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라이키 광고 (4)
은우의 울 것 같은 얼굴이 고층 건물의 대형 광고판 앞에 떠올랐다.
커다란 두 눈에서 곧 떨어질 것 같은 눈물과 일렁이는 입술. 통통한 볼이 함께 움직였다.
다섯 살짜리 어린 마라도나가 은우의 옆에서 은우를 응원했다.
“일어나. 은우야. 할 수 있어. 파이팅.”
은우는 눈물을 닦고 다시 공을 차며 달린다.
슛.
공은 골대를 차고 들어간다.
그러나, 그 공은 자살골.
마라도나가 아쉬워 이마를 치며 말한다.
“자살골이잖아. 에휴.”
은우는 공이 들어간 것을 기뻐하며 세리머니를 한다.
“고린. 고린. 고린.”
은우는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양쪽으로 흔드는 춤을 춘다.
그리고 공중에 엉덩이로 [이은우]라는 이름을 쓴다.
출근길의 사람들은 출근도 잊고 거리에 서서 은우의 라이키 광고를 보고 있었다.
“큭. 저거 엉덩이로 이름 쓰기잖아.”
“저거 벌칙 아냐? 저게 골 세리머니라니 맙소사.”
“울고 일어난 것까진 좋은데 자살골을?”
“자살골이라는 걸 모르는 거 같은데.”
“한 편의 드라마 같아.”
“근데 저 광고 어디다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야 해? 좀 복잡한데.”
“은우가 은우 했네. 귀여우면 됐지 뭐. 난 은우가 입은 트레이닝복 사러 가고 싶다.”
광고판에는 라이키의 문구가 나왔다.
[즐거운 것이 스포츠다. - 라이키]
사람들은 마지막 문구에 한 대 맞은 듯 멍하니 광고판을 바라보았다.
***
라이키 매장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22살의 점원 이은지 양은 친구로부터 하나의 캐톡을 받았다.
[하늘맑음] : 너희 매장에 은우가 입은 트레이닝복 있냐?
[연참필수] : 그거 은우가 입었던 사이즈는 이미 완판됐어. 성인용은 남아있는 것도 있는데 사이즈 별로 달라. 여성용은 95는 품절이고 90이랑 100도 얼마 안 남았어.
[하늘맑음] : ㅠㅠㅠ 하필 내 사이즈 품절이네. 근데 크롭티는 100이 안 이쁠 거 같은데 100이라도 사야 하나? 라이키 본사에서 추가 생산은 안 할까?
[연참필수] : 은우가 입었던 건 한정판이라서 추가 생산 없을 거고. 그건 아기 엄마들이랑 은우 팬클럽에서 나오자마자 완판 시켰어. 성인용은 글쎄. 인기가 많으면 추가 생산할 수도 있을 텐데. 아직 본사에서 연락이 없어서 모르겠어.
[하늘맑음] : 아, 넘나 슬픈 것. 은우 트레이닝복 너무 이쁘던데.
[연참필수] : 다행히 난 내 거 사이즈 빼놨지롱.
[하늘맑음] : 그거 나한테 팔아라. 내가 20만 원 줄게. 완전 핵이득 아님? 그거 10만 원인데 내가 두 배 주잖아.
[연참필수] : 얘가 세상 물정을 모르네. 그거 요새 당근나라에서 50만 원에 팔리거든. 은우 트레이닝복은 요새 완전 핫해서 최소 가격이 50이라고.
[하늘맑음] : 헉. 은우 트레이닝복. 넘나 이쁜 것. 넘나 비싼 것. 50만 원이라니. ㅜㅜㅜㅜ
[연참필수] : 음. 혹시 추가 생산 얘기 있음 바로 알려줄게.
[하늘맑음] : 어쩔 수 없다. 그냥 100 가져갈게. 내 거 빼줘. 주말에 가지러 간다. 이것마저 없으면 흑흑.
