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생일잔치 (7)
다음으로 화면에 나타난 사람은 은우의 팬이었다.
“안녕. 은우야. 난 전재현이라고 해. 네 팬이 된 지 오늘로 323일째 되는 날이야. 처음 널 알게 된 건 예능프로에서였는데 네가 다람쥐를 어깨에 올린 채 노래 부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거기서 네 팬이 됐어.”
은우는 화면에 비친 전재현을 바라보며 웃었다.
‘고등학교 교복이 잘 어울리는 횬아네. 운동도 잘할 거 같아. 같이 운동도 하고 장난도 치면 재밌겠다.’
전재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사실 난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제대로 적응을 못 해서 학교도 여러 번 옮기고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어. 나랑 제일 친한 친구가 나랑 다른 친구들 사이를 이간질해서 오랫동안 힘들었어. 친구들이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내가 했다고 해서 싸우고 왕따도 당했거든.
애들은 학교에서 날 괴롭히는 걸로 모자랐는지 캐톡으로까지 날 초대해서 채팅방에서도 괴롭혔어.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어.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전재현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그 후부터 우울증이 생겨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내가 노력해도 일이 다 엉망이 될 것만 같고. 그래서 학교도 잘 안 가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어.
상담도 받았는데 별 효과가 없었어. 상담사 선생님이 하는 말은 직업이어서 하는 말처럼 느껴졌어. 과연 진심이 있을까. 자꾸 이런 의심만 하게 되고.
그러던 내가 널 만난 뒤로 조금씩 달라져서 이젠 학교에 나가고 있어.
가끔 나가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땐 니가 부른 노래를 들어.”
은우가 걸어가서 화면 가까이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전재현의 얼굴을 만지며 노래를 불렀다.
화면 속 전재현이 부르는 노래와 무대 위 은우의 노래가 겹쳐졌다.
“용기를 내. 칭구야.
듀려운 건 당연해.
뮤셔운 건 당연해.
하지만 우린 이겨낼 슈 이떠.
시자카는 쟈근 용기가 피료할 뿌니야.
내갸 너의 손을 쟈뱌 줄게.
너는 혼자갸 아니야.”
함께 부른 노래가 끝나고 은우가 말했다.
“횬아, 힘내요. 횬아는 소듕한 샤럄이에요.”
관객석의 관객들의 은우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은우는 팬들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고 같이 아파해 주는구나.’
‘저런 스타가 한국에 몇이나 있을까.’
‘은우야 넌 정말 소중해.’
화면이 바뀌고 긴 머리의 20대 중국여자가 나타났다.
여자의 앞에는 닭국물이 들어있는 요리와 훈제 오리 고기가 담겨 있었다.
밑에는 중국어 자막과 한국어 자막이 동시에 떴다.
- 안녕. 은우야. 이모가 안후허페이에서 너에게 추천하는 음식이야.
이건 리훙장따자후이라고 닭육수에 해삼, 닭고기,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음식이란다.
옆에 있는 요리는 루저우코야라는 건데 오리고기에 여러 가지 양념을 발라 구운 거란다.
우리 은우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길 바란다.
은우는 생각했다.
‘오리 고기 너무 맛있겠다. 치킨과는 또 다른 맛일 거 같은데. 먹고 싶다.
영상편지를 받으니 팬의 마음이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아. 고마워요. 눈나.’
다음 영상엔 짧은 스포츠머리의 남학생이 교복을 입고 등장했다.
밑에는 중국어 자막과 한국어 자막이 동시에 떴다.
“은우야. 생일 축하해. 내가 널 위해 생일 카드도 썼어. 이거 보이지? 그리고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야. 국물이 아주 맛있어.
나와 가족들은 네가 출연한 내일도 사랑해를 좋아해. 매일매일 내일도 사랑해를 보면서 웃고 있어. 자주 봐도 영상 속의 너는 어쩜 그렇게 귀여운지 모르겠어.
이건 내가 좋아하는 새우 딤섬(중국식 만두)이야. 우리 가족들 모두 이 음식을 좋아해.”
남학생은 수저로 딤섬을 한 입 베어 물더니 말했다.
“이 맛이야. 은우야. 셀 수 있는 간식과 셀 수 없는 사랑을 너에게 함께 보낸다.”
다음으로 화면에 나타난 것은 하얀 피부의 금발 미녀.
밑에는 영어와 한국어 자막이 동시에 떴다.
“안녕. 은우야. 생일 축하해. 네 말투 너무 귀여워. 너 때문에 한국어 배우고 있는데 너무 어려워. 한국에 널 보러 갈게.”
은우는 영상을 보며 미소 지었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팬들도 많구나. 전 세계에서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니 너무 행복해.’
다음으로 영상에 나타난 것은 늘푸른 태권도 친구들이었다.
