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첫 지방공연 (2)
은우는 길동의 손을 잡고 무대를 보러 갔다.
‘음악방송 무대보다 높이가 낮구나. 관객석과 그만큼 가깝고 관객들과 눈 맞추기는 좋겠어. 음악방송 무대가 더 예쁘긴 하지만 이 무대도 관객들과 잘 호흡할 수 있을 것 같아.’
은우가 길동에게 물었다.
“오늘 노래는 멀로 해요?”
“행사진행팀에 [난 너무 귀여워]랑 [나의 강아지에게] 두 곡을 부르겠다고 했어. 뽀뽀 댄스팀도 일단 두 곡을 연습해 온 상황이고.”
은우는 선곡이 축제에 어울리는지 고민이 되었다.
‘타이틀곡 [난 너무 귀여워]는 좋은 선곡인 거 같은데. [나의 강아지에게]는 보리가 없는 데다 [크레파스]처럼 피아노를 연주할 수도 없고. 집중도 잘되지 않는 장소여서 적당하지 않을 거 같은데. 여긴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어서 잔잔한 발라드곡보다는 댄스곡이나 고음이 아름다운 곡을 하는 게 나을 거야.
내 곡 중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고 분위기도 살릴 수 있으니 [나의 강아지에게] 대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를 부르는 것이 좋겠어.’
은우가 길동에게 말했다.
“횬아 노래를 바꺼야 할 거 가타요. [난 너무 귀여워]는 좋은데 [나의 강아지에게]는 안 좋은 거 가타요. 여기가 너무 시끄럽고 사람들도 와따 가따 하니까 다른 노래가 조케떠요.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로 할게요.”
“선곡을 바꾼다고? 이미 운영팀에게도 말해 둔 상황이라 그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은우야.”
“그러면 팬드리 안 조아할 거예요.”
“그래도 이건 나 혼자 결정할 순 없을 거 같아. 대표님이랑도 이야기해 봐야 할 거야.”
“횬아, 그러면 앵콜곡은 어떤 걸로 해요?”
은우는 앵콜곡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앵콜이 들어온다면 이번 음반에 실리지 않은 다른 곡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겨울나라 2 OST]를 불러야 하나?’
[겨울나라 2 OST]는 어린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멜로디를 알고 있어서 떼창이 가능한 곡이었다.
‘앵콜을 하게 된다면 겨울나라 2 OST도 생각을 해볼 만은 해. 그치만 지금은 봄이고 겨울 느낌이 너무 많이 나는 곡이라서. 최선의 선택은 아닌 거 같은데.’
은우는 머릿속에서 자신이 부를 수 있는 곡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내가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울게 하소서]지만 그건 우리나라에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어서 부를 수가 없어. 유럽이라면 다른 문제겠지만. 어서 음반을 많이 내서 내 노래만으로 앵콜을 부를 수 있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다. 콘서트도 하고.’
은우는 파리넬리이던 시절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그리웠다.
‘앵콜곡까지 함께하는 건 뽀뽀 댄스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앵콜 무대는 나 혼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고음이 아름다운 곡이라 어떤 게 있을까.’
은우는 얼마 전 너투브에서 보았던 [마법의 공주]라는 곡을 떠올렸다.
[트로트의 제왕]에서 우승을 한 임경주가 한 예능프로에서 부르면서 인기를 끌게 된 곡이었다.
‘수박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있으니 따라 불러주는 사람들도 있겠지. 이 곡으로 해야겠어.’
길동이 은우에게 대답했다.
“은우야. 앵콜곡은 하지 않기로 했어. 대표님과도 상의했고 축제 운영팀에게도 그렇게 전달이 된 상태고.”
“아니에요. 은우 앵콜 할 뚜 이떠요. 횬아.”
길동은 은우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혼란스러웠다.
“횬아 이따가 저 앵콜 할 뚜 이떠요. 앵콜 받을 뚜 있도록 열심히 하께요.”
길동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은우가 의아했다.
‘편히 갈 수 있는 길을 왜 힘들게 가려고 하는 걸까? 선곡을 바꾸는 것도 모자라 앵콜까지. 선곡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앵콜도 위험한데.’
