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첫 번째 음반 (3)

광준이 점원에게 물었다.

“이 가게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게 뭐예요?”

“버라이어티팩요.”

“그 제품 얼만가요?”

“이만 원요.”

“그럼 그거 얼마까지 할인해 줄 수 있어요?”

“그건 제가 못하는데요. 사장님한테 말씀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사장님께 전화 좀 해 주세요.”

점원이 전화를 걸자 사장이 전화를 받아 연기를 시작했다.

“네, 무지개 마카롱 사장입니다.”

“사장님, 저희 네고맨인데요. 버라이어티팩 할인 좀 해 주세요.”

“그건 할인해 준 적이 없는데. 일단 만나서 얘기하죠.”

광준이 전화를 끊고 사장을 기다리며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는 마카롱 말고 뭐 좋아해요?”

은우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팝핑 캔디를 꺼냈다.

광준이 대답했다.

“이거 형아 주는 거야? 먹으라고? 고맙네.”

카메라 앞에 팝핑 캔디를 대어 보여주며 사탕 껍질을 벗겼다.

“은우가 나 좋아하나 봐. 사탕도 주고. 역시 잘생긴 사람은 아기들이 더 잘 알아본다니까.”

광준이 자랑스럽게 사탕을 입 안에 넣었다.

“으악, 이게 뭐야? 이거 어릴 때 사 먹던 불량식품 사탕 아니야. 입 안에서 톡톡 튀기는 거. 나 이거 진짜 싫어하는데. 은우야. 너 나 골탕먹이려고 그런 거지?”

은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마디뗘요. 톡토기 사턍.”

광준은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로 말했다.

“형아는 이 사탕 싫어해. 너 먹어.”

사장님이 가게 문을 열고 도착했다.

은우가 달려가서 사장의 다리를 안았다.

“하뷰지.”

광준이 사장에게 물었다.

“은우랑은 어떻게 아시는 사이이신가요?”

“은우가 저희 가게 단골이에요. 미국에서 돌아오고 난 뒤부터 저희 가게에 자주 왔어요. 마카롱 사러 매주 오고 있어요.”

은우가 카메라 앞에서 브이를 그리며 말했다.

“마디떠요.”

광준이 은우에게 속삭였다.

“은우야 오늘은 네가 도와줘야겠다.”

광준이 억양을 높이며 말했다.

“오늘의 네고맨. 마카롱 버라이어티팩 오십 프로 할인 가나요?”

사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마카롱의 질을 떨어뜨리라는 소리예요. 저희 마카롱은 원료가 비싸요. 그래서 맛있는 거구요.”

“진짜 마디떠요.”

은우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광준이 마카롱을 들고 말했다.

“일단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광준이 마카롱을 입에 넣으려 하자 은우가 말렸다.

“횬아, 그게 아니에요.”

은우는 마카롱 두 개의 포장을 뜯어 양손에 쥐고 한 입씩 베어 무는 시범을 보였다.

“이러케 머거야 마디떠요.”

광준은 은우를 따라 서로 다른 맛의 마카롱 두 개의 포장을 뜯어 양손에 쥐고 한 입씩 베어서 먹었다.

“와아, 진짜 맛있다. 인정. 인정. 은우 마카롱 좀 먹을 줄 아는데? 사탕이랑은 완전 달랐어.”

광준이 사장에게 말했다.

“최고의 마카롱으로 인정합니다. 오십 프로가 너무 많으면 원하는 할인 폭을 저희에게 제시해 주세요.”

사장이 고민 끝에 대답했다.

“십 프로.”

“너무 작아요.”

“십오 프로.”

“너무 작아요. 자 그럼 우리 은우에게 물어볼까요? 은우야 몇 프로?”

“이십 프로.”

광준이 은우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은우야 그럼 아기들이 많이 못 먹잖아. 삼십 프로 해.”

할아버지가 은우의 귀에 대고 말했다.

“그럼 할아버지가 가난해지잖아. 이십 프로만 해.”

은우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어른한테능 이십 프로, 아가들에겐 삼십 프로.”

광준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솔로몬인데요.”

사장도 기뻐하며 말했다.

“좋은 생각 같아요.”

