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아카데미 시상식 (3)
길동이 은우를 데리러 나왔다.
은우는 길동의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
길동은 검정 슈트를 쫙 빼입고 있었다.
“횬아, 머디뗘요.”
길동이 어색한 듯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멋있긴. 은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미선도 놀란 듯 말했다.
“오빠, 오늘 상 받으러 가는 사람 같아요.”
“상은 무슨 조금 신경 쓴 것뿐인데.”
오랜만에 들은 칭찬 때문에 길동의 마음이 설렜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샤를로즈를 만날 생각에 옷을 좀 차려입었더니 반응이 좋네.
샤를로즈에게 사인을 꼭 받아야 하는데.
민재는 자기가 좋아하는 줄리 사인을 받아달라고 했는데 줄리 사인도 받을 수 있으려나.
별들의 축제라더니 내가 아카데미 시상식 프리파티에 가 보게 될 줄이야.
신난다.’
린다가 리무진을 끌고 와서 길동에게 전화했다.
“어서 내려와. 일 층이야.”
길동이 미선과 은우에게 말했다.
“빨리 가자.”
미선은 카메라와 태블릿을 챙긴 채 함께 차에 올랐다.
미선은 생각했다.
‘어차피 하루 지나면 사진으로 다 올라오긴 하지만, 그래도 실제로 보는 건 의미가 있으니까. 프리파티엔 세계적인 기업들이 협찬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오늘 명품 구경도 많이 하겠다. 은우 덕분에 좋은 구경 많이 하네.
뉴욕에 패션 유학을 가고 싶기도 했었는데. 돈이 없어서 포기하긴 했지만.’
미선은 미선대로 설레었다.
리무진을 타자 미선이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이 차 티비에서만 보던 그 차네요. 저 리무진 처음 타봐요. 진짜 좋다. 차 안에서 옷 갈아입어도 안 부딪치겠어요. 차가 커서. 옷도 많이 실을 수 있고. 와 이 안에 냉장고도 있고 쓰레기통도 있네요. 매일 이런 차를 타면 좋겠다.”
어느새 차는 프리파티장 입구에 도착했다.
은우는 길동의 손을 잡고 파티장 입구로 들어갔다.
린다와 미선도 파티장 입구로 들어갔다.
은우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이 좋아하는 박쥐맨의 주연 레오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은우는 다급한 마음에 레오의 이름을 외쳤다.
“레오. 레오.”
레오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아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레오가 은우를 알아보고 은우의 근처로 왔다.
린다가 자연스럽게 레오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은우구나. 기사에서 널 봤어. 이번 남우조연상 후보.”
은우가 레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져 박지맨 패니에요. 박지맨 너뮤 머디떠요.”
레오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박쥐맨의 변신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밤이면 출동한다. 뉴욕을 지켜라. 박쥐맨.”
은우가 박수를 치며 외쳤다.
“박지맨 출동! 머쪄요.”
은우는 레오를 영화 속의 박쥐맨으로 겹쳐 보였다.
레오가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펭귄 박사는 3탄에서 사라진단다.”
은우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네에? 악당을 다 무찌러뗘요? 그럼 이제 박지맨은 뭐해요?”
“걱정하지마. 새로운 악당 해파리맨이 등장해.”
“해파리맨요?”
“응, 펭귄 박사보다 더 무서워. 기대해도 좋을 거야.”
은우는 레오의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펭귄 박사보다 더 무서운 악당이 있었다니. 정말 악당들의 세계는 놀라워.
세상에 얼마나 무찔러야 할 적이 많은 거지?’
레오가 말했다.
“위대한 목소리에서의 연기 정말 좋았어. 만약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내 아역은 네가 맡아줬으면 좋겠어. 난 네가 이번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
“진쨔요?”
은우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레오가 날 인정했어. 내가 늘 멋지다고 생각하고 닮고 싶었던 박쥐맨이. 진짜 뿌듯하다. 오늘은 진짜 기쁜 날이야.’
길동은 은우와 린다에게서 떨어져 샤를로즈를 찾는 중이었다.
