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첫 번째 음반 (2)
최지훈 PD가 HO 엔터테인먼트로 전화를 걸어 스케줄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네고맨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시즌 1 마무리를 하는데 은우가 출연할 수 있을까 하고요.”
태현은 난색을 표했다.
“은우가 음반 준비 중이어서 힘들어요. 음반 나오기 전까진 예능 출연이 없을 거예요.”
“출연료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는데요.”
“출연료 문제는 아니고요. 아시잖아요? 강라온 대표님 성격. 저도 제 맘대로 은우 스케줄을 잡을 입장이 아니라서.”
“그럼 이번에 출연해 주시면 시즌 2에서 은우 신곡 제가 편집하면서 많이 넣을게요. 부탁드려요.”
“죄송해요. PD님. 그리고 은우 나이가 어려서 네고맨은 저도 좀 걸려요.”
최지훈 PD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우조연상 콧대 한번 세네. 우리 프로가 어때서? 우리 프로도 소비자들한테 좋은 물건 싸게 해 주고. 경기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기업도 좋고 소비자도 좋고 괜찮은 프로라고.”
지나가던 정지우 작가가 최지훈 PD를 보고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에요? PD님. 요새 우리 프로 시청률 최고라서 신나 하실 줄 알았더니. 시즌 2까지 확정됐는데 표정이 왜 그래요?”
“내가 은우를 출연시키고 싶었는데 HO 엔터에서 매몰차게 거절하더라구. 월드 스타라 이건가.”
“시즌 1 때도 그랬잖아요. 처음엔 우리 회사 섭외도 못 해서 난리였잖아요. 회사 섭외 못 하는 거보단 게스트 섭외가 안 되는 게 훨씬 낫다. 대신 우리 MC 광준 씨가 잘하겠죠. 광준 씨가 일당백이잖아요. 게스트 없으면 그냥 단독으로 갑시다.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가요.”
정지우 작가는 최지훈 PD를 자신의 차에 태웠다.
“PD님 집엔 언제 가셨어요?”
“나 기억에 없지. 시즌 2가 확정됐는데 무슨 집이야.”
“이혼 안 당하는 게 신기한 거 알아요? 집에도 좀 가고 맛있는 것도 좀 먹고 그래요. 매일 일만 하지 말고.”
“나한텐 시청률 순위표가 더 중요하다고. 우리 네고맨이 예능프로 1위가 되는 날까지 휴일은 없다.”
“하여튼 일 중독이라니까. 다 왔어요.”
정지우 작가가 차를 댔다.
최지훈 PD는 작은 커피숍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고깃집도 아니고? 여긴 대체 어디야? 맛있는 거 사준다며?”
“이 집 맛집이에요. 마카롱 맛집이요. 디저트가 다 맛있는데 특히 마카롱이 맛있어요. 한번 먹어보면 달라질걸요.”
“마카롱 그 달고 비싼 간식. 간식은 간식이지. 난 고기가 좋다고 고기.”
“찡찡거리지 말고 어서 들어와요.”
정지우 작가가 최지훈 PD를 잡아끌었다.
“정 작가. 진짜 고마워.”
최지훈 PD가 갑자기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왜 저러는 거야?”
정지우 작가는 최지훈 PD의 변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지우 작가가 자리에 앉자 최지훈 PD가 말했다.
“저기 봐. 은우 아니야? 은우 맞지?”
“정말 은우네요. 거봐요. 여기 맛집 맞다고 했잖아요.”
“고마워. 내가.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은우는 창현과 함께 마카롱을 먹고 있었다.
양손 가득 마카롱은 든 채로 교대로 먹고 있었다.
‘마카롱은 맛있어. 이렇게 서로 다른 맛 두 개를 손에 들고 먹으면 꿀맛이란 말이지. 이 집은 마카롱 종류가 30개나 돼서 너무 좋아. 아빠가 하루에 5개 이상은 먹지 말라고 했는데. 아 더 먹고 싶다.’
