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퐁퐁이와 함께 (6)
경완과 은우는 함께 벤을 타고 홍대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벤 안에는 은우와 경완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이 함께 타고 있었다.
경완의 수신기에서 정형욱 PD의 음성이 들렸다.
“퐁퐁이 님, 오늘은 홍대에 가서 저희 방송 홍보를 할 거예요. 아직 시청자들이 우리 채널을 모르니까요. 그래서 오늘의 미션은 최대한 많이 홍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희 채널을 알리는 겁니다.”
경완의 직감적으로 오늘 촬영이 고될 것임을 예측했다.
‘결국 홍보란 거잖아. 뭐든지 영업이 제일 힘들지. 거리에서 하는 영업이라는 건데. 영업도 거래처 뚫기가 제일 힘드니 오늘 1화 촬영이 가장 힘들겠네.’
은우는 퐁퐁이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은지 차에서도 줄곧 노래를 부르며 신이 나 있었다.
“난 너무 기여워. 난 너무 사랑스러어.
여러분도 너무 기여어. 여러분도 너무 사랑스러어.
우린 모두 소중해.”
그것은 새로 나올 은우의 타이틀곡이었지만 경완은 그것을 몰랐다.
‘노래 가사가 특이하네. 저건 동요인가. 근데 은우랑 같이 있으니 노래를 부를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노래를 부르면 좋을까. 노래 부른지가 너무 오래돼서. 미리 생각해 둬야 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부원들한테 물어봐서 선곡리스트라도 뽑아둘걸. 어떻게 하지?’
경완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이 곡 저 곡 생각해 보는 중이었다.
‘여자의 눈물, 떠나가는 항구. 생각나는 건 온통 트로트뿐이네. 그런 노랠 부르면 너무 내 나이가 티가 날 텐데. 게다가 난 지금 퐁퐁이라고. 퐁퐁이는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경완의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다 왔습니다.”
벤이 홍대입구에 도착했다.
은우와 경완은 손을 잡고 벤에서 내렸다.
은우를 알아본 여고생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은우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여고생의 말에 멈춰 서서 은우를 바라보았다.
은우가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떼요. 눈나.”
아주머니 한 분이 은우에게로 달려와서 은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잘됐어. 참 잘됐어. 내가 은우 보면서 참 많이 걱정을 했는데 참 잘됐어. 잘 자라줘서 고맙다. 은우야.”
아주머니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시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은우에게 내밀었다.
은우는 전에 백인수로부터 오만 원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이렇게 큰돈을 받은 적은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망설이는 은우의 손에 돈을 쥐여주면서 말했다.
“내가 과자라도 사 주고 싶은데 지금 과자를 사 줄 수가 없어서 그래. 손자 같아서 그러니까 이걸로 까까 사 먹어.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
아주머니가 양팔을 벌리고 앉자 은우가 아주머니의 품에 안겼다.
‘학생 팬들과는 다른 느낌이 있어. 엄마 같은 푸근함. 내 인생을 이해하고 응원해 주시는 것 같아.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주신 만 원은 만 원이 아닌 거 같아요.’
아주머니는 은우를 한 번 안아보시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가셨다.
그러다 문득 아쉽다는 듯 은우를 한 번 돌아보시고는 외쳤다.
“음반도 파이팅, 은우야.”
은우도 힘차게 외쳤다.
“네 퍄이팅!”
은우는 아주머니를 보며 생각했다.
‘오늘 주신 응원 잊지 않을게요. 꼭 제 꿈을 이룰게요. 음반도 꼭 열심히 할 거예요.’
경완의 수신기에서 정형욱 PD의 음성이 들렸다.
“퐁퐁이가 은우에게도 미션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경완은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러니까 은우의 티비 채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지? 은우가 너무 이걸 일이라고 생각하면 급작스러울 수도 있는데.’
대본에는 은우에게 은우와 퐁퐁이가 함께 노는 것을 찍어서 너투브 같은 걸로 보여준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은우는 어릴 적부터 너투브를 찍었으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긴 한데. 은우가 좀 더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할 수 있을까?’
