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아이와 노인은 닮았다 (1)
두 사람은 근처의 마트로 들어갔다.
마트에 들어서자 무릎이 늘어난 추리닝을 입고 졸고 있던 20대의 여자가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은우와 퐁퐁이가 함께 인사를 했다.
“안녕하떼요.”
“안녕하세요.”
20대의 여자는 급흥분하여 소리를 질러댔다.
“은우 아니야? 얘 은우 맞죠?”
“은우 마자요.”
은우가 수줍은 듯 웃었다.
“티비에서 봤어. [난 너무 귀여워. 난 너무 사랑스러워.]”
20대의 여자가 은우의 노래를 따라서 불렀다.
“오늘 아빠 대신 가게 보길 잘했네. 개이득.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그 모습을 보는 은우는 매우 뿌듯했다.
‘벌써 내 노래를 아는구나. 사람들이 내 앞에서 내 노래를 부르니까 기분이 묘했어. 이게 인기 가수가 된다는 거겠지. 더 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알도록 열심히 해야겠어.’
은우는 퐁퐁이와 함께 마트 안으로 들어가 과자를 골랐다.
“은우야, 어떤 과자를 살까? 어떤 과자를 사가야 좋아할까?”
“음.”
은우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여럿이 먹으면 맛있는 손가락에 끼워 먹는 옥수수 맛 과자도 좋고 입안에서 터지는 톡톡이 사탕도 좋고 초콜릿도 맛있는데. 그러고 보니 여긴 도넛은 없나. 도넛도 맛있는데. 역시 난 결정장애야.’
은우는 생각만 하고 과자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퐁퐁이가 바구니를 찾아서 들고 왔다.
“은우야. 먹고 싶은 거 여기다가 담아.”
20대의 여자는 은우가 과자를 고르는 근처로 와서 과자를 추천해주었다.
“요새 새로 나온 [거북칩] 먹어봤어? 완전 맛있는데. 치킨 맛이 나는 [빠닭빠닭]도 맛있어. 먹어볼래? 피자 맛이 나는 과자는 어때? 아기용 과자에다 아이스크림 찍어 먹으면 꿀맛인데 그것도 먹어볼래?”
은우는 새로운 추천에 더 정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이래서 이 마트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근데 저 누난 과자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 잘 알지? 과자 마술사인가?’
은우가 20대의 여자에게 물었다.
“눈나. 눈나는 과자를 너무 잘 아라요.”
“내 이름은 은영이야. 이은영. 퐁퐁아. 너도 반가워.”
은영이 퐁퐁이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취업 준비 중이라서 가끔 나와서 가게를 봐. 가게보다 보니 심심해서 새로 나온 과자를 맛보다가 알게 됐어. 도와줄까?”
“네네네네네.”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퐁퐁이랑 둘이서 먹을 거야?”
“초등하교에 놀러가기로 해떠요.”
“그럼 여러 명이서 먹을 거 같으니 많이 사야겠네.”
은영은 [거북칩], [빠닭빠닭], [피자맛 알볼로]를 골라 바구니에 넣었다.
“아이스크림은 수저도 필요하고 녹을 수도 있으니 빼는 게 낫겠다.”
“눈나, 초콜릿이랑 도넛도요.”
은영이 초콜릿과 도넛을 찾아서 바구니에 넣었다.
“눈나는 과자가 어디는지 어또케 다 아라요?”
“여기 하루 종일 있으면 알게 돼.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즐거운 일은 스마트폰 보는 거랑 과자밖에 없거든.”
“눈나 너무 머디떠요.”
은우가 은영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자, 이제 다 됐네. 계산을 해 볼까.”
은영이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다해서 팔만 구천 오백 이십 원이야.”
은우는 당황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마트에 올 땐 늘 길동이 형이나 아빠가 있었는데. 미리 생각했어야 하는데 큰일났다.’
은우가 어색한 듯 웃었다.
“헤헤헤헤헤헤. 눈나.”
은우는 은영이 카운터에 펼쳐놓은 종이 위에 돈을 그리기 시작했다.
종이돈을 그린 뒤 종이돈 안에 89520원이라고 적어놓았다.
은영은 은우가 그린 돈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은우야. 이거 나 주는 거야?”
“네네네네네.”
“친구들한테 자랑해야겠다. 너무 귀여워.”
퐁퐁이의 수신기로 정형욱 PD의 음성이 들렸다.
“자연스럽게 나가시면 촬영팀 중 한 명이 계산하도록 하겠습니다.”
