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11화 (111/257)

111화. 퐁퐁이와 함께 (2)

피아노 방은 좋았지만, 아기들이 계속 앵콜 요청을 하는 바람에 은우와 명석이는 도망치듯 거울의 방으로 갔다.

명석이는 거울의 방에 가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방이 거울인 방.

“내갸 대체 며 깨지?”

명석이는 멍하니 서서 거울 속의 자신을 쳐다보았다.

“이게 나야?”

명석이는 거울 속의 자신을 만져 보았다.

“뉴갸 나야?”

명석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거울 속의 명석이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은우와 명석이를 따라 들어온 하은이도 거울 때문에 멍해졌다.

‘어떤 게 나지? 은우는 어딨지?’

하은이는 은우를 찾으려고 했지만, 은우가 사방에 있어서 찾기가 어려웠다.

하은이가 은우를 불렀다.

“은우야 어디쪄?”

은우는 대답 대신 손을 흔들었다.

‘손이 8개야. 어떻게 해.’

하은이는 정신이 없었다.

은우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옹동이를 씰룩씰룩씰룩

폼미 냐게 씰룩씰룩씰룩”

거울 속에서 4명의 은우가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헤헤헤헤헤헤.”

하은이가 거울 속의 은우를 따라 엉덩이춤을 추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서 4명의 하은이가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뒤늦게 방으로 따라온 2명의 아기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머야?”

“머지?”

은우가 말했다.

“칭규야 이리 와. 이거 거울 재미땨.”

두 명의 아기는 서로 마주 보며 말했다.

“어떤 게 은우야?”

아기들은 혼란스러웠다.

은우가 노래를 불렀다.

“여기는 겨우리 뱡.

내가 너뮤 마냐.

누갸 진쨔 나인갸 맞쳐보세요.”

은우가 돼지코를 했다. 그러자 거울 속의 은우도 돼지코가 되었다.

은우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웃었다.

“헤헤헤헤헤.”

명석이도 은우를 따라 돼지코를 했다.

“돼지코 명셕기갸 네 명이댜. 헤헤헤헤.”

명석이가 웃었다.

하은이도 은우를 따라 돼지코를 했다.

“꿀꿀꿀꿀. 꿀꿀꿀꿀. 하으니 대지댜. 은우 자브러 갼다.”

은우가 도망치면서 말했다.

“꿀꿀꿀꿀. 은유 대지는 엄땨. 명서갸 도먕쳐.”

명석이와 은우가 도망쳐서 달렸다.

하은이가 명석이와 은우를 잡으려고 달렸다.

“갸치갸. 냐도 칭규하쟈.”

***

충무공 고등학교 3학년 오지혜는 야자가 끝나고 학교를 나서고 있었다.

‘오늘은 계획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어. 5월 모의고사에서는 등급을 올려야 하는데. 하아. 답답하다.’

오지혜는 꺼뒀던 스마트폰의 전원을 켰다.

‘공부 시작한 지 고작 석 달 만에 예전 생활이 그립다. 그땐 노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는데.’

오지혜의 예전 친구들은 자신을 대놓고 모른 체하거나 나쁜 말들을 퍼트리고 다녔다.

‘갑자기 공부하겠다고 연락을 다 끊었으니 그렇게 대하는 것도 무리도 아니지.’

가끔은 예전이 그립다고 생각하는 오지혜였다.

꺼놓았던 카톡을 확인했다.

‘이제 확인할 메세지도 많지 않네. 기분이 참 오묘해. 잘하고 있는 거 같아 내 자신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외롭기도 하고.’

카톡에는 엄마가 보낸 메시지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내용을 확인했다.

- 우리 딸 공부하느라 힘들지? 힘내. 이 노래 요새 학생들 사이에 유행한다고 해서 엄마가 퍼왔어. 고3 엄마들 단톡방에서 알려주더라.

오지혜는 엄마가 보낸 음악을 클릭했다.

“쉽지 안쬬? 내 먀미.

포기하고 십쬬? 가끄믄.

노려캐도 제자리.

더 노려캐야 할꺄?”

노래를 듣자마자 은우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은우 음반 발매일은 5월 18일인데 그럼 이 노래는 어떻게 된 거지? 가만있어 보자.’

요 며칠 공부에 집중하느라 재롱이들 팬카페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일단 재롱이들 팬카페에 접속했다.

카페에 올라온 글의 제목부터 빠르게 확인했다.

-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 이 곡 대박이지 않아요?

- 오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를 듣고 도전 1일 차를 시작했어요.

- 힘든 나에게 용기를 준 음악,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

- 은우의 사랑스런 목소리 매일 듣고 있어요.

- 매번 실패하던 다이어트, 은우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 시작합니다.

팬카페는 은우가 낸 신곡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오지혜는 며칠 동안 팬카페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이 노래를 더 빨리 들었더라면 공부가 더 잘 됐을 텐데. 응? 이건 뭐지?’

