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데뷔 무대 (3)
노래가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면서 지유가 말했다.
“우리 징쨔 잘해찌?”
채원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쨩쨩.”
예은이가 발그레하게 상기된 볼로 말했다.
“무대에 또 서고 십땨.”
서진이도 동의했다.
“냐두 또 변신하고 십땨.”
민혁이가 말했다.
“우리 체고여떠. 우리 징쨔 머디뗘.”
옥이가 아기들을 칭찬했다.
“그래, 너희가 최고였어. 오늘 무대에 선 어떤 백댄서들보다 멋졌어. 은우도 마찬가지고.”
예은이가 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은우야. 거마어. 우리에게 용기를 져서. 니가 업써뜨면 징쨔 무서워쓸 거야.”
채원이도 은우에게 말했다.
“아까 춤출 때 징쨔 머디써써.”
은우가 뽀뽀 댄스팀에게 말했다.
“우린 가튼 팀이쟈냐. 아프로도 마니 도와줘.”
아기들이 다 함께 외쳤다.
“변신!”
***
강라온은 은우의 첫 번째 음악방송 반응을 체크하는 중이었다.
‘노래도 잘했고 퍼포먼스도 좋았어. 무엇보다 칭찬할만한 건 상황대처 능력이지만. 탑보이즈 뒤에 붙어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얼굴도장만 찍으려 한 것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상황을 반전시킬 줄은 생각도 못 했네.’
강라온은 일부러 탑보이즈 뒤의 순서를 은우의 순서로 잡았다.
‘어차피 데뷔 무대는 실력을 알리는 것보단 얼굴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런데 은우가 예상치 못하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이었다.
‘길동의 말에 따르면 은우가 스스로 곡이 시작하기 전에 나레이션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는데.
고작 다섯 살짜리가 그런 판단을 했다는 게 놀라울 뿐이군.
그리고 무대 위에서 안무를 바꾼 것도 사람들에게 은우에 대한 인상을 강렬하게 했을 거야.’
강라온은 재롱이들 팬카페에 접속했다.
팬카페는 이미 열광 상태였다.
[봉태] : 어제 집에 와서 은우 노래 영상 너투브에서 계속 반복해서 봤어요. 여러 번 봐도 너무 좋아요.
[SeYeon] : 노래 시작하기 전에 은우 웃음소리 사이다 같아요. 들을 때마다 톡톡 터져. 정신이 확 들어요.
[거대고냥이] : 시작할 때 엉덩이 흔드는 안무 너무 귀여워서 누나 앞에서 했다가 등짝 아파서 죽을 뻔.
[pole] : 아니 고냥이님. 그걸 우리가 하면 큰일 나요. 잘못하면 변태 될지도.
[레아] : 전 집에 와서 은우가 입었던 파란색 추리닝 주문했어요. 너무 귀여워서.
[존우씨] : 그 추리닝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입으면 별로일걸요. 근데 생각해 보니까 팬클럽 단체복하면 되겠네요. 그럼 다른 팬클럽 사이에 섞여 있어도 찾기도 쉬울 거고.
[이성진] : 찾기는 쉬울 텐데. 뭔가 단체로 입고 있으면 우중충해 보일 거 같은데. 추리닝 입고도 귀여운 건 은우 얼굴 때문이라구요. 다들 아시죠?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 거.
[셉아] : 맞아요. 팬클럽 단체복으로 추리닝 입는 건 비추요. 전 파란색이 특히 안 어울려서요. 근데 춤추다가 추리닝 올려서 배 살짝 드러내는 장면 진짜 레전드 아닌가여? 전 너무 귀여워서 그걸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지코] : 아기들 배 너무 귀엽잖아요. 오동통한 배. 은우 배 보고 싶었는데 보고 말았어요. 저 그 장면 캡쳐해서 프린트했어요. 진짜 레전드임.
[에티우] : 아기 배는 치명적인 귀요미.
[프리샤] : 혹시 그 장면 직찍으로 찍으신 분 없나요? 찍으신 분 좀 파세요. 저 사고 싶어요.
[달덩이] : 저도요. 꼭 사고 싶어요.
강라온은 팬카페의 반응을 확인한 뒤에 연예 기사를 훑기 시작했다.
- 성공적인 데뷔 무대. 이은우. 가창력과 퍼포먼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다.
- 매력적인 목소리와 무대 연출력. 탑보이즈 보러 왔다가 은우의 매력에 푹 빠진 시청자들
- 제 2의 탑보이즈? 제 2의 마이클 잭슨? 전설의 탄생을 예고한 이은우.
‘팬 반응도 댓글 반응도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군. 음반 판매량만 오르면 딱일 텐데.’
강라온은 음반 판매량을 확인했다.
음반 발매 일주일째인 현재 음반 발매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었다.
‘탑보이즈에겐 못 미치지만 에잇틴의 판매량은 뛰어넘었군.’
에잇틴은 작년에 데뷔한 5인조 보이그룹으로 [당신의 소년]이라는 서바이벌 프로를 통해 데뷔하게 된 그룹이었다.