최지훈 PD는 은우를 유심히 보았다.
‘마카롱을 양손에 가득 들고 먹고 있는 걸 보면 마카롱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금방 이 가게에서 나가지 않을 건 확실해.’
최지훈 PD는 정지우 작가에게 말했다.
“나 급하게 전화 좀 한 통 할게.”
최지훈 PD는 막내 PD 지정운에게 전화했다.
“여기 문래동에 있는 마카롱집인데 내가 주소 찍을 테니 MC 광준이랑 카메라맨 하나만 달고 촬영 와. 지금 당장.”
“지금 당장이요? 광준 씨 스케줄이 어떤지도 모르는데요?”
“빨리 연락해 봐. 빨리.”
“알았어요. 지금 당장 해 보긴 하겠습니다.”
정지우 작가는 최지훈 PD 몫의 마카롱과 차까지 주문해놓고 최지훈 PD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오셔서도 계속 일하시는 거예요?”
“일이 잘될 때가 가장 기분 좋은 거야. 마카롱 맛있겠다. 근데 여기 마카롱 가격이 얼마야?”
네고왕은 가격흥정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기간을 정해 상품의 가격을 할인해 주는 프로.
촬영을 위해선 가격을 미리 알아두는 게 필요했다.
정지우 작가가 대답했다.
“하여튼 직업 정신 투철하신 건 알아드려야 한다니까. 개당 2500원 정도인데. 맛마다 가격이 달라요. 비싼 건 비싸고 그렇죠. 보통은 버라이어티팩이라고 종류별로 들어있는 게 있는데 그걸 많이 사 가요.”
최지훈 PD는 순간 감이 왔다.
“그걸 할인하는 게 가장 좋겠네. 버라이어티팩 가격은?”
“저기 써져 있어요. 이만 원요. 직업 정신 투철한 건 좋은데, 가게 좀 둘러봐요. 다 써져 있는 걸 물어보지 말고.”
그때 최지훈 PD의 휴대폰이 울렸다.
“PD님 광준 씨가 다행히 스케줄 비어있다고 하네요. 급하다고 했더니 마카롱집으로 바로 온대요. 카메라맨이랑 저도 방금 출발했고요. 근데 그 가게 촬영허락은 받으신 거죠?”
“그럼.”
최지훈 PD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안 되면 되게 하는 거지. 모든 일이 그런 거라고.’
최지훈 PD는 점원에게로 가서 명함을 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네고맨 최지훈 PD입니다. 혹시 저희 프로 보셨나요?”
점원은 흥분하며 말했다.
“요즘 제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예요. 얼마 전에 스킨테라피 화장품 사려고 했는데 홈페이지 서버 다운돼서 얼마나 고생했던지. 요새 그 프로 다들 좋아하잖아요.”
최지훈 PD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장님 계시면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점원이 사장에게 전화를 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 네고맨의 최지훈 PD라고 합니다. 오늘 가게에서 촬영을 좀 하고 싶은데 가능하신지 여쭤보려고요.”
전화기 너머로 60대 남자 노인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네고맨이 뭐예요? 티비 촬영이라면 우린 그런 거 안 합니다. 그런 거 안 해도 장사 잘돼요.”
최지훈 PD는 예상치 못한 사장님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사장님 나이가 여지껏 만난 사장님 중 가장 많은 거 같은데 이걸 어떻게 설득하지? 쉽지 않겠는데.’
MC 광준은 차에서 내리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니, 뭐 내가 자기가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는 오 분 대기조인가? 아무리 안 유명하고 스케줄이 없어도 그렇지. 그래도 내가 연예인인데 미용실 갈 시간도 없이 차에서 셀프 메이크업을 하다니.”
지정운 PD는 그런 광준을 보며 웃었다.
‘또 시작했군. 우리 투덜이 스머프.’