[연참필수] : 그래, 어쩌겠어. 이 상태라면 네가 안 입고 당근에 내놔도 가격이 오를지도 몰라.
[하늘맑음] : 은우 재테크네. 근데 은우 트레이닝복 입은 거 너무 귀엽더라. 볼록 나온 배랑 두툼한 발목이랑.
[연참필수] : 그치? 그래서 은우 포스터도 품절각이다. 매장 앞에 붙여놨더니 다들 달라고 난리야. 운동화까지 세트로 사는 고객에게만 나가는 건데 이제 몇 장 안 남았어.
[하늘맑음] : 이은지. 이은지. 이은지.
[연참필수] : 왜 갑자기 친한 척 이름을 부르고 난리야? 뭐 필요하냐?
[하늘맑음] : 나도 포스터 한 장만 헤헤헤헤.
[연참필수 ] : 운동화까지 세트로 사야 한다니까.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하늘맑음] : 그래? 왠지 네 것은 미리 빼놨을 것 같은 느낌인데.
[연참필수] : 헉.
[하늘맑음] : 내 말이 맞네. 어서 빨리 줘.
[연참필수] : 그거 내 방에 붙여놓을 거야.
[하늘맑은] : 너 지난번에 행정학 과제 못해서 헤맬 때 대신 해준 게 누구였지? 그거 해줄 때 네가 뭐라고 했지? 이 은혜는 절대 안 잊겠다고 했었는데.
그거 말고 내가 교양과목 과제도 대신 해줬잖아.
[연참필수] : 흑흑흑흑. 별수 없다. 가져라.
[하늘맑음] : 오예. 오예. 오예. 은우 엉덩이춤 춰야지.
***
체육대회가 한창인 팔각산 고등학교.
마지막 릴레이 계주 경기가 이뤄지고 있었다.
청팀 주자가 백팀 주자를 한 바퀴 이상 따돌리고 있었다.
청팀 응원석에서 청팀 주자를 열심히 응원 중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끝까지 뛰자. 파이팅.”
“즐기는 게 스포츠야.”
백팀 응원석에도 청팀 주자를 응원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파이팅! 포기하지 마.”
“최선을 다해서 뛰어.”
백팀 주자가 하얀색 끈을 끊으며 피니시 라인으로 돌아왔다.
“백팀이 이겼다.”
환호성을 받는 백팀 주자.
백팀 주자는 숨을 고르며 서 있었다.
“잘했어. 백팀.”
“올해는 백팀의 해다.”
“상품은 우리 거.”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백팀 주자가 엉덩이를 쭈욱 내밀고 오른쪽 왼쪽으로 흔드는 엉덩이춤을 추었다.
그러고 나서 공중에 엉덩이로 [백현]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썼다.
“저거 은우 세리머니잖아.”
“하하하하하. 엉덩이로 이름 쓰기 너무 웃겨. 저거 벌칙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도 써 볼까? 다 같이.”
구경하던 몇몇 친구들은 일어나서 엉덩이로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드디어 청팀 주자가 피니쉬 라인으로 들어왔다.
“수고했어.”
“끝까지 정말 열심히 했어.”
“청팀 파이팅.”
청팀 주자는 힘이든지 피니쉬 라인 근처에 벌러덩 누웠다.
아이들의 경기를 바라보던 수학 선생님이 옆에 서 있던 영어 선생님에게 말했다.
“올해는 작년이랑 분위기가 참 많이 바뀌었네요.”
“그쵸. 사실 운동회라는 게 즐기기 위한 거긴 하지만. 애들이 승부에 집착해서. 특히 계주 경기 같은 건 마지막 주자를 비난하고 그러기도 했는데 말이에요.”
“맞아요. 이렇게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모두가 모두를 응원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아요. 저런 건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데.”
“사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자신의 생각이 생겨서 우리 생각대로 애들이 움직여주지 않잖아요.”