‘저기 금발 머리에 빨간 원피스. 샤를로즈다. 아, 떨려. 영화에서 본 거랑 똑같이 생겼잖아.’
길동은 샤를로즈의 옆으로 갔다.
샤를로즈는 와인 잔을 들고 있었다.
길동이 말했다.
“Hi, nice to meet you.(안녕, 만나서 반가워)”
샤를로즈가 와인을 마시며 대답했다.
“Hi. how are you?(안녕, 오늘 기분은 어때?)”
길동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잠깐만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거지? 난 영어 잘 못 하는데. 린다가 있으면 날 놀릴까 봐 혼자서 용감하게 오긴 했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에라 모르겠다.’
길동이 말했다.
“Would you like something to drink?(음료수 마실래?)”
샤를로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I’m drinking a wine.(난 와인을 마시고 있잖아.)”
“Would you like something to drink?(음료수 마실래?)”
샤를로즈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I’m drinking a wine.(난 와인을 마시고 있잖아.)”
길동의 표정은 점점 울상이 되었다.
‘린다랑 같이 올걸. 할 줄 아는 영어는 이것뿐인데. 망했다.’
길동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Would you like something to drink?(음료수 마실래?)”
린다가 은우에게 아이스크림을 퍼다 주었다.
“프리 파티엔 술이 많구나. 은우는 아직 술을 마실 수 없는데.”
은우가 아이스크림을 받으며 말했다.
“갠차냐요. 어른드른 슈를 조아하니까.”
“저기 쿠키 있던데 가져다줄까?”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린다는 쿠키를 가지러 갔다가 옆에 있는 마카롱을 발견하고 마카롱도 같이 가져왔다.
“네가 좋아할 만한 게 있었어. 이거 먹어본 적 있니? 마카롱이라고 하는 건데.”
“먀캬료이요?”
린다가 은우에게 마카롱을 건네주었다.
은우는 마카롱을 보면서 생각했다.
‘모양도 귀엽고 색깔은 더 예쁘잖아. 하늘색, 분홍색. 게다가 크림 좀 봐. 크림이 뚱뚱하게 꽉 차 있어. 터져 나올 것만 같은데. 분명 저건 맛있을 거야.’
은우가 마카롱을 입에 넣었다.
‘세상에 이런 맛이.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는 기분이야.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이제야 먹게 된 거지?’
린다는 은우를 보며 생각했다.
‘베어서 먹을 줄 알았더니 한 번에 다 넣다니. 작은 입이 터질 것 같아. 다람쥐가 도토리 먹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귀여운데. 볼이 너무 귀여워서 꼬집어 주고 싶다.’
은우가 말했다.
“뎌 주떼요. 마카롱. 마카롱이 더 피료해요.”
은우는 린다의 손을 잡고 마카롱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은우의 키가 작아서 린다가 테이블에 있는 마카롱을 집어 주었다.
“열 개 주떼요. 열 개요.”
린다가 걱정스런 어투로 말했다.
“은우야 배탈 나는 거 아닐까? 안 먹던 걸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 날지도 모르는데.”
은우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냐요. 안 냐요. 마캬롱 마니요.”
린다는 접시에 열 개의 마카롱을 담아주었다.
은우는 앉아서 마카롱을 입에 넣었다.
‘파티는 좋은 거구나. 전생에 마셨던 와인보다 훨씬 맛있어. 이탈리아엔 와인이 넘쳐났었지만 말이야. 이 마카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암.’
홀에서는 화려한 복장을 한 영화 관계자들이 와인과 샴페인, 맥주를 가져가고 있었다.
한 흑인 남성이 샴페인 한 잔을 든 채 은우의 옆에 앉았다.
“안녕, 친구. 마카롱 맛있니? 안녕 린다. 우린 이미 본 적이 있죠?”
린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은우에게 채드윅을 소개했다.
“은우야. 여긴 블랙팬더를 제작했던 제작자 채드윅이야.”
은우가 마카롱을 먹던 걸 멈추고 외쳤다.
“블랙팬더요? 이칸다 포에버.”
