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39화 (139/257)

139화. 첫 지방공연 (3)

엉망이 된 무대를 보며 은우는 파리넬리이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파리넬리는 헨델과 라이벌 극단이던 포포리 극단의 무대에서 헨델의 곡을 불렀다.

[울게 하소서]의 전주가 나오자 듣고 있던 관객들이 파리넬리를 비난했다.

“포포리의 극장에서 헨델의 곡을 부르다니 미쳤어?”

“파리넬리는 양심 따윈 팔아먹은 모양이군.”

“애초부터 카르스라토의 목소리는 자연을 거스른 속임수에 불과해.”

“파리넬리의 목소리는 영혼 없는 가식 덩어리일 뿐이야.”

“표를 환불해 줘요. 난 나가겠소.”

관객석에 앉아있던 한 귀족 부인이 책을 펼치며 말했다.

“만약 이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도 내가 계속 책을 읽는다면 당신의 노래는 실패한 것이오.”

귀족 부인의 말에 다른 관객들도 동요했다.

“옳소! 옳소!”

“난 헨델의 음악을 들으러 온 게 아니니 환불해 주시오.”

파리넬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 정도 비난을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어. 난 내가 생각하는 음악을 위해 노래할 거야. 나는 날 가르쳐주신 스승 포포리와 형의 음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그것들은 내 목소리를 빛나게 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 않아.

반면 헨델의 음악은 느리지만, 감정을 표현하고 있어. 난 내가 생각하기에 아름다운 곡을 부르고 싶어. 그게 내가 생각하는 음악이니까.’

파리넬리가 흰 비둘기를 손 위에 얹은 채로 노래를 시작했다.

[Lascia ch'io pianga 나를 울게 하소서

mia cruda sorte, 내 잔혹한 운명에

e che sospiri 그리고 한탄으로

la libertà. 자유를 그리네]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듣던 귀족 부인이 책장으로부터 시선을 떼어 파리넬리를 바라보았다.

‘이 곡은 아르칸데에게 잡혀간 리날도의 연인 알미레나가 리날도를 그리워하며 부른 곡인데.’

[ Il duolo infranga 슬픔아 부수어라

queste ritorte 내 고통의

de' miei martiri 이 속박을

sol per pietà. 오직 비탄을 통해서]

귀족 부인은 눈을 감고 파리넬리의 노래를 음미했다.

‘알미레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있군. 리날도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아르칸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슬플까.

나 역시도 약혼자를 잃고 슬퍼하고 있지.

그 후론 어딜 가든 책을 읽고 있지만 어떤 글자도 내 눈 속에 들어오지 않았어.

책은 방패와 같았지. 사람들로부터 나를 차단시키는.

책을 읽고 있으면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니까.

난 두려웠어.

사람들이 나에게 약혼자에 대해 물을까 봐.

그래서 내가 그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에게 또 이야기해야만 할까 봐.’

관객석 역시 조용해졌다.

파리넬리는 알미레나의 처지에 자신의 운명을 대입했다.

‘나 역시 내 운명을 저주했었어. 형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형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나를 거세했지. 그것도 모자라 내게 줄곧 거짓말을 해 왔어. 낙마 사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었지.’

알미레나의 슬픔에 파리넬리의 슬픔이 더해진 [울게 하소서].

극장을 채우는 슬픔에 관객들은 숙연해졌다.

파리넬리는 손 위에 있던 흰 비둘기를 날렸다.

‘하지만 난 끝까지 노래할 거야. 난 음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걸. 거세된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음악을 통해 내 슬픔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

나의 운명이 음악을 통해 자유를 찾듯 나의 작은 비둘기야 너도 자유를 찾아서 날아가렴.’

비둘기가 날아가자 귀족 부인은 보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파리넬리 당신의 음악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어요. 우린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없겠죠. 나의 운명 역시 신의 뜻일 테니. 하지만 너무 슬퍼하진 않겠어요.

이제 나도 나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요.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가 내 인생의 다음 장을 준비하겠어요.’

그리고 일어서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파리넬리. 파리넬리.”

관객석 곳곳에서 그의 이름이 외쳐지고 있었다.

은우는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 이 무대 역시 분위기를 돌릴 수 있어. 내가 집중할 수만 있다면. 지금 지유가 넘어져 있는 이 상황을 무대 연출처럼 활용하면 되지.’

은우는 노래 가사를 빠르게 생각했다.

‘가사의 의미와 일치하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연결해야겠어. 일단 지유 누나를 제외한 나머지 뽀뽀 댄스팀이 당황하지 않도록 해야 해.’

은우는 웃으면서 노래를 이어갔다.

[난 너무 기여워. 난 너무 사랑스러어.]

은우가 지유의 곁으로 다가갔다.

[여러분도 너무 기여어. 여러분도 너무 사랑스러어.

우린 모두 소중해.]