경완의 수신기에서 정형욱 PD의 음성이 들렸다.
“오늘의 미션은 구독자 오백 명 모으기입니다. 시간은 두 시간. 정해진 시간 내에 구독자 오백 명을 모아야만 합니다.”
경완은 예상 밖의 숫자에 깜짝 놀랐다.
‘숫자도 너무 크고 시간도 너무 짧아. 과연 그 짧은 시간 동안 구독자를 전부 모을 수 있을까.’
경완이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우린 친구지?”
“응, 칭규지.”
“우리가 친구 만들기를 할 거야. 짧은 시간 동안 말이야. 은우랑 퐁퐁이의 친구.”
“그래? 칭규 만들기. 신나게땨. 헤헤.”
“응, 은우랑 나랑 같이 방송을 할 건데. 너투브 같은 거야.”
“응, 냐 너투브 먀니 해 뱌떠.”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채널로 보러오라고 친구들한테 초대장을 주는 거야.”
“와 머찌댜.”
은우가 박수를 쳤다.
“퐁퐁아, 그럼 녀도 나량 쟈주 볼 뚜 이떠?”
“응, 우리도 매주 볼 거야.”
은우가 퐁퐁이의 다리에 안겼다.
“너무 조야. 퐁퐁아.”
경완은 예상치 못한 은우의 반응에 가슴이 뭉클했다.
‘퐁퐁이는 은우가 정말로 아끼는 친구구나. 퐁퐁이를 만나서 은우는 정말로 반가워하고 있어.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은우를 위해서.’
경완의 수신기에서 정형욱 PD의 음성이 들렸다.
“퐁퐁이 님에게 확성기와 종이판을 드릴게요. 지금부터 광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시간체크 들어갑니다. 시작.”
은우와 퐁퐁이를 따라오던 한 명의 스텝이 퐁퐁이에게 확성기와 종이판을 주었다.
종이판에는 [다음 주 수요일 저녁 8시, 초록창에서 은우 TV 첫 방송]이라고 적혀 있었다.
퐁퐁이가 은우에게 확성기를 넘겨주었다.
은우는 확성기를 받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거 예전에 아빠랑 도깨비시장에서 장사할 때 그때 많이 봤던 건데. 장사하시는 분들이 이거 들고 막 소리치던 거.’
은우가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싱싱햔 계랴니 천 언. 싱싱햔 계랴니 천 언. 두리 먹따 하나갸 주거도 모르는 떡보끼갸 오백 언. 오백 언.”
지나가던 시민들이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멈춰 섰다.
‘뭐지? 어린 아기 목소리인데 어린 아기가 장사를 하나?’
‘이상하다. 여기가 저런 거 팔던 골목이 아닌데.’
‘확성기 소음 진짜 싫다. 누구야. 대체?’
멈춰선 시민들은 확성기를 들고 외치는 게 은우라는 것을 알고 웃음이 터졌다.
“아니 저기 좀 봐봐. 쟈기야. 은우가 저기 있어. 저 아기 은우 맞지?”
“세상에 저거 은우야. 이번에 남우조연상 탄 그 이은우 맞아?”
퐁퐁이가 은우를 말렸다.
“은우야. 지금 물건 파는 거 아니라서 그런 거 하면 안 돼. 장난치는 거 알면 사람들이 싫어해.”
은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퐁퐁아, 녀능 언래 청개구리쟈냐. 떤생님 먈 매일 안 듣꼬. 장냔치다갸 혼냐고. 그러쨔냐.”
경완은 그제서야 잊고 있던 퐁퐁이의 프로필이 떠올랐다.
신주리가 작성한 그 프로필에는 퐁퐁이의 중요한 특징으로 ‘말을 잘 안 듣고 고집이 셈. 무엇이든지 반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청개구리 성향’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아뿔싸, 진행에만 신경 쓰다 보니 중요한 걸 깜빡했네. 은우가 생각했던 퐁퐁이랑 다르면 안 되니까. 퐁퐁이 연기를 제대로 해야겠다.’