길동은 은우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은우야. 앵콜은 지금 말고 나중에 좀 더 자라서 무대 경험이 많아지면 그때 하자. 첫 음반인 데다가 앵콜로 부를 곡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고. 앵콜곡을 하게 되면 뽀뽀 댄스팀은 어떤 춤을 출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걸.”
은우는 생각했다.
‘형은 몰라서 그래요. 가수는 앵콜이란 말을 들을 때 행복한 거예요. 더 듣고 싶다는 건 그만큼 내 노래가 좋다는 거니까요. 전 파리넬리일 때도 그 말을 매번 들었었어요. 내가 노래를 불렀는데 관객들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은 또 없을 거예요.
그건 가수로서 내 자존심이에요.’
은우가 길동에게 말했다.
“횬아. 내갸 뽀뽀 댄스팀에게 말해 둘께요. 그니까 걱정하지 먀요. 앵코리 나오도록 열심히 할 거예요.”
길동은 은우가 뽀뽀 댄스팀에게 간 사이 강라온에게 전화를 걸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아기인데도 고집이 보통이 아니야. 은우.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대표님이나 나도 말릴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지금까진 은우가 부린 고집으로 늘 좋은 결과가 있었지. 나쁜 결과는 없었는데 이러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걱정이야.’
강라온이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저 길동인데요.”
“진주 잘 도착했지? 은우랑 뽀뽀 댄스팀은 잘 있어?”
“네 다들 있어요. 대표님 그런데 은우가 선곡을 바꾸겠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앵콜도 하겠다고 하고. 갑자기 너무 많은 걸 바꿔서. 이제 공연 시작까지 네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도 계속 우겨요. 말려보고 있는데 고집이 보통이 아니에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계속 하겠다고 하네요.”
“선곡도 바꾸고 거기다가 앵콜까지 하겠다고? 너무 무리수인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은우가 오늘 어떤 가수가 나오냐고 묻고 무대까지 꼼꼼히 둘러보더니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나의 강아지에게]는 무대 특성상 관객이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적당하지 않아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를 불러야 한다고요. 앵콜을 하겠다는 걸 보면 앵콜곡도 이미 골라둔 것 같은데.”
강라온은 길동의 말을 듣고 놀랐다.
‘은우가 대단한 아기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대단할 줄이야. 장소를 보고 관객의 집중도를 고려해서 선곡을 바꿨다는 거야. 내가 [나의 강아지에게]를 골랐던 건 지난번 [크레파스] 출연 반응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지. 무대 특성을 고려하진 못했는데.
어느새 출연진 명단을 체크하고 무대 특성을 살펴볼 정도로 자랐다는 건가? 은우는.
위험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은우의 생각도 일리가 있으니 은우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해 줘야겠어. 다행히 지역 축제라서 음악방송만큼 크게 이슈가 되진 않을 거야.’
강라온이 길동에게 말했다.
“은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줘. 앵콜도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도록 하고. 다만 끝나는 시간이 너무 늦어지면 뽀뽀 댄스팀 부모님들이 걱정하실지도 모르니 연락만 제대로 해주고.”
“아기들은 신나서 불꽃놀이까지 보고 가겠다고 난리예요. 오랜만에 축제장에 오니 다들 재밌나 봐요. 은우도 첨엔 진주성에서 장군놀이하고 신나 하더니 어느 순간 진지 모드로 돌아서서 공연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강라온은 생각했다.
‘역시 은우는 아기지만 아기가 아니야. 장난을 칠 때를 보면 한없이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무대 앞에선 한없이 진지해지지. 흡사 예술가 같다고나 할까? 끝없는 집중력과 관찰력은 나조차도 놀라게 만드니까.’
뽀뽀 댄스팀에게로 간 은우는 무대에 대해 설명 중이었다.
“첫 번째 곡은 [난 너무 기여어]야. 이 노래 추믄 다들 기어카지?”
뽀뽀 댄스팀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곡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라는 곡인데 이건 못 드러본 사람도 이뜰 거야. 혹시 이 노래 아라?”
“나는 알아.”
지유만이 손을 들었다.