“자, 오늘의 네고맨. 문래동의 무지개 마카롱, 어른에겐 이십 프로 아기에겐 삼십 프로 할인율 이 주간 제공합니다. 오늘은 은우의 활약이 컸네요.”

은우가 양손에 든 마카롱을 한 입씩 베어 물며 노래했다.

“뮤지개빛 마캬룡.

달콤한 비처럼 달콤한 꿈.

이뱐에서 샤르르

우리 샤이도 샤르르

지치고 힘든 냘

너는 샤르르 냐를 감싸네.

외롭꼬 울고 시픈 냘

너는 샤르르 냐를 감싸네.

난 네갸 조아 마캬룡.

난 네갸 너뮤 조아 마캬롱.

내일도 함께 해.

모래도 함께 해.”

***

이철과 강라온, 윤기세, 정미나가 함께 모여서 은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냐하떼요. 떤생님들.”

은우가 인사를 하며 강라온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이철이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티비 잘 봤어. 네고맨은 언제 나갔니?”

강라온이 말을 이었다.

“그니까. 그거 분명히 태현이한테도 출연 신청 들어와서 태현이가 거절했다고 했는데 은우가 나오더라. 깜짝 놀랐어.”

“아빠랑 가치 마카롱 머꼬 이떠는데 광준이 횬아갸 갑자기 나타나떠요.”

“아무래도 수상해. 거길 그렇게 갑자기 촬영 왔다는 게 말이 돼? 은우가 나타날 걸 알고 있었던 거 아닐까?”

윤기세가 대답했다.

“그랬을 것 같지만 뭐라고 할 수야 있나요? 이미 방송은 나갔고 그래도 시청자들은 은우 귀여웠다고 좋아하던데요. 은우가 요새 티비에 안 나와서 슬펐는데 은우 봐서 좋았다고요.”

정미나가 방긋 웃으며 마카롱 봉지를 들어 올렸다.

“거기 진짜 맛있어요. 은우 덕분에 저도 맛집도 알게 되고 할인가로 잘 샀어요. 마카롱 진짜 좋아하는데 그렇게 다양한 맛이 있는 마카롱집은 처음 봤어요. 네고맨 재밌어요.”

강라온이 정미나를 보더니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뭐 다 좋게 생각하는 게 좋지. 이미 지난걸. 근데 은우야. 그 마카롱 노래 너무 좋더라. 버리기 아까워. 마카롱 광고라도 들어오면 좋을 텐데.”

정미나도 맞장구치며 말했다.

“맞아요. 저도 그 방송 보다가 네고맨은 좀 비급 감성 같은 프론데 너무 고운 목소리에 아름다운 발라드가 흘러나와서 당황했어요. 노래 진짜 아까워. 근데 은우 점점 작곡 실력이 느는 거 같아요.”

은우가 그 말을 듣고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 한 곡 또 먄드러떠요.”

정미나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곡이야? 기대된다.”

“내 친구. 이보이요.”

“보리에 대한 곡이구나.”

은우가 키즈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내 칭규 보이. 새까먄 코가 너무 기여어.

부드러운 꼬리로 냐를 반기면 냐는 세상에서 갸장 행복햔 샤람.

너능 냐의 초콜릿

너능 냐의 마카롱

너능 냐의 공룡변신로봇

세상에서 갸장 조은 너.

우린 함께 장냐늘 치고

우린 함께 사교도 치고

우린 함께 혼냐고

그래도 너와 함께 이뜨면

모든 거시 추억.

함께 거러온 시간쳐럼

야프로도 냔 너와 함께

따뜨탄 이 빋쏙을 영언히.”

정미나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릴 적 나에게도 보리 같은 강아지가 있었지.

학교가 끝나면 꼬리를 흔들며 대문 앞에서 날 기다리던 우리 뽀식이.

그런데 어느 날 뽀식이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어.

하루 종일 온 동네를 다니며 뽀식이를 찾으러 다녀도 보이지 않았어.

내가 너무 울자, 엄마가 그제서야 말씀하셨지.

뽀식이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다음 달에 이사 가야 하는 집에서는 뽀식이를 기를 수 없어.

개장수에게 팔아버렸다고.