경완은 확성기 옆에서 은우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싱싱한 계란이 천 원. 싱싱한 계란이 천 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떡볶이가 오백 원. 오백 원.”
은우가 마구 웃었다.
“퐁퐁아, 너 너뮤 우껴. 헤헤헤헤헤.”
은우가 외쳤다.
“오백 언.”
퐁퐁이가 외쳤다.
“천 원.”
경완의 수신기에서 정형욱 PD의 음성이 들렸다.
“아니, 퐁퐁이 님. 갑자기 대체 왜 물건 파는 흉내를 내는 거예요. 팔 물건도 없는데. 아까 잘 말리시더니. 은우를 계속 말리셨어야죠.”
경완은 정형욱 PD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외쳤다.
“오백 원.”
보다 못한 촬영팀 중 한 명이 은우에게 와서 말했다.
“은우야, 장난 그만 치고 아까 친구 모으기로 했잖아. 은우 TV 보러 올 친구 말이야.”
은우가 기억이 났는지 깜빡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미아내요. 재미떠더 이져 버려떠요.”
은우가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은우 칭규 할 따람 요기요기 부텨라. 은우 칭규 할 따람 요기요기 부텨라.”
퐁퐁이도 은우를 따라 외쳤다.
“은우 칭규 할 따람 요기요기 부텨라. 은우 칭규 할 따람 요기요기 부텨라.”
***
프로듀서 제이는 녹음실에서 은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는 악보를 넘기며 생각했다.
‘가사가 스타성에 많이 의존하는 가사야. 이 경우는 모 아니면 도지. 스타의 매력으로 빵 뜨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생각보다 매력을 못 느껴서 인기를 끌지 못하거나.
결국 강라온 대표님이 은우의 스타성에 베팅했다는 건데.
하긴 나라도 그랬겠지. 저렇게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타는 아기가 흔하진 않으니까.’
제이의 머릿속에서는 은우의 청와대 방문 장면과 헌법 소원, 챌린지 등 다양한 사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저런 아기는 전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을 거야. 그나저나 노래는 얼마나 잘하려나. 겨울나라 2 OST를 들으니 노래 실력도 압도적이던데. 그치만 이건 댄스곡이라 고음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잘 살지 않을 텐데. 게다가 랩도 있고 말이야. 아기가 랩을 잘할 수 있을까.’
제이는 반신반의하면서 은우를 기다렸다.
은우가 방긋방긋 웃으며 녹음실로 들어왔다.
은우의 양손에는 마카롱이 들려 있었다.
“안녕하떼요. 프로듀서 떤생님.”
은우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제이는 은우의 마카롱을 보자 난감해졌다.
‘진짜 다섯 살 맞긴 하네. 하도 언론에서 난리여서 대단한 슈퍼스타라고 생각했는데. 과자를 들고 오다니. 저 마카롱 보기만 해도 달아 보이는데 단 거 정말 좋아하나 보다.’
제이는 캔커피를 뜯으며 말했다.
“일단 그 마카롱 다 먹고 나서 시작하도록 하자.”
은우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떤생님도 드실래여? 더 이떠요.”
은우가 메고 있던 공룡 변신 로봇 가방에서 마카롱을 꺼내서 주었다.
“여기떠요.”
제이는 마카롱을 받았다.
‘아메리카노랑 먹으면 어울릴 것 같기도 한데 녹음 시작할 거니까 참아야지.’
제이는 녹음을 할 때 커피 이외의 음식은 잘 먹지 않았다. 음식을 먹으면 집중이 흐트러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 먹어떠요. 떤생님.”
“자, 그럼 이제 녹음을 시작해 보자.”
은우는 익숙하게 의자 위에 올라섰다.
제이는 마이크를 의자 위에 선 은우에게 맞게 고쳐주었다.
제이는 밖으로 나와 파일을 재생했다.
“거리를 냐셔면 날 보는 시션들.
