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02화 (102/257)

102화. 첫 번째 음반 (5)

은우는 보리와 함께 랩 연습을 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보이야. 래블 잘하려면 어떠케 해야 댈꺄? 댜들 래븐 쨜븐 시갸네는 안 댈 거랴는데.”

“멍멍(어렵다는 거지. 안 되는 게 어딨어? 일단 해 봐. 페르마의 정리도 다른 사람들은 다 못 풀 거라고 했어. 하지만 난 풀었지. 시도를 해야 푸는 거야. 시도를.

네가 학교에 들어가면 참 좋을 텐데. 그럼 내가 수학을 가르쳐 줄 수 있거든. 랩은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가만있어봐. 우리에겐 초록창 지니가 있으니.)”

보리가 초록창에 랩 잘하는 방법을 검색했다.

“멍멍(좋아하는 곡을 정해서 반복해서 계속 듣고 한 곡을 완벽하게 마스터하래. 다이나믹 트리오 노래가 좋다는데 그걸로 연습할래? 일단 들어보자.)”

“쪼야.”

보리가 다이나믹 트리오의 ‘자화상’을 클릭했다.

“오 나의 슬픈 20대.

나는 키도 작고 가난하고 친구도 없어.

이런 날 사람들은 비웃었지.

루저.

난 혼자인 게 편했어.

루저.

내 세상 속에선 아무도 날 비웃지 못했으니까.

루저.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난 30대.

머리가 벗겨지고 체력이 떨어져

거울 속의 내가 늙어가네.

이대로 날 두고 볼 순 없어.

나는 젊고 당당하고 가오가 있어.

all right(괜찮아)

사람들이 널 비웃도록 가만두지 마.

all right(괜찮아)

혼자 있지 말고 거리로 나가.

all right(괜찮아)

I wanna Go back(나는 돌아가고 싶어.)

나의 이십 대.

I wanna Go back(나는 돌아가고 싶어.)

나의 이십 대.”

은우는 생각했다.

‘내가 부른 노래보다 힘이 있고 빠르고 강렬해. 노래인데 노래 같지 않고 마법의 주문 같기도 해. 하지만 멋있다. 잘하고 싶어.’

보리가 말했다.

“멍멍(이 노래 멋진데. 수학적으로 볼 때 말이야. 비트 쪼개기가 예술이야. 박자를 이렇게 엇박으로 말이지. 내가 전생에 수학과 음악이 이렇게 비슷한 걸 알았더라면 그때도 많이 들었을 텐데 말이지. 근데 부를 수 있겠어?)”

은우는 고민이 됐다.

‘어렵다고 한 게 이유가 있는 거 같긴 하다. 슈퍼보이즈 노래는 중간중간 랩이 섞인 느낌이었는데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랩인 거 같아. 정신이 없어.’

은우가 보리에게 말했다.

“연습할 시갸니 피료해.”

은우는 노래를 들으면서 따라 했다.

“아 어너 꼬우 백. 냐이 이십 때.

아 어너 꼬우 백. 냐이 이십 때.”

보리가 말했다.

“멍멍(왜 이러셔. 전설의 파리넬리가 랩 하나에 쫄고 말이지? 이래서야 되겠어? 세기의 천재가.)”

“그견 타고냔 거또 이찌먄 어릴 때부터 연스블 마니 해서 그런 거라고. 니갸 몰라서 그러치. 내갸 전전생에 노래를 얼먀냐 불런는지 아랴? 아뺘량 형이 노래 연스블 모기 실 때꺄지 시켜떠.”

“멍멍(역시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인가? 하긴 나도 내가 페르마의 정리를 풀 수 있었던 건 내가 똑똑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매일 밥 먹는 시간 빼곤 수학만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을 거야.)”

은우가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시작했다.

“오 냐으 슬픈 20때.

냐는 키도 자꼬 가난하고 칭규도 엄떠.

이런 냘 사람드른 비우서찌.

루저.”

은우가 노래를 하다가 멈췄다.

“다이나믹 트리오가 햐던 거량 달라.”

은우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재능을 불러오까? 뮤슨 재능을 불러야 대지?”

“멍멍(어려운데. 이미 넌 칼리오페의 재능도 가지고 있잖아. 시간이 지나서 연습을 많이 하면 랩도 잘하게 될 거야. 기운 내.)”

“하지먄 곧 음뱌니 나온단 마리야.”

***

명석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한국대학교 소아암 병동에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지난번에 비해 백혈구 수치가 많이 좋아졌어요. 약을 좀 줄여도 될 것 같습니다.”

명석이 엄마는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선생님,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좀 더 두고 봐야 해요. 어머님. 하지만 저도 기쁘네요. 계속 수치 변동이 심해서 걱정이었는데 세 달 전부터 수치가 점점 좋아지더니 이제 안정권으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명석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명석아 수고했어. 앞으로도 밥 잘 먹고 컨디션 조절 잘하자. 파이팅.”

명석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떤생님. 그러면 저 노리터 가두 대요?”