게시판의 많은 글들 중 ‘매번 실패하던 다이어트, 은우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 시작합니다.’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 안녕하세요. 재롱이들 여러분.

저는 현재 72킬로예요. 거울을 볼 때면 우주 멸망보다 더 무서운 내 몸뚱이를 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제 나이는 22살이고요. 꽃다운 여대생인데 그 흔한 미팅 한 번 제대로 못 해봤어요. 저희 엄마는 저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십니다…….

여자의 사연은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였다.

살이 찌는 자신에게 시집을 운운하며 야단을 치는 부모님들.

모두 등짝 스매싱을 날려가며 살을 빼라 하니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 전 집에서도 천덕꾸러기예요. 학교에 가면 이쁜 여자애들 옆에서 기가 죽어요. 거리를 나가면 쇼윈도엔 온통 예쁜 옷들 천지인데 제 몸에 맞는 예쁜 옷은 없어요. 옷 가게에 들어갔다가 사이즈가 없어서 그냥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제 몸에 맞는 옷은 커다란 남자 옷이거나 88 사이즈예요. 그런 옷은 주로 아줌마들이 입는 디자인이 많아요.

오지혜는 그 정도로 살을 찌워본 적이 없다.

‘내가 저랬으면 어땠을까? 견뎌낸 게 대단하네.’

사연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글쓴이의 심정에 동화되고 있었다.

- ……결국 단식원은 실패로 끝났죠. 그다음엔 친구 소개로 유명한 약국에 갔어요. 다이어트약을 파는 곳이었는데 효과가 아주 좋대요. 그 약사는 나를 보자마자 10킬로는 뺄 수 있다며 한 달 치 약을 줬어요. 결국 그 약을 계속 먹다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여자는 지병이 있거나 복용하는 약이 있냐고 묻는 응급실 의사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고 했다. 부끄러워 다이어트약을 먹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던 거다.

이후에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한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 다이어트만 생각해도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 모든 걸 포기했었죠. 그때 은우의 노랫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결심했죠. 한 번 더 도전해 보기로. 은우의 위로가 제 마음을 열었어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이쁜 옷도 입고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싶어요.

게시글을 다 읽은 오지혜는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도전이란 걸 해 본 적 있던가?

실패가 두려워 시도 자체를 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에게 기자의 꿈을 꾸게 한 너투브 영상을 켰다.

영상 속에서 한 팔을 잃은 여자군인이 말했다.

- 우린 죽음을 거부할 순 없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을 지켜야만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들도 모두 나와 같은 이유로 죽음을 선택했다. 때론 죽음이 삶보다 값질 수도 있다.”

오지혜의 가슴 속에 잊고 있던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그래 난 포기할 수 없어.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오지혜는 집으로 와서 은우에게 보낼 짧은 편지를 썼다.

- 안녕, 은우야. 내게 용기를 줘서 고마워. 나 다시 꿈을 향해 달려보려고. 그리고 외로울 때면 네가 불러준 이 노래를 들으면서 힘을 낼게. 너에게 꼭 다시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게.

- 네 덕분에 정신 차린 누나가 -

***

도마뱀 미디어 제작총괄본부는 오랜만에 좋은 소식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부의 신, 이정우였다.

“역시 부장님이십니다. 전 부장님이 해내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신주리는 가려진 책장 사이로 김승태에게 보이게 입모양으로 뻐금뻐금 말했다.

- 저 새끼 진짜 재수 없어. 저렇게 살면 좋은가.

김승태가 신주리에게 입모양으로 뻐금뻐금 말했다.

- 쟤는 똥도 칼라똥일 거야. 아부하고 싶어서.

그때 최경완이 신주리의 이름을 불렀다.

“신주리 씨.”

신주리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김승태 역시 사색이 되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신주리 씨 아이디어가 큰 도움이 됐어. 이제 인물 선정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포맷에 대한 회의를 해야 할 거 같은데.”

신주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십 년 감수할 뻔했네.’

회의가 이어졌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사실 허락을 맡기 위해 이미 포맷이 절반 정도는 정해진 상태야. 은우 소속사에서 은우가 가진 배우 이미지가 너무 크다고 판단해서 최대한 가수의 이미지를 살리고 싶어 해. 그래서 우리는 가수 은우의 이미지에 집중할 거야. 그쪽에서는 버스킹이나 쟁반 노래방 같은 그런 포맷을 제안하기는 했어.”

경완의 말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신주리가 입을 열었다.

“가수의 이미지를 끌어오더라도 은우가 다른 가수들과 가진 차별점이 순수함과 귀여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너무 어른들과 같은 프로그램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승태도 동의했다.

“저도 그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은우는 직장인들의 힐링이거든요. 은우를 보면 제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거 같아요. 그땐 참 행복했는데. 하루 종일 로봇 하나만 있어도 심심하지 않고. 돈도 안 벌었고. 우린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된 걸까요? 맘은 아직 아이인데 말이에요.”