은영이 과자를 봉지에 담아주었다.
은우와 경완은 모두 양손 가득 과자 봉지를 들고 있었다.
은우는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거 가지고 가면 횬아랑 눈나들이 조아하게찌?”
“응. 은우가 열심히 골랐으니까 좋아할 거야.”
은우와 퐁퐁이는 함께 과자 봉지를 들고 초등학교로 들어갔다.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5학년 남자아이들이 퐁퐁이를 보고 몰려들었다.
“인형 탈이다.”
“저 속에 사람이 들었을 거야.”
“아저씨 누구세요?”
경완은 아이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퐁퐁이야. 은우 친구야. 친하게 지내자.”
은우가 초등학생들에게 말했다.
“내 칭규 퐁퐁이야. 우리 오늘 학교에 놀러와떠. 칭하게 지내요. 횬아들.”
남자 초등학생들이 은우를 둘러싸며 말했다.
“나 어제 티비에서 은우 봤어.”
“나두. 은우 귀여워.”
“은우 우리 학교에 놀러 온 거야? 같이 수업도 듣나?”
“선생님께 물어보자.”
초등학생들과 은우와 퐁퐁이는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은우가 우리 초등학교 구경하러 왔대요.”
퐁퐁이의 수신기에서 정형욱 PD의 음성이 들렸다.
“사전 촬영 협조 요청에 의해 학교 측에서 알고 있는 상황이니 선생님께서 자연스럽게 행동해 주실 거예요. 촬영의 재미를 위해 학생들은 모르는 상황이고 담임 선생님과 학교 관계자들은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은우가 우리 학교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다음 시간은 국어 시간인데 은우와 함께 수업을 받아볼까?”
담임 선생님께서 은우와 퐁퐁이를 교실로 안내했다.
은우는 의자에 손을 짚고 간신히 올라갔다.
막상 의자에 앉으니 발이 땅에 닿지 않아 울상이었다.
‘의자도 책상도 너무 크다. 확실히 초등학교 형들은 나보다 큰 것 같아.’
퐁퐁이는 퐁퐁이대로 의자가 너무 작아서 고민이었다.
‘인형 탈은 너무 커. 여기 앉으면 엉덩이 반쪽도 못 앉겠다. 게다가 내 뒤의 학생들은 아무것도 안 보이겠지.’
퐁퐁이는 크게 한숨을 한 번 쉬고 나서 맨 뒤에 서 있었다.
선생님이 퐁퐁이에게 물었다.
“퐁퐁이 왜 뒤에 서 있죠?”
“저는 서서 공부하는 게 좋아서요. 서서 공부하면 집중이 잘 돼요.”
“퐁퐁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네요. 우리 친구들이 본받아야 할 것 같아요. 수업 시간에 졸고 그러는 친구들 퐁퐁이를 본받으세요.”
은우도 몸을 굽혀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내려갔다.
은우도 맨 뒤 퐁퐁이 옆에 섰다.
“은우는 왜 뒤로 갔죠?”
“퐁퐁이랑 가치 이꼬 십어떠요. 그리고 의자가 너무 노파요.”
“그럼 특별히 은우도 뒤에서 수업 듣는 걸 허락할게요.”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민경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도 은우랑 퐁퐁이 옆에서 수업을 듣고 싶어요.”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는 하율이가 손을 들었다.
“저도요.”
네 번째 줄에 앉아 있는 현수도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도 서서 수업을 듣고 싶어요.”
선생님이 말했다.
“여러분 은우랑 퐁퐁이는 책상과 의자에 몸이 맞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 두 명만 뒤에서 수업을 듣도록 할게요. 다른 학생들까지 다 뒤에 서면 자리가 없어서 안 돼요. 우리 은우와 퐁퐁이의 자기소개 들어볼까요?”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좋아요.”
“네.”
은우와 퐁퐁이가 맨 앞으로 나왔다.
먼저 퐁퐁이가 말했다.
“안녕 칭구들 나는 퐁퐁이라고 해. 나는 페루에서 왔고 나이는 세 살이야.”
하율이가 물었다.
“퐁퐁아. 너는 꿈이 뭐야?”
경완은 당황스러웠다.
‘이건 대본에 없던 건데 내 꿈이라. 내 꿈은 승진하는 거. 아이들이 대학 잘 가는 거. 건강한 거. 근데 이건 퐁퐁이의 꿈이 될 수 없는데. 퐁퐁이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지?’
경완이 말했다.
“음. 내 꿈은 모든 알파카들이 행복한 거야. 그리고 엄마 아빠를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어.”