명석이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명석이가 놀이터 가는 게 소원인데 그동안은 위험하다고 못 가게 했거든요. 전엔 가만히 있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코피가 나 있기도 하고 그래서요. 혹시 피가 안 멈출까 봐.”

의사 선생님이 명석이를 보며 말했다.

“날도 따뜻해졌으니 너무 길지 않으면 나가 보는 것도 좋겠구나. 대신 너무 심하게 놀지는 말고.”

“이야, 나 놀이터 갈 수 있다.”

명석이는 신이 나서 진료실 안에서 방방 뛰었다.

명석이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명석이 오랜 소원이었어요. 다른 아기들한텐 일상적인 건데 명석이에겐 할 수 없는 일이었죠.”

의사 선생님이 명석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명석이에게도 일상이 될 겁니다. 어머님. 소아암이란 게 그렇거든요. 원인을 몰라 치료가 힘들지만, 완치율은 성인에 비하면 높은 편이어서요. 명석이는 자꾸 수치가 변해서 힘들었지만 완치할 수 있을 겁니다. 꼭.”

명석이는 진료실 앞으로 나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은우랑 가치 노리터 가고 시퍼요.”

엄마가 은우의 전화번호를 눌러서 명석이에게 주었다.

“은우야, 나 명서긴데 노리터 갈 뚜 이떠?”

***

은우와 명석이는 함께 은우네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있었다.

은우가 시소에 앉으며 말했다.

“명서가 가치 시소 탈래?”

“이거 안 무서어?”

“재미떠. 여기 안자뱌.”

명석이와 은우는 시소의 반대편에 앉았다.

“어, 이땅해. 왜 나만 올라가찌?”

“내갸 무거어서 그래. 잠꺈만. 다리를 이러케 땅에 대고 이떠뱌.”

은우는 한 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대따.”

시소의 수평이 맞았다.

은우가 발을 구르자 명석이가 위로 올라갔다.

“헤헤헤헤헤헤. 머리갸 하늘까지 다을 거 가탸.”

신이 난 명석이가 웃었다.

명석이가 발을 구르자 은우가 위로 올라갔다.

“헤헤헤헤헤헤. 머리갸 하늘꺄지 자랴랴.”

은우가 발을 구르자 명석이가 위로 올라갔다.

“헤헤헤헤헤헤. 공룡변신 로봇!”

명석이가 발을 구르자 은우가 위로 올라갔다.

“헤헤헤헤헤헤. 톡톡 사턍이 하느레서 터진댜.”

은우와 명석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은우가 말했다.

“져기 모래로 두꺼비한테 새집 달랴고 하꺄?”

“그게 머야.”

은우가 명석이에게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뚜꺼뱌. 두꺼뱌. 헌 집 주께. 새집 댜오.”

명석이는 함께 손 위에 모래로 언덕을 만들며 노래를 불렀다.

“뚜꺼뱌. 두꺼뱌. 헌 집 주께. 새집 댜오.”

명석이가 은우에게 물었다.

“우리한테 새지블 주면 두꺼비는 어디서 사랴? 두꺼비 불땅해.”

“우리갸 두꺼비 집 지어주쟈.”

은우와 명석이가 두꺼비 집을 지으며 새 노래를 불렀다.

“두꺼뱌 두꺼뱌 새집 줄게. 오래 샤랴.”

명석이와 은우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다가 하늘을 보고 모랫바닥에 누웠다.

명석이가 은우에게 말했다.

“모래갸 푹띤푹씬해.”

“응, 모래는 챰 재미떠. 모래 노리도 재미꼬. 댜으메 냐랑 바댜에 가쟈.”

명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은우는 생각했다.

‘명석이랑 같이 재밌게 놀고 날씨도 좋고 참 행복하다. 절로 노래가 나오네.’

은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 냐으 슬픈 20때.

냐는 키도 자꼬 가난하고 칭규도 엄떠.

이런 냘 사람드른 비우서찌.

루저.”

명석이가 은우의 노래를 듣더니 숨이 넘어갈 듯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큭큭큭.”

“왜 우서?”

“그 노래 먀리야. 너무 우겨. 뮤슨 아죠씨 노래 가쨔나. 그게 머야. 대체. 아기드른 댜 키갸 작쟈나. 키갸 크면 이땅해. 노래도 이땅하고 가샤도 이땅해.”

“그러케 이상해?”

다이나믹 트리오의 노래가 멋지다고만 생각했던 은우는 명석이의 의외의 반응에 놀랐다.

‘이상하네. 분명 멋지다고 할 줄 알았는데.’

명석이가 말했다.

“그 노래 부른 샤람 며 싸리야?”

“아먀도 어른일 거야.”

“그래, 그래서 그러케 가샤가 아죠씨 같은가. 가샤가 이땅해.”

“이건 래비라고 햐능 거야. 내갸 몯 불러셔 그런갸.”

은우가 키즈폰을 꺼내서 다이나믹 트리오의 ‘자화상’을 틀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난 30대.