은우는 [우린 모두 소중해] 부분에서 지유에게 궁정식 인사를 했다.

왼쪽 다리를 뒤로 빼며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지유는 은우의 인사에 감동했다.

‘왕자님이 내게 하는 인사 같아.’

지유는 은우가 내민 손을 잡기 위해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지유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너무 멋지다. 왕자님 같아. 은우.”

“은우가 또 해결했어. 대단해.”

“너무 감동적이야. 나도 어떻게 하나 걱정만 했지, 도와줄 수 없어서 맘 졸였는데.”

“그러니까. 아 눈물 나.”

“백댄서들 파이팅. 아직 아기잖아. 괜찮아. 괜찮아.”

관객석에서는 뽀뽀 댄스팀을 응원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잘한다. 잘한다.”

“뽀뽀 댄스팀. 응원해요.”

“내가 본 어떤 댄스팀보다도 멋져.”

“브라보.”

“파이팅!”

지유가 다시 힘을 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은우가 그때 구호를 외쳤다.

“변신.”

예은이도 채원이도 민혁이도 서진이도 모두 함께 외쳤다.

“변신.”

관객들도 함께 외쳤다.

“변신.”

노래는 랩 부분으로 이어졌다.

[세샹은 내게 안 된다고 마해떠

(너는 미혼뷰의 아이야.)

세상은 내게 포기하랴고 마해떠

(너는 엄마가 엄떠.)

냐를 키운 거슨 샤량

(아뺘의 샤량

팬드리 샤량)

그 샤량으로 난 히믈 내.

나는 포기하지 아나

(여러부늬 응언 거마어요.)

나는 포기하지 아나.

(저도 호저기 생겨떠요.)

냔 할 뚜 이떠.

(샤랑만 이뜨면 냔 무얻또 두렵지 아냐)]

무대 아래의 길동은 은우의 무대를 보며 감명받았다.

‘엉망으로 끝낼 수 있었던 무대를 저만큼 살리다니 대단해. 보통의 다섯 살 아이라면 당황해서 울 법도 한데 말이야. 울지 않고 오히려 무대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이게 연출했어. 팬들도 뽀뽀 댄스팀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 거야.’

관객들은 지유가 넘어지기 전보다 더 무대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에겐 꼬낄마니 이떠.

난 우리 모듀를 위해 더욱 히믈 내.

먀지먁까지 내 모든 걸 거러.

이건 끝나지 아늘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샤량으로 비치된 전설갸도 가튼 이야기.]

은우의 노래 가사를 따라 하며 관객들도 함께 외쳤다.

“우리의 이야기.”

“사랑으로 빛이 돼.”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모두 힘을 내.”

“꽃길만 걷자.”

관객들의 함성이 진주성을 울렸다.

무대가 끝나자 관객들이 앵콜을 외쳤다.

“앵콜. 앵콜.”

“앵콜.”

은우는 뿌듯함을 느꼈다.

‘우리의 마음이 관객들에게 전달된 거야. 역시 관객과 바로 호흡할 수 있는 무대는 즐거워.’

MC가 마이크를 잡았다.

“첫 무대부터 후끈후끈하네요. 국민 아기. 국민 손주에 이어 국민 가수가 될 것 같은 이은우 군. 실제로 보니 노래를 너무 잘하네요. 게다가 무대매너가 찐이네요. 찐. 아까 보셨죠? 백댄서가 넘어졌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그 모습. 이상적이었습니다.

관객 여러분이 앵콜을 열심히 외쳐 주셨는데 아직 한 곡이 더 남아 있어요. 두 번째 곡 마저 듣고 앵콜을 외쳐 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입니다. 모두 박수.”

뽀뽀 댄스팀은 대열을 정비했다.

지유는 결의에 빛났다.

‘이번엔 꼭 실수 없이 무대를 마무리할 거야.’

전주가 시작되고 뽀뽀 댄스팀은 무릎을 굽혔다 펴면서 리듬을 맞추었다.

은우는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가 랩을 하기 시작했다.

[냐는 내 노래를 팬드레게 들려주고 시퍼. 그런데 대표니믄 안 댄다고 그래. 성공보댜 중요한 건 먀음. 나는 내 노래에 먀으믈 시러. 눈나갸 보낸 편지 한 통. 내 마으믈 울려. 냐는 고 샤미 먼지 모르지먄 눈나의 아프믈 느껴.]

무대를 보고 있던 유치원생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은우의 노래를 따라 했다.

“성공보댜 중요한 건 먀음.”

“먀으믈 시러.”

“먀으믈 울려.”

랩은 아니지만, 흥이 담긴 어린이들의 함성은 흥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진주고등학교에 다니는 윤호와 태수, 진묵은 교내 랩 동아리의 회원들이었다.

윤호가 신이 나서 은우의 랩을 따라 불렀다.

