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24화 (124/257)

124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2)

촬영이 끝난 뒤 경완은 퐁퐁이 탈을 벗었다.

‘이 탈을 썼다 벗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

퐁퐁이 탈은 경완으로 하여금 잊고 지냈던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어린 시절, 이십 대의 꿈과 희망, 추억. 그리고 배려와 따뜻함 같은 것들.

‘퐁퐁이 탈을 쓰고 있을 때가 좋은 건지, 아니면 벗고 있을 때가 좋은 건지 이젠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어.’

경완은 스마트폰을 꺼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오늘 오랜만에 같이 외식이나 할까? 갈매기살 어때?”

***

경완의 부인, 미선은 딸인 혜란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 딸, 아빠가 외식하자는데?

[하나뿐인 딸] : 웬일이래? 아빠가. 나 오늘 야자 있는데.

[엄마] : 야자 빼고 나와. 아빠가 외식하자는 거 처음 있는 일이잖아.

[하나뿐인 딸] : 오늘 할 거 다 못했는데. 엄마랑 둘이 하면 안 돼요? 오붓하게. 오랜만에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엄마] : 데이트? 이제 기억도 안 난다. 아빠랑 둘이 있는 거 더 어색하니까. 같이 가자. 알았지?

[하나뿐인 딸] : 알았어요.

미선은 아들인 병주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 아들, 아빠가 외식하자는데?

[울아들] : 메뉴 뭐예요?

[엄마] : 갈매기살.

[울아들] : 아싸. 남의 살은 다 맛있지. 빨리 갈게요.

경완은 연남동의 한 고깃집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연탄불을 넣어주며 말했다.

“몇 명이세요?”

“네 명이요. 곧 가족들이 올 거예요.”

“외식하는구나. 그럼 주문은 이따가 할까요?”

“네.”

가족들과 함께하는 외식이 얼마 만인지 경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애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종종 했던 거 같은데. 중학생이 되고 난 후부터는 서로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어졌구나. 애들도 밤늦게까지 공부하랴 학원 다니랴, 주말에도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으니.’

경완의 회사 도마뱀 미디어가 실적 부진을 겪는 동안 경완은 회사에만 매달렸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도 학교에만 매달렸다. 아내는 학원 입시 설명회다 학부모 모임이다, 따라다니며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그러다 금방 결혼한다고 하겠지? 지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것만 같아.’

고깃집의 문이 열리고 아내와 딸, 아들이 들어왔다.

“아빠.”

경완이 말했다.

“오느라 수고했어. 공부하느라 힘들었겠다. 뭐 먹을래?”

병주가 말했다.

“아빠 오늘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왜 그런 말 하세요? 전엔 그런 말 안 하시더니. 여기 가장 맛있는 메뉴가 뭐예요?”

“갈매기살.”

“그럼 갈매기살 5인분이요.”

경완이 점원을 불러 주문했다.

“갈매기살 오 인분이요.”

미선은 마음이 복잡했다.

‘평소와 다르네.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요즘 경기가 나빠서 정리해고도 많이 된다던데 혹시 정리해고나 명예퇴직 같은 일이 생긴 건가? 불안하게.’

혜란이 뽀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아빤 늘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구선. 오늘 아빠 땜에 야자도 그만하고 나왔다고.”

“미안해. 딸. 아빠가 딸이 보고 싶어서?”

“아빠, 오늘 어디 아파? 안 하던 말을 하고 그래?”

경완은 용기 내서 한 말에 대한 딸의 반응이 서운했다.

‘어렸을 땐 아빠를 제일 좋아하던 우리 딸이. 어느새 커서 저렇게 자기 일이 더 중요하게 됐구나. 하긴 나도 그동안 회사만 생각하고 지냈으니 아이들이 저러는 게 무리는 아니겠지?’

혜란이 경완의 달라진 표정에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니, 난 그게 아니고. 아빠도 회사 일로 바쁠 거 같은데 갑자기 나오라고 해서 말이지. 고기 잘 먹을게요. 아빠.”

병주가 고기를 불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빠.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고 살아요. 그동안 아빤 너무 인간미가 없었어요. 우리도 다른 집처럼 캠핑도 다니고 해요. 요새 캠핑이 유행인데?”

혜란이 병주의 말에 반기를 들었다.

“아니, 고 3이 캠핑은 무슨 캠핑이야?”

“고 3도 할 건 해야지. 인생이란 게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아.”

“그러니까 공부를 해야지. 대학은 돌릴 수 없다고.”

“세상엔 대학보다 중요한 것들도 많아.”

경완은 어느새 자라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는 아이들을 보며 고기를 구웠다.

구운 고기를 혜란과 병주의 앞에 놓아주었다.

“고기 익었어. 어서 많이 먹어.”

***

어린이집 창가에 가지런히 놓인 캣닢에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은우, 준수, 지우, 지호, 혜린, 연아.

은우는 어린이집 창가에 심어져 있는 캣닢에게 물을 주는 중이었다.

“마니 머꼬 마니 커랴.”