머리가 벗겨지고 체력이 떨어져

거울 속의 내가 늙어가네.

이대로 날 두고 볼 순 없어.

나는 젊고 당당하고 가오가 있어.

all right(괜찮아)

사람들이 널 비웃도록 가만두지 마.

all right(괜찮아)

혼자 있지 말고 거리로 나가.

all right(괜찮아)

I wanna Go back(나는 돌아가고 싶어.)

나의 이십 대.

I wanna Go back(나는 돌아가고 싶어.)

나의 이십 대.”

노래가 끝나자 명석이가 말했다.

“은우야 너는 네 노래를 할 때갸 머쪄. 내갸 아는 내 칭규 은우는 누구보댜 머쪄. 세상에서 젤로 머쪄. 그러니꺄 저런 아죠씨 노래 따랴 하지 먀.”

은우는 생각했다.

‘내 노래에 랩이 들어가야 하니까 그렇지. 명석이는 아마 랩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저런 걸 거야.’

명석이가 모랫바닥에 누워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냐능 어릴 때뷰터 병언에서 사라떠.

너뮤 마니 주샤를 마쟈서 혈과니 사랴져찌.

주샤가 무서어서 밤마댜 우러떠.

아픈 건 실치먄 주샤도 약도 시러.

이제 병언 그만 오고 시퍼요.

하지먄 나 때무네 속샹해하는 엄먀 때문에

그 먀를 하지 모해떠.

냐는 쟐못한 게 엄는데 자꾸 아파요.

냐는 쟐못한 게 엄는데 자꾸 아파요.

냐는 화낼 슈갸 엄떠요.

이제는 울 힘도 엄떠요.”

은우는 명석이의 말이 너무나도 좋았다.

‘천천히 자신의 감정을 싣는다. 박자는 감정을 따라간다. 비트가 빠르지 않아도 박자에 감정을 실을 수 있다면 그것이 랩이다.

멋있어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진심이 담기면 그게 가장 멋진 랩이다.

내가 하는 랩은 어른의 흉내여서는 안 돼. 나는 어른처럼 정확하고 빠른 발음을 하기 힘들 수도 있어. 내가 하는 랩은 내 나이에 어울려야 해. 나만 할 수 있는 랩이어야만 해.

그리고 명석이처럼 나의 이야기를 담을 것.’

은우는 일어나서 명석이에게 뽀뽀를 했다.

“명서갸 고마어. 넌 역시 내 칭규 일호야.”

***

엄태훈은 큐레이터 엄흥미와 함께 은우의 그림을 보는 중이었다.

“이번에 우리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의 빈공간을 활용해 이 작품을 전시하려고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엄흥미는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풍선껌 포장지와 과자 상자에 그린 그림이라니 신선한데. 게다가 소재가 너무 따뜻하고 참신해. 일상적인 소재에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감정들을 잡아서 그린 것 같아.

강아지 표정도, 아이들의 표정도 어쩜 이렇게 생생하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대상을 표현했어. 기법도 조금 바뀌었고. 하지만 신기한 건 기법과 대상이 바뀌어도 그림 속에서 흐르고 있는 공통된 감정은 변하지 않아. 대상에 대한 사랑. 이건 사랑이 담긴 그림이야.’

엄흥미가 엄태훈에게 물었다.

“어느 작가의 그림인가요? 너무 좋은데요.”

“신인 작가인데 얼굴을 숨기고 활동하기로 했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앞으로 ‘카를로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거야.”

“외국인인가요?”

“그건 비밀로 하기로 했다네.”

“아버지. 딸에게도 비밀인가요? 저한텐 말해주셔야죠.”

엄태훈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잖니. 만약 내가 너에게 그 그림의 주인을 말한다면 그 그림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서 그렇단다.”

엄흥미는 엄태훈의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화가라면 누구나 명예를 얻고 싶어 하는데. 아무리 빈공간이라지만 신인 화가가 학익미술관에서 전시를 한 것만으로도 경력이 될 텐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다니 특이한 사람이네.’

엄흥미가 말했다.

“알았어요. 관장님. 어쨌든 관장님의 그림 보는 눈은 여전히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신선한 그림은 처음이에요. 우리나라 관람객들은 피카소, 반 고흐, 자코메티 같은 유명한 외국 화가들을 선호하죠. 전시도 그런 작가들이 아니면 성공을 거두기 힘들고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외국 화가만 소개하는 것도 한국 큐레이터로서 못할 일이니까요.”

“이해해 줄 줄 알았다. 우리나라 미술계에도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지. 이 그림은 뭐랄까 척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해. 난 그게 좋더라. 어려운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거. 예로부터 대가들의 그림이 그랬지. 피카소도 좋지만 난 입체파와 같은 사조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한국 화가들의 그림이 더 좋았어.”

“박수근 선생의 그림이나 이중섭 선생의 그림엔 그런 것들이 있었죠. 그분들이 살았던 시대가 어려워서 더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요.”

“우리 시대에도 그런 화가가 나올 수 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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