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라이키 광고 (3)
장준호 PD는 편집실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다.
옆에는 CG를 담당하는 김태호 PD가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은우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걸어와서 까치발을 들고 덩크슛을 하고 있었다.
CG로 만들어진 다섯 살의 마이클 조던이 웃으면서 은우의 옆에 서 있었다.
김태호 PD가 화면 속의 마이클 조던에게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마이클 조던도 다섯 살 땐 무지 귀여웠네. 마이클 조던은 하도 농구장에서 날아다녀서 다섯 살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이번 라이키 광고 신선하긴 하네요.”
“가장 신선한 건 은우야. 은우는 정말 내가 상상도 못 한 모습들을 보여줬어.”
짧은 곱슬머리에 까만 피부의 마이클 조던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은우에게 씨익 웃었다.
김태호 PD가 장준호 PD에게 물었다.
“선배님은 마이클 조던을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싶으세요? 농구 천재?”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짜여진 콘티도 그랬고. 농구 천재 마이클 조던이 은우를 만나서 은우에게 농구를 가르쳐 주는 걸로.”
“그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요. 다섯 살짜리 마이클 조던에게 농구를 배울 기회라. 저라면 돈 주고라도 사고 싶을 기회일 것 같아요.”
“그건 어른들 생각이지 않을까? 은우를 보면서 깨달은 건데 아기들은 그 순간을 그냥 즐기는 것 같았어. 공이 들어가든 그렇지 않든 말이야.”
“아기들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사실 아기를 본 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나요. 선배.”
“나도 그래. 근데 말야. 우리도 한땐 아기였을 텐데 말야.”
“선배님도 다섯 살 땐 귀여우셨겠죠? 저도 귀여웠더라구요. 집에 사진이 많진 않은데 제주도 가서 말 타고 우는 흑역사 사진 있어요.”
“난 다섯 살 때도 안 귀여웠더라. 울엄마 말로는 귀여웠다는데. 내가 내 사진을 봤는데 그건 절대 귀엽지 않았어.”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이쁘다잖아요.”
“근데 말야. 첨에 라이키에서 광고 문구를 [트레이닝복도 귀여울 수 있다] 이렇게 하라고 하는 거야. 너무 쇼킹한 거지. 너도 알지? 원래 라이키 광고가 어땠는지?”
“알죠. 라이키의 광고는 너무 열정적이고 비장하고 언제나 전문적이고. 왜 있잖아요. 그거 잘 나오는 건데. 해 뜰 때 조깅하는 모습. 해 뜰 때 조깅하는 직장인이 몇 명이나 되냐고요? 해 뜰 때 출근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다들 늦잠 자고 싶을걸요.”
“그치? 그런데 이건 뜬금포도 이런 뜬금포가 없잖아? 갑자기 귀여움이라니? 그래서 이게 뭔가 싶었는데. 은우를 보니까 말야. 그 귀여움이라는 게 정말 대단한 거 같더라고.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어.”
“대단하죠. 대단하죠. 남자들이 걸그룹에게 끔뻑 죽는 것도 귀여움 때문이잖아요?”
“그치. 근데 은우에게 대면 걸그룹은 뭐랄까? 그러니까 월드 스타와 국내 탑의 차이 같달까?”
“커피랑 T.O.P의 차이 그런 거예요?”
“맞아. 그래. 암튼 그래서 마이클 조던이 은우에게 농구를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은우와 함께 장난을 칠 거야. 그 장면으로 해야 해.”
“농구 천재 마이클 조던이요?”
“다섯 살이니까. 행복한 다섯 살이니까.”
김태호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 속에는 은우와 함께 장난을 치는 다섯 살짜리 꼬마 마이클 조던이 있었다.
은우가 공을 놓치자 은우의 공을 달려가서 가져다주는 마이클 조던.
조던이 은우에게 공을 던지며 말했다.
“갠챠나.”
“헤헤헤헤. 거마어.”
은우가 공을 들고 걸어가서 까치발을 들고 골대 안에 공을 넣었다.
“고린고린.”
조던이 은우의 골인을 함께 기뻐해 주었다.
“고린고린.”
조던도 은우의 엉덩이춤을 따라 했다.
김태호 PD가 말했다.
“조던 되게 귀엽다. 진짜 참신한대요? 선배. 창의적이에요. 진짜.”
“사람들이 이 광고 보면서 되게 흐뭇해할 거 같지 않아?”
“맞아요. 왜 꼭 열심히 해야 해요?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들한텐 운동이 놀이일 수도 있는 거죠.”
두 번째 영상은 축구장에서의 영상.
이번에 소환된 것은 브라질의 영원한 축구 전설 마라도나였다.
다섯 살의 마라도나는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아기였다.
김태호 PD는 마라도나를 보며 감탄했다.
