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84화 (84/257)

84화. 생일잔치 (5)

그림 속의 은우는 백인수가 디자인한 화려한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양복을 입은 채 아카데미의 레드카펫 위에 밝게 웃으며 서 있었다.

“햐뷰지. 머쪄요.”

은우는 백인수가 그린 그림을 보고 놀랐다.

‘30년도 더 지났을 텐데 날 위해 그림을 그리시다니 감동이야. 웃는 표정이 너무 생생해. 색감도 너무 좋고.’

백인수가 쑥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좋아하니 다행이구나. 뭘 사줘야 할지 몰라서 그리고 기왕이면 기억에 오래 남도록 만들 물건을 주고 싶었단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이 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야.”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림을 그리려고 내 사진을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셨을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그림은 값을 매길 수가 없어.’

백수희도 쇼핑백에서 모자를 꺼냈다.

“은우야 눈나도 생일 선물 준비했어.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싶었는데 그건 누나가 잘 못 하는 거라서. 누나가 어릴 때부터 손재주는 좋았거든. 그래서 뜨개질로 모자를 떴어. 오랜만에 만든 거라 옛날 솜씨가 돌아오진 않았지만, 세상에서 하나뿐인 모자야.”

은우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대답했다.

“눈나, 하뷰지. 정먈 거먀어요. 날 위해셔 이러케 고생하시교.”

백인수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은우에게 더 고마워.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들을 알게 해 줘서. 은우를 만나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보았단다.

그림을 그만둘 때의 실망이 너무 커서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그림도 그리게 되고 말이야.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는 그림을 많이 좋아했더라고. 그래서 이제부터 취미로 조금씩 그리기로 했어.”

백수희는 생각했다.

‘아버지, 저도 은우를 만나고 많이 달라졌어요. 연기에 대한 열정도 생기고 재미도 알게 되고 난생처음 미역국도 끓여보고요. 비록 망했지만. 요샌 요리 너투브도 보고 있어요.

은우와 함께라면 서툴고 어려워하는 일도 재미있고 행복하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은우가 말했다.

“하뷰지 그림 쨩이에요. 은우 방에 부쳐 노을게요.”

백인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연기 왕자님께서 알아봐 주시니 이거 영광인데.”

은우가 주머니에서 풍선껌 포장지를 꺼내며 말했다.

“햐뷰지. 나 여기 하뷰지 그린 거 더 있는데.”

백인수는 은우가 준 껌 종이를 펼쳐서 보았다.

‘아직도 복숭아향이 폴폴 나는 게 풍선껌 포장지가 맞구나. 그런데 이 작은 종이에다 연필만으로 그린 그림이 이렇게 와 닿을 수가. 이건 내 얼굴이고. 이건 은우 친구들인가 보네.

아이의 순수한 시선이 뭔가 묘하게 그림 안에서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그림인데.’

백인수는 은우의 그림을 보고 놀랐다.

‘평론가가 괜히 명함을 준 게 아니었어. 양복점 쇼윈도에 걸어놓았던 그림은 나를 그린 것이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알 것 같아. 은우의 그림 실력은 전문가들도 인정할 만한 수준인 거야. 어쩌면 그 평론가의 말대로 은우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할 만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어.’

백인수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할아버지한테 준 것 말고 그림이 더 있니?”

은우가 호박찜을 입술에 잔뜩 묻힌 채로 대답했다.

“심심할 때 그린 게 이떠요. 춤 연습할 때랑 챠 아네서 심심할 때 과자 봉지냐 뱍스에도 그려떠요.”

백인수는 생각했다.

‘은우의 그림을 더 봐야겠어. 그리고 평론가를 만나봐야지.’

은우가 소고기미역국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미역국 마디떠요.”

백수희가 은우의 숟가락 위에 소갈비를 얹어 주었다.

“고기도 많이 드세요. 연기 왕자님.”

은우가 말했다.

“눈나도 머겨요. 은우는 혼쟈 머글 슈 이떠요.”

백수희가 대답했다.

“눈나가 재밌어서 그래. 은우 많이 먹어.”

***

아카데미 집행위원회에서 회의가 열렸다.

위원인 세라가 말했다.

“조사 결과 폴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럴 의도가 있었는지는 헷갈리더군요.”

