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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97화 (97/257)

97화. 세상을 바꾸는 사람 (6)

하지만 김진태의 반응은 달랐다.

“몇 살인진 모르지만 저희 한국대로 보내주십시오. 현재 우리 미술계에는 개성 있는 화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다들 외운 실기 답안을 가지고 입시 학원을 돌다가 입학을 한단 말입니다. 그런 학생들 속에서 이 그림은 정말 빛나네요. 이 그림은 백 장 속에 섞어 놓는다 해도 한 번에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한국 미술계에 다시 박수근 화백, 이중섭 화백이 살아난 느낌입니다.”

엄태훈이 김진태를 말리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근데 이미 백인수 씨께서 나에게 미리 말씀을 해주셨다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손자분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고 함께 차를 마시며 미술 이야기하는 도반으로서 초대를 드렸던 것이라네. 그러니 곤란한 질문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함세.”

김진태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개인의 사정도 중요하긴 하지만요. 장차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화가가 사라질까 봐 그러죠. 너무 안타까워서요.”

백인수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김진태가 백인수를 잡으며 말했다.

“제가 실례했다면 용서하세요. 손자분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을 테니 그림이라도 더 보게 해 주십시오.”

백인수가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덕분에 좋은 분들과 차도 마시고 좋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올 테니 오늘 못다 한 이야기는 그때 나누도록 하지요.”

엄태훈이 아쉽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다음에 꼭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손자분의 그림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저희 말고도 많을 테니 말입니다.”

김진태가 주머니 속에서 초대장을 꺼내며 말했다.

“이 주 후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에서 열리는 제 전시회 초대장입니다. 꼭 와 주십시오. 오늘은 제가 너무 흥분해서 실수한 것 같으니 그날 찾아주시면 제가 꼭 맛있는 식사와 차를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꼭 좀 들려주십시오.”

***

은우는 창현의 차를 타고 백수희와 함께 등불축제를 구경하러 가는 길이었다.

은우는 공룡변신 로봇 가면을 쓰고 있었다.

“냐는 지규를 구하러 와따. 샤일런스 박샤는 들어라.”

백수희가 사일런스 박사 가면을 쓰고 대답했다.

“무서워요. 공룡변신 로봇님. 한 번만 봐 주세요. 더 이상 착한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을게요.”

“녀능 이미 너뮤 먀능 잘모슬 저지러따. 나의 레이저빔을 뱌다라.”

은우가 말을 하면서 백수희에게로 손을 뻗었다.

“아아. 역시 공룡변신 로봇은 강하군. 분하다.”

백수희가 장렬하게 죽는 연기를 하며 쓰러졌다.

은우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갸 또 지규를 구해꾼. 샹으로 마카롱을 머거야 게떠.”

백수희가 가방에서 마카롱을 꺼내서 은우에게 주었다.

은우는 마카롱의 포장을 벗겨 입으로 넣으려 하였다.

‘아, 공룡변신 로봇 가면은 평상시엔 너무 멋진데. 마카롱을 먹을 땐 불편하네.’

은우가 낑낑대자 백수희가 은우의 가면을 벗겨주었다.

“먹을 땐 가면을 안 쓰셔도 됩니다. 공룡변신 로봇님.”

창현이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나날이 연기가 드는데요. 수희 씨.”

“은우랑 노는 게 은근히 연기에 큰 도움이 돼요. 전 제가 태어나서 악당을 할 줄은 몰랐거든요. 악녀면 몰라도. 하하하하. 사실 악녀연기는 자신이 없었는데 매일 악당을 하다 보니 악녀연기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은우는 서로 다른 맛의 마카롱을 양손에 들고 한 입씩 베어 물고 있었다.

순간 백수희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공룡변신 로봇님. 저도 마카롱 좀 주십시오.”

은우는 골똘히 고민했다.

‘마카롱 맛있는데. 누나가 먹고 싶다고 하고. 백수희 누나가 좋긴 하지만 어떻게 하지?’

그 모습을 보며 창현이 말했다.

“에이 안 줄걸요. 마카롱은 저도 안 주더라고요. 집에서 저랑 영탁이랑 몇 번 달라고 해 봤는데 안 주더라구요. 은우가. 요새 너무 꽂혔나 봐요.”

백수희는 더욱더 간절한 표정으로 은우를 쳐다보았다.

“공룡변신 로봇님. 한 입만요. 네에.”