“아기인데도 팔다리 단단한 거 봐. 마라도나는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나 봐요. 난 저게 다 노력인 줄 알았어요.”
“타고난 거에 노력이 더해졌겠지?”
“근성 있어 보이는 다섯 살이라니. 축구 천재는 남다르긴 하네요. 은우 옆에 서 있으니까 은우는 말랑말랑한 마시멜로처럼 보여요.”
“마라도나는 아기였을 때도 악착같았을 거 같아. 처음에 축구 시작한 이유가 가난해서였잖아.”
“그쵸. 막노동하는 아버지에 일곱 명이나 되는 형제에. 전쟁놀이하는 친구들 대신 돈 벌 궁리를 하면서 자랐다고 하니.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다섯 살의 마라도나는 어땠을까요?”
“마라도나가 운동을 시작한 게 여덟 살이니까 다섯 살의 마라도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없겠지?”
“마라도나도 다섯 살 땐 은우처럼 순수했을까요?”
“알 수 없지? 근데 말야. 어쩌면 너무 일찍 어른이 돼 버려서 아이가 되고픈 그런 소망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맞아요. 저 여덟 살 때 학습지 하기 싫어서 맨 뒤 페이지를 한 장씩 뜯어서 서랍에 숨겨놨었는데 엄마한테 들켜서 엄청 두들겨 맞았어요. 그게 평범한 여덟 살의 삶이죠.”
“그럼 우리 평범한 다섯 살의 마라도나를 불러와 보자고.”
영상 속에서 은우가 공을 차며 웃는다.
“헤헤헤헤헤.”
마라도나가 은우의 옆에서 함께 공을 찬다. 은우가 넘어진다. 바닥에 넘어진 은우는 한동안 미동도 없다.
은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은우의 양손은 까져있고 무릎에선 피가 나고 있다.
은우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다.
장준호 PD가 영상을 보며 말했다.
“이때 현장에선 카메라 감독이랑 스텝들이 은우를 응원했었어. 소리 나지 않게 입모양으로 파이팅을 외쳤지. 은우가 그걸 보더니 울음을 그치고 다시 일어서더라고.”
“와 표정이 진짜 미쳤다. 우는 표정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눈물이 막 그렁그렁.”
“아기 우는 거 처음 봤는데 정말 귀엽긴 하더라. 저건 정말 의도하지 않았는데. 건졌어.”
“스텝들이 해 준 응원을 마라도나가 하는 걸로 하면 되겠네요. 어차피 현장에서 들었던 거니까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김태호 PD는 마라도나에게 대사를 넣었다.
영상 속에서 마라도나가 은우에게 말했다.
“이러나 은우야. 할 뚜 이떠. 파이팅.”
마라도나가 작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자 은우의 얼굴이 일렁인다.
은우가 작은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김태호 PD가 영상을 보며 말했다.
“이거 진짜 드라마네요. 라이키 광고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남을 거 같은데요.”
***
은우는 오랜만에 명석이네 집에 놀러 갔다.
“은우 왔구나. 무대에서 멋지더라. 체고.”
명석이 엄마가 양손 엄지를 번쩍 들며 은우를 칭찬했다.
“은우는 늘 체고지. 은우야. 이리 와 봐.”
“엄마도 은우랑 더 얘기하고 싶은데 왜 벌써 방에 들어가려고?”
“우리 두리 바빠요.”
명석이는 은우를 보자마자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명서갸. 재민는 거 이떠?”
“이거 뱌뱌.”
명석이가 은우에게 보여준 것은 햄스터였다.
선반 위에 놓인 통 안에서 햄스터는 열심히 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우와. 다다다다다다다한다.”
“그치? 다다다다다다하지? 되게 빨라. 내 칭규.”
명석이가 통 안으로 해바라기 씨를 넣어 주었다.
햄스터가 해바라기 씨를 주워서 앞발로 잡고 입을 오물거리며 먹었다.
“아이, 기여어. 먹는 거쫌 뱌. 이름이 머야?”
“통통이야. 보리 통통해서.”
“냐도 해도 대?”
“응.”
은우는 명석이가 준 해바라기 씨를 들고 통통이에게 주었다.
통통이가 앞발로 해바라기 씨를 먹었다.
은우가 통통이 흉내를 냈다.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입술을 작게 모아서 오물오물거리며 말했다.
“안녕. 며서갸. 나 통통이야. 해바라기 마시쎠.”
은우의 통통이 흉내에 명석이가 웃었다.
“헤헤헤헤헤. 은우야. 너 통통이 대써? 이제 너 통통이야?”
“오늘먄 통통이야.”
“냐두 통통이 할래.”
명석이도 두 손을 모으고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통통이 흉내를 내었다.
명석이 어머니가 도넛과 아이스크림이 든 쟁반을 들고 명석이 방으로 들어왔다.
“명석아. 이거 먹어.”