“태건.”
태권도복을 입은 아기들이 사범님 옆에서 소리를 질렀다.
은우가 친구들을 알아보고 밝게 웃었다.
‘역시 내 친구들이야. 에너지가 넘치네. 하율이는 저렇게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녹화 끝나고 사범님한테 잔소리 좀 들었겠다.
사범님은 예의 없는 걸 싫어하시는데.
아마 지금 녹화 중이라 화를 참고 계실 거야.
그치만 혼나면서도 계속 꿋꿋이 소리 지르는 하율이도 신기해.’
사범인 찬규가 외쳤다.
“차렷, 준비.”
“태건도.”
5명의 아기들이 나란히 줄을 맞춰서 양발을 벌리고 주먹을 움켜쥔 준비 자세를 갖추었다.
은우는 미소 지었다.
‘지난번 명석이 위문 공연 때보다 많이 늘었네.
지난주에 봤는데도 보고 싶다.
또 태권도 하러 가야지.’
하율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횬아. 굥룡변신 로봇 션물 거마여요.
스티커도 거마어요.
횬아. 생일 츄카해.”
하율이는 부끄러운지 말을 마치자마자 어디론가 달려서 사라졌다.
다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것은 주원이었다.
“은우야. 녀랑 가치 태건도 배어서 너무 조아.
우리 담벼네 꼭 가치 노란띠 따쟈. 아라찌?
난 노란띠 따면 매일매일 쟈랑할 거야.
담에 가치 태건도 쟐해서 대회도 나가고 하쟈?
아라찌.”
다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것은 승현이었다.
“은우야, 풍선껌 스티커 줘서 거마어. 혹시 다른 스티커도 이떠? 내 꺼랑 바꾸쟈.
나 가지고 시픈 게 인는데.
그리고 주마레 엄마랑 니 생일션물 골라떠. 이거 내가 조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인데. 생일날 머겨.
이거 니갸 지난번에 준 팝핑 캔디가 아이스크림으로 드러이따.
너무 재미떠. 꼭 머겨뱌. 아라찌?
생일 추카해.”
최지은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기 전에, 은우 태권도장 친구 승현이가 은우에게 주는 선물인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이곳에 도착해 있습니다.
저희가 대신 승현이의 부탁을 받고 전해 주기로 했어요.”
무대 위로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올라왔다.
겨울나라 2의 공주 애나가 그려진 케이크였다.
“마디게따. 머겨 보고 십땨. 팝핑 캔디갸 드러인는 아스크림이라니.”
최지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 줄 알고 준비했습니다. 은우의 시식 시간.
수저 있으니까 먹어봐 은우야.”
옆에 서 있던 나세희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잘라 접시에 담아 은우에게 주었다.
은우는 신이 난 표정으로 수저를 떠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와아아아아 정말 터진다. 입에서 불꽃이.
커다란 알갱이가 팝핑 가루를 뭉친 건가. 그걸 씹으면 더 많이 터지네.
큰 알갱이 어딨지?’
은우는 아이스크림 속에서 큰 알갱이만 골라서 입에 넣었다.
‘아아아아아 입에서 벌레들이 축제를 여는 것 같아. 따따따따따따.’
은우는 입을 다문 채 입 안에서 터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최지은이 말했다.
“다들 아시죠? 은우의 요즘 최애템이 팝핑 캔디라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나 봐요. 정말 행복해 보이네요. 우리 은우. 은우는 정말 장난꾸러기예요. 재밌는 걸 너무 좋아하는 거 같아요.”
관중석에 앉은 팬들은 생각했다.
‘은우 표정만 봐도 저게 무슨 맛인지 알 것 같아. 전기라도 통한 듯 팝핑이 터질 때마다 눈이 움찔움찔하잖아.’
‘은우야 예쁜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 주라. 대체 그 표정은 뭐야?’
‘은우야 팝핑 캔디 아이스크림 누나도 좋아하는데 나중에 같이 먹을까?’
‘은우한테 팝핑 캔디 아이스크림 배달시켜줘야겠다. 진짜 좋아하네.’
다음 영상은 명석이었다.
“내 칭규 1호 은우야. 나 명서기야.
지냐 버네 니네 지베 놀러 가쓸 때 콜라갸 펑 터져서 미안해떠.
나 갸고 아빠한테 혼냔 건 아니야?
나 며칠 저네 병언 다녀완는데 의사 선생니미 마니 조아졌다고 야글 쥬리게따고 하셔써.
야기 마디 엄떠서 먹기 시러는데 주러서 너무 조아.
빨리 건강해져서 너량 더 마니 놀러다니고 시퍼.
아뺘랑 가치 니 생일 션물 만드러떠.