최지훈 PD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게 안으로 MC 광준과 카메라맨. 막내 PD 지정운이 들어왔다.
점원이 광준을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네고맨이다.”
광준은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 이놈의 인기.”
광준은 가게를 둘러보다가 마카롱을 먹고 있는 은우를 발견했다.
“아니 잠깐만 얘 은우 아니에요? 이은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받은 아기?”
은우가 광준을 보며 수줍게 손을 들었다.
“네. 마쟈요. 제갸 은우임니댜. 만나서 뱐가워요. 횬아.”
“아이구. 얘 좀 봐. 실제로 보니까 더 귀엽다. 너. 근데 너 진짜 좋겠다. 어른도 받기 힘든 아카데미상을 다 받고. 오늘 여기 은우가 다 쏴야 하는 거 아니야?”
지정운 PD가 광준을 말리며 말했다.
“미안해. 은우야. 이 삼촌이 계속 방송에서 이런 캐릭터여가지고 그런데. 실제 성격도 방송이랑 똑같은 사람이야. 그치만 형들이 잘 막아줄게. 애기한테 뭘 사라는 거야. 대체. 아직 촬영 시작 안 했어. 정신 차려.”
“그냥 한 말이지. 뭐. 근데 잘 됐다. 은우 있으면 시청률 오를 텐데. 헤드라인 딱 잡히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이은우. 네고맨 출연. 시즌 2까지 시청률 견인되겠는데. 은우야. 오늘 우리 프로 출연할래?”
은우는 뭐가 뭔지 몰라서 웃으면서 목을 짧게 움츠러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광준이 그 포즈를 흉내 내며 목을 짧게 움츠러트린 채 말했다.
“근데 너 어쩜 이렇게 귀엽니? 실제로 보니 더 귀엽네. 아주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 그냥 얘만 찍어도 시청률 올라가겠는데. 게다가 마카롱 가게야. 가게도 하늘색이랑 민트색 투성이인데 은우까지 있어. 오늘 시청률 대박이겠는데.”
최지훈 PD는 광준의 말을 들으며 빙긋 웃었다.
‘역시 사람 생각이라는 게 다 비슷하다는 거지. 시청자들 생각도 비슷할 테니 시청률은 따 놓은 거나 마찬가지네. 그런데 사장님이 과연 할인을 해 줄까? 가게로 온다고 하긴 하셨는데 아직 촬영허락도 안 떨어진 상태이니.’
최지훈 PD는 은우에게 갔다.
“안녕, 은우야. 혹시 우리 프로 본 적 있어?”
“음. 티비에서 봐떠요. 광준이 횬아갸 샤장님이랑 큰소리 지르는 프로.”
최지훈 PD는 웃으면서 은우에게 설명했다.
“은우는 친구들이랑 흥정해 본 적 있어?”
은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 그러니까 이건 마트 놀이 같은 거야. 마트 놀이해 본 적 있어?”
“혜리니 누나갸 마트 노리 조아해요.”
“천 원짜리를 들고 있는데 내가 사고 싶은 마카롱이 이천 원이면 못 사잖아. 그치?”
“니에 니에 니에.”
“그런데 할인을 해서 이천 원짜리 마카롱이 천 원이 되면 살 수 있지? 마카롱을 할인하게 만드는 게 우리 프로야.”
“와 머찌 프로예요.”
은우는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리자 지팡이를 짚은 60대의 노신사가 가게로 들어왔다. 노신사는 갈색 양복 위에 갈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점원이 노신사를 보고 인사했다.
“사장님. 오셨어요.”
최지훈 PD도 노신사에게 인사했다.
“전화 드렸던 최지훈 PD입니다. 짧게나마 촬영 가능할까 하고요.”
사장이 대답했다.
“정 그러시면 영업에 방해가 안 가게 짧게 촬영해 주세요. 최대한 빨리 끝내주시고요.”