난 이사 가지 않겠다고 목 놓아 울며 뽀식이를 찾아오라고 떼를 썼지만 뽀식이를 찾을 수는 없었어.

이사 간 집은 새로 지은 멋진 아파트였지만 난 그 집이 싫었어. 뽀식이가 없어서.

뽀식아 어딨니? 그때 정말 미안했어.

내가 널 정말 사랑했단다. 나의 작은 친구.’

정미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철은 노래를 들으며 어린 시절 키웠던 고양이를 떠올렸다.

12살이던 이철의 눈앞에 길모퉁이에서 울고 있는 아기 고양이가 보였다.

‘고양이 엄마는 어디 갔지? 배가 고픈가? 곧 죽을 거 같아.’

이철은 아기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왔다.

이철은 수건을 꺼내 고양이를 감쌌다. 그런데도 추운지 고양이는 계속해서 몸을 떨었다. 이철은 드라이기를 꺼내 고양이의 몸을 데워주었다.

‘곧 엄마, 아빠가 올 시간이야. 울면 안 돼. 부탁한다. 야옹아.’

야옹이는 신기하게 부모님이 계실 때면 울지 않았다.

이철은 자신의 책상 아래 상자를 넣고 고양이를 숨겨두었다.

‘어린 고양이는 뭘 먹을까?’

이철은 저금통을 털었다. 저금통에서 나온 돈은 총 오천이백 원이었다. 이철은 슈퍼로 달려갔다.

“아줌마 이걸로 고양이 먹이 살 수 있어요?”

“고양이? 고양이 먹이는 여기 없는데. 근데 몇 살인데? 큰 고양이야?”

“아기 고양이 같아요.”

“그럼 우유 주면 되지.”

이철은 고양이를 위해 우유를 샀다.

고양이는 우유를 먹고 쑥쑥 자랐다. 이철은 하얀 양말을 신은 것 같은 두 발이 너무 귀여워 고양이에게 양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여운 나의 양말이.’

이철의 친구들이 양말이를 보러 놀러 왔다.

“고양이 너무 이쁘다. 이름이 뭐야?”

“양말이.”

“이렇게 이쁜 고양이가 길에 버려져 있었다고?”

“응, 엄마가 버린 거 같아.”

“불쌍하다.”

양말이는 친구들 앞에서도 이철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

이철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야옹하고 울었다.

“널 진짜 좋아한다.”

“날 엄마로 아는 거 같아. 내가 없으면 불안해하더라고.”

이철은 양말이를 만난 뒤로 학교에 가는 것이 싫어졌다.

학교에 가면 양말이를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의 소중한 양말아. 학교를 졸업하면 나는 매일 너랑 있고 싶어. 나는 슈퍼 사장이 될 거야. 그럼 우린 매일 같이 있을 수 있고, 넌 매일 네가 좋아하는 참치를 신나게 먹겠지?’

윤기세는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병아리 삐약이를 떠올렸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윤기세는 학교를 마치고 정문 앞에서 들리는 병아리 소리에 눈길을 뺏겼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작은 상자에 병아리를 잔뜩 담아놓고 팔고 계셨다.

윤기세는 처음 본 병아리가 너무 좋았다.

‘너무 작고 귀여워. 매일 보고 싶다.’

“햘모니 이거 얼먀에요?”

“오백 원.”

윤기세가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자 천 원을 본 할머니가 말했다.

“사료도 사 가야 해. 이거 병아리 밥니까 여러 개 사 가.”

“사료능 얼먀에요?”

“한 봉지에 백 원.”

윤기세는 사료를 든 비닐봉지를 팔에 끼고 병아리를 소중하게 손에 안은 채 집에 왔다.

윤기세는 작은 상자에 신문지를 깔고 병아리를 넣어주었다.

물그릇과 사료 그릇도 넣어주었다.

“삐약삐약하고 우니까 삐야기. 네 이름은 삐야기야.”

윤기세는 삐약이가 예뻐서 놀다가도 자꾸만 삐약이를 보러 갔다.

삐약이는 서서 울거나 잠을 자거나 했다.

엄마가 윤기세에게 말했다.

“병아리 자꾸 쳐다보면 아파. 쉬게 내버려둬.”