[당신의 소년]이라는 서바이벌 프로의 시청률이 낳은 화제성으로 인해 단숨에 스타덤으로 올라섰고, 결속력 있는 팬클럽 무지개가 든든하게 그들의 뒤를 받쳐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라온은 수박 어플을 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음악을 볼 수 있지.’
은우의 타이틀곡 [난 너무 귀여워]가 5위에 있었다.
‘어제 생방송의 효과인지 순위가 많이 상승했군. 일단 타이틀곡을 강하게 끌어올려서 1위를 만들어야 해. 그러려면 음악방송 스케줄을 늘려야 할 텐데. 은우 체력이 문제야. 은우가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까? 뽀뽀 댄스팀도 아직 어려서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긴 힘들 수도 있고.’
강라온은 생각이 많아졌다.
‘아기 스타는 확실히 성인에 비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아. 전처럼 아프면 안 되니까 잘 케어하면서 진행해야지. 길동이 말고 매니저를 하나 더 붙여야 하나.’
강라온은 고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었다.
‘일단 사람들의 눈길을 잡는 데는 성공했고 다음 생방송은 유정열의 크레파스네. 거기서도 은우가 잘 해줘야 할 텐데. 음악방송 1위 가자! 이걸 해내야 세계 무대에 도전할 수 있어.’
***
경완은 출근길에 새로 생긴 커피 전문점을 보았다.
마침 그곳에는 오픈 기념 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어져 있었다.
‘팀원들 커피나 사다 줄까?’
경완은 커피 전문점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꽃이 있네.’
커피 전문점은 꽃집도 겸하는 곳이어서 한쪽에는 예쁜 화분과 꽃다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꽃이 참 예쁘다.’
경완은 꽃들이 뿜어내는 상큼한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꽃을 보고 웃다니 전엔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아침에 출근할 때면 늘 그날 해야 할 업무와 보고들로 머릿속이 꽉 차 있던 경완이었다.
“주문하시겠어요?”
긴 치마에 가디건을 입은 긴 머리의 커피숍 주인이 경완에게 말을 걸었다.
“아메리카노 여섯 잔요.”
“샷은 투 샷이면 될까요?”
순간 경완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 아닌가? 샷이라니.’
그동안 사무실에서 믹스커피를 타 마시거나 팀원들이 사다주는 커피만 마시다 보니 커피 주문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많이 마시는 걸로 주시면 돼요.”
“그럼 투 샷일 거예요. 투 샷으로 해 드릴게요. 오픈 기념으로 비용추가 없이 샷 추가해 드리고 있거든요.”
위기를 모면한 경완은 옆에 있는 쿠키와 샌드위치를 보았다.
‘항상 보면 이런 걸 같이 먹던데.’
경완은 팀원들이 커피와 함께 사 오던 것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잔소리도 함께 기억났다.
‘그런 거 먹을 정신이 있으면 그 시간에 업무 하나라도 더 하라고 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되는 말이었다.
‘내가 너무 일일 했던 것 같아. 나랑 일하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 싫었을까?’
경완이 커피숍 주인에게 말했다.
“쿠키 세 봉지랑 샌드위치 두 개요.”
“네. 주문하신 거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건 오픈 기념 선물이에요.”
커피숍 주인은 봉지에 쿠키와 샌드위치를 담아주었다. 그리고 상자에 넣은 다육이 화분 하나를 주었다.
“화분은 안 주셔도 돼요. 죽일지도 몰라서요.”
“이건 정말 키우기 쉬운 화분이에요. 물 잘 안 주셔도 되구요. 걱정 말고 한 번 가져가 보세요. 책상 위에 놓으면 기분 전환이 될 거예요.”
경완은 두 손 가득 커피와 쿠키, 샌드위치, 다육 화분을 들고 사무실로 왔다.
고태리가 경완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부장님. 이게 다 뭐예요?”
“오다가 새로 문 연 가게가 있길래 사 왔어. 한 잔씩 들고 가서 마셔.”
아메리카노를 가져가려던 고태리는 옆에 있는 쿠키 봉지를 발견했다.
“이게 다 뭐예요? 부장님. 이거 다 부장님이 사셨어요?”
“응. 맛있어 보이길래.”
고태리는 옆에 있던 엄호준에게 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부장님. 너무 많이 변하셔서 놀라워.”
엄호준도 옆으로 와서 아메리카노를 들었다.
“부장님. 그럼 이 샌드위치는 제가 먹어도 되겠습니까?”
“먹으라고 산 건데 먹어.”
신주리도 커피 근처로 왔다.
“부장님. 근데 이건 웬 다육이예요? 이것도 사셨어요?”
“그건 서비스도 받은 건데 오픈 기념 선물이래. 주리 씨가 키울래? 뭘 키우는 건 영 자신이 없어서 말이야. 내가 키우다가 죽으면 어떻게 해?”
“부장님. 다육이 키우는 거 정말 쉬워요. 다육이는 관심을 안 주면 돼요. 물도 아주 가끔만 주면 돼요. 너무 자주 주면 죽는 식물이라서요.”
