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23화 (123/257)

123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1)

혜린이는 아기들을 모아놓고 신이 났다.

“자 여기 줄 셔. 혜리니갸 이쁘게 해줄게.”

“악, 혜린이 눈나다.”

눈치 빠른 시우는 도망을 갔다.

혜린이는 지호와 준수, 은우를 살펴보더니 은우의 옆에 앉았다.

“은우야. 이쁘게 해줄게.”

혜린이는 은우의 짧은 머리를 빗더니 작은 손으로 움켜쥐고 끈으로 묶었다.

“아파.”

은우는 머리가 당겨서 죽을 지경이었다.

‘이래서 시우가 도망간 거구나. 나도 도망갈걸.’

은우는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혜린이는 은우의 짧은 머리를 묶더니 흡족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은우. 이뻐. 쟈. 다음.”

혜린이는 지호의 머리를 묶어 주고 있었다.

“아퍄.”

지호도 반응은 은우와 똑같았다.

머리를 묶은 은우 앞에 연아가 어린이용 매니큐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은우야. 이뻐. 이뻐.”

연아는 밝게 웃더니 은우의 손톱에 색깔을 칠해주었다.

“아휴. 냄시.”

은우는 매니큐어 냄새에 코를 막았다.

“이뻐. 이뻐.”

연아가 괜찮다는 듯이 은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느새 은우의 손톱 위에는 서로 다른 열 가지의 색깔이 수놓아져 있었다.

‘내 손톱이 이렇게 되다니. 대체 이게 뭐야?’

머리를 묶은 지호도 똑같이 연아에게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었다.

머리를 다 묶은 혜린이는 심심한지 노랑이에게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노랑이가 울었다.

“야옹.”

혜린이는 노랑이를 바라보더니 연아의 매니큐어 세트를 가져가서 노랑이의 발톱에 칠하기 시작했다.

“이뻐. 이뻐.”

노랑이의 발톱에도 서로 다른 열 가지의 색깔이 수놓아졌다.

연아는 매니큐어를 칠한 노랑이에게 베이지색 목도리를 둘렀다.

“이뻐. 이뻐.”

혜린이가 외쳤다.

“노랑이 공듀님.”

그때 옆에서 까망이가 울었다.

“야옹.”

혜린이는 까망이의 발톱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까만색엔 빨간색이 어울려.’

혜린이는 칠해진 까망이의 발톱을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연아가 까망이에게 하얀색 목도리를 둘렀다.

“까망이 왕자님.”

혜린이가 까망이를 보며 박수를 쳤다.

김마리아 수녀님은 잠시 이태석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가 벌어진 사태에 말문을 잇지 못했다.

‘노랑이랑 까망이에게 매니큐어를 칠하다니.’

김마리아 수녀님이 말했다.

“노랑아, 까망아.”

노랑이와 까망이는 김마리아 수녀님의 양다리에 붙어서 갸르릉거렸다.

김마리아 수녀님은 혜린이와 연아에게 타이르기 시작했다.

“혜린아. 연아야. 노랑이, 까망이한테 이러면 안 돼. 노랑이, 까망이는 인형이 아니야.”

혜린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김마리아 수녀님을 보았다.

“이뻐요.”

“이뻐도 안 돼. 노랑이랑 까망이가 스트레스받고 있을지도 몰라. 혜린이 당근 싫어하지?”

혜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혜린이에게 매일 당근만 주는 거랑 비슷할지도 몰라. 오늘 노랑이랑 까망이가 느낀 감정은?”

“정마리요?”

혜린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연아도 놀랐다는 듯 수녀님에게 말했다.

“노랑이 까망이가 슬퍼요?”

“많이 슬펐을 거야.”

연아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노랑아, 까망아. 미아내.”

연아가 훌쩍이자 노랑이가 연아의 옆에 붙어서 갸르릉거렸다.

연아의 눈물이 떨어지자 노랑이가 연아의 무릎에 앉더니 꾹꾹이를 하기 시작했다.

“아, 간지러. 노랑아.”

노랑이의 꾹꾹이에 연아가 다시 웃었다.

김마리아 수녀님은 생각했다.

‘아기들의 지나친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노랑이, 까망이를 잘 살펴보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노랑이, 까망이는 아기들을 사랑하는 것 같아. 마치 나보고 연아랑 혜린이 혼내지 말라고 괜찮다고 하는 것 같네.’

김마리아 수녀님은 아기들과 노랑이, 까망이의 우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

경완은 퐁퐁이 탈을 쓰고 촬영을 준비 중이었다.

수신기에서 정형욱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우 도착하면 바로 촬영 시작합니다. 오늘의 촬영 장소는 전통시장이에요. 오늘의 미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사진 찍기입니다. 은우와 퐁퐁이에게 모두 카메라가 주어집니다.”

촬영팀 중 한 명이 경완에게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주었다.