[누나의 지친 어깨를 감싸주고 싶어. 노래는 손이 되고 핫팩이 돼 누나에게 닿아. 누나 더 이상 울지 마요. 내가 여기 이떠요.]

‘그렇지 않아도 조금 있으면 시작될 성수 형이 해준 피처링 부분이라 고민되었는데 잘됐네. 그 부분도 내가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은우는 윤호의 곁에 다가가 마이크를 주었다.

윤호가 성수의 피처링 부분을 불렀다.

[어제 오늘 내일 우린 더 많은 행복을 알고 그 큰 행복을 위해 오늘을 노력하며 살아.]

윤호는 태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지나고 나면 노력도 추억이 돼. 너는 오늘보다 내일 더 자라있고 오늘보다 내일 더 뿌듯할 거야. 우리 재롱이들 모두 함께 힘내.]

태수가 다시 은우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노래는 멜로디 부분으로 접어들었다.

[흐르는 강무를 거꾸로 오르는 여너들처럼 우리도 할 수 이떠요. 뱡무늘 열고 저 먼 세상으로 나아갸. 함께 날개를 펴.]

은우는 노래를 부르며 비행기 춤을 추었다.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처럼 사방을 뛰어다니는 춤.

객석의 관객들도 은우의 춤을 따라 했다.

진주성에는 수십 대의 비행기들이 저마다의 꿈을 안고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관객들은 다시 앵콜을 외치기 시작했다.

“앵콜.”

“앵콜.”

은우의 옷은 땀으로 젖어있었지만, 은우의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상쾌했다.

‘무대에서 땀을 흘리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야.’

뽀뽀 댄스팀은 다음 무대를 위해 무대에서 내려갔다.

신이 난 지유는 채원, 예은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민혁이와 서진이도 하이파이브를 했다.

MC가 마이크를 잡았다.

“잘 들었습니다. 이은우 군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너에게]였습니다. 관객들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진주성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이제 여러분이 고대하시던 앵콜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속삭이는 말투로) 사실 무대 시작 전에 이미 은우 군이 앵콜곡을 연주팀에 말해 놓았습니다. 요즘 핫한 곡이죠. [마법의 공주].”

관객들의 박수 속에 밴드가 [마법의 공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기타와 피아노의 맑은 음이 산속에서 울려 퍼졌다.

관객들은 아름다운 밴드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오르골 소리 같아.’

‘곡이 너무 신비로워.’

‘마치 동화 속 세상에 온 것 같아.’

은우가 노래를 시작했다.

[너의 마음 쏙 기픈 고싀 소리를 드러뱌.

어떤 소언도 댜 이룰 뚜 이떠.

이 고슨 소언이 이뤄지는 우리만의 세상.

꿈가튼 세상.]

은우의 맑고 아름다운 음성이 진주성을 타고 산속으로 메아리쳤다.

관객들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미성에 감탄했다.

‘천사의 노래 같아.’

‘너무 맑고 순수해.’

‘사이다로 세수하는 느낌이야. 정말 상큼해.’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관객들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은우의 노래를 감상했다.

몇몇 관객은 몸을 살짝살짝 움직이며 리듬을 타고 속으로 천천히 가사를 따라불렀다.

은우의 노래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다른 소리가 섞이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런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게 내 인생의 축복이야.’

‘매년 하는 논개제라 오기 싫었는데 엄마 따라오길 잘했어. 은우 노래를 눈앞에서 듣게 되다니.’

‘이 노래는 10만 원짜리 콘서트만큼의 가치가 있어.’

은우는 노래 가사에 집중했다. 눈썹 사이에 주름이 잡혔다. 파리넬리 때부터 가졌던, 집중하면 나오는 습관이었다.

[자유롭게 하느를 나라가도 노라지 먀.

별드리 우릴 위해 노래할 거야.

이 고슨 우릴 위한 꿈가튼 세상.]

뽀뽀 댄스팀도 숨을 죽인 채 노래를 듣고 있었다.

지유는 은우의 노래에 감동했다.

‘은우는 정말 왕자님 같아. 아까 내가 넘어져 있을 때 손을 잡아준 것도 그렇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그렇고. 어쩜 저렇게 잘하지.’

은우를 섭외한 논개제의 행사담당자는 은우의 무대를 지켜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임경주가 불렀던 곡보다 훨씬 아름다워. 섭외 요청을 하면서도 요즘 너무 인기가 많아서 될까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은우가 온 건 올해 논개제에 가장 큰 축복인 것 같은데.’

논개제는 진주 지역에서는 이름난 축제였지만 지속된 적자로 행사 규모 축소가 논의되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있었던 축제의 인기가 사그라진다는 게 슬프긴 하지. 하지만 알면서도 인기를 되살릴 방법이 없었는데. 이번에 은우가 와주는 바람에 행사 참여율도 늘어나고 행사 영상으로 지속적으로 홍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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