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청개구리는 음메음메 (2)
경완은 생각했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가지 방법뿐이야.’
경완은 뒤돌아서서 [난 너무 귀여워]의 안무인 엉덩이 흔들기 춤을 추었다.
알파카의 커다랗고 하얀 엉덩이가 리듬을 타고 있었다.
경완이 중년 남자 특유의 중저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거리를 나서면 날 보는 시선들.
누나, 형아, 할아버지, 할머니.
내가 그렇게 귀여운가요?]
경완의 노래를 듣자마자 어린이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저거 은우 노래다.”
“근데 퐁퐁이 노래를 너무 못해. 노래가 이상하잖아.”
“노래가 꼭 우리 엄마 음식 같아.”
“니네 엄마 음식이 어떤데?”
“냄새는 그럴싸한데 맛은 없어. 가사는 똑같은데 이상한 저 노래처럼.”
“헤헤헤헤헤헤.”
경완은 학교 때부터 박치로 유명했다. 같은 노래도 경완이 부르면 다른 곡이 되곤 했다.
‘음악 선생님께서도 내 노래를 도와주시려다가 포기하고 마셨지. 음악 선생님께서 나에게 노래를 가르칠 수 있으면 우리나라의 어떤 사람도 음악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으니.’
회식 자리에서도 좀처럼 마이크를 잡지 않는 경완이었다.
‘노래까지 불렀으니 제발 두 번째 미션을 성공했으면.’
경완은 마음은 더욱더 간절했다.
은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횬아, 누나들. 우리 지금 청개구리 노리 하는 거쟈나. 퐁퐁이는 노래 잘하는데 청개구리라서 이러케 부르는 거야.”
은우의 말에 어린이들은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다. 퐁퐁이. 너무 똑똑해.”
“우리도 다 퐁퐁이처럼 노래 부를까?”
“퐁퐁이 노래 너무 멋진 거 같아.”
“퐁퐁아 나도 너처럼 노래 부르고 싶어. 나도 좀 가르쳐 줘.”
갑자기 어린이들이 경완에게로 몰려들었다.
“다른 노래도 불러줘 봐.”
경완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아닌데? 두 번째 미션을 해야 하는데. 근데 내 노래를 좋아해 주다니. 정말 신기한데.’
경완은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의 순간을 잊지 못했다.
대학교 1학년 새내기이던 경완에게 4학년 예비역 선배가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그 커다란 냉면 사발에 막걸리를 가득 채워주었지. 막걸리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싫어.’
1학년 새내기들은 모두 자신 앞에 놓인 커다란 냉면 사발을 잡았다.
예비역 선배가 외쳤다.
“자, 지금부터 냉면 사발에 담긴 막걸리를 원샷한다. 마시다 멈추면 처음부터 다시 마시는 거야. 만약 후배가 실패하면 여러분의 선배가 대신 술을 마실 것이다.”
예비역 선배들까지 함께하는 신입생 환영회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이 분위기에서 누가 선배에게 술을 마시게 하겠어? 먹고 죽더라도 내가 다 마셔야지.’
경완의 차례가 되었고 경완은 막걸리를 원샷했다.
마셔본 적 없는 술을 거하게 마시고 나니 취기도 올라오고 속도 안 좋았다.
동기 중 여학생 두 명 정도가 술을 마시다 포기했을 뿐 남학생들은 모두 냉면 사발에 든 술을 원샷하고 머리 위에 털어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예비역 선배가 외쳤다.
“이번 신입생들 기대가 되는군. 자 그러면 지금부터 신입생들의 노래 실력을 확인해 보겠다. 첫 번째 체크 무늬 남방 입은 학생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경완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망할. 체크 무늬 남방이네. 왜 이걸 입었지? 눈에 잘 띄게?’
경완은 자신의 노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노래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분위기에서 뺏다간 다들 날 죽이려 들 거야. 근데 뭘 불러야 하지?’
경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배들은 추임새를 넣기 시작했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쉬고 하나 둘 셋 넷.]
경완이 노래를 시작해야 할 타이밍에도 시작하지 않자 선배들의 추임새가 이어졌다.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 가요. 아 미운 사람. 장가를 못 가면 자식이 없어요. 아 미운 사람.]
경완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코옹밭 매는 아줌마야. 옷소매가 흠뻑 젖는다야.]
경완이 부른 노래는 어머니가 늘 부르시던 [팔갑산].
홀어머니를 두고 시집가는 딸이 어머니를 걱정하는 노래.
