“이어지는 축하 무대는 전국노래 경연대회의 자랑스런 아기 이은우입니다.”
은우가 무대로 올라선다.
“못 본 사이 많이 컸네. 몇 살이에요? 은우.”
은우가 손가락을 쫙 펴며 말했다.
“다섯 짜리요. 손갸략 다섯 개. 불가사리.”
“전에 전국 노래 경연대회 나왔을 땐 기저귀도 차고 있었는데 기저귀 어디 갔어?”
“이제 횬아예요. 횬아. 기저기 안 차요.”
“이제 횬아구나. 안 본 사이 너무 유명해졌어. 청와대도 가고 아카데미에도 가고. 나도 한 번도 못 가본 곳인데. 여러분 다들 아시죠?”
관객석에서 터지는 대답 소리.
“네에.”
“은우 멋지다.”
“은우 사랑해.”
김해의 말이 이어진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은우가 두 살 때 아빠와 같이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탔어요. 두 살인데도 노래를 너무 잘해서 우리 PD가 깜짝 놀랐었는데 오늘은 또 얼마나 멋진 무대를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 준비한 곡은 어떤 곡이에요?”
“오느른 [난 너무 기어어]를 트로트로 준비해떠요. 모듀 신냐게 즐겨주떼요.”
“이은우입니다. [난 너무 귀여워].”
관객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난 너무 귀여워. 은우 귀엽다.”
“은우 사랑해.”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에는 [자랑스런 전국 노래 경연대회의 아기 이은우]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뽀뽀 댄스팀이 무대로 올라오고 전주가 흘러나왔다.
뽀뽀 댄스팀과 은우는 뒤로 돌아서서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무대 아래에는 관객들이 하나둘씩 나와서 은우의 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거어리를 냐아셔면 냘 보는 시이션들
누냐아, 횬아아, 할뷰우지, 할모니이
내갸 그러케 기이여운가여]
전국 노래 경연대회의 PD는 은우의 트로트를 듣고 놀랐다.
‘저렇게 맑고 고운 음색으로도 꺾기가 가능하구나. 어울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음정이 정확하니까 트로트가 살아나고 있어. 게다가 바이브레이션이 정말 자연스러워.’
노래는 자연스럽게 [사랑주의보]로 이어졌다.
전국 노래 경연대회의 PD는 생각했다.
‘리믹스 버전이구나. 요새 인기 많은 [사랑주의보]네. 전국 노래 경연대회를 주로 시청하는 연령대가 트로트를 좋아한다는 걸 생각하고 만든 곡 같아.
전국 노래경연대회 초청 가수 무대에 와 준 것만도 고마운데. 이 무대를 위해 편곡도 해서 왔구나. 대단하다.’
전국 노래 경연대회의 초청 가수는 대부분 트로트 가수들이 오는 것이 관례였다. 유명한 가수가 올 때도 있고 무명인 가수가 올 때도 있었다.
출연료로 많지 않았고 은우 소속사에 출연 요청을 넣을 때도 반신반의하던 PD였다.
‘출연료만 보면 나올 필요가 없는 무대지. 은우 정도면 지방 공연 출연료가 천은 나올 테니까. 그렇지만 은우는 우리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이 무대에 서 준 것 같아. 정말 고맙다. 타이틀곡을 그대로 불러주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
무대에선 노래가 이어지고 있었다.
[내 얼굴 기엽다고 노라지 마요.
먀으믄 더 기여운 거료.
하는 지슨 백먄 배쯤 기여어.
내갸 너무 기여어서 기절하지 먀요.
거울쏙 내 묘습 보면서 나도 갸끔 노랴요.
난 왜 이러케 기여운가요.
내갸 너무 기여어서 기절하지 먀요.
내갸 너무 기엽댜고 질투하지 먀요.
내갸 당신에게 마벼블 거러줄게요.
지금부터 당신도 기여어.
우린 모듀 기여어.]
전국노래 경연대회 PD는 편곡된 [사랑주의보]의 가사에 놀랐다.
‘[사랑주의보]를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라 은우에게 맞게 개사했어. 저렇게 바꿔놓으니 가사가 정말 [난 너무 귀여워]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네. [사랑주의보]의 악보도 편곡을 해서 [난 너무 귀여워]랑 같은 비트로 하니까 두 노래가 마치 시즌송처럼 이어진 느낌이야. 정말 자연스럽다.’
무대 아래에선 관객들이 은우의 노래를 따라 하며 열광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귀여워서 기절하지 마요]
[내가 너무 귀엽다고 질투하지 마요]
관객들의 함성이 들렸다.
“은우야. 마법 걸어줘. 너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마법.”
“은우야. 누나 기절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팬들이 노래를 따라불렀다.
[내가 너어무 귀여워서 기지절하아지 마아요.
내가 너어무 귀엽다고 지일투하아지 마아요.]
무대는 점점 흥이 고조되고 있었다.
노래는 자연스럽게 다음 곡으로 연결되었다.
전국 노래 경연대회 PD는 생각했다.
‘곡이 하나 더 있었다니. 보통 초청 가수는 한 곡만 부르고 가는데. 은우가 정말 우리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것 같아. 세 곡이나 불러주다니. 가만 이건 [엉덩이를 흔들어 봐]네. 이걸 어떻게 개사하고 편곡했으려나 기대된다.’
은우가 무대 위에 놓인 탬버린을 들었다.
‘진짜 오랜만이네. 이 탬버린. 그 뒤로 탬버린을 친 적이 없었구나.’
뽀뽀 댄스팀도 탬버린을 들었다.
[엉덩이를 흔들어 주세요.
귀엽게 흔들어 주세요.
오른쪽 왼쪽 요리조리 흔들어 주세요]
노래에 맞춰 은우와 뽀뽀 댄스팀의 앙증맞은 안무가 시작됐다.
엉덩이를 오른쪽으로 흔들고 탬버린을 한 번 치고 엉덩이를 왼쪽으로 흔들고 탬버린을 한 번 치는 안무.
촤르르르. 촤르르르르.
춤을 출 때마다 탬버린 소리가 더해졌다.
관객들은 그 자리에서 안무를 배워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리드메 몸을 맡겨
신냐게 추믈 쳐뱌요.]
은우가 탬버린을 위아래로 흔들며 빙글빙글 돌았다.
은우의 노란 반짝이 자켓 위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햇살에 비친 은우의 자켓은 더욱더 반짝였다.
길동은 그런 은우를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트로트를 불러보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더니 결국 해냈네. 반응도 좋은데 이번 기회에 트로트 음반이라도 한번 내볼까?
내일은 음악방송 출연이 있는데 순위 좀 올라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