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청개구리는 음메음메 (4)
태원의 진행이 이어졌다.
“첫 번째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달밤지기 태원 님. 저는 30대 중반의 주부 이미영이라고 합니다. 5년 전에 결혼한 저에게는 다섯 살짜리 딸이 있습니다.”
듣고 있던 은우가 반가움을 표했다.
“냐두 다섯짤인데.”
태원이 계속해서 사연을 읽었다.
“저희 딸은 다섯 살이 돼 가도록 배변교육을 성공하지 못해서 기저귀를 차고 어린이집에 다녔어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친정어머니는 이러다가 유치원 갈 때도 기저귀 차고 가는 거 아니냐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많이 불안했던지라 아이에게 귀여운 변기도 사보고 변기 동화책도 읽어주고 했는데요.”
은우가 반가움에 말을 이었다.
“변기 동화책 나도 일건는데. 뿡뿡이. 방귀를 이러케 뿡뿡뿡 뀌며능 응가가 나와요.”
“은우 응가 얘기하니까 표정이 너무 신났는데. 은우야. 사연을 다 읽고 한꺼번에 이야기하도록 할게. 청취자들이 헷갈리실 수 있어서. 알았지?”
“네네네네네.”
태원이 계속해서 사연을 읽었다.
“어린이집에서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매일같이 변기에 앉는 연습을 했어요. 집에서도 차차 기저귀를 안 하고 변기를 쓰는 연습을 했고 변기 성공률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하루는 저에게 기저귀를 안 하고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속으론 불안하고 걱정도 되었지만, 경험 삼아 한 번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기저귀를 하지 않은 채로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는 오늘 민정이가 기저귀를 하지 않았다는 걸 알려드렸고요.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뒤 저는 평소처럼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습니다.
민정이가 치마에 오줌을 쌌다는 것이었어요.”
듣고 있던 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민정이 오또케. 너무 놀라게따. 우리 어리니지베서도 지난번에 시우가 바지에다가 똥 싸는데. 그래서 시우가 막 우러떠요.”
“하긴 아기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겠네요. 난 언제 기저귀를 뗐지? 기억도 안 나네. 일단 사연 계속해서 읽을게요. 은우가 너무 집중해서 듣고 있어서 이야기에 끼어드는 것 같아요. 청취자 여러분들의 이해 부탁드립니다. 은우도 사연 끝날 때까지 기다려줘요.”
“네. 너무 걱정돼서요.”
태원이 계속해서 사연을 읽었다.
“어린이집에 옷을 가지고 가보니 민정이가 저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민정이가 많이 속상한 모양이었어요. 저는 딸아이를 달래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옷 갈아입으면 돼. 어서 옷 갈아입자.] 그러자 딸아이가 대답했어요. [엄마, 화장시레 변기 기시니 무서어서.] 딸아이는 계속해서 변기 귀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어요.
딸아이가 읽었던 동화책 속엔 변기 아저씨는 있어도 변기 귀신은 없었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어린이집 선생님께 여쭤보니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태윤이가 변기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 모양이에요. 어디서 읽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변기에 앉으면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하는 변기 귀신이 있다고 얘기를 해서 오늘 민정이 말고도 다른 아기들도 화장실에 못 가겠다고 야단이었어요. 대체 그걸 어디서 들었는지.]
딸아이의 옷을 갈아입히며 저도 문득 변기 귀신 이야기가 떠올랐답니다. 그 이야긴 저희 어릴 때도 있었던 이야기거든요. 파란 휴지 줄까? 하얀 휴지 줄까? 하고 외치는 변기 귀신이 긴 머리에 소복을 입고 변기 아래서 화장실에 오는 어린이들만 기다린다는 이야기요.”
사연을 듣던 은우는 깜짝 놀랐다.
‘현대의 화장실은 너무 좋아서 감탄하고 있었는데 파리넬리이던 시절의 왕족의 화장실보다도 좋으니까. 물도 저절로 나오고 말이지. 그런데 내가 모르는 변기 귀신이 살고 있었단 말인가? 변기 귀신이라니. 우리 집 화장실에도 살고 있는 건가?’
갑자기 은우가 오른쪽 손을 번쩍 들었다.
“은우 군이 손을 번쩍 들었네요. 아마 급한 질문이 있었나 봐요. 근데 여러분 오늘은 정말 보이는 라디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소리만으로 은우 군의 모습을 전달하는 게 아쉽네요. 은우 군 표정이 정말 귀여워요. 이야기해 봐요. 어떤 질문인가요?”