트로트 특유의 꺾기와 한국인의 한이 어우러진 애절한 노래로 중장년층에게 사랑받는 곡이었다.
선배들은 경완이 부른 노래에 자지러졌다.
“야, 신입. 오티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면 어떻게 해? 이 분위기 어쩔 거야?”
“분위기를 띄워도 모자랄 판에 찬물을 끼얹네.”
“이건 찬물 정도가 아니라 냉수마찰인데 거의.”
“근데 선곡도 선곡인데 쟤 노래 완전 못 한다.”
“그니까 완전 음치인데.”
“첫 번째 타자부터 김이 팍팍 샌다. 에휴.”
“파릇파릇한 여학생 시켜보자. 쟨 안 되겠어. 분위기만 망치고.”
그날부터 경완은 선배들 사이에서 [팔갑산]이란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팔갑산]은 분위기를 잘 망친단 뜻이 되었고 선배들은 경완이 지나갈 때마다 큭큭거리며 웃었다.
‘그 뒤로 노래는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게 돼 버려서 절대 부르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어린이들이 듣기엔 다른가?’
귀여운 원피스를 입은 단발머리의 여자 어린이가 경완에게 말했다.
“퐁퐁아. 나 포로로 노래 듣고 싶어.”
경완은 용기를 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와아, 포로로다.]
경완의 도입부에 어린이들은 충격을 먹은 듯 쳐다보았다.
경완의 노래는 원곡의 상큼하고 발랄한 분위기 대신 어둡고 둔탁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경완의 목소리는 고음을 낼 수 없었기에 뽀로로가 마치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느낌을 주는 곡으로 변해버렸다.
원준이가 경완에게 물었다.
“퐁퐁아. 어쩜 그렇게 다르게 부를 수 있어? 넌 청개구리 놀이 짱이야! 정말 대단하다.”
다른 어린이들도 경완의 노래에 감탄했다.
“퐁퐁아. 넌 진짜 반대로 하기 짱이야. 내가 들어본 포로로 노래 중에 가장 멋졌어.”
귀여운 원피스를 입은 단발머리의 여자아기는 경완의 노래를 흉내 내려고 애썼다.
“나도 퐁퐁이처럼 노래하고 싶어. [와, 포로로다.] 이상하다 왜 안 되지?”
여자아기는 낮은음을 내고 싶어서 계속 시도했지만 되지 않자 울상이 되었다.
“나도 해 볼래? 나두.”
[와, 포로로다.]
[와, 포로로다.]
[와, 포로로다.]
어린이집에는 돌림노래처럼 음정이 제각각인 정체불명의 포로로가 울려 퍼졌다.
***
태현은 은우에게 밀려드는 스케줄을 확인 중이었다.
‘이게 다 뭐야? 대학교 축제 목록을 한 페이지 넘게 받아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생소한 축제 목록을 받다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국민 손주가 되면서 각종 지역 축제의 섭외 1순위가 은우가 된 것이었다.
‘진주논개제, 보성다향대축제, 괴산고추축제, 횡성한우축제, 보령머드축제, 사과축제는 문경, 청송, 예산 세 지역이나 있네?
지역 축제만으로 1년 스케줄을 뽑을 수도 있겠는데?
중년의 트로트 가수나 가능할 스케줄이 은우에게 몰려들다니.’
태현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강라온 대표님께서 보시면 보나마나 다 자르라고 하시겠지? 아직은 음악방송이 더 중요하니까 말이야. 1위도 하지 못했고. 이번 앨범에서 1위를 해야 다음 앨범에서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테니까.’
태현은 고민에 빠졌다.
‘다 거절할 순 없으니 이 중에 하나나 두 개 정도는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디에 가면 좋을까? 우선 음방 스케줄이랑 공중파 방송 예능 위주로 잡아야겠어. 은우 티비 촬영날짜도 있는 데다 은우 체력을 감안하면 스케줄을 무작정 늘릴 수만은 없지.’
아이돌들만 해도 평균 네다섯 시간 되는 수면 시간만으로 버텨가며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이 연예계였다. 인기가 있을 때 하나라도 더 뛰어야 하기도 했고 활동이 많아야 인기를 유지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다섯 살짜리 스타는 없었으니까 그랬던 건데. 은우가 아무리 또래에 비해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더라도 어른의 스케줄을 강요할 수는 없었으니까.
지난번에 응급실에 실려 갔던 것도 그랬고.’