의원인 알렉스가 말했다.

“의도가 뭐가 중요한가요? 결과가 중요하지. 폴이 한 그 말 때문에 우리 아카데미는 신뢰를 잃었습니다. 명예 훼손죄로 소송을 걸어도 모자랄 판에.”

위원장인 노아가 말했다.

“알렉스 위원의 말도 일리가 있긴 하죠. 하지만 아카데미는 세계 영화인의 축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에 주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명예 훼손까지는 가지 않을 겁니다. 우린 소송으로 얻는 이익보다 영화제의 가치가 더 소중하니까요.”

위원인 스티븐이 말했다.

“고의성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의였다면 남우조연상 후보로서의 자격을 박탈해야 하지만 고의가 아니었을 때도 후보로서의 자격을 박탈해야 할까요?”

위원인 스테파니가 말했다.

“저는 고의든 아니든 후보로서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사건 이후에 누군가가 이런 소문을 퍼트렸을 때 우린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없을 거예요.

폴의 자격을 박탈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위원장인 노아가 말했다.

“스테파니의 말도 일리가 있군요. 아무래도 폴의 남우조연상 후보로서의 자격을 박탈해야겠어요.”

위원인 세라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도 스테파니의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자꾸만 폴이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울먹이던 게 떠올라요. 우리가 남우조연상 후보에서 폴을 제외한다면 폴은 이후의 연기 활동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어요. 만약 그게 실수라면 폴을 용서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위원장인 노아가 말했다.

“모두의 말이 일리가 있군요. 그럼 찬반투표를 진행해야겠군요. 저는 폴의 남우조연상 자격 박탈에 찬성합니다.”

스테파니가 말을 이었다.

“저도요.”

알렉스도 말을 이었다.

“저도요.”

스티븐도 맞장구쳤다.

“저도요.”

세라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만 반대군요. 여러분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

폴의 사건은 각국 영화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였다.

- 폴. 남우조연상 후보 자격 박탈당하다.

- 폴. 남을 모함한 대가. 올해 아카데미 후보 중 유일하게 자격 박탈.

- 조니의 생일 파티가 폭탄 파티로.

- 폴이 모함한 한국인 배우 이은우 그는 누구인가?

- 올해 아카데미는 남우 주연상보다 남우조연상이 핫하다? 다른 후보에 대한 거짓 비방으로 후보 자격 박탈된 폴.

HO 엔터테인먼트는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태현이 강라온에게 전화했다.

“대표님. 폴이 남우조연상 후보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관심이 온통 은우에게로 쏠리고 있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빗발치고 있어요.”

강라온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 상황에 놀랐다.

‘운이 은우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남우조연상 후보가 한 명 줄었을 뿐만 아니라 은우에게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어.

나도 영화를 보았지만, 그레고리란 배우의 연기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연기였는데 말이야.’

강라온이 태현에게 말했다.

“은우가 출국하기 전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인터뷰를 너무 많이 잡으면 힘들어할 거야. 국내 인터뷰만 조금 잡도록 해. 해외에선 급하면 우리나라 인터뷰 기사를 가져다 번역해서 쓸 거야.”

***

은우는 팬클럽 재롱이들이 초대한 소극장에 와 있었다.

길동이 은우를 데리고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은우는 마음이 설렜다.

‘팬들과 함께 하는 첫 번째 생일잔치구나. 올해 열심히 활동한 보람이 있었어. 생각해 보면 올해 팬들과 재밌는 추억이 참 많았네.

요리 라방도 하고 말이지.’

길동이 말했다.

“은우야. 무대 밖에서 박수 소리가 막 들리면 그때 들어가면 되는 거야. 그게 생일잔치 시작이래.”

길동은 긴장이 되었다.

‘생일잔치가 끝날 무렵 내 선물도 잘 전달해야 하는데. 은우가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얼마나 낑낑대며 쓴 건데.’

길동은 쇼핑백에 넣어놓은 캘리그라피에 신경이 쓰였다.

그때 무대 위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길동이 은우의 손을 잡았다.

“이제 올라가자. 무대로.”

은우가 계단을 올라갔다. 은우의 앞에는 두꺼운 커튼이 있었다.

은우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까꿍놀이 하기 딱이겠는데.’