‘이게 언제적 쓰던 필름 카메라야. 와, 이걸 어디서 구했데?’

유물처럼 보이는 필름 카메라에 경완은 놀랐다.

‘근데 이건 현상하기 전까진 내가 뭘 찍었는지 볼 수가 없잖아. 스마트폰이 얼마나 편한데. 아니면 dslr을 주든지.’

경완은 짜증이 났다.

‘근데 사진 찍어본 지도 백만 년이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어딨어? 세상에.’

오늘 촬영은 어떻게 성공시켜야 할까 머리가 아파오는 경완이었다.

은우가 도착했다.

은우는 퐁퐁이를 발견하고 멀리서부터 달려왔다.

“퐁퐁아.”

은우가 퐁퐁이의 다리에 안겼다.

“은우야. 반가워.”

“잘 지내떠. 퐁퐁아. 보고 시퍼떠.”

“응. 잘 지냈어. 오늘은 여기 전통 시장에서 사진 찍기 놀이를 할 거야. 여기 네 카메라.”

경완이 은우에게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주면서 작동법을 알려주었다.

“여기 이걸 누르기만 하면 돼.”

“와아. 신기하댜.”

은우는 처음 보는 필름카메라가 신기한지 카메라의 렌즈에 눈을 자꾸 대 보았다.

“쟝난걈가탸. 이거 징쨔야?”

“응, 진짜야. 필름이 48장뿐이라서. 딱 48번만 찍을 수 있어.”

“내 키즈폰은 계속 찌글 수 인는데.”

“이건 아주 오래된 카메라야.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있었던 거지.”

경완은 기억 속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불러왔다.

그것은 온 가족이 모여서 찍었던 한 장의 가족사진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관에 가곤 했었지.’

짧은 파마를 한 엄마, 양복을 입은 아빠, 반바지를 입고 멜빵을 한 경완, 원피스 위에 조끼를 입은 경완의 여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함께 서 있었다.

사진사는 가족들 앞에서 외쳤다.

“여기 보세요. 김치.”

가족들은 모두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자, 다시 좀 자연스럽게 웃어보세요. 김치.”

가족들은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웃었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빠져도 김이 없으면 못 먹어. 맛없으면 바나나.”

사진사는 가족들을 웃기려고 그 당시 유행하던 코믹송을 불렀다.

“헤헤헤헤헤.”

막내인 여동생만이 조금 웃었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근엄한 표정과 엄마의 놀란 토끼 눈, 경완의 뽀로통한 입술은 달라지지 않은 채 사진에 찍히고 말았다.

‘지금 그 사진은 어디에 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느덧 잊고 살았던 사진이었다.

경완은 문득 집에 가서 가족사진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은우가 시장에 나타나자 시장 상인들이 은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저 아기 은우 아니야? 그쳐? 은우 같은데.”

“내일도 사랑해.”

“이번에 아카데미에서도 상 받았잖아요. 남우조연상.”

“대통령도 만나고.”

“그쵸. 대단한 아기야. 대단한 아기. 은우야.”

과일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가 은우를 불렀다.

“네네네네네.”

은우는 웃으면서 아주머니에게 갔다.

“이거 먹어.”

아주머니가 은우에게 딸기 한 팩을 넣어주었다.

“아기 엄마들이 와서 주로 딸기를 많이 사가더라구. 아기들이 딸기를 좋아하는 거 같아서. 은우도 좋아해?”

“네네네네네.”

“아이구. 이뻐.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해.”

아주머니는 은우가 예쁜지 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샤진 한 쟝만 찌거두 대요?”

“그러엄. 얼마든지 찍자. 내가 영광이지.”

옆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가 말했다.

“어서 둘이 포즈 잡아 봐. 내가 찍어줄게.”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은우를 안고 밝게 웃었다.

은우는 아주머니가 주신 까만 봉지에 든 딸기 한 상자를 안고 웃었다.

“꼬마김뺩. 치즈. 김치.”

“김치.”

채소 장사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고 나서 말했다.

“사진 아주 잘 나왔다. 근데 이거 필름 카메라네. 요즘 세상에 필름 카메라라니. 사진이 잘 나왔는지 알 수가 없잖아.”

은우가 웃으며 말했다.

“미셔니예요. 헤헤헤. 감사함니댜.”

은우가 배꼽 인사를 했다.

경완은 은우의 사진을 보면서 초조해졌다.

‘은우는 벌써 한 장을 찍었는데 난 뭘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 은우한테는 저렇게 사람들이 말도 잘 시키는데 나는 알바생인 줄 아니.’

경완은 상인분께 말 좀 붙여보려다가 매몰찬 거절을 당한 직후였다.

“전단지는 안 줘도 돼요.”

경완은 할 말이 없었다.

‘오늘은 이 인형 탈이 안 좋은 점이 많구나. 목도 마르고.’

경완은 지금이라도 탈을 벗고 싶었다.