은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징쨔 변기 기시니 이떠요? 빨간 휴지 주까? 하얀 휴지 주까? 이래요?”
태원은 은우의 진지함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그런 이야기가 있긴 했는데 그건 그냥 옛날이야기고 실제로는 그런 건 없어요.”
“이떠요? 엄떠요?”
태원은 고민했다.
‘여기서 만약 내가 있다고 하면 은우도 변기 귀신이 무서워서 바지에다 오줌싸는 거 아닐까?
아무래도 잘 생각해서 말하는 게 좋겠어.’
태원이 대답했다.
“없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건 그냥 지어낸 말이에요.”
“휴우.”
은우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태원이 사연을 계속해서 읽어내려갔다.
“변기 귀신을 생각하다가 제가 문득 초등학교 때 피아노 학원에서 치마에 오줌을 싼 적이 있었다는 게 기억이 났어요. 소심한 성격의 저는 차마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 화장실에 가겠다는 말을 못 하고 계속 피아노를 치다가 앉은 자리에서 오줌을 싸고 말았지요. 그때 얼마나 창피했던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어요.
젖은 치마로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께서 저에게 그릇을 하나 주시면서 소금을 받아오라고 하시는 것이었어요. 오줌 싼 아이는 소금을 받아 와야 다음부턴 오줌을 안 싼다고 하시면서요. 오줌싼 것도 창피한데 이웃집에서 소금을 받아오라니. 저는 용기가 없어서 이웃집 담벼락 앞에 앉아 머뭇거리다가 저녁이 되었던 기억이 났어요. 저녁이 되도록 저는 이웃집으로도 못 가고 우리 집으로도 못 가고 있었지요. 그때 퇴근하면서 돌아오신 아빠가 제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 주셔서 다행히 사건은 마무리되었답니다.
딸아이 오줌 사건 덕분에 잊고 있었던 저의 추억이 떠올랐어요. 여러분도 혹시 오줌싸셨던 기억 있으신가요? 어떠세요? 달밤지기 여러분. 여러분은 바지에 오줌 싼 기억 있으신가요? 은우는 어때요? 은우는 월드 스타니까 기저귀도 빨리 뗐으려나? 몇 살 때 기저귀 뗐어요?”
“세 살 때요.”
“와 빨랐네요.”
은우는 생각했다.
‘하나도 안 빨라요. 인생 3회차거든요. 저. 몸만 따라줬으면 한 살 때도 떼고 싶었는데 몸이 안 따라주더라구요. 이상하게. 정신은 3회차여도 몸은 1회차여서 그랬나 봐요. 그래서 제 몸이 제 정신을 따라올 수 있었던 게 3살이었어요.
사실 기저귀가 똥이 묻는 거 빼고는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는데 옷을 입으면 이쁘지가 않아서 말이에요. 연기를 할 때도 기저귀가 있으면 이상하고 또 결정적인 건 춤출 때 기저귀를 차고 있으면 춤 선이 안 살아서 말이에요.’
은우가 태원에게 물었다.
“오줌싸면 왜 소그믈 어더요?”
“글쎄요. 사실 그건 나도 잘 모르는 이야기여서. 오줌싸면 소금을 왜 얻죠? 저는 어릴 때 오줌싸도 소금 얻어오라고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청취자분들은 아시나요? 청취자 아이디 인천아저씨님께서 [소금 얻어오는 이유는 소금이 귀해서 집에 소금을 얻어오라고 했어요. 저도 어릴 적 이불에 지도 그리고 소금 많이 얻으러 다녔어요.]라고 하셨습니다. 오, 소금 얻으러 많이 다니셨나 보네요. 이게 지역별로 다른가요? 저는 서울 살아서 그런가?
청취자 아이디 쭈꾸녀님께서 [저는 서울 살았는데도 얻으러 다녔어요. 소금 얻어오는 이유는 소금 얻으러 다른 집에 가면 창피해서 다시는 안 싸려고 노력하게 되거든요.] 그냥 부모님 차이인가요? 근데 소금 얻으러 가면 정말 창피할 거 같아요. 만약 제가 좋아하는 친구네 집에 소금 얻으러 가게 됐다가 좋아하는 친구랑 마주치면 얼마나 창피할까요? 생각만 해도 어휴. 아찔하네요.”
“칭규 만나면 오또케. 창피해요.”