연아도 캣닢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

“이쁘게 자랴랴.”

노랑이는 은우의 다리에 몸을 비비며 갸르릉거렸다.

“야옹.”

“노량아, 마디게찌? 수녀니미 고양이드른 캐니플 조아한대.”

“야옹.”

“그러타고. 아라쪄.”

은우가 노랑이의 엉덩이를 살살 쳐 주었다.

노랑이는 기분이 좋아서 갸르릉거렸다.

“헤헤헤헤헤.”

은우는 웃더니 조금 자라난 캣닢을 잘라서 노랑이에게 주었다.

노랑이는 기분이 좋은지 캣닢에 몸을 부비며 배를 보이고 뒤집어진 채로 골골송을 불렀다.

“노량이 신나따.”

노랑이 주변으로 아기들이 몰려들었다.

“노량이 좀 뱌.”

“노량이 졸려?”

지호가 아기들에게 말했다.

“내가 노량이야.”

지호가 누워서 노랑이 흉내를 냈다.

배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뒤집어진 채로 울었다.

“그르릉. 그릉. 그릉.”

노랑이가 지호에게 꾹꾹이를 해 주었다.

은우가 까망이에게도 캣닢을 주었다.

“까망아. 너도 해 봐.”

까망이는 캣닢을 몸에 비비더니 골골송을 불렀다.

“그르릉. 그릉. 그릉.”

은우가 열 손가락으로 두 눈을 가렸다가 펴는 까꿍을 했다.

“까망아. 까꿍.”

까망이는 은우의 동작을 따라 했다.

네 발가락을 모두 쫙 폈다.

옆에 있던 혜린이가 소리를 질렀다.

“와아. 까망이. 까꿍해떠. 은우야 다시 해 봐.”

“까꿍.”

은우가 다시 열 손가락으로 두 눈을 가렸다가 폈다.

“그르릉. 그릉. 그릉.”

까망이는 골골송을 부르며 은우의 동작을 따라 했다.

“까망이 천재.”

아기들이 까망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연아가 까망이에게 까꿍을 했다.

“까꿍.”

까망이가 다시 까꿍을 했다.

“냐도 댄다.”

연아가 팔짝팔짝 뛰며 웃었다.

“냐두. 냐두.”

혜린이도 까망이에게 까꿍을 했다.

“까꿍.”

까망이는 골골송을 부르고 있었지만 까꿍을 하지 않았다.

“왜 나랑은 안 해. 똑땅해. 똑땅해.”

혜린이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거 같은 눈으로 말했다.

은우는 혜린이를 보며 생각했다.

‘아마 저 캣닢 때문인 것 같은데.’

은우가 혜린이 몰래 까망이에게 캣닢을 더 주었다.

은우가 혜린이에게 말했다.

“혜리니 눈나. 다시 해뱌.”

“냐만 안 대. 또 안 대면?”

“갠챠늘 거야. 해 뱌.”

혜린이가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열 손가락으로 두 눈을 가렸다가 펼치며 외쳤다.

“까꿍.”

까망이가 열여덟 개의 발가락을 쫙 폈다.

혜린이가 밝게 웃었다.

“냐도 댄다. 댄다. 까꿍.”

까망이가 다시 열여덟 개의 발가락을 쫙 폈다.

***

충무공 고등학교 3학년 오지혜는 오랜만에 야자를 하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 은우 앨범 예약한 거 도착하는 날이니까 최대한 빨리 가야 해.’

오지혜는 집까지 날아서 도착했다.

“엄마. 엄마. 내 앨범 어딨어?”

집에 오자마자 야단법석을 떠는 오지혜를 보고 엄마가 말했다.

“책상 위에 뒀어.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딸 키워봤자 소용없다니까.”

“엄마, 미안. 사랑해.”

오지혜는 엄마에게 애교 섞인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두근거려. 첫 앨범이라니.’

오지혜는 은우가 만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라는 곡을 듣고 난 후 은우가 더 좋아졌다.

‘예전에도 귀엽고 순수한 모습 때문에 은우가 좋았지만, 그 곡을 듣고 나서부터는 가족처럼 더 특별하게 느껴져. 나의 아픔에 공감해 줄 것 같은 그런 사람. 스타가 아니라 내 친구 같은 그런 느낌이야.’

오지혜는 택배를 뜯었다.

양장본처럼 생긴 흰 상자에 Born to be cute.(태어날 때부터 귀여웠다.)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너무 고급스럽다. 은우에게 어울리네. 첫 번째 앨범 제목.’

상자를 여니 8장의 포토카드가 들어있었다.

포토카드 안에는 비눗방울을 불면서 웃는 은우.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면서 사랑해요를 외치는 은우.

의사 가운을 입고 의사 놀이를 하는 은우.

연습실에서 춤을 추고 있는 은우.

호랑이 옷을 입고 어흥 흉내를 내는 은우.

스탠딩 마이크를 쥐고 열창을 하는 은우.

거울 앞에서 머리에 젤을 바르는 시크한 모습의 은우.

가정용 아기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물에 잠긴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은우.