그때 경완의 눈에 시장에서 폐지를 줍고 있는 할머니가 들어왔다.

경완은 할머니를 도와 폐지를 날랐다.

“고마워요.”

“괜찮습니다. 할머님.”

경완은 폐지를 나른 후 장갑을 끼고 있는 할머니의 손을 사진으로 찍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은우는 시장의 골목 중앙 호떡집 앞에서 머뭇거렸다.

‘호떡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네. 왜 돈을 안 가져왔지.’

호떡을 사러 온 여자가 호떡을 주문했다.

“호떡 오천 원어치만 주세요.”

“여깄어요.”

호떡 주인이 호떡을 담아주었다.

여자는 호떡을 가지고 지나가려다 은우와 눈이 마주쳤다.

“왜 혼자 이러고 있어? 이러다 길 잃어버리면 큰일 나. 혼자 왔어?”

“퐁퐁이랑.”

“퐁퐁이가 누구야?”

“내 칭구요. 아 저기따.”

은우가 손으로 퐁퐁이를 가리켰다.

여자는 은우의 손을 잡고 은우를 퐁퐁이에게 데려다주었다.

“집 잃어버리지 말고 잘 가야 해. 알았지?”

여자는 헤어지면서 은우와 퐁퐁이의 손에 호떡을 쥐여주었다.

“걈샤함니댜.”

은우는 여자에게 인사했다.

“퐁퐁아. 어디 가떠써. 걱정해쨔냐.”

은우가 퐁퐁이를 안아주었다.

“미안해. 은우야. 할머니를 도와드리다가 그만.”

“이제 꼭 가치 다니쟈.”

은우가 퐁퐁이의 손을 잡았다.

“골라. 골라. 이쁜 신발이 만 원. 편안한 신발이 만 원. 오세요. 오세요. 골라잡아. 만 원.”

신발가게에서 신발은 파는 아저씨의 소리가 들렸다.

은우는 신발가게 아저씨가 재밌어 보였다.

‘와 재밌는 말이네. 나도 해 봐야지.’

은우는 아저씨 옆에 서서 손뼉을 치며 말했다.

“골랴. 골랴. 이쁜 신뱔리. 만 언. 골랴쟈뱌. 만 언. 어서 옵쇼. 만 언.”

은우의 앳된 음성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길을 멈췄다.

“어디서 아기가 물건을 파나 봐.”

“가서 사 줄까?”

“맙소사. 저거 은우 아냐?”

사람이 없던 신발가게가 갑자기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경완은 생각했다.

‘나도 은우 친구니까 은우랑 함께 하는 게 좋겠지.’

경완도 옆에 서서 함께 외쳤다.

“골라. 골라. 둘이 신다가 하나도 없어져도 모르는 이쁜 신발이 만 원. 최신 유행의 이쁜 신발이 만 원.”

신발을 고르던 사람들이 경완을 보고 말했다.

“여기 행사 중인가 봐. 행사용 직원인가 봐. 인형 탈을 썼어.”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네에. 만 원입니다.”

경완은 자신도 모르게 아저씨라는 말에 대답을 하고 말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은우가 말했다.

“눈나. 아저씨 아니에요. 제 칭구 퐁퐁이라구요.”

“미안해. 몰랐어. 미안해. 퐁퐁아.”

경완은 은우의 말에 울컥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걸. 퐁퐁이를 생각하는 은우의 이 순수한 마음. 고마워. 은우야. 난 널 만나지 못했더라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많이 놓치고 살았을 것 같아.’

은우와 퐁퐁이가 함께 하자 순식간에 신발 30켤레가 다 팔렸다.

신발가게 아저씨가 말했다.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장사가 통 안돼서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도와줘서 고마워요.”

은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힘내떼요. 아저씨.”

“은우가 도와주니 힘이 나네. 우리 같은 전통 시장은 젊은 사람들이 안 찾아줘서 힘들어. 은우처럼 유명한 사람들이 시장에도 오고 그래야 하는데.”

“매일 올게요.”

은우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쩜 마음씨가 이렇게 비단결 같아. 말만이라도 고마워. 맘에 드는 신발 있으면 한 켤레 골라봐. 내가 선물로 줄게. 아기들 신발도 많은데.”

은우는 어렸을 때 신었던 빛이 나는 신발이 생각났다.

‘혹시 여기에도 있을까?’

은우는 공룡 변신 로봇이 그려진 빛이 나는 신발을 찾아냈다.

“이거 내갸 아주 어려쓸 때 신던 신뱌리래요. 애기때요.”

“지금도 애기인데.”

“더 더 더 애기 때요.”

“이걸로 가져갈 거야?”

“네네네네네.”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발가게 아저씨가 은우에게 신발을 신겨주며 말했다.

“그럼 은우에게 뽀뽀 한 번 받아도 될까?”

“네네네네네.”

은우가 신발가게 아저씨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경완은 필름 카메라로 은우의 신발을 찍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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