하지만 윤기세는 병아리가 너무 좋았다.

‘처음 생긴 내 동생 같아. 작고 귀엽고 내가 지켜주어야 하는 어떤 것.’

윤기세는 병아리 상자 옆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삐약이는 물도 잘 마시지 않고 먹이도 잘 먹지 않았다.

기세는 삐약이가 걱정돼서 삐약이를 상자에서 꺼내 안고 기도했다.

‘하느님 삐약이를 살려주세요. 제가 착한 일 많이 할게요. 제발 부탁이에요.’

다음 날 아침 기세가 일어났을 때 삐약이는 축 늘어져 죽어있었다.

기세는 하느님을 원망했다.

‘나빠요. 하느님. 왜 삐약이를 데려가셨어요. 착한 사람 소원은 들어준다고 학교에서 배웠단 말이에요. 삐약이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병아리였단 말이에요.’

어른이 된 기세는 생각했다.

‘그건 하느님의 잘못이 아니었어.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사실은 아파서 양계장에서 상품 가치가 없어진 것들을 헐값에 파는 거였단 걸. 어쩌면 삐약이는 날 만났던 그 순간부터 아팠던 건지도 몰라. 너의 아픔을 몰라서 미안해. 삐약야. 어쩜 넌 아픔을 숨기고 그렇게 예쁘게 삐약거리고 있었던 것일까.

삐약아. 넌 내게 처음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었어. 늘 그리워한단다. 나의 작은 친구야.’

강라온이 어릴 적 자신이 기르던 거북이를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닌자자라라는 만화가 유행했었지. 난 그 만화를 보고 엄마랑 같이 시장에 가서 거북이 두 마리를 사 왔어. 어항 속에 돌과 모래를 깔고 물을 부은 다음 거북이를 넣었지. 거북이는 잘 지냈어. 거북이를 팔던 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멸치나 밥풀 같은 걸 넣어주었어. 거북이는 잘 먹고 잘 자랐지.

가끔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실 때면 거실에 꺼내놓고 경주를 하곤 했는데 말야. 두 마리 다 방향을 못 잡아서 제대로 된 경주는 못 했지만. 재밌었어.

그땐 꿈을 자주 꿨었는데 꿈속에선 내 거북이들이 닌자가 돼서 멋지게 싸우곤 했지. 그때 난 커서 닌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거북이들과 동료가 돼서 멋지게 싸울 거라고 다짐하곤 했었지.’

은우의 노래가 끝나자 네 사람은 모두 가슴이 먹먹해져 있었다.

강라온이 말했다.

“너무 좋다. 이건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 좋아.”

윤기세가 코를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

“울어라 병아리에 이은 명곡인데요. 두고두고 기억할 명곡이 될 거 같아요.”

정미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감성이 보통이 아니에요. 은우는 보리를 생각하며 만든 곡인 거 같은데 전 제 강아지가 떠올랐거든요.”

이철도 맞장구쳤다.

“전 제 고양이요. 다들 어렸을 때 동물 친구 가져본 적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순수했던 그 기억이요. 이 노래를 들으면 그 기억이 떠올라요.”

강라온이 말했다.

“다들 눈물 좀 닦고 이야기하자고. 눈가가 촉촉해졌어.”

***

은우는 백인수의 양복점에 놀러와 있었다.

“은우야 새로 그린 그림은 없니? 할아버지가 왜 전에 부탁했잖아. 그림 그리면 가져오라고.”

은우가 공룡변신 로봇 가방에서 그림을 꺼냈다.

“가져 와떠요. 하뷰지. 여기떠요.”

백인수는 은우가 그린 그림을 펼쳐 보았다.

‘이번에 그린 그림은 스케치북에 그렸네. 민들레를 그렸네. 그런데 민들레 꽃과 민들레 홀씨가 같이 있잖아. 민들레 꽃이 져야 민들레 홀씨가 만들어지는 건데. 왜 이렇게 그런 거지?

게다가 민들레 꽃이 밴드를 감고 있잖아. 이건 뭐지?’

백인수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민들레는 왜 밴드를 감고 있어?”

“하뷰지. 그거요. 민들레갸 다쳐서요. 어린이지베서 감아떠요. 민들레갸 아플까 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