은우는 결국 두 눈을 꼭 감고 한 입 베어 문 마카롱을 백수희에게 내밀었다.

백수희는 은우가 내민 마카롱을 받아서 먹으며 말했다.

“주는데요. 은우가. 은우는 저를 더 사랑하나 봐요.”

은우는 손안에 남은 하나밖에 없는 마카롱을 바라보며 슬퍼졌다.

‘이제 마지막 하나뿐이네. 내 마카롱.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백수희 누나가 슬퍼하면 안 되니까.’

백수희는 시무룩해진 은우를 바라보다가 가방 속에서 마카롱을 하나 더 꺼내며 말했다.

“요기 또 있지.”

“눈나.”

은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주떼요. 눈나.”

“그냥은 안 되지. 뽀뽀 한 번 해 주면 주지.”

은우가 냉큼 백수희의 볼에 뽀뽀했다.

백수희가 은우에게 마카롱을 주며 말했다.

“백만불 짜리 뽀뽀인데요.”

은우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백만뷰짜리 마캬롱.”

창현은 두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백수희 씨는 은우랑 놀아주는 게 나랑 달라. 난 안쓰러운 마음에 장난 같은 걸 친 적이 없었는데 백수희 씨는 아닌 거 같아. 정말 편하게 은우랑 놀아주는 거 같아. 그래서 은우가 백수희 씨를 저렇게 좋아하나?’

차는 어느덧 등불축제가 열리는 공원에 도착했다.

창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이 너무 많네요. 수희 씨. 아무래도 사람들이 우릴 알아볼 것 같아요.”

백수희가 공룡변신 로봇 가면을 쓰고 말했다.

“은우랑 저만 가면 쓰고 있으면 모를걸요. 창현 씨는 아직 그렇게 유명하지 않잖아요. 오랜만에 보러 온 건데 내려요. 등불을 차 안에서 보면 실감이 안 날 거예요.”

은우도 동의한 듯 외쳤다.

“내려요. 사일런스 박샤 출동.”

창현은 두 사람의 등쌀에 못 이겨 차에서 내렸다.

강물 위에는 사슴 모양 등불, 고양이 모양 등불, 강아지 모양 등불이 있었다.

등불은 강물 위에 은은한 빛으로 물들며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거봐요. 내리니까 좋죠. 등불 너무 이쁘다. 은우야. 그치?”

“바민데도 낟쳐럼 환해요. 반쨕반쨕 너무 이뻐요.”

“공룡변신 로봇님, 너무 귀여우신 거 아닙니까? 로봇님 얼굴이 더 반짝반짝 빛나는데요.”

“샤일런스 뱍샤도 기엽구냐. 헤헤헤헤헤.”

백수희와 은우는 손을 꼭 잡고 공원을 걸었다.

그때 눈사람 등불이 나타났다.

은우가 외쳤다.

“와아, 뜨노우맨이댜.”

“겨울나라 2 생각나네. 은우 등불인데 이거. 여기서 사진 찍을까?”

“죠아요.”

은우와 백수희가 등불 앞에서 포즈를 잡았다.

“하나, 둘, 셋.”

창현이 셔터를 눌렀다.

은우와 백수희가 함께 외쳤다.

“꼬먀김뺩, 꼬먀김치, 치즈.”

“꼬마김밥, 꼬마김치, 치즈.”

사진 속에선 공룡변신 로봇 가면을 쓴 백수희와 은우가 머리 위에 양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백수희가 아쉬운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셋이 같이 찍으면 좋은데 부탁할 사람 없나.”

창현이 백수희를 말리며 말했다.

“그러다 알아보면 어떻게 해요. 참아요. 전 안 찍어도 괜찮아요.”

마침 백수희의 눈에 지나가는 대학생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백수희가 커플을 멈춰 세우고 여자에게 부탁했다.

“저기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캔버스 운동화에 청바지, 니트를 입고 단발머리를 한 여대생이 백수희의 휴대폰을 들고 외쳤다.

“하나, 둘, 셋. 찍어요.”

창현과 백수희, 은우는 함께 외쳤다.

“꼬먀김뺩, 꼬먀김치, 치즈.”

“꼬마김밥, 꼬마김치, 치즈.”

“꼬마김밥, 꼬마김치, 치즈.”

은우가 창현과 백수희의 중간에서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카메라를 보며 밝게 웃었다.

사진 속에는 공룡변신 로봇 가면을 쓴 은우와 백수희, 밝게 웃는 창현이 있었다.