이거 대왕딱지야. 달려글 여섯 장이나 너어서 아무도 몬니겨.
머찌지?
다으메 만나셔 가치 딱지치기 또 하쟈. 뺘이.”
은우는 화면에 대고 같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뺘이.”
최지은이 말했다.
“명석이 선물도 우리가 대신 전해드립니다. 카메라맨 아저씨, 관객석에 앉아 계신 팬분들도 잘 보실 수 있도록 딱지 좀 카메라로 잡아주세요. 클로즈업 부탁드려요.”
최지은이 딱지를 은우에게 주었다.
은우가 딱지를 받자마자 무대 위에 내리쳤다.
-따악.
은우는 명석이의 솜씨를 인정했다.
‘역시 명석이야. 진짜 대왕딱지라 부를 만해.’
은우는 딱지를 주워서 주머니에 넣으려다 실패했다.
‘대왕딱지라 너무 커서 안 들어가네. 가방을 들고 올 걸 그랬다.’
최지은이 말했다.
“마지막 영상은 모두의 매니저, 근육 미남으로 유명하신 김길동 매니저입니다.”
팬들이 최지은의 소개를 듣고 환호했다.
“길동 아저씨.”
“길동 오빠.”
은우도 화면을 보며 웃었다.
“횬아네.”
화면 속에는 길동과 캘리그라피 수강생들이 함께 나왔다.
“은우야, 형아야. 형이 너한테 특별한 선물을 해 주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캘리그라피 수업을 들으러 왔는데 여기 이분들이 네 생일 선물을 함께 만들어주셨어.”
20대 여대생이 말했다.
“은우야. 생일 축하해. 우윳빛깔 이은우. 사랑해요. 이은우.”
30대 새댁이 말했다.
“은우야 우리 애들이랑 베이비가 돌아왔다 많이 보는데 거기 좀 나와주면 안 될까? 은우 나오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아.”
50대 아주머니가 말했다.
“은우야. 생일 축하해. 남우조연상 파이팅!”
마지막으로 캘리그라피 선생님이 말했다.
“국민 아기. 이은우. 할 수 있다. 이은우.”
모두가 함께 외쳤다.
“우린 은우를 사랑해.”
화면 속에 캘리그라피에 적힌 종이가 클로즈업됐다.
- 은우의 전성기는 지금부터
- 심쿵심쿵해. 은우.
- 은우야 뭐가 좋니?
- 내 눈엔 너만 보여.
다시 화면 속에 길동이 나타났다.
“까꿍. 끝난 줄 알았지?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길동이 자신이 쓴 캘리그라피를 들고 있었다.
- 은우야,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은우는 그 글씨를 보면서 길동이 형과의 지난 시간이 생각났다.
‘첫 만남부터 형아는 항상 내게 따뜻했어요.
형아, 항상 내가 좋아하는 간식도 차 안에 준비해 주고 내가 시무룩해 보이면 늘 신경 써주는 것 알아요.
형은 정말 좋은 매니저예요.’
영상이 끝나고 은우는 머리 위로 큰 하트를 만들며 화면에 대고 말했다.
“사량해요. 횬아.”
***
백인수는 양복점에서 은우가 그린 그림을 펼쳐놓았다.
‘풍선껌 포장지에 그려진 강아지 좀 봐. 표정이 진짜 강아지 같아. 연필로 그린 것 같은데 이런 그림이 나오다니. 화려한 기교도 없고 단순한 선뿐인데. 대체 은우는 이 그림을 어떻게 그린 걸까?’
백인수는 은우의 그림을 정리했다.
풍선껌에 그려진 그림이 총 여섯 점.
과자 상자에 그려진 그림이 총 다섯 점.
열한 점의 그림이었다.
‘아무리 봐도 혼자 보긴 아까워. 그 평론가가 말했듯이 이런 그림은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림은 타고나는 거거든. 학원에 다녀서 그리는 방법을 배울 순 있어도 관점을 가르칠 순 없지. 은우는 그림에 대한 관점을 타고난 아기 같아.’
백인수는 명함을 들여다보다가 엄태훈의 번호를 눌렀다.
“엄태훈 씨 되시나요? 이전에 명함 주셨던 양복점 주인 기억하세요? 만나 뵐 수 있을까 하고요.”
***
은우는 창현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중이었다.
‘스마트폰은 참 신기한 기능이 많단 말이지.’
보리가 은우를 보며 말했다.
“멍멍(나 요새 별스타 보는데 재밌더라. 너도 하나 올려봐.)”
“그견 아빠갸 해서 잘 모르는데. 아먀 아빠랑 영탁이 땀토니 할걸.”
“멍멍(그거 별로 안 어렵던데 할 수 있을걸).”
“그래. 해 볼까.”
은우는 창현의 스마트폰으로 별스타 어플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