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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104화 (104/257)

104화. 세상을 바꾸는 한 걸음 (1)

은우는 잠에서 깨어 실눈을 뜨고 방 안을 쳐다보았다.

옆자리에는 보리가 은우의 옆에서 배를 뒤집은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자떠? 보이. 발랴당핸네.”

“멍멍(잘 잤어. 행복한 아침이구나. 기분이 너무 좋아. 강아지가 된 후로는 말야. 신기하게 사람일 때보다 행복한 기분을 훨씬 자주 느끼는 거 같아. 맛있는 한 끼 식사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고, 옆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산책만 다녀와도 너무 기분이 좋아져.)”

“보이야, 따랑해.”

보리가 일어나서 은우의 볼을 핥았다.

“멍멍(활기찬 하루를 시작하자. 은우야. 어서 어린이집 가야지.)”

은우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뉴스를 보고 있던 영탁이 은우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잘 잤어? 은우야?”

은우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영탁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네, 땀툔.”

영탁이 은우를 안고 부엌으로 갔다.

“아뺘, 잘 자떠요?”

창현이 빠르게 칼질을 하면서 대답했다.

“은우도 잘 잤어? 아빠가 볶음밥 만들어 줄 테니 빨리 씻어.”

영탁이 은우를 욕실로 데려갔다.

은우는 익숙한 자세로 작은 의자 위에 올라섰다.

은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돼지코 해야지. 돼지코.’

은우는 손가락으로 코를 올리고 거울을 쳐다보았다.

“하하하하하하.”

은우는 신이 나서 이번에는 혀를 길게 늘여서 턱 끝까지 닿는 장난을 쳤다.

‘아아, 조금만 더 빼면 닿을 거 같은데 닿을락 말락 하네.’

영탁이 유아용 칫솔에 딸기 맛 치약을 묻혀 은우에게 주면서 말했다.

“장난 그만치고 은우야. 그러다가 지난번처럼 어린이집 지각해.”

은우가 칫솔을 받아들면서 말했다.

“아라떠욤. 치카치카치카.”

은우가 양치질을 하면서 팔목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리고 리듬을 탔다.

은우는 양치질을 할 때면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서 섰던 무대가 자꾸 떠올랐다.

‘배우도 좋긴 하지만 역시 무대에 오르고 싶어. 어서 데뷔를 하고 내 노래를 부르고 싶다. 팬들이 내 노래를 따라서 함께 부르면 얼마나 마음이 설렐까?’

양치가 끝나고 영탁이 은우의 목 앞에 턱받이를 매 주었다.

은우가 팔을 걷고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비누를 두 손에 묻혀 얼굴을 빡빡 문질렀다.

은우가 세수를 할 때마다 사방에 물이 튀었다.

영탁은 웃으면서 생각했다.

‘은우 세수 끝나면 욕실 정리해야지. 사방에 물 다 튀고 옷도 다 젖고. 그래도 다섯 살이니 자기 혼자 세수를 하는 게 기특한 거겠지. 뒷정리하는 데 힘들어도 혼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고 티비에서 그랬어.’

영탁은 은우의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육아 프로를 매일 챙겨보고 있었다.

영탁은 세수를 마친 은우를 데리고 방으로 가 옷을 골라주었다.

“오늘은 무슨 옷 입을래? 은우야? 공룡변신 로봇?”

“니에 니에 니에 니에.”

영탁은 생각했다.

‘남자애들은 옷 입히긴 정말 좋다. 색깔이 다른 히어로 티셔츠만 몇 개 있으면 되니까. 바지는 늘 청바지나 면바지면 되고.’

영탁이 은우의 목에 티셔츠를 걸어주었다. 은우는 팔을 먼저 낀 다음 요리조리 몸을 빼서 티셔츠를 입었다. 영탁이 은우의 티셔츠를 청바지 안으로 쏙 넣어서 입혀 주었다.

***

은우는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친구들에게 인사했다.

“준수야, 안뇽. 시후야, 안뇽. 혜린이 눈나, 안뇽.”

“안녕. 은우야.”

아기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김마리아 수녀님이 말했다.

“오늘은 중요한 뉴스가 나오는 날이니까. 다 같이 티브이를 보자.”

아기들은 다 같이 티비 앞에 몰려 앉았다.

“눈 나빠지니까 너무 가까이 앉지 말고. 수녀님이 테이프 붙여놨죠? 그 선 뒤로 가세요.”

“네, 뚜녀님.”

아기들이 선 뒤로 물러났다.

수녀님이 말했다.

“오늘 중요한 판결이 나올 거예요. 은우가 신청한 헌법소원 결과가 오늘 나와요. 여러분도 모두 마음속으로 기도해요.”