여대생이 백수희에게 휴대폰을 주면서 말했다.

“혹시 백수희 씨 아니세요? 아무리 들어도 목소리가. 그리고 여긴 은우 맞죠? 은우 목소린데 아무리 들어도.”

“니에 니에 니에.”

백수희와 창현은 은우의 대답에 당황했다.

창현은 생각했다.

‘역시 애들은 거짓말을 못 하는구나. 근데 내일 기사에 뜨려나.’

백수희가 공룡변신 로봇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네, 맞아요. 아 가면 썼더니 땀 차서 죽는 줄 알았네. 은우야 너도 답답하지? 벗어.”

은우가 가면을 벗고 웃었다.

“공룡변신 로볻 노리 재미떤는데.”

여대생이 은우를 알아보고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거봐. 맞잖아. 내가 멀리서부터 은우 같다고 했지? 안 그래? 자기야. 내 말이 맞았다고.”

은우가 밝게 웃으며 여대생에게 말했다.

“마쟈요. 눈냐. 내 목또리 너뮤 잘 드려떠요?”

여대생이 핸드백에서 종이를 찾으면서 말했다.

“은우야. 이 다이어리에 싸인 한 장만 해 줄래? 아님 사진을 찍을까? 아, 나 오늘 은우 봤다. 이런 행운이.”

여대생의 남자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이 누나는 남자친구인 나보다 너를 더 좋아하는 거 같아. 매일매일 니 얘기만 해.”

은우가 여대생의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횬야를 더 샤랑하죠. 기다려뱌요. 횬아.”

은우가 여대생의 왼쪽 손을 잡아 남자친구의 오른손 위에 포개면서 말했다.

“영언히 샤랑하떼요.”

여대생이 소리 질렀다.

“은우 너무 귀여워. 나 오늘 이 손 안 씻어야지.”

남자친구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마음 넓은 내가 참아야지. 다섯 살짜리 애기한테 질투를 할 수도 없고.”

은우가 다이어리에다가 자신의 이름을 적으면서 말했다.

“횬아, 누냐 행복하떼요.”

은우가 적은 자신의 이름 옆에는 작은 손으로 그린 하트가 열 개나 그려져 있었다.

***

창현과 영탁은 김마리아 수녀님이 찍어주신 영상을 너투브에 업로드 중이었다.

‘진짜 오랜만이네. 은우가 음반 준비를 시작하면서 은우 채널을 소속사에서 관리하기 시작하다 보니 내가 업로드하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

창현은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냐는 엄마갸 엄떠요. 햐지만 슬프지 아냐.

냐를 슬프게 햐는 건 나쁜 법.

엄마갸 엄떠도 냐는 소듕해.”

창현은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기들이 너무 예쁘고 귀여운데 그래서 더 슬픈 노래야.

부모들의 미안한 마음을 너희는 알까?

이제 더 이상 아기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루빨리 법이 바뀌었으면.’

영탁이 우는 창현을 보며 말했다.

“사내자식이 눈물이 많아가지고서는. 울지 마. 임마.

은우가 엄마가 없긴 왜 없어? 곧 있음 생길 거구만.

은우는 이제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고, 그리고 멋진 할아버지도 있고 삼촌도 있고 그렇게 될 거잖아. 힘내. 임마.

그나저나 청첩장은 언제 줄 거냐?”

영탁이 창현을 옆구리로 쳤다.

창현은 쑥스러워서 아무 대답도 못 했다.

‘결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거니? 넌 아직 몰라. 임마.’

그때 창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창현입니다.”

“은우 아빠구만. 나 백인수요. 백수희 아빠. 왜 지난번에 은우 귀국했을 때 내가 한 번 집에 놀러 갔었잖아.”

창현이 전화기를 든 채로 서서 대답했다.

“네, 아버님. 기억하고 있습니다.”

“허. 이 사람. 긴장을 너무 했구만. 내가 할 말이 있어서 언제 시간 날 때 볼 수 있을까 하고. 언제 시간 괜찮소? 바쁜 사람 같으니 내가 그리 가도 되고.”

“아닙니다. 아버님. 제가 양복점으로 가겠습니다.”

“그럼, 내 양복점으로 오구려.”

“내일 점심 때쯤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창현이 전화를 끊자 영탁이 말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백수희 씨 아버님 전화네. 너 진짜 청첩장 돌리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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