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아기 무용단 (2)
경완은 출근을 하면서 지하철에서 포털 사이트의 기사를 확인 중이었다.
- 은우 티비, 귀여운 힐링 채널로 신고식.
- 은우와 퐁퐁이의 만남. 젊은 층에게는 은우의 귀여움을, 중장년층에게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경완은 두 번째 기사를 클릭했다.
어제저녁 8시 은우 티비가 첫 신고식을 치렀다. 첫 번째 방송은 은우와 퐁퐁이의 홍대 홍보영상으로 기획됐다. 은우는 홍대에서 팬들을 만나 포스트잇을 빨리 떼는 시합을 하기도 하고 랩 대결을 하기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은우는 포스트잇을 빨리 떼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귀여움이 폭발하기도 했다. 랩 대결에서는 은우의 숨겨진 랩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은우 티비는 매주 수요일 8시 초록창에 단독 컨텐츠로 업로드된다.
경완은 기사를 읽으며 왠지 모를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은우 귀여운 거야 세상이 다 아는 거고, 음반 내니까 랩도 당연히 잘하겠지. 퐁퐁이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없네.’
경완은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mirin : 은우 포스트잇 뗄 때 표정 진짜 웃겨 죽는 줄. 그 귀여운 얼굴을 그렇게 막 쓰다니. 은우야 그럴 거면 그 얼굴 나 줘.
- 쭈녀구 : 저게 티비였으면 어제 시청률 팍팍 올라갔을 텐데. 초록창에 올라가는 컨텐츠라 시청률은 안 잡히고 조회 수만 나오나 봐요. 조회 수라도 올리게 이따 또 봐야지.
- 찐지버거 : 근데 그 퐁퐁이 너무 귀엽지 않아요? 은우 상상 속의 친구라던데.
- 스페로라 : 인터뷰할 때 마지막에 그 말 너무 짠했어요. 은우가 어른이 돼서도 자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말 말이에요.
- 에티우 : 저도요. 우리 누구나 그런 상상 속의 친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경완은 댓글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내 연기가 생각보다 훌륭했나? 적어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저런 감동을 주다니.’
경완이 사무실에 도착하자 제작총괄본부 직원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이정우가 경완의 책상 앞에 화분을 놓으며 말했다.
“데뷔 축하드립니다. 부장님. 연기가 너무 훌륭하시더라구요. 역시 대학 때 이름을 날리던 연극동호회다우십니다.”
신주리도 칭찬의 말을 이었다.
“전 부장님이 인형인 줄 알았어요. 인형 탈을 쓰셨는데도 행동도 자연스럽고 말도 너무 잘하고. 그리고 들으니까 대본이랑 다른 부분이 많았다던데.”
경완이 흥분해서 말했다.
“은우 반응이 다르니까 당연히 대본이 안 먹히지. 난 처음에 대본대로 될 줄 알고 대본을 얼마나 외우고 갔다고. 근데 가 보니까 애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거랑 달라. 처음에 나한테 목소리가 왜 그렇냐고 묻는데 진짜 등에서 식은땀 나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이정우가 말했다.
“정말 힘드셨겠네요. 근데 보는 저희는 부장님이 당황하신 줄 몰랐어요. 전혀 안 느껴지던데.”
“당황한 티를 낼 수가 없잖아. 은우가 알면 어떻게 해? 은우는 나를 퐁퐁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말야. 그래서 당황했지만, 천천히 생각을 가다듬고 정리하면서 말했지. 그랬더니 큰 탈 없이 촬영이 잘 끝났어.”
김승태가 박수를 쳤다.
“정말 대단하세요. 부장님. 반응이 아주 좋은가 봐요. 이번에 대박작 좀 터졌으면 좋겠어요.”
이정우가 경완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부장님, 힘내셔서 우리 예전의 영광을 재현해 봐요. 예전에 우리 회사 잘 나갔었잖아요. 그땐 스튜디오 몬스터는 우리의 상대가 못 되었는데.”
“그래. 나도 다시 로우킥 시리즈 같은 우리 회사의 이름을 드날릴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그땐 진짜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다 로우킥 시리즈 얘기였는데 말이에요.”
김승태도 동의했다.
“캐릭터 자체가 너무 짱짱했었잖아요. 진짜 역대급이었었는데.”
신주리도 거들었다.
“배우들이 연기도 너무 잘하구요. 전 거기서 나모니 할머님 뵐 때마다 우리 엄마 생각나서 혼났어요. 짠해서.”
김승태가 어디가 가려운 것 같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그 고등학교 선생님? 아, 이제 배우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신주리가 말했다.
“신하선 씨요?”
김승태가 기뻐하며 말했다.
“표정 연기 압권이었는데. 저 그때 매일 프사로 그거 썼었거든요. 제 감정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았어요. 저도 폭발하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실제 성격은 폭발을 못 해서요.”
이정우가 말했다.