명석이는 두 발을 모은 채 엄마에게 대답했다.
“엄마. 잘 머글게요. 오늘 져는 통통이예요.”
은우도 명석이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안녕하떼요. 저도 통통이예요.”
명석이 엄마가 아기들을 보며 웃었다.
“통통이라니? 둘 다 햄스터가 된 거야?”
“엄마. 저 해바라기 씨 좀 머글게요.”
명석이가 도넛을 들고 햄스터 흉내를 내며 먹었다.
은우는 제자리에서 빨리 뛰며 말했다.
“전 바퀴를 돌려야 해요.”
“즐겁게 놀렴.”
명석이 엄마는 방문을 닫으며 생각했다.
‘아기들이란 작은 것도 정말 재밌어한다니까. 지루해할까 봐 걱정했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은우는 아이스크림을 들고서 말했다.
“명서갸. 아이스크림 마디께 먹는 법 아랴?”
은우가 아이스크림을 수저로 떠서 도넛 위에 얹었다.
“이러케 가치 머그면 꿀마시야.”
“우와. 천재댜.”
명석이도 은우처럼 아이스크림을 떠서 도넛 위에 얹었다.
“냠냠냠냠.”
“냠냠냠냠.”
명석이 햄스터와 은우 햄스터가 함께 도넛을 먹었다.
명석이가 서랍 안에서 라면과자를 꺼냈다.
“은우야. 이거 머거 뱌떠?”
“이게 머야?”
“마트에서 산 건데. 마디뗘. 스프도 드러이는데. 마시 다 달랴.”
“머거 보쟈.”
명석이가 봉지를 뜯었다.
“짜잔.”
“통통이갸 먼져 머거보게뜸니댜.”
은우가 라면을 쥐고 작게 씹기 시작했다.
“음. 음. 음. 해바라기 마디예요.”
“왜 해바라기 마딘가요?”
“햄스터에게 최고 마딘는 게 해바라기예요.”
“아, 그러쿤요. 스프를 뿌려볼까요?”
명석이가 불고기 맛 스프를 뿌렸다.
은우가 라면을 먹더니 말했다.
“보끈 해마라기 마디예요.”
“그럼 이건?”
명석이가 치즈 맛 스프를 뿌렸다.
은우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한참을 있다가 말했다.
“치즈마디예요.”
“보끈 해바리기마디 아니구요?”
“이건 치즈마디예요.”
명석이도 라면을 먹더니 말했다.
“치즈마디녜요.”
은우가 키즈폰의 화면을 키고 말했다.
“잠만. 명서갸. 혹시 통통이 집 바끄로 나와도 대?”
“응. 개차냐.”
은우는 퐁퐁이를 도넛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접시 위에 있는 통통이는 자기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도넛 옆에 있었다.
“잠깐만.”
은우는 명석이의 장난감 배를 꺼냈다.
“이거면 되겠어.”
은우가 장난감 배에 통통이를 태웠다.
“통통이 여행 간다.”
“와아, 진짜네.”
명석이가 박수를 쳤다.
“가만있어 봐.”
명석이가 공룡 모형을 가지고 왔다.
“통통이. 공룡 타 보자.”
명석이가 통통이를 공룡 위에 태웠다.
은우가 사진을 찍었다.
“통통이는 머든지 할 뚜 이떠.”
“할 뚜 이떠.”
“우리도 통통이가 돼 볼까?”
“어떠케?”
“파스넷 이떠?”
“응.”
명석이가 서랍에서 파스넷을 꺼냈다.
은우가 통통이를 통 안에 도로 넣어 주었다.
통통이는 자리로 돌아가 다시 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은우가 파스넷을 들고 신이 난 얼굴로 명석이에게 물었다.
“거우른?”
“요기.”
명석이가 벽에 붙은 거울을 가리켰다.
은우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에 수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개차나? 은우야?”
“헤헤헤. 재미짜냐.”
은우의 볼에 갈색 수염이 그려지고 코에는 갈색 점이 그려졌다.
“은우 햄스터다.”
“냐듀 냐듀 그려져.”
은우가 명석이의 얼굴에 파스넷으로 수염과 점을 그렸다.
“헤헤헤헤. 가안지러.”
명석이는 얼굴 위로 그려지는 파스넷이 간지러운지 웃었다.
“다 대따.”
“나는 명서기 햄스터댜.”
두 명의 햄스터는 마주 보며 웃었다.
은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냐는 냐는 햄스터.
해바라기를 조아해.
냐는 냐는 햄스터.
치즈를 조아해.
바퀴를 굴리면 시니 나요.
하지만 나는 더 큰 세상이 궁그매.
여행을 떠날 거야.
배를 타고 바다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내 꾸믄 여행쟈.]
은우의 노래에 맞추어 명석이가 춤을 추었다.
명석이는 볼 옆에 두 손을 모으고 두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