은우가 실제로 친구라도 만난 듯 눈을 크게 뜨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 진짜 피디님 우리 보이는 라디오 할 때 은우 한 번 더 초대하죠? 은우 표정을 보셔야 이 귀여움이 전달이 될 텐데. 저는 원래 라디오가 라디오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음성으로 느끼는 친숙함과 낭만. 공감과 위로. 근데 은우 표정은 정말 보셔야 해요. 얼마나 귀여운지 압권입니다.
청취자 아이디 [줌마]님께서 [은우 표정 보고 싶어요. 보이는 라디오 때 은우 꼭 초청해 주세요]라고 실시간 댓글을 통해서 의견 남겨주셨습니다.
청취자 아이디 [에티우]님께서 [우리에게도 추억은 있다 코너에 은우 너무 잘 어울리는데 고정 게스트하면 안 되나요?]하는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이건 진짜 제 역량으로는 안 돼서 PD님 의견이 중요한데 PD님 어떠세요? 은우 고정 갈까요?
잠시 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명인제약, 현성 자동차, 키다리 스튜디오에서 협찬해 주시고 계십니다.”
광고가 나가고 태원이 잠시 헤드셋을 내려놓으며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힘들지 않아?”
“재미이떠요.”
스테프들이 은우를 위해 요구르트를 주었다.
“와아. 요구르트댜. 나 요구르트 조아하는데. 요구르트는 다섯 개를 한 버네 머거야 마신는데.”
“와 은우 대단하다. 다섯 개를 한 번에 먹어?”
“열 개도 머글 뚜 이떠요.”
“나도 학교 다닐 때 요구르트 좋아했었는데 다섯 줄짜리 요구르트 형도 많이 샀거든. 그거 줄지어 놓고 먹으면 진짜 맛있어.”
PD가 부스 밖에서 태원에게 말했다.
“태원 씨. 은우 보이는 라디오 출연은 확정이고 고정은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사실 이건 우리보단 은우 쪽 스케줄을 알 수 없어서. 쉬는 시간 끝나고 방송 들어가면 청취자 여러분께 알려주세요.”
“네.”
광고가 끝나고 다시 방송이 시작되었다.
태원이 사연 읽기를 계속했다.
“첫 번째 사연은 오줌과 관련한 우리의 추억을 생각해 봤는데요. 우리 다들 오줌싸개였던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커서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줌싸개 체고!”
“아니 은우야 오줌싸개를 응원하면 어떻게 해? 오줌을 그만 싸라고 해야 하는데?”
“오줌싸개는 음메. 오줌싸개는 꼬꼬댁.”
“오줌싸개가 우나요? 이제 정신이 없네요. 이제 두 번째 사연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서른세 살의 서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작년부터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어요. 하루 종일 학교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데 잘 안 되네요. 오늘 조금 쓴 것 같다가도 내일 보면 맘에 안 들어서 모두 다 지워버리고 싶어요. 이래서 박사 논문 낼 수 있을까 싶어요.
어제는 글을 써야 하는데 안 쓰고 친구랑 맥주 마시고 한강 가서 하루 종일 놀았어요. 노니까 너무 좋더라구요. 전 박사가 아니라 뽀로로가 되려는지. 노는 것만 좋고. 일이 진척이 없어요. 이래서 어쩔까 싶습니다.
서현 씨, 아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 서현 누나라고 해야 할까요? 서현 누나. 힘내세요. 저도 노는 걸 너무 좋아해서 뽀로로가 꿈입니다. 가끔은 침대 시트가 꿈일 때도 있어요. 침대에서 너무 일어나기 싫어서요. 그래도 우리 그 힘든 걸 이겨내면서 계속하고 있으니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 거예요. 그쳐 은우 군?”
“힘내요. 서현 눈나. 실패는 어머니자냐요.”
“실패는 어머니요?”
“네. 실패는 어머니니꺄 갠챠냐요.”
태원은 은우의 실수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여러분 아시죠? 은우가 이렇게 귀엽습니다. 우린 모두 잘 들을 수 있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죠. 실패하면 어떻습니까. 우리 모두 이렇게 젊은데. 은우 말대로 실패는 어머니니까 또 해보자구요. 서현 누나께 힘내시라고 피자핫에서 보내드리는 피자 한 판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보이는 라디오에 은우 출연이 확정됐습니다. 여러분. 기뻐하세요. 은우도 신나죠?”
“네네네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