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06화 (106/257)

106화. 세상을 바꾸는 한 걸음 (3)

은우가 보리에게 물었다.

“교샤믄 대체 어떤 거야?”

보리가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멍멍(대한민국의 모든 수험생은 고3 때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보고 이 성적으로 대학에 간대. 그래서 고3 일 년을 잘 보내는 게 매우 중요하대. 좋은 학원이나 과외쌤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고 말이야.

부모들은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기 때문에 백 일 기도 같은 것들도 많이 하나 봐.

수능을 2번이나 3번 보는 재수, 삼수생도 많고 오수까지 하는 장수생들도 많대.)”

“한 버네 시허므로 인생이 결정대다니 힘들게따.”

은우는 생각했다.

‘시험이란 게 잘 보는 사람도 있고 못 보는 사람도 있지. 다 잘 볼 수는 없는데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게 결정된다면 힘들 것 같아. 편지를 보낸 오지혜 누나처럼 노력하면서도 힘들어할 것 같고. 혹시 실수라도 한다면 일 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는 건데.’

은우는 수험생을 위로하는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은우는 자기식으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은우가 그린 첫 번째 그림 속에는 작은 방에 앉아있는 곰인형이 있었다.

곰인형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두 번째 그림 속에는 은우가 곰인형을 위해 핫초코를 타 주는 장면.

은우가 곰인형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

은우가 곰인형을 안아주는 장면이 그려졌다.

은우와 곰인형은 함께 우주여행을 떠났다.

별도 보고 달고 보고 그리고 우주를 춤추었다.

은우는 크레파스를 내려놓더니 키즈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쉽지 안쬬? 내 먀미.

포기하고 십쬬? 가끄믄.

노려캐도 제자리.

더 노려캐야 할꺄?

거울 쏙에 내갸 몬생겨 보여 슬픈 날

그럴 땐 이 음아글 트러요.

너의 슬프믄 냐의 슬픔.

내 쟈근 소느로 너를 위로해.

토닥토닥.

너는 냐의 히어로.

너는 냐의 우쥬.

너는 냐의 태양.

따뜨탄 하쪼코를 널 위해 준비해떠.

(하쪼코갸 시르면 쩨리를 줄게.)

이리 와. 편히 시어요.

오느리 녀를 칭챤해.

오느리 네가 고마어.

피건하면 조금 쟈요.

하루에 한 벼는 하느를 뱌요.

너는 너뮤 소듕해.

냐는 너의 얘기갸 늘 궁금해.

아주 자근 거또.

너는 어떤 반챠늘 조아해?

어떨 때 행보케?

어떨 때 슬퍼요?

냐는 매일 너의 편지를 기댜려.

너는 세상이 내게 쥰 션물.

냐는 너를 위해 밤하늘에 불을 켜요.

(반쨕반쨕 벼를 달믄 너의 눈똥쟈)

냐는 너와 함께 밤하느를 냐라

저 달로 우쥬로”

노래를 들은 보리가 말했다.

“멍멍(노래 좋다. 다 듣고 나니 배가 고픈걸.)”

보리가 밥그릇으로 가더니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은우는 어서 이 곡을 강라온 대표님께 들려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

강라온의 사무실. 강라온과 이철, 은우가 함께 은우가 새로 만든 곡을 듣고 있었다.

곡이 끝나자 강라온이 말했다.

“좋네. 잘 만든 곡이야.”

이철은 강라온의 표정이 개운하지 않음을 눈치챘다.

‘뒤에 좋지 않은 말을 감추고 있는 거야. 저 표정은.’

강라온이 이철에게 물었다.

“철이 생각은 어때?”

“팬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요. 따뜻하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에 대한 악성 댓글이 마구 달린다면 그런 날 저 곡을 들으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은 그런 곡이었어요.”

“그래. 위로에 적절한 곡이지. 그런데 이번 미니 앨범에 들어가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 타이틀로 댄스곡이 한 곡 들어가고 지난번에 은우가 만든 보리에 관한 곡이 하나. 미니 앨범에 들어갈 곡은 이제 두 곡, 아니면 세 곡인데 은우의 장점인 고음이 돋보이는 곡이었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신인으로서 팬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어야 하니까.”

“고음이 은우의 장점이긴 하죠.”

“이 노래는 아깝지만 접도록 하자. 미안해. 은우야. 지금은 좀 아쉬울 수 있지만 너의 첫 번째 앨범은 꼭 성공해야 하니까. 더 좋은 곡을 지금 내가 찾고 있어. 더 강렬하고 멋진 곡.”

은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에.”

“난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이만. 또 보자. 은우야. 곧 있음 타이틀곡 녹음해야 하니 목 관리 잘해야 한다.”

강라온은 은우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방을 나갔다.

이철은 시무룩해진 은우가 안쓰러웠다.

‘세상에 좋은 노래는 정말 많단다.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도 많지. 하지만 주어진 무대는 한정적이고 가수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니까. 유행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하지만 은우야 이런 걸 다 이해하기에 넌 너무 어리지?