옆에서 엄호준이 웃으면서 말을 보탰다.
“부장님께 딱 맞는 식물이네요. 관심을 안 주면 잘 자란다니.”
고태리가 엄호준에게 소리 내지 않고 입만 벙긋거리며 말했다.
“미쳤어? 그러다가 한 소리 들으려고?”
엄호준도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또 바보같이 아무 말이나 하다가 부장님 기분 나빠지신 거 아닐까?’
경완이 말했다.
“그럼 한번 길러볼까?”
고태리가 대답했다.
“길러보세요. 부장님. 화분 기르면 기분 전환도 되고 좋아요. 저도 집에서 화분 기르는데 화분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말도 하거든요. 책에서 읽었는데 그러면 화분이 더 오래 살고 꽃도 많이 핀대요.”
김승태가 커피를 가지러 오면서 대화에 참여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식물이 귀라도 달렸다는 거야?”
“그건 모르지만, 그 책에 따르면 꽃이 피는 비율도 달라지고 잎도 훨씬 생기있어지더라고.”
신주리가 동의했다.
“왜 예전에 [물은 사랑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유행했었는데 그 책에서도 그런 내용이 있었어요. 물을 떠놓고 ‘사랑해’라고 말하면 물이 예쁜 결정을 만드는데 ‘미워해’라고 말하면 물이 까맣고 무서운 결정을 만들더라구요.”
김승태가 되물었다.
“정말 그렇단 말이야? 와 이제 식물한테도 말조심해야겠다.”
고태리가 말했다.
“당연하죠.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구요.”
이정우가 출근을 하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커피 냄새 좋다. 웬 커피예요? 태리 씨가 산 거야?”
“부장님이 사 오셨어요. 옆에 있는 쿠키랑 샌드위치도요.”
“잘 먹겠습니다. 부장님. 요새 얼굴도 훤해지시고 점점 더 멋있어지십니다요. 부장님. 참 그렇지 않아도 부장님께 좋은 소식 있는데.”
경완이 물었다.
“어떤 소식인가요?”
“퐁퐁이한테 인터뷰가 들어왔어요. 방송 나간 뒤로 퐁퐁이 인기가 치솟고 있나 봐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고요.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대변한다면서.
게다가 이번에 은우가 데뷔했잖아요. 시기적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했는지 들어왔어요. 하실래요? 부장님.”
모두의 시선이 경완에게로 향했다.
경완은 생각했다.
‘평범한 회사원인 나에게 인터뷰가 들어오다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인데.’
경완은 대학 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는 것 같은 마음에 설레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 퐁퐁이의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퐁퐁이의 정체가 탄로 난다면 시청자들이 지금처럼 즐거워할 수가 있을까?’
경완이 팀원들에게 물었다.
“인터뷰를 하면 퐁퐁이에 대한 신비감이 떨어질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엄호준이 동의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부장님. 부장님이 잘 숨기신다고 해도 네티즌들이 부장님에 대해 알아내려고 할 거예요.”
이정우가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네티즌들 무섭긴 하죠. 전에 뺑소니 사고 진범도 잡았잖아요. 그건 매우 좋은 일이었지만. 경찰보다 더 빠른 정보력을 자랑하는 게 우리나라 네티즌들이라고요.”
신주리도 말을 보탰다.
“맞아요. 무엇보다 비밀을 유지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조금 아쉽더라도 인터뷰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은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긴 하지만, 퐁퐁이도 조금씩 비중이 늘어가고 있으니까요.”
고태리도 동의했다.
“인터뷰는 위험한 생각 같아요. 근데 진실이 밝혀지면 다들 놀랄 것 같아요. 퐁퐁이를 연기한 사람이 연기자가 아니라 평범한 중소기업 회사의 부장이라는 게 밝혀지면 말이에요.”
이정우가 말했다.
“평범한 회사의 부장이면서 왕년의 대학 연극 스타셨지. 그래서 부장님이 지금도 그렇게 연기를 잘하시는 거라고.”
경완은 순간 마음이 뜨끔했다.
‘만약 나라는 게 알려진다면 내 대학 때 친구들이 나의 대학 생활에 대해 증언을 할지도 몰라. 그럼 내가 숨기고 싶었던 연극 동아리의 흑역사가 드러나게 되는 셈인데. 인터뷰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
***
경완은 퐁퐁이 탈을 쓰고 은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신기에서 정형욱 PD가 말했다.
“오늘은 은우와 함께 초등학교에 갈 거예요. 가기 전에 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사세요.”
은우가 초록색 추리닝을 입고 달려왔다.
“퐁퐁아. 잘 이떠더?”
“응, 은우야. 너 티비에 나온 거 봤어. 멋있더라.”
“헤헤헤. 거마어. 이제 티비에 더 마니 나오기로 해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오느른 머하고 놀꺄?”
“오늘은 초등학교에 놀러 갈 거야. 가기 전에 마트에 들러서 필요한 걸 사자.”
“우아. 초등하꾜? 신냔다.”
은우가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