누냐, 횬아, 할뷰지, 할모니
내갸 그러케 기여운 가여.
내갸 지나갈 때먀댜 냘 향한 시션들.
멀리셔도 냐를 쫓는 시션들.
내갸 그러케 기여운 가여.”
제이는 은우의 맑고 고운 목소리에 감탄했다.
‘고음이 아니라서 노래 실력이 잘 살아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내 착오였어. 목소리가 정말 맑고 투명하다. 자칫 오만해 보일 수 있는 가사를 저런 목소리로 부르니 자만처럼 느껴지지가 않고 순수하게 느껴지는데.
정말 은우가 거리를 걸으면서 저렇게 노래를 부르는 거 같다.
게다가 저 천진난만한 표정 좀 봐.
통통한 볼로 방긋방긋 웃으며 노래하다니.
노래를 녹음하는 표정이 저렇게 매력적인 가수는 처음인데.’
노래가 끝나고 은우가 마이크로 제이에게 물었다.
“떤생님, 저 잘해떠요?”
“응, 잘했어.”
“떤생님, 제가 부른 거 들어보고 시퍼요. 궁금해요.”
“그래 지금 틀어줄게.”
제이는 녹음된 파일을 재생했다.
녹음실엔 은우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우는 파일을 다 듣더니 제이에게 물었다.
“떤생님, 이짜냐요. 마지막에요. [냔 너뮤 기여워. 냔 너뮤 사랑스러어.
여러분도 너무 기여어.] 이 부분 다시 부르고 시퍼요.
더 잘할 뚜 이떠요.”
제이는 생각지 못한 은우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고작 다섯 살 된 아기가 스스로 노래를 다시 부르겠다고 하다니. 아이돌들도 저런 경우는 드문데.’
제이는 은우가 말한 부분을 찾아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은우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냔 너무 기여워. 냔 너무 사랑스러어.
여러뷴도 너무 기여어. 여러뷴도 너무 사랑스러어.
우린 모듀 소듕해.”
제이는 은우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톤이 달라졌어. 음정은 똑같지만, 톤이 달라졌어. 노래의 분위기를 체크하고 있는 거야. 은우는. 처음에 부른 게 99프로짜리 카카오였다면 지금은 70프로짜리 카카오처럼 느껴져. 처음엔 지나치게 밝고 신났는데, 지금은 톤이 약간 변하면서 밝고 신나는 분위기가 조정된 것 같아.
후렴구에서 가사가 변했으니 그 부분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밝으면 그 의미가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제이는 은우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은우는 그렇게 후렴구의 녹음을 두 번 더 반복한 뒤에야 노래 녹음을 멈추었다.
제이가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랩 녹음은 내일 하기로 했으니까. 내일 보자.”
랩과 노래의 녹음 날짜를 따로 잡은 것은 강라온의 배려였다. 데뷔를 앞두고 은우의 컨디션을 최대한 잘 체크해야 한다는 것이 강라온의 생각이었다.
‘처음엔 그게 지나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알 것 같아. 은우는 아기지만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어. 노력도 많이 하고. 저 성격에 랩 녹음까지 오늘 다 하려고 했으면 아기 체력에 무리가 갔겠지.’
제이는 은우가 춤 연습을 하다 응급실에 실려 간 얘기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사건은 HO 엔터테인먼트 전체에 퍼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은우가 제이의 다리에 안기더니 제이의 손을 꼭 잡고 작별인사를 했다.
“수고하셔떠요. 떤생님. 내일 만냐요.”
제이는 은우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깜짝 놀랐다.
‘뭐지? 이렇게 갑작스런 애정표현은? 아기는 이런 것인가?’
제이는 은우가 나간 뒤에도 자신의 다리와 손에 남아있는 말랑말랑한 감촉을 잊을 수 없었다. 제이는 은우가 두고 간 마카롱을 생각해 내고는 뜯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이럴 수가. 이거 진짜 맛있잖아.’
제이는 생각지도 못한 마카롱의 맛에 두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