은우는 무대 위로 올라가 커튼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말했다.

“은우 엄땨.”

사회자인 최지은이 은우의 장난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우리 은우 어딨어요? 안 보이네. 어딨을까?”

은우가 좋아서 꺄르르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은우 엄땨.”

무대 아래의 팬들은 은우가 귀여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은우 좀 봐. 실제로 보니까 너무 귀엽다.”

“역시 우리 장꾸. 비글미. 은우다.”

“빨리 동영상 찍어. 집에 가서 다시 보게.”

“오늘 연차 내고 오길 잘했어. 은우야. 시작부터 눈나의 피로를 날려주는구나.”

최지은이 천천히 은우가 서 있는 곳으로 가서 은우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은우 요깄다.”

은우가 커튼으로 눈만 가린 채 말했다.

“은우 엄땨.”

최지은은 은우가 너무도 귀엽게 느껴졌다.

‘우리 은우 눈 가려서 자기가 아무것도 안 보이니 다른 사람도 은우가 안 보인다고 생각하나 보다. 너무 귀여워.’

최지은이 은우에게 말했다.

“공룡 변신 로봇님. 비밀번호는 뭔가요?”

은우가 눈을 가렸던 커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영영영영임니댜.”

“네, 맞습니다. 이제부터 은우의 생일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 다 같이 박수.”

“와아아아아아.”

팬들의 우렁찬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 속에서 은우의 생일잔치가 시작되었다.

최지은이 말했다.

“은우의 생일잔치를 맞아 팬들이 은우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일문일답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팬들이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관객석에 앉아있는 팬들 중 하나가 마이크를 넘겨받고 질문을 했다.

“우리 은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순간 은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장 좋아하는 과자나 가장 좋아하는 고기나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아니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하나둘인가. 너무 많은데 어떻게 하지?’

은우가 고민을 하고 있으니 최지은이 말했다.

“은우가 음식이라는 단어가 어려울 수 있으니 쉬운 단어로 바꿔서 질문을 해 볼까요?”

팬이 다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은우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는 뭐예요?”

은우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요즘은 퍕핑 캔디요. 이베 너으면 톡톡 터져서 너뮤 재미떠요. 얼먀 전까진 스키틀즈 신마시연는데. 이젠 퍕핑 캔디갸 제일 조아요. 근데 또 바낄지도 몰라요.”

몇몇 팬들은 은우의 대답을 스마트폰에 메모하고 있었다.

- 팝핑캔디. 은우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 그러나 또 바뀔 수 있음.

- 팝핑캔디. 인터넷 최저가 알아서 택배로 주문할 것. 은우가 현재 가장 좋아하는 과자.

다음 팬이 마이크를 받았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뭐예요?”

은우는 생각했다.

‘내 운명의 노래라면 당연히 울게 하소서지. 하지만 요즘은 아기가 되어서인지 귀여운 노래가 좋은데. 요새 차에서 듣고 있는 동요 메들리 중의 하나를 말해야겠다.’

은우가 말했다.

“샬금샬금 고양이요.”

팬이 말했다.

“불러줄 수 있어요.”

은우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자에서 일어났다.

“샬금 샬금 고양이.

꼬리가 스스륵 문 샤이로 사라져.

샬금 샬금 고양이.

나 쟈바 뱌라.

나 쟈바 뱌라.”

팬들은 은우가 너무 귀여워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살금살금할 때 손가락을 고양이 앞발처럼 오므리고 조심조심 걷는 춤 너무 귀여워. 은우 진짜 고양이 같아.’

‘꼬리가 있는 것처럼 살펴보는 춤 너무 귀엽다. 우리 은우 꼬리 어디 갔니?’

‘나 잡아 봐라 하면서 도망치는 것 좀 봐. 장난꾸러기 은우랑 너무 잘 어울리는 가사인데.’

‘춤출 때 은우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여. 은우야, 웃는 모습 보니까 내가 다 행복하다.’

‘은우 덕분에 요새 동요를 많이 알아가는 거 같아. 가사가 하나같이 맑고 깨끗하다. 나도 저런 동요를 부르던 때가 있었겠지?’

‘나 잡아 봐라 반복될 때 너무 귀여운데 은우랑 무대 위에서 잡기 놀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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