아기들은 서로의 손을 꼬옥 맞잡은 채 눈을 감았다. 수녀님이 알려준 함께 기도하는 방법이었다.

‘기도는 혼자 할 때보다 여럿이 마음을 통할 때 더 힘이 세지는 법이니까.’

서로 손을 마주 잡자 아기들은 작은 원이 되었다.

‘은우 소언이 이러지게 해 쥬떠요.’

‘기도를 드러주떠요.’

‘아기드리 더 행보카게 해 쥬떠요.’

기도를 마치고 수녀님이 티비를 틀었다. 티비에선 뉴스가 흘러나왔다.

“5년 전 개정된 사랑이법을 기억하십니까? 사랑이법은 미혼부 자녀들의 출생신고를 돕기 위해서 제정된 법이었으나 조항의 엇갈린 해석 때문에 자녀를 호적에 올리는 것을 포기해야 했던 미혼부들이 많았는데요.

한 달 전 이은우 군이 가족관계법의 57항이 미혼부 아동의 행복추구권을 제한한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착한 일 챌린지가 SNS상에서 시작되는 등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냈는데요.

오늘 헌법재판소에서 이와 관련한 최종판결이 나왔습니다.

헌법재판소에 나가 있는 김태석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화면 속에는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 나가 있는 김태석 기자의 모습이 비춰진다.

헌법재판소 앞에는 수많은 기자들과 1인 시위를 하는 러브파파의 회원들, 응원하러 온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네, 저는 지금 헌법재판소 앞에 나와 있습니다.

방금 헌법재판소의 6명의 재판관이 만장일치로 가족관계법의 57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곳 헌법재판소 앞은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인데요.

먼저 1인 시위를 이어오신 러브파파의 회원분을 모시겠습니다.”

화면 앞에는 ‘대한민국은 모든 아동은 소중하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미혼부 정대만 씨가 나와 있다.

“이번 판결로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 어떻습니까?”

“저희의 오랜 소원이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법에서 모성만 인정하고 부성은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불공평하다고 느꼈는데요. 어머니의 사랑 못지않게 아버지의 사랑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원들을 보면 정말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런 아빠들에게 힘을 내고 아기를 더 열심히 키우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혼자 아기 키우시기가 힘드셨을 텐데 저도 참 기쁩니다. 다음으로 시민분 인터뷰하겠습니다.”

화면 앞에는 ‘미혼부 응원합니다. 은우야 멋지다.’라는 문구를 모자에 붙이고 있는 여학생이 서 있다.

“법원의 이번 판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고요. 저는 대한민국 국민인 게 늘 자랑스러웠는데 아빠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는 그런 법이 있다는 걸 알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진작 바꿔야 했던 건데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지금이라도 바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옳은 판결해 주신 재판관님 사랑합니다. 은우야. 누나 티비 나왔다. 누나 오늘 조퇴하고 여기 와서 티비 나왔다. 은우야 보고 있니?”

“은우 군 팬이신가 보네요. 그런데 조퇴하고 인터뷰하면 담임 선생님이 아실 텐데 괜찮아요?”

여학생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망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한 몸 불사르겠습니다. 은우야. 파이팅. 사랑해. 누나가 서명도 받으러 다니고 착한 일 챌린지도 매일 해서 학교 주변에 쓰레기도 다 줍고 착한 일 많이 했어. 오늘 판결 잘 나와서 누나가 너무 신난다. 선생님, 제가 학교 가서 반성문 많이 쓰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헌법재판소 앞은 오늘 이렇듯 축제 분위기입니다.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 아동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할 권리를 되찾은 것에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나와 주십시오.”

티비를 보고 있던 은우는 재능창이 변화하는 것을 보았다.

[희망의 신 루딘의 긍정의 선택 레벨 2 – 10000/10000

주변의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경우, 서로를 위해 행동하는 힘이 커집니다.]

‘레벨업이네.’

은우는 전전생의 파리넬리였던 기억을 떠올렸다.

스페인의 왕 페르난도 6세가 파리넬리에게 말했다.

“짐은 자네가 선왕의 우울증을 낫게 해 준 것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네. 게다가 자네는 나에게도 매우 좋은 친구지. 음악을 좋아하는 나와 황후 바바라에게 자네가 들려주는 음악만큼 큰 기쁨은 없다네. 우린 자네가 우리와 함께해 주는 것을 큰 행운이라고 여기고 있어.

자네야말로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 텐데. 2대째 우리 가족과 함께 머물며 우리 가족을 위해 매일 밤 음악회를 열어주고 있지 않은가? 내 그런 자네의 공로를 인정해 자네에게 칼리트로바 기사의 지위를 수여할까 하네.”