최지훈 PD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거 뭐 흥정은 말도 못 꺼내겠는데.’
갑자기 은우가 사장에게 다가갔다.
“하뷰지.”
“오, 은우 왔구나. 오늘도 마카롱 맛있었어?”
“네, 하뷰지네 마카롱은 체고예요. 세계 체고.”
“은우가 칭찬해 주니 정말 세계 최고가 된 기분인걸.”
사장은 은우를 볼 때마다 자신의 손자를 떠올렸다.
‘아들 녀석과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으면 우리 예쁜 시윤이를 매일 봤을 텐데.
시윤이가 딱 은우 나이인데 말이야.’
사장은 전화 한 통 없는 자신의 아들이 원망스러웠다.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이란 나라로 이민을 가 버리고 말이지.
가려면 손자라도 두고 갈 것이지.’
사장은 볼 수 없는 손자가 그리웠다.
손자가 그리운 만큼 은우가 예뻤다.
‘고 녀석 참. 어쩜 그렇게 이쁘게도 먹는지.’
최지훈 PD는 은우를 보며 깜짝 놀랐다.
‘저 무뚝뚝해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다니. 나한텐 그렇게 차갑게 대하더니 은우한텐 아주 살살 녹네. 저 사장님.’
은우가 말을 이었다.
“하뷰지. 이거 조은 프로래요. 도니 엄떠서 마캬롱 몬 멍는 칭규들 마카롱 머글 수 이께 해 즈는 거래요. 아까 PD 횬아가 그래떠요. 아기드른 마캬롱을 조아하는데 너뮤 비싸요.”
“아기가 사 먹기엔 비싸긴 하지. 보통은 부모님들이 사 주시지만. 은우는 더 많은 친구들이 마카롱을 먹었으면 좋겠어?”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이 최지훈 PD에게 대답했다.
“그럼 촬영을 시작해 봅시다. 난 할인을 하는 게 좋지 않다는 생각이지만. 좋은 물건을 정당한 가격에 주고 사는 게 맞다는 입장이어서 말이요. 하지만 우리 마카롱을 아기들이 좋아하기도 하니까 오늘은 아기의 의견을 따라보겠소.”
최지훈 PD는 생각했다.
‘은우를 만난 게 신의 한 수였어. 은우 아니었으면 마카롱가게 네고 자체가 불가능했겠는걸.’
카메라가 켜지고 광준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네고맨입니다. 오늘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자죠. 이은우 군과 함께합니다. 반갸워요. 은우 군.”
은우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얀냐세요. 횬아, 눈나, 이모, 땀톤, 칭구들.”
“아이고 인사성도 밝아라. 은우는 네고맨 자주 봤어요?”
은우가 당황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우리 은우가 사회생활을 안 했어. 거짓말을 못 해. 자 그럴 땐 안 봤어도 많이 봤어요. 하는 거예요. 은우는 혹시 네고하고 싶은 품목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은우가 광준에게 물었다.
“네고갸 머예요?”
“아 말이 너무 어렵구나. 할인해 주는 거. 물건을 정해서 할인해 주는 거 만 원짜리를 오천 원에 살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거.”
“장난걈. 과쟈. 꼬기.”
“그런 것도 네고하면 좋겠다. 장난감, 과자, 고기 회사들 네고 신청 넣어주시기 바라요. 저희는 오늘 문래동에 한 유명한 마카롱집에 와 있습니다. 이 마카롱 얼마나 맛있지 은우야?”
은우가 팔을 크게 벌리고 매장을 동동거리며 뛰어다녔다. 한참을 뛰더니 카메라 앞으로 와서 말했다.
“이따만큼.”
“아, 이따만큼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뛰어다닌 거야. 아기랑 방송하는 게 처음이라. 은우 정말 귀엽다. 이따만큼.”
광준이 은우를 따라 가게 안을 뛰어다니며 말했다.
“근데 왜 난 안 귀엽지? 은우는 귀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