“그래, 그런 명작. 누구나 기억하고 함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그런 명작. 하나만 만들어 봅시다. 다시.”
세 사람이 모두 경완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장님만 믿어요.”
“부장님만 믿습니다.”
경완은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우리 부서의 미래가 내 손에 달려있어. 은우 티비가 성공하면 우리 부서는 정리되지 않아도 돼. 이 한 몸 불살라 은우 티비를 살리겠어.’
자리로 돌아온 경완은 조용히 아기 너투브를 켰다.
‘아기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배워야겠어. 지난번처럼 은우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하면 곤란하니까 말이지. 그리고 촬영팀에 연락해서 퐁퐁이 의상을 입고 따로 연습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
뽀뽀 댄스팀 단장 옥이가 아기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우리가 티비에 나가게 됐다.”
예은이가 말했다.
“떤생님. 우리 티비 맨날 나가쟈냐요. 뽀뽀 유치언도 나가고 뽀뽀 동화나랴도 나가교.”
“그렇지. 예은아. 선생님이 말을 잘못한 거 같구나. 너무 긴장해서 그만. 우리가 티비에 나가는데 아기들 보는 그런 티비 말고 어른들도 보는 그런 티비에 나갈 거 같아. 그것도 가요프로에.”
채원이가 말했다.
“떤생님. 우리가 가요 프로에 나갸요? 내가 조야하는 놀이공언 언니들처럼. 이쁜 옷 입꼬? 이쁘게 나아요?”
지유도 신이 나서 말했다.
“와, 그러면 제가 조아하는 정동훈 오뺘도 볼 뚜 이떠요?”
옥이는 고민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트로트의 제왕은 잘 모르겠는데. 정동훈도 음반을 내려나?”
지유는 금세 풀이 죽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동훈 오뺘. 히이잉.”
채원이가 지유를 달랬다.
“갠챠나. 지유야. 지유는 냐중에 유명한 갸수가 될 거쟈냐. 그러면 정동훈 오뺘 만날 뚜 이떠.”
지유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꺄?”
“응, 그러니꺄. 울지 마.”
“거마여. 채언아.”
옥이가 말했다.
“은우가 음반을 낸다는데 우리가 거기 댄스팀으로 올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어.”
옥이의 말을 듣고 아기들이 몰려들었다.
“와, 이은우요?”
“두 유 어너 메이크 어 뜨노우 볼~”
“대통령 할뷰지도 만나떠쟈냐.”
“은우 너무 머시쪄.”
“와, 와. 우리가 은우랑 가치 춤 처요?”
아기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옥이가 말했다.
“좋아하긴 아직 일러. 안무를 외워야 하니까 말이지. 지금까지 우리가 추던 안무보다 어려운 안무야. 동작이 조금 더 빠르더라구. 아무래도 동요가 아니라 가요라서 그런 거 같아.”
지유가 작은 주먹을 꼬옥 쥐며 말했다.
“할 뚜 이떠요.”
채원이도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마쟈요.”
옥이가 말했다.
“그래, 우린 할 수 있을 거야. 우선 연습부터 시작하자.”
***
옥이는 뽀뽀 댄스팀을 이끌고 HO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들어섰다.
채원이는 지유에게 속삭였다.
“우와. 여기가 그 놀이공언이랑 릴리즈 언니드리 인는 회사야?”
“응. 그치. 미래에 내 회사이기도 햐고.”
채원이는 지유의 말에 큰 감명을 받은 것처럼 쳐다보았다.
“역시 내 칭규야.”
예은이는 은우는 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은우랑 같이 춤을 출 수 있다니 너무 신난다.’
옥이는 이철의 연습실로 들어갔다.
이철이 옥이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기들이 참 귀엽네요.”
“잘 부탁드려요. 저희 아이들은 춤을 추기 시작한 지 1-2년 정도 됐어요. 아기 프로 출연 경력도 그 정도 되구요. 카메라 앞에서 떨거나 긴장하진 않을 거예요.”
“훌륭합니다. 전 그 나이에 카메라 앞에 선 적도 없었는걸요.”
“보내주신 영상 속 안무는 다 외워 왔어요.”
“그 짧은 시간에 벌써요?”
“아기 프로그램도 연습 시간이 많지 않아서 안무는 금방 외워요.”
“와, 진짜 똑똑한 아기들이네요.”
“제 보람이자 자랑들입니다. 연습하시는 데 불편하실 수 있으니 저는 나가 있을게요. 연습 끝나면 연락 주세요. 얘들아 이따 보자.”
“네, 떤생님.”
아기들이 옥이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철은 아기들을 보며 긴장이 되었다.
‘연습이 되었다고는 하는데 얼마나 해 왔을까? 하긴 동작만 외워온 것도 다행이지. 일곱 명이나 되는 아기들이 연습실에 들어오니 시끌벅적하네. 확실히 아기들은 어른들보다 말이 많은 것 같아.’