평소 투철한 의지를 강조하는 강라온이었지만 은우의 응급실 사건 이후 강라온은 은우의 스케줄 양을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아기의 체력에 무리가 가게 해서는 안 돼. 비주얼도 중요하니 무리한 스케줄로 키가 안 크거나 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어렸을 때 훌륭한 외모로 주목을 받았던 아역스타들도 크면서 키가 자라지 않거나 외모가 역변하여 인기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아기 스타로 시작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인기를 유지하는 스타는 많지 않지. 그렇게 되려면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하고. 은우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여러 가지를 잘 조절해야만 한다고 대표님이 그러셨어.’
태현은 스케줄을 잡다가 책상 위에 놓여있는 은우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에서 은우는 사탕 반지를 낀 손으로 해맑게 브이자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우리 이쁜 은우. 누가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태현의 강라온이 알려준 원칙에 따라 은우의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스케줄은 하루에 2개만. 중간에 쉬는 시간 충분히. 화장실 가는 시간, 식사 시간 꼭 넣어줄 것.’
***
김마리아 수녀님은 어린이집 앞에 빈 텃밭을 갈고 있는 중이었다.
‘이따 아기들이 오면 여기에 여러 가지 작물을 심어봐야겠어. 식물이 아기들 정서에도 좋다고 하니까.’
성당과 미혼모 시설을 함께 가지고 있는 어린이집은 다른 어린이집보다 부지가 넓은 편이었다. 비어 있는 땅도 많아서 수녀님은 근처에 텃밭도 만들고 동물도 길러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잘할 수 있을지가 문제지. 도와주는 사람이 더 있으면 좋으련만. 이태석 신부님께서 미혼모들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도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미혼모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탄탄한 직장이 필수였지만, 미혼모 중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교구에서 사람을 더 보내주면 좋으련만. 그럼 여러 가지 일들을 더 시작해 볼 텐데.’
김마리아 수녀님은 텃밭을 정리하고 어린이집으로 올라갔다.
은우는 수녀님이 올라오시는 것을 보고 문 뒤로 숨었다.
‘여기 있다가 수녀님은 놀라게 해 드려야지.’
은우의 손에는 플라스틱 지네 모형이 들려져 있었다.
수녀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은우가 문 뒤에서 나오면서 수녀님의 손 위에 지네 모형을 올려놓았다.
“수녀님. 이거 뱌요.”
“이게 뭐니?”
은우의 예상과는 다르게 김마리아 수녀님은 너무도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어, 이게 아닌데? 왜 안 놀라시지? 재미없게. 놀라셔야 하는데.’
은우가 수녀님께 물었다.
“안 무떠워요? 수녀님. 이거 무서운 건데.”
“지네가 뭐가 무서워. 지네도 생명이란다. 생긴 게 우리와 다른 거지. 무섭지 않아.”
“피이.”
은우는 시무룩해져서는 자리로 돌아갔다.
‘장난꾸러기 우리 은우. 요즘 매일 장난에 빠져서는. 장난치는 게 좋을 나이지. 그렇게 매일 재미있는 장난을 생각하면서 행복하게 크렴.’
김마리아 수녀님이 은우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자리로 돌아간 은우는 플라스틱 지네 모형을 연아의 팔 위에 올려놓았다.
연아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아악!”
연아가 뒷걸음질치면서 말했다.
“무떠워. 무떠워.”
은우가 지네 모형을 주우면서 말했다.
“안 무떠워. 안 무러. 걱정하디 먀.”
연아의 비명 소리에 혜린이가 달려왔다.
“연아 무슨 일 있어?”
연아가 은우의 플라스틱 지네 모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벌레 무떠어.”
혜린이가 연아를 안고 토닥여 주었다.
“괜차나. 괜차나. 안 무서워. 은우. 친구를 놀리면 어떠케 해. 나빠.”
“아니. 냐는. 재미떠서.”
“재미 업써. 연아가 놀라자냐.”
은우는 생각지도 못한 연아의 반응에 놀랐다.
‘김마리아 수녀님은 하나도 안 놀라셨는데 연아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네. 휴우. 참. 그렇게 무섭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건데.’
은우는 연아에게 사과했다.
“미아내. 연아야. 마니 놀라찌? 내갸 미아내. 안 그럴게.”
연아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다으메는 그러지 먀. 아라찌? 연아 무떠워떠.”
연아와 은우는 화해의 의미로 손을 잡았다.
은우는 생각했다.
‘아기들이 더 많이 놀라는구나. 어른들은 안 놀라나? 그러면 이제 장난은 어른들에게만 쳐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