열심히 곡을 만들었을 텐데 칭찬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철은 은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정말 좋은 곡이야. 은우야. 선생님은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모든 곡이 음반에 실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 요즘은 블로그나 구글 클라우드를 통해서 무료도 음원을 배포하는 가수들도 있어.”

“꼭 음뱌네 실리지 아냐도 팬드레게 들려줄 수 이떠요.”

“응, 탑보이즈나 슈퍼보이즈도 그런 식으로 음원을 풀고 있거든. 선생님은 음원을 직접 만든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슈퍼보이즈 형아들한테 물어보면 잘 알려줄걸.”

은우는 지난번 슈퍼보이즈와 만났을 때가 기억났다.

‘지석이 형이랑 현우 형이 랩 배우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했었지. 맞아. 전화해 봐야겠다.’

은우는 이철에게 키즈폰을 주며 말했다.

“선생님 지서기 횬아한테 전화해 주떼요.”

이철은 자신의 휴대폰에서 지석의 전화번호를 검색하여 은우의 폰으로 전화를 걸어주었다.

“횬아. 은우예요.”

“아, 은우구나. 오랜만이네. 남우조연상 받은 거 축하해. 헌법재판소 판결도 축하하고.”

“거마어요. 횬아. 횬아, 저 뇨금햐는 거 도와줄 뚜 이떠요?”

“녹음이라면 소속사에서 해 줄 텐데.”

“그거 말고 따로 올리는 게 이따고 선생니미 그랜는데.”

이철이 전화를 받아서 지석에게 설명했다.

“은우가 곡을 만든 게 있는데 대표님이 이번 음반에 실을 수는 없을 거 같다고 그러셔서. 왜 너 지난번에 만든 ‘성산대교’도 구글 클라우드랑 슈퍼보이즈 블로그에 올라왔던데. 은우도 그런 식으로 올리면 어떨까 하고.”

“아, 그거요. 그건 할 수 있죠. 은우한테 저희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하세요.”

이철이 다시 전화기를 은우에게 넘겨주었다.

“알게떠요. 횬아. 고먀어요.”

***

집에 온 신주리는 자신이 새로 산 소파에서 동생이 혼자서 키득대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야, 신주아. 그거 내 소파거든. 지난달에 할부로 산 거다. 비켜라.”

동생은 신주리의 말을 듣고도 계속해서 키득거리며 스마트폰의 화면만 보았다.

신주리는 화가 나서 동생의 등을 밀쳤다.

동생의 스마트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생이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며 화가 나서 외쳤다.

“아씨, 좀. 나도 앉아서 보자고. 치사하게. 스마트폰 액정 깨졌으면 어쩔뻔했어. 언니가 사 줄 거야?”

신주리는 동생이 일어난 소파에 냉큼 앉으며 말했다.

“이 언니 건들지 마라. 네가 회사를 다녀봐야 알지? 너 회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내가 오늘도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견디며 월급봉투를 사수했는지 아냐고.”

“나도 곧 취업한다고. 취준생 무시하지 마라. 응?”

동생은 기분이 나빠졌는지 뽀로통한 표정으로 냉장고 쪽으로 갔다.

신주리는 동생에게 외쳤다.

“언니, 콜라.”

동생은 씩씩대면서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왔다.

“언니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회사 다니는 게 벼슬이야? 무슨. 내가 곧 취직한다. 진짜.”

신주리는 새로 산 소파에 기대어 생각했다.

‘소파 편안하네. 문젠 회사에 매여서 이 편안한 소파를 거의 동생이 쓴다는 게 문제지만. 내일 출근해서 어떤 아이디어를 말하지? 가만있어봐. 아까 주아는 뭘 보면서 웃었던 거지?’

신주리의 동생 신주아는 예전부터 뜰 연예인을 미리 맞추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탑보이즈의 1호 팬이기도 해서 탑보이즈의 멤버도 주아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였다. 요즘 얼굴 천재로 불리는 아스피린의 차병우도 주아가 티비에서 처음 보자마자 뜰 것을 맞췄었다.

‘주아가 공부는 못했지만, 어렸을 때부턴 연예인 보는 눈은 탁월했었어. 나는 듣도 보도 못한 그룹들도 다 알고 있었으니까. 가만있어봐. 아이디어는 주아한테 물으면 확실하겠네.’

신주리가 동생에게 말했다.

“우리 회사에 채널 N 라이브에서 하는 연예인 채널 의뢰가 들어왔는데 연예인 한 명을 채널에 고정 출연시켜서 그 사람의 채널을 만드는 거야. 아직 올라온 연예인은 없는데 이게 처음이라 약간 시범 케이스처럼 되나 봐. 이번에 잘되면 다른 연예인들의 채널도 여러 개가 생성되는 거지.