아기들은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연습실을 보며 신나 하고 있었다.
“와, 여기 우리 연습실보댜 훨씬 크댜.”
“바닥도 조코 거울도 커.”
이철이 아기들에게 말했다.
“자, 집중.”
아이들이 이철을 바라보았다.
“음악이 나오면 연습해 온 춤을 한번 춰 보도록 하자.”
“네.”
아이들이 소리 높여 대답했다.
이철이 은우의 신곡을 재생했다.
“거리를 냐셔면 날 보는 시션들.
누냐, 횬아, 할뷰지, 할모니
내갸 그러케 기여운가여.
내갸 지나갈 때먀댜 냘 향한 시션들.
멀리셔도 냐를 쫓는 시션들.
내갸 그러케 기여운가여.”
아기들은 음악이 나오자 진지한 표정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철은 생각했다.
‘확실히 어른의 움직임이랑은 달라. 어른 속에 껴있을 때 은우가 눈에 띄었던 건 키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몰라.’
아기들은 춤동작은 순서에 맞게 잘 암기돼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춤동작이 너무 아기스럽다는 거야. 한글 댄스에 어울리는 것 같은 그런 춤이 되었어. 그래서 더 귀여운 면도 있긴 한데.’
이철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때 은우가 문을 열고 마카롱을 든 채로 들어왔다.
아기들은 춤을 추다가 멈춰서서 은우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은우다.”
“와아!”
“이은우라니.”
아기들 사이에서 은우의 인기는 놀라웠다.
이철은 또 다른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이건 마치 은우가 많은 팬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 같은 상황이잖아. 자꾸 그럼 피곤해지는데. 어른들이라면 전혀 생기지 않았을 문제인데. 또래들 사이에 섞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는구나.’
은우는 뽀뽀 댄스팀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횬아, 누냐들.”
채원이 지유에게 속삭였다.
“냐도 마캬롱 머꼬 십댜.”
“냐도.”
아기들은 은우의 손에 들려져 있는 마카롱에 눈이 갔다.
은우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어른들은 내 마카롱에 관심이 없었는데 나랑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니까 내가 먹는 걸 먹고 싶어 하는구나. 내 가방에 마카롱이 몇 개나 있더라.’
은우는 공룡변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지퍼를 열어 마카롱을 꺼냈다.
“이거 갸치 머겨요. 횬아. 눈나.”
은우가 말을 마치자마자 아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냐는 보랴색.”
“냐는 노랑색.”
각자 마음에 드는 마카롱을 하나씩 손에 쥐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민혁이는 마카롱을 세 개나 쥐었다.
마카롱을 잡지 못한 서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민혀갸 나 하냐만.”
“안 대.”
민혁이는 차가운 얼굴로 마카롱의 봉지를 뜯어서 입안에 욱여넣고 있었다.
그러자 서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으앙.”
이철은 자신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은우 한 명이랑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황이군. 7살짜리 아기들이 7명이나 있다니. 아이고 뒷골이야. 마치 일일 어린이집 교사 체험 같잖아.’
이철이 민혁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민혁아. 마카롱 하나만 친구 주자. 이따가 춤 연습 끝나고 아이스크림 줄게.”
민혁이의 눈이 커졌다.
“정먈요?”
“응, 회사 위층에 디저트 카페가 있어. 아이스크림이 공짜야.”
“공짜?”
아기들이 눈이 이철을 향했다.
“끝나고 가서 머겨도 대요? 떤생님.”
이철은 생각했다.
‘오늘 일이 점점 꼬이는데. 뭔가 수습하려고 하면 점점 더 엉켜버리는 기분이야. 그런데 내가 이 아기들은 제대로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이철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뽀뽀 댄스팀의 선생님이 정말 존경스럽다.’
민혁이는 끝나고 아이스크림을 준다는 말에 서진에게 마카롱 한 개를 양보했다.
서진이는 새로 생긴 마카롱 때문에 다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아기들이 마카롱을 다 먹자 은우가 말했다.
“우리 가치 연습해요.”
이철이 파일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난 너무 기여워. 난 너무 사랑스러어.
여러분도 너무 기여어. 여러분도 너무 사랑스러어.
우린 모두 소중해.”
은우가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포인트 안무인 하트 만들기에 들어서자 은우와 뽀뽀 댄스팀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다.
은우도 뽀뽀 댄스팀도 모두 밝게 웃고 있었다.
이철은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른 댄싱팀이 저 동작을 할 때는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뽀뽀 댄스팀이 저 동작을 하니 춤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아. 아기들의 방긋 웃는 표정에서 사랑이 느껴지는걸.
그리고 그 표정은 은우랑 너무 닮았다.
저 동작을 보니 확실히 뽀뽀 댄스팀을 부르길 잘한 것 같아.
다른 동작들도 연습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지겠지.
우리나라에 아직 아기 무용팀이 무대에 선 적은 없으니까 팬들이 참신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이철은 고단한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