‘8장 다 너무 예쁘다. 역시 갓은우야.’

오지혜는 외장형 플레이어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은우야 내가 이 CD를 들으려고 외장형 플레이어를 샀다니까. 음원은 멜론으로 들을 테지만 CD를 소장해야 너의 진정한 팬이지. 그리고 이걸 사야 팬싸인회에 갈 수도 있으니까.’

은우의 음반은 랜덤 이벤트로 CD를 구매한 팬들에 한하여 팬싸인회 초청권을 주고 있었다.

‘재롱이들 팬카페에 보니 팬싸인회에 가고 싶어서 100장을 산 사람도 있던데. 난 주머니가 가벼워서 한 장밖에 못 샀지만. 그래도 은우야 널 향한 내 마음은 절대 작지 않단다.’

오지혜의 작은 방에 은우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듣고 인나요? 그대.

우서 보아요? 그대.

지친 하루의 끝. 내가 그대의 위로가 대 줄게요.

헤헤헤헤헤.(은우의 웃음소리)

은우 엄따.

은우 엄따.

은우 요기찌.

이제 시작하까요?”

오지혜는 생각지도 못한 앨범의 시작에 웃음을 짓고 말았다.

‘은우 정말 귀여워.’

오지혜는 은우의 음반을 들으며 메이킹북을 살펴보았다.

메이킹북 안에는 은우가 의자 위에 선 채로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진.

마음에 안 드는지 고민하는 표정.

다시 노래를 녹음하는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 옆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노역’이라고 쓰여 있었다.

‘은우가 쓴 건가 보네. 너무 귀여워. 은우 많이 노력했구나.’

메이킹북에는 은우가 가사를 쓰면서 고민했던 가사 메모도 들어있었다.

‘이건 뭐지? 강아지 그림 옆에 하트가 잔뜩 그려져 있고 공룡이 그려져 있네.

은우는 이런 식으로 가사를 고민하는구나.

너무 귀여워.’

오지혜는 앨범 수록곡을 살펴보다가 수록곡 중 [나의 강아지에게]라는 곡을 발견하였다.

‘아, 이 곡인가 보다. 그래서 강아지 그림을 그렸구나. 은우 강아지 보리는 나도 너투브에서 봤는데.’

오지혜는 [나의 강아지에게]를 재생하였다.

‘할 일이 없는 토요일 오후가 생각나게 하는 그런 음악이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하모니카 소리에 오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어지는 은우의 음성.

“내 칭규 보이. 새까먄 코가 너무 기여어.

부드러운 꼬리로 냐를 반기면 냐는 세상에서 갸장 행복햔 샤람.

너능 냐의 초콜릿

너능 냐의 마카롱

너능 냐의 공룡변신로봇

세상에서 갸장 조은 너.”

오지혜는 한가로운 공원에 누워 강아지와 공놀이를 하는 상상을 했다.

강아지가 자신의 볼을 핥아주고 자신이 막 웃음을 터트리는 그런 상상.

‘이 노래를 들으면 너무 행복해지는걸. 나도 강아지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을 고르면서 오지혜는 생각했다.

‘공부만 한다고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은우 앨범을 들으니까 스트레스가 전부 사라지는 것 같아. 너무 좋다. 두 번째 곡으로는 그래도 타이틀곡을 틀어봐야겠지.’

오지혜가 ‘난 너무 귀여워’를 틀었다.

“거리를 냐셔면 날 보는 시션들.

누냐, 횬아, 할뷰지, 할모니

내갸 그러케 기여운가여.”

오지혜는 노래를 들으며 동의했다.

‘그래, 은우야. 너 참 귀여워. 지나가다 쳐다볼 정도로. 귀여워서 좋겠다. 너무 부러워. 나도 귀여워 봤으면.’

오지혜는 평소 차가워 보이는 인상 탓에 얼음공주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인상이 차가운 게 얼마나 스트레스라고.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사람들이 화난 줄 알고 말이지. 난 화나지 않았어.’

은우의 노래는 계속되었다.

“난 너무 기여워. 난 너무 사랑스러어.

여러분도 너무 기여어. 여러분도 너무 사랑스러어.

우린 모두 소중해.”

“세샹은 내게 안 된다고 마해떠

(너는 미혼뷰의 아이야.)

세상은 내게 포기하랴고 마해떠

(너는 엄마가 엄떠.)”

오지혜는 은우의 노래를 들으며 은우의 인생이 스쳐 갔다.

‘은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은우야 넌 정말 대단해. 그 시간들을 이겨온 거. 그리고 네가 행복해져서 정말 다행이야. 랩 부분 되게 감동적이다. 내가 그동안 들어왔던 랩과는 조금 다르지만. 은우의 마음이 느껴져서 더 좋은 것 같아. 은우야, 누나도 네 음반으로 힐링하면서 공부 열심히 할게. 그래서 꼭 꿈을 이룰게. 꼭 성공한 덕후가 되고 말겠어.’

오지혜는 음반 구매 후기를 공유하러 재롱이들 팬카페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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