“그쵸. 학교 애들만 그런 게 아니라 8살짜리 제 아들도 제 말을 안 들어요.”
“하하하하. 샘 아들 귀여운데.”
“매일 청개구리 짓 하는 걸 보면 안 귀여울걸요. 애기는 가끔 봐야 귀여운 것 같아요. 샘 근데 라이키 광고 보셨어요?”
“그 광고 너무 좋죠. 요새 제 친구들도 그 광고 얘기밖에 안 해요. 너무 새롭고 너무 귀엽고. 보는 순간 너무 힐링된다고요.”
“저도 그 광고 너무 좋아요. 우리 아들도 은우가 입은 트레이닝복 사줬거든요. 요새 맘카페에서 은우 트레이닝복이 인기예요. 너무 귀여워서. 다들 입히기만 하면 찰떡이라고 하더라구요.”
“중딩인 제 딸도 그 옷 사겠다고 난리여서 주말에 라이키 매장에 갔는데 세상에 벌써 품절이 됐더라구요.”
“샘, 그거 아동복은 나온 지 이틀 만에 완판됐어요. 은우가 입었던 사이즈는 당일 매진이었고요.”
“네에? 정말 대단하네요.”
***
은우는 보이는 라디오에 출연하기 위해 라디오 방송국에 도착했다.
태원이 은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은우야. 이거 봐라.”
태원이 앞뒤로 빙그르르 돌며 자신의 옷을 자랑했다.
“횬아, 그거 제가 입어떤 오시네요.”
“응, 네가 입은 게 너무 이쁘길래. 매장 가서 샀어.”
“헤헤헤헤. 기부니 이상하다.”
“왜? 기부니 이상해요?”
“횬아는 저보다 훨씬 유명한데 제가 광고한 오슬 입어서요.”
“은우야. 형아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못 받았거든. 은우가 형보다 훨씬 유명하지.”
“횬아는 음악방송에서 1위 마니 해짜나요. 전 아직 1위 못 해봐떠요.”
“곧 하게 될 거야. 우리 슈퍼보이즈는 탑보이즈에 비하면. 우리도 탑보이즈처럼 빌보드 차트 1위하고 싶다.”
“1위 하고 시퍼요. 언제 1위 하지? 횬아도 빌보드 차트 1위 할 뚜 이떠요. 파이팅.”
“파이팅.”
그때 PD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곧 방송 시작해요. 준비해 주세요.”
은우와 태원은 방송실 안으로 들어갔다.
태원이 멘트를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은 보이는 라디오 시간이죠. 오늘은 전에 예고해 드린 대로 [난 너무 귀여워]의 가수 이은우가 출연했습니다. 은우 군 잘 지냈어요?”
“네에. 소풍도 가고 칭구들이랑 놀고 광고도 찍고 재미떠더요.”
“저도 봤어요. 라이키 광고 너무 멋지더라. 요새 은우가 전국적으로 히트시킨 게 있는데 그게 뭔 줄 알아요?”
“모라요.”
“엉덩이로 이름 쓰기요. 저도 처음에 그거 보고 빵터졌거든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게 너무 재미써서. 웃기자냐요. 쟝난치는 걸 조아해서. 근데 가끔 장난 너무 마니 쳐서 혼나기도 해써요.”
“엉덩이로 이름 쓰기 너무 재밌죠. 얼마 전에 토트넘 경기를 봤는데 거기서 유명한 축구선수 박현성 선수가 골을 넣더니 골 세리머니로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해서 깜짝 놀랐어요. 잠깐만요. 아 피디님이 제보를 주셨는데 지난주에 LG 경기에서도 타자인 김삼국 선수가 홈런 세리머니로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했다고 하네요.
하하하하.”
“그러게 재미써 하실 줄 모라써요. 헤헤헤헤헤헤.”
“재민는 얘기 또 없어요?”