신주리도 맞장구쳤다.

“나도 가끔은 내가 돈을 버는 게 실감이 안 나. 어른이 된 것도. 회사에 안 가고 싶은 날도 많다고.”

경완이 기분이 나쁜 듯 헛기침을 했다.

“흠흠.”

신주리가 얼른 말을 고쳤다.

“그러니까 제 말의 요지는 요즘 저처럼 직장에 다니기 힘들어하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거죠. 어른이지만 어른이 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어른이지만 아이였던 순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요. 사실 전 요즘 유행인 뉴트로도 비슷한 이유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그 어른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접목시켜서 포맷을 잡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경완이 말했다.

“좋은 의견이군. 시청 연령대가 직장인층까지 넓어질 수 있다면 말이야. 그건 그런데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걸 감사해야 하는 거야. 아까 그 직장생활 넋두리는 아직 취업 못 한 취업 준비생에겐 배부른 소리니 넣어두라고. 기획 의도로서는 훌륭하지만 말이야.”

신주리는 조용히 생각했다.

‘오늘은 왜 안 하나 했다. 그놈의 라떼 타령. 또 시작인가.’

이정우가 말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지금 같은 불경기에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할 일인데요. 그런데 이번 기획은 인물이 중요하니까 일단 우리 팀에서 은우를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번 회의 때도 은우를 만나보자는 의견이 있었거든요.”

경완이 이정우의 의견을 적극 수용했다.

“좋은 생각이군. 음악 프로그램 포맷을 가져다 쓴다고 해도 은우의 귀여움이나 순수함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포맷을 찾아야 하니까 우리가 은우를 직접 한 번 만나보는 게 좋겠어. 그럼 누가 가도록 할까?”

신주리와 김승태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좋아. 두 사람이 다녀와. 그런데 우리 팀의 구멍 두 사람이 가니 좀 걱정이 되는데. 정우 씨도 함께 가도록 하지.”

이정우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세 사람은 어정쩡한 자세로 은우의 아파트 공동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신주리는 이정우와 함께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 있었던 거 기억했다가 부장님한테 일러바치는 건 아니겠지?’

김승태도 이정우가 같이 있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주리 씨랑 같이 온 것도 은우를 보게 된 것도 너무 좋은데 하필이면 아부의 왕 이정우라니.’

신주리가 공동현관문의 호출 버튼을 눌렀다.

은우가 대답했다.

“누구떼요.”

“네, 저는 채널 N 라이브의 신주리입니다. 미리 전화 드렸었는데요.”

“안녕하떼요. 눈나. 비밀번호는요?”

신주리는 이 상황이 대처 뭘까 생각했다.

‘갑자기 비밀번호라니. 이건 뭐지?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비밀번호가 있다는 그런 연락은 못 받았는데.’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비밀번호는 모르는데요. 그런 말씀은 사전에 없으셨는데.”

“에이, 눈나. 비밀번호를 모르댜니. 가쟝 조아햐는 숟쨔가 머예요?”

“가장 좋아하는 숫자요?”

신주리는 정신이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숫자라니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숫자는 숫자지. 그냥 단위잖아. 뭐라고 말하지?’

그때 김승태가 말했다.

“주리 씨 어릴 때 숫자 놀이 같은 거 안 했어요? 좋아하는 숫자도 대답 못 하다니 너무 어른이 된 거 아니에요? 삼 좋아해요. 삼.”

“안녕하떼요. 똑똑한 횬아. 그럼 횬아의 비밀번호능 삼삼삼삼임니댜. 들어오떼요.”

신주리는 열린 문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뭐야? 이렇게 쉬운 거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신주리가 김승태에게 말했다.

“난 어릴 때 숫자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승태 씨는 달랐나 봐요.”

“전 어릴 때 숫자로 나오는 동화도 읽고 그랬는데. 숫자가 나오는 꿈도 꾸고 그랬어요.”

“대단하다. 난 숫자가 싫었는데.”

가만히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난 다섯 살 때 십 원짜리 동전 가지고 슈퍼에 갔다가 슈퍼 아저씨가 이걸로는 아무것도 못 산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처받고 집에 왔어요. 그 뒤로 숫자를 알기 시작한 거 같아요.”

신주리는 생각했다.

‘아부의 신에게도 저렇게 귀여운 어린 시절이 있었단 말야? 상상이 안 가는데.’

김승태가 말했다.

“저도 첨엔 돈만 받으면 좋아서 슈퍼로 달려가곤 했다니까요. 진짜 어렸을 땐 종이돈이 더 좋은 건지도 모르고 세뱃돈 받으면 동전으로 달라고 했는데. 동전으로만 과자 살 수 있는 줄 알아서. 그러고 보니 우리 다 참 귀여웠네요?”

어느덧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세 사람은 은우의 집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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