채널 N에서는 잘만 하면 키울 수 있는 컨텐츠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너투브나 종편 등 다른 채널들이 너무 많은 연예인 방송을 쏟아내고 있어서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리고 이 언니가 내일 그 연예인 채널에 어떤 연예인을 출연시키는 게 좋을지 아이디어를 가져가야 하는데 도무지 생각나는 게 없어.”

동생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지. 결국 나에게 SOS를 청하는구만. 그래. 좋았어. 얼마 줄 거야?”

“얼마라니?”

“언니. 요즘 같은 시대에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거야? 나에게.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아이디어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지.”

“너 공과금 내가 내지. 전기세 내가 내지. 월세도 내가 내잖아. 진짜 엄마 아빠만 아니었으면 넌 지금쯤 고시원에서 살아야 하는 거라고. 나는 혼자 사는 게 훨씬 좋다고.”

동생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치사하다. 자매끼리 이러기야. 이번 기회에 용돈 좀 주면 덧나냐고.”

“너야말로 치사하다. 치사해. 언니한테 아이디어값이나 받으려고 하고.”

동생이 말했다.

“부장님한테 아이디어 통과 안 하고 싶은가 보지? 알지? 언니. 내 실력. 내 친구들 사이에서 난 찍신으로 통해. 내가 찍은 애들은 다 떴어.”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삼만 원 줄게.”

“콜! 그리고 소파 한 달 사용. 언니 퇴근한 뒤에도 내가 앉을 수 있게.”

“콜!”

이리하여 자매의 계약이 성립되었다.

동생이 스마트폰의 화면을 켰다.

영상 속에서는 대통령의 집무실 의자 위에 쿠션을 놓고 앉은 은우가 있었다.

은우가 의자에서 내려오자 영부인이 물었다.

“은우는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뭘 하고 싶어?”

은우가 코를 찡그리며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샤람들한테 매일매일 마디는 걸 먀니 줄 거예요. 햄벼거량 꼬기량 과쟈량.”

민정수석이 웃으며 말했다.

“당선되겠는데요.”

영상을 보고 있던 신주리가 동의했다.

“누구라도 뽑고 싶을 거야. 은우야, 누나도 은우가 주는 햄버거랑 고기랑 과자 매일매일 먹고 싶다.”

동생이 말했다.

“언니도 벌써 넘어갔구만. 이은우. 올해 다섯 살. 얼마 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으로 청와대 만찬에도 초대되었고 헌법소원도 통과시켰지. 다음 달에 음반 나온대. 완전 힙하지?”

“맞다. 이은우.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아직 보여주지 못한 매력이 무궁무진하지. 은우는. 티비 출연도 다른 아이돌들에 비해선 많았다고 할 수 없고. 게다가 은우는 정말 귀엽다고. 아까 내가 소파에 앉아서 보고 있던 영상인데 말이지. 이 광고가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광고고 다른 하나는 오프 더 레코더처럼 말이야. 아기들이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걸 그냥 다 담아놓은 버전이 있거든.

근데 아기들이 말하는 게 진짜 웃겨.”

동생이 스마트폰의 영상을 켰다.

영상 속에서 아기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주원 : 샤일런스 박샤를 무찌르려면 방구갸 피료해.

- 승현 : 마쟈먀쟈. 방규는 천햐뮤저기야.

- 하율 : 횬아, 나 긍데 쉬하고 시퍼.

- 은우 :(걱정스런 말투로) 너 기저기 안 하고 와떠?

- 하율 : 이제 엄먀갸 기저기 안 하능 연습한댜고 해떠.

- 다 같이 : 맙소샤.

신주리 역시 자신도 모르게 큭큭대며 웃고 있었다.

동생이 말했다.

“아기들끼리 너무 심각한 게 웃기지 않아? 은우는 직장인 팬들도 정말 많다고. 언니 어른이 된다는 게 말야. 정말 힘들지 않아? 토익 학원에 나를 구겨 넣을 때 이대로 탈주해서 집으로 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백만 번은 든다고. 교수가 나에게 안 좋은 학점을 날릴 때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그래도 취직하려면 꾸역꾸역 참으면서 레포트를 써야 한다고.

그렇게 힘들게 대학을 졸업해도 기업들이 면접 볼 기회도 안 준다고. 은우를 보면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 그땐 참 행복했는데. 하루 종일 인형 하나만 있어도 심심하지 않고 공기놀이에도 웃음이 끊기지 않았는데. 돈 없어도 행복하고 말이야. 우린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된 걸까? 언니. 맘은 아직 아이인데.”

“그래 나도 내가 돈 버는 게 가끔은 실감이 안 난다. 어른이 된 것도.”

“그래도 언닌 취직했잖아. 부럽다.”

“취직하면 끝일 줄 알지. 거기서부터 시작이야. 매일 퇴직하는 꿈을 꾼다고.”

“내가 좋은 아이디어로 언니 승진하게 해줄게.”

“승진은. 짤리지나 않으면 좋겠다. 꼰대라떼 그만 마시고 싶어.”

신주리는 동생의 장난에 오랜만에 웃으며 새로운 기획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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