파리넬리는 페르난도 6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파리넬리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작곡가의 아들로 태어나 가수로서 이름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 사람들은 내게 환호했고 나는 부와 명예를 얻었어. 그렇지만 신분을 바꿀 수는 없었다. 돈이 많고 유명해도 나는 평민일 뿐이었지. 귀족들은 내가 가진 재주에 관심이 있었을 뿐 나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

파리넬리는 자신의 하나뿐이던 사랑 마틸다를 떠올렸다.

하얀 피부에 예쁜 보조개를 가지고 있던 마틸다.

그녀가 웃을 때면 파리넬리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문을 열고 마틸다가 저 문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올 것만 같았다.

‘마틸다, 아마 당신도 이제 어딘가에서 중년의 부인이 되어 아이들과 여생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려. 내가 당신을 만났던 17살 때 난 거세당한 몸의 평민이었고 당신의 영주의 딸이었지. 당신의 아버지는 나를 인정하지 않았지. 그건 나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기에 난 당신의 아버지를 원망한 적 없었소. 가끔 나 자신의 운명을 원망한 적은 있었지만 말이오.

당신에 대한 사랑을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바꾼 뒤로부터 난 서서히 내 운명을 받아들였소.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당신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오.’

상상 속의 마틸다가 파리넬리에게 말했다.

‘수고했어요. 나의 파리넬리.

당신은 언제나 멋져요. 난 당신이 결국 해낼 줄 알았어요.

아버지가 당신을 비난했을 때도 난 아버지를 믿지 않았거든요.

우리 다음 생에선 꼭 다시 만나요.’

파리넬리는 지난날을 생각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1750년 5월의 어느 날 스페인 왕실에서는 파리넬리의 기사 작위 수여식이 열렸다.

기사의 복장을 한 파리넬리가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은 그의 성스러운 칼을 파리넬리의 오른쪽 어깨에 대었다.

“성스러운 스페인의 왕들이여. 내 말을 들어보소서.

우리에게 오셔서 새로운 기사를 맞이해 주소서.

오늘 파리넬리의 열정과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치하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파리넬리가 앞으로도 자신의 귀함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 능력을 스페인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스페인이 다른 민족에게 침해와 박해를 당했을 때 스페인을 위해 방어할 수 있게 해 주소서.

나 페르난도 6세는 파리넬리를 명예로운 칼리트로바 수도회의 32번째 기사로 임명하는 바이다.”

파리넬리는 그의 나이 46살에 귀족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신분을 바꾼 사람이었다.

은우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옆에는 친구들이 다 같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잘 대따. 징짜.”

김마리아 수녀님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 5년간 사랑이법 때문에 힘들어했던 아빠들을 생각하면. 이젠 나라에서 주는 지원도 받고 아기가 아플 때 병원도 갈 수 있어. 정말 잘 됐어. 진짜로.’

김마리아 수녀님이 아기들에게 말했다.

“오늘 신나는데 우리 파티할까?”

“네.”

아기들이 환호했다.

“다 같이 자장면을 만들까?”

김마리아 수녀님이 중력분과 소금, 물을 섞어서 반죽을 시작했다.

아기들은 수녀님의 곁에 빙 둘러앉았다.

“와아, 재미게따.”

“플레이도우 가탸.”

“져도 해 보고 시퍼요.”

수녀님은 아기들의 앞에 반죽을 한 덩이씩 주었다.

“자, 반죽을 이렇게 늘여서 길게 밀면 자장면이 되는 거야.”

아기들은 수녀님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 끈겨땨.”

“며니 너뮤 통통해.”

수녀님이 다시 시범을 보였다.

“잘 안 되면 이렇게 밀가루를 묻혀서 다시 돌려봐요.”

아기들은 수녀님이 알려준 대로 밀가루를 묻혔다.

“밀가루 기신이댜.”

준수가 시우의 얼굴에 밀가루를 묻혔다.

“기신 투댜.”

시우도 준수의 얼굴에 밀가루를 묻혔다.

“꺅~~~”

연아는 지호가 자신의 얼굴에 밀가루를 묻힐까 봐 도망가기 시작했다.

은우는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밀가루를 묻히면서 웃었다.

“달걀 기신이댜. 무떱지?”

지호도 은우를 따라 밀가루를 얼굴에 묻혔다.

“달걀 기신 투다. 헤헤헤헤헤헤.”

어린이집은 금방 밀가루투성이가 되었다.

수녀님은 생각했다.

‘청소하려면 꽤나 힘들겠네. 자장면 만들기는 다신 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오늘은 행복한 날이니. 맘껏 즐기렴. 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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