하율이가 경완의 말에 감명받았다는 투로 말했다.
“너무 멋진 꿈이다. 그럼 넌 언제 제일 행복했어?”
경완의 머릿속에서 지나간 인생이 빠르게 지나갔다.
‘가장 행복했을 때는 부장으로 승진했던 때, 아내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처음으로 내 집을 샀을 때.’
경완은 다시 퐁퐁으로 돌아가 대답했다.
“한국에 와서 은우를 만났을 때. 은우가 날 위해 울어줬을 때. 난 새로운 친구를 많이많이 만들고 싶어.”
하율이가 말했다.
“진짜 부럽다. 은우 같은 친구도 있고. 나도 은우랑 퐁퐁이랑 친구 하고 싶어.”
경완이 대답했다.
“응, 우리 친구 하자.”
하율이가 그 말을 듣고 경완에게 달려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
경완은 두 개뿐인 인형의 손가락으로 하율이와 약속을 했다.
하율이는 은우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은우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다른 학생들도 모두 은우에게로 달려왔다.
“은우야. 나랑도 친구 하자.”
은우는 쏟아지는 새끼손가락 앞에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
은우는 보리와 함께 간식을 먹고 있었다.
보리가 은우에게 물었다.
“멍멍(은우야, 근데 넌 인생 3회차인데 왜 그렇게 아기인 척해?)”
“그건 사람들리 내갸 세 번째 인생을 살고 이따는 걸 알면 안 되니꺄. 근데 넌 왜 자꾸 개인 척해?”
“멍멍(그건 개니까 그러지. 개한테 개인 척하냐니? 나도 개처럼 살기 싫지만, 개의 몸으로 태어나니까 나도 모르게 개가 된 걸.)”
“나도 애기가 되니까 다시 애기의 마므로 돌아가쪄서. 내갸 할뷰지라는 걸 알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꺄 기여워야 한다고 생각한 거또 이떠꼬.”
“멍멍(그래. 이해할 것 같아. 근데 너 진짜 귀여워.)”
“거마어. 내가 전생에 할뷰지일 때는 그땐 속상하고 슬퍼도 마를 잘할 뚜갸 엄떠는데 아기가 되니까 마를 잘할 뚜 이떠서 조아. 사람드리 아기 마른 잘 들어주거든.”
“멍멍(맞아. 내가 전생에 우리 엄마랑 같이 살아봐서 아는데 노인이 되면 아기가 되는 것 같더라고. 우리 엄마도 나이가 들면서 얼마나 작은 걸로 삐지던지. 맛있는 거 안 줘도 삐지고 지난번엔 생일을 잊어버렸다고 혼자 울었다니까. 얼마나 당황했던지.)”
“모듀 마음은 다 애기니꺄. 그래서 난 애기가 된 게 조아. 전생에서도 전전생에서도 아기로 살지 모해쪄. 파리넬리일 땐 노래 연습 때메, 파드와일 땐 일해야 해떠.”
“멍멍(그래. 이번 생에서라도 맘껏 아기로서의 행복을 누려. 정말 수고 많았다. 은우야. 두 번의 삶 동안 수고 많았어. 이번 생에서는 예쁘고 귀여운 아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행복하게 지내.)”
“거마어.”
보리가 태블릿을 보다가 말했다.
“멍멍(긍데 너 벽화 그렸어? 니가 그린 벽화가 유명해진 모양인데.)”
“내갸 명서기량 며칠 저네 그려떤는데.”
“멍멍(그게 사진 핫스팟이 됐나 봐. 사람들이 거기에 와서 사진을 많이 찍는데.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이쁘다는 칭찬도 많이 했나 봐. 여기 할머니 인터뷰도 실려있는데. 할머니가 다시 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서 기뻐하셨대. 할머니가 네 칭찬도 많이 하신 모양인데?)”
“할뮤니가 기뻐하신다니 조타. 할뮤니 외로운 거 가타떠.”
“멍멍(노인이 된다는 건 그런 걸 거야. 늙어간다는 건 쓸쓸한 일이라고 엄마가 말했었어.)”
“할뮤니 보고 십땨.”
“멍멍(나도 네가 그린 벽화 보러 가고 싶은데 같이 보러 갈까?)”
“길동이 횬아 오늘 쉬는 나린데. 아빠도 바쁠 거 가꼬.”
“멍멍(백수희 누나가 있잖아. 전화해 봐.)”
은우가 키즈폰을 켜고 백수희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눈나. 나량 그림 그리러 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