평소에도 놀이공원 등 가요를 더 많이 듣는 지유는 최신 가요는 거의 다 알고 있었다.
은우가 말했다.
“눈나라도 알아서 다행이댜. 추미 중요한 곡은 아니라서 [나의 강아지에게] 추믈 또가치 추는 걸로 하쟈. 지금 바꾸면 실수할 수도 이쓰니까. 중간에 랩이 나올 때는 어리니지베서 마니 추는 그 춤 알지? 무릎 구피면서 박자 맞추는 거?”
“응 알아. 이거.”
채원이가 양손을 허리에 집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했다.
“응 그거면 될 거 가타. 역시 체고야. 우리 뽀뽀 댄스팀.”
은우는 신이 나서 말했다.
***
무대의 조명이 들어오고 진주논개제의 사회를 맡은 MC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진주 논개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들 함성을 들어볼까요? 와와아아아아.”
MC가 호응을 유도했다.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소리가 작아요. 더 크게. 진주성이 날아갈 정도로.”
“와아아아아아.”
관객석에서 터지는 박수 소리.
“오늘 유명한 가수들이 많이 오는데요. 큰 박수와 호응을 보여주신 분들께는 여기 있는 상품을 공연이 끝나고 나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끝까지 큰 호응 부탁드릴게요. 첫 번째 무대는 요즘 핫한 가수죠. 국민 아기이자 국민 손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은우 군입니다. 큰 박수 부탁드려요.”
은우와 뽀뽀 댄스팀이 무대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오고 은우는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었다.
관객들도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리듬을 맞추고 있었다.
세 살짜리 어린 아기 하나가 앞으로 나와 은우의 엉덩이춤을 따라 하고 있었다.
아기는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했는지 엉덩이가 볼록했다.
할머니 몇몇이 앞으로 나와서 어깨춤을 추며 은우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에가아 그르케에 귀이여운 가아요. 내에가아 그르케에 귀이여운 가아요. 내에가아 그르케에 귀이여운 가아요. 얼얼쑤우.]
은우는 관객들의 흥이 자신에게로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게 살아있는 무대지. 모두가 즐거워하는 거. 오늘도 신나게 한번 불러보자고.’
은우가 노래를 시작했다.
[거리를 냐셔면 날 보는 시션들.
누냐, 횬아, 할뷰지, 할모니
내갸 그러케 기여운가여.
내갸 지나갈 때먀댜 냘 향한 시션들.
멀리셔도 냐를 쫓는 시션들.
내갸 그러케 기여운가여.]
조명이 은우를 비추고 은우는 배를 살짝 올리는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달구었다.
앞에 서서 은우의 엉덩이춤을 따라 하던 3살짜리 아기가 은우의 춤동작을 따라 해서 배를 들어 올렸다.
관객들의 함성이 더해졌다.
“은우 멋있다.”
“은우 너무 귀여워.”
“은우야, 진주에서 널 보다니 생각도 못 했어.”
은우가 한창 무대에 심취해 있는 사이 뽀뽀 댄스팀의 지유는 무대에서 발을 헛디뎌 옆으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지유는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하지? 내가 모든 걸 망쳤나 봐. 다들 잘하고 있었는데. 내가 넘어졌어.’
노래는 계속 흐르고 지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계속 넘어진 채로 있었다.
‘춤을 춰야 하는데. 지금 일어나면 더 많이 티가 날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하지?’
춤을 잘 추던 채원이와 예은이도 지유를 바라보면서 박자를 놓치고 있었다.
채원이가 예은이에게 말했다.
“지유 어떻게 해?”
예은이가 채원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몰라. 계속 춤춰.”
민혁이와 서진이도 당황한 상태였다.
관객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넘어졌어. 어떻게 해?”
“일으켜 세워 줘야 하나? 어떻게 하지?”
은우는 관객들이 무대를 보고 소란스러운 것을 보고 이상해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무대에는 넘어진 채 울먹이고 있는 지유와 그런 지유를 바라보느라 제대로 춤을 추지 못하고 있는 예은, 채원, 민혁, 서진이가 있었다.
은우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머리가 멍해졌다.
은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동요하는 관객들과 엉망이 된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