“음. 얼마 전에 어린이지베 새로운 칭규가 와꺼든요. 정우라고 세 사린데요. 징쨔 기여어요.”
“징쨔 기여어요? 은우도 기여어요.”
“얼마냐 기엽냐믄. 음. 무서어서 혼자 자믈 몬 잔대요. 그래서 제가 저는 다섯 살 횬아니꺄 지켜주게따고 해떠요. 무서어하지 말라고. 그리고 제 형광별도 주어떠요. 전 이제 안 무섭거든요. 그래서 정우한테 줘떠요.”
“은우 대단한 형아네요. 이제 안 무서워요.”
“네 살까진 무서언는데 다섯 사른 안 무서어요.”
“네 살과 다섯 살이 정말 다르네요.”
“그럼요. 키도 오센티나 커떠요.”
“부럽다. 형도 더 크고 싶은데 형은 이제 키가 안 커서.”
“횬아도 우유를 마니 머거요. 우유 마니 머그면 키가 큰대요.”
“우유를 먹어도 20살이 넘으면 잘 안 커요. 은우는 우유 많이 먹어요. 쑥쑥 자라게.”
“쑥쑤기. 우리 어리니집에 [콩나무] 인는데 쑥쑥 자라라고 [콩나무]예요. 연아가 심언는데 쑥쑥 자라는 동화책을 보고 지었대요.”
“아, 잭과 콩나무 말하나 보다.”
“네, 그래서 [콩나무]가 쑥쑥 자라서 하늘까지 다을 거예요.”
[달이 빛나는 밤에]의 실시간 채팅창에는 은우의 등장과 함께 댓글들이 빠르게 올라왔다.
[ohy] : 은우 말하는 거 넘나 귀엽. 다섯 살짜리 눈에도 세 살짜리가 귀엽구나.
[쯔아로빈테리] : 은우 방에 형광별 붙어있었구나. 나도 어릴 때 형광별 붙여놨었는데.
[sylv] : 저는 지금도 붙어있어요. 25살인데. 안 되나요?
[레아] : 은우 방 보고 싶다. 은우 방에서 은우랑 요구르트 먹고 싶다.
[지코] : 요새 은우 최애템 요구르트인가요? 은우 집으로 요구르트 한 상자 보내야지.
[min] : 은우 덕분에 추억 소환 참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저 초등학교 때 벌칙으로 엉덩으로 이름 쓰기 하다가 너무 창피해서 펑펑 울었거든요. 책상 위에 엎드려서 너무 많이 울어서 담임쌤이 미안해하셨어요. 근데 은우는 저걸 저렇게 재밌어하는구나.
[거대고냥이] : 제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었어요. 엉덩이로 이름 쓰기에 트라우마 있다고. 근데 은우는 그런 게 전혀 없나 봐요. 부럽다.
[이강현] : 저 나이에 뭐가 재미없겠어요. 은우도 벌칙으로 했으면 싫어할 수도 있는데 은우는 장난처럼 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달덩이] : 아~ 은우 표정 넘나 귀욥. 은우는 보이는 라디오에 최적화된 거 같아요.
[with] : 말하면서 눈 깜빡이는 거랑. 손 들었다 놨다 하는 거 너무 귀엽지 않아요? 어른들은 강조할 때만 손을 쓰는데 은우는 아무 포인트가 없어.
[이승혁] : 손을 너무 많이 써서 지휘하는 거 같은데요.
[빛의 수정] : 어른이 저렇게 말하면 정신없다고 할 텐데 은우는 손도 조막만 하니 너무 귀엽구나.
[표독이] : 태원 표정 좀 봐요. 귀여워 죽을려고 한다. 은우 말투 따라 하는 태원도 넘나 귀욥.
[cind] : 저도 태원 보러 들어왔는데 우리 태원이 왜 은우만 보면 혀가 짧아져? 목소리도 올라가고? 은우 닮아가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