“이칸다 포에버. 기억해 줘서 고맙군. 친구.”
“그 영화 10변도 더 봐떠요. 나중에 또 볼 거예요.”
“찐팬인데. 영화 제작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지. 내 영화를 좋아해 주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거.”
“마카롱 드실래요? 진쨔 마디떠요.”
채드윅이 은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블랙팬더 2를 기획 중인데 블랙팬더 1의 주연 배우였던 듀크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어.”
은우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그거 듣꼬 마니 우러떠요. 그러케 머디는 배우갸 죽다니.”
“그래, 죽음은 슬픈 일이지. 블랙팬더 1을 찍을 때도 항암 투병 중이었지. 그치만 듀크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어. 끝까지 영화 속 블랙팬더로 남고 싶어 했지. 그 뜻을 이어서 블랙팬더 2를 제작하려고 하는데 블랙팬더 2는 블랙팬더 1의 이전의 이야기가 될 거야.”
“재미게떠요.”
“난 블랙팬더 2의 주인공으로 널 추천하려고 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아기 히어로가 필요하니까.”
은우의 마음이 설레었다.
‘아기 히어로라고? 내가 늘 바라던 히어로가 되는 것인가? 공룡 변신 로봇, 블랙 팬더, 박쥐맨 늘 바라보고 동경했던 많은 히어로들.
이제 나도 지구를 구하는 것인가.’
은우는 마카롱을 먹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쟐 할 뚜 이떠요. 열심히 하께요.”
채드윅이 웃었다.
“모든 일정이 수립되면 너에게 연락할게. 내일 밤 오스카의 행운의 여신이 너에게 미소를 보내길 기도할게.”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린다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채드윅. 여러 가지로요. 은우가 당신을 만나고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도 기대가 되는군요.”
미선은 혼자서 카메라로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옷차림을 찍고 있었다.
‘저긴 뉴욕시티의 배우 아만다네. 실물도 참 예쁘다. 키는 작은데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저런 와이드 핏의 긴 바지도 잘 소화하는구나.
저기 서 있는 남자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옷차림이 굉장히 화려하다. 커다랗게 프린팅된 호랑이 셔츠를 입고 있네. 패턴이 들어간 화려한 바지를 입었는데 저 패턴은 구찌인데. 생각해 보니 저 호랑이도 구찌에서 히트 친 뱀, 호랑이, 꿀벌 무늬 중 하나잖아. 구찌 마니아인가.
프틴팅 셔츠 코디는 은우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호랑이 티셔츠에 구찌 패턴의 바지를 입은 남자와 미선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남자가 미선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미선은 당황했다.
‘혹시 초상권 어쩌고 하면서 문제 거는 거 아냐?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쩌지? 내 월급 얼마 안 되는데. 아니야. 아마 메모리카드를 달라고 하겠지. 자기 사진이 외부로 퍼질까 봐 걱정하는 거라면.’
미선은 긴장했다.
남자가 미선의 목에 걸린 명찰을 보며 말했다.
“이은우 군의 스타일리스트시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선은 전에 뉴욕 유학을 꿈꾸며 영어 공부를 한 적이 있었기에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한 상태였다.
“반가워요. 혹시 사진 찍은 게 기분 나쁘셨나요?”
남자가 미선을 보며 예상치 못했다는 듯 이마에 손바닥을 쳤다.
“제 명찰을 읽어보세요. 전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 니콜라스예요. 은우 군 스타일리스트라고 쓰여있길래 말을 건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미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저도 구찌 제품 좋아해요.”
“회사에서 은우 군이 레드카펫 입장할 때 입을 옷을 협찬하겠다고 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요. 물론 듣기로는 우리 회사 말고도 루이비통, 발렌시아가 같은 회사들도 거절당했다고 하더군요.”
“네. 이번에 많은 회사들이 좋은 제안을 많이 해 주셨는데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은우가 아는 디자이너분께 의뢰를 한 상태였거든요.”
“은우가 인정한 디자이너라니 기대가 되네요. 아마 그분은 세계적인 패션 회사의